징조와 백부장의 증거 (눅23:44-49)
본문
우리는 오늘의 본문에서 주님의 십자가상의 죽으심에 따르는 기적적인 징조들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세시간 동안 온 땅이 어두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해가 빛을 잃고, 성소의 휘장 한 가운데가 찢어 졌습니다. 온백성의 죄를 위한 희생이 드려지는 동안 이같이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온 예루살렘 사람들의 주의가 쏠린것은 매우 적절한 일입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이 주어질 때 놀라운 징조 들이 백성들이 보는 가운데 일어났습니다. 마찬가지로 갈보리 산상에서 주님이 속죄의 피를 흘리실 때에도 이같이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불신하는 세상을 위한 하나의 표적이었습니다. 대낮에 어두움이 임한다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전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진다는 것은 성전의 사역자 들을 위한 징조입니다. 이같은 기적은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을 다루시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본질적인 어리석음과 불신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세대를 시작 하실 때 이같은 놀라운 기적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강권적으로 눈을 뜨게 하시며,잠시동안이나마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실 때에도 그리하셨고, 복음을 주실 때에도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재림 하실 때에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비웃고 불신하는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은 천체의 운행도 중단하실 수 있으며,쉽게 창조의 모든 체제를 바꾸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땅이 아니라 하늘도 진동 시키실 수 있고,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에 주위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주님의 죽으심은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과는 다른 무엇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늙어서 죽는 것처럼 죽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요. '내가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요10:17,18) 그는 죽을 수 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죽으신 것입니다. 이 말씀 가운데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 가에 대한 지침이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공포의 대왕을 맞이하는 것처럼 맞아서는 안됩니다. 죽음은 정복된 원수입니다. 그것이 잠시 몸을 상하게 할 수는 있으나, 후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원수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죽음에 당면한 스데반의 태도였고,바울의 태도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것을 확신함이라'(행7:59,딤후1:12) 이같이 종말을 맞이하는 자는 주 안에서 복된자입니다. 이같은 죽음을 목도한 백부장의 증언을 들어 보십시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려고 모인 자들이 다 '가슴을 두드리며'돌아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의 관리는 그 자신이 불의한 사형을 지휘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던 무리들도 심각한 잘못을 충동질하여 도와 주고, 생각없이 날 뛰었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이 찔렸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가 무거운 마음으로 스스로를 정죄하면서 그 갈보리언덕을 떠났음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양심의 힘입니다.
그러므로 내적인 평안을 바라는 사람은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양심을 잘 활용하고 ,귀를 기울이며,굳게 지켜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요일3:21)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24: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주님은 의의 태양이십니다. 만물을 지으신 주님께서 침통한 죄악의 어두움 가운데 처해 있을 때 만물이 빛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태양이 빛을 잃은 것입니다. 만일 주님이 빛을 잃는다면 만물 또한 빛을 잃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는 우리의 영혼이 흑암에 있더라도, 우리의 생애가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더라도 절망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도 그같은 형편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성소의 휘장이 찢겨졌습니다. 그것은 진리가 밝혀진 것을 의미하고,죽음이 제거되고 부활의 소망과 영광스러운 미래가 제시된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말씀이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에 아버지 손에 우리를 의탁하는 근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요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속죄받은 피조물이기에 그같이 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입은 자들은 새롭게 된 영혼들이며,인친 바 된 영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자녀들은 모두가 확신을 갖고 아버지 손에 영혼을 맡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백부장 외에도 구경하러 모인 군중들에게도 그 능력을 나타내었습니다. 살인을 방조하고, 거들었던 이들의 마음은 착잡한 후회로 바뀌었 습니다. 우리의 죄가 주님의 수난을 야기 시켰습니다. 주님은 우리 각자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는 부단히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녹여 은혜의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세대를 시작 하실 때 이같은 놀라운 기적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강권적으로 눈을 뜨게 하시며,잠시동안이나마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실 때에도 그리하셨고, 복음을 주실 때에도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재림 하실 때에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비웃고 불신하는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은 천체의 운행도 중단하실 수 있으며,쉽게 창조의 모든 체제를 바꾸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땅이 아니라 하늘도 진동 시키실 수 있고,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에 주위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주님의 죽으심은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과는 다른 무엇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늙어서 죽는 것처럼 죽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요. '내가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요10:17,18) 그는 죽을 수 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죽으신 것입니다. 이 말씀 가운데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 가에 대한 지침이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공포의 대왕을 맞이하는 것처럼 맞아서는 안됩니다. 죽음은 정복된 원수입니다. 그것이 잠시 몸을 상하게 할 수는 있으나, 후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원수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죽음에 당면한 스데반의 태도였고,바울의 태도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것을 확신함이라'(행7:59,딤후1:12) 이같이 종말을 맞이하는 자는 주 안에서 복된자입니다. 이같은 죽음을 목도한 백부장의 증언을 들어 보십시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려고 모인 자들이 다 '가슴을 두드리며'돌아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의 관리는 그 자신이 불의한 사형을 지휘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던 무리들도 심각한 잘못을 충동질하여 도와 주고, 생각없이 날 뛰었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이 찔렸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가 무거운 마음으로 스스로를 정죄하면서 그 갈보리언덕을 떠났음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양심의 힘입니다.
그러므로 내적인 평안을 바라는 사람은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양심을 잘 활용하고 ,귀를 기울이며,굳게 지켜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요일3:21)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24: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주님은 의의 태양이십니다. 만물을 지으신 주님께서 침통한 죄악의 어두움 가운데 처해 있을 때 만물이 빛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태양이 빛을 잃은 것입니다. 만일 주님이 빛을 잃는다면 만물 또한 빛을 잃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는 우리의 영혼이 흑암에 있더라도, 우리의 생애가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더라도 절망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도 그같은 형편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성소의 휘장이 찢겨졌습니다. 그것은 진리가 밝혀진 것을 의미하고,죽음이 제거되고 부활의 소망과 영광스러운 미래가 제시된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말씀이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에 아버지 손에 우리를 의탁하는 근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요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속죄받은 피조물이기에 그같이 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입은 자들은 새롭게 된 영혼들이며,인친 바 된 영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자녀들은 모두가 확신을 갖고 아버지 손에 영혼을 맡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백부장 외에도 구경하러 모인 군중들에게도 그 능력을 나타내었습니다. 살인을 방조하고, 거들었던 이들의 마음은 착잡한 후회로 바뀌었 습니다. 우리의 죄가 주님의 수난을 야기 시켰습니다. 주님은 우리 각자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는 부단히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녹여 은혜의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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