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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판단 (막12:38-44)

본문

사람은 판단 할때, 외모를 보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마음 중심을 보고 판단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판단과 사람의 판단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 가운데 나타나는 사람들을 각각 어떻게 판단하시는 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서기관; 외식하는 종교인으로서 그 위선을 책망하셨습니다.(38-40절) 서기관들은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백성들에게 존경의 문안을 받고 잔 치나 공식적인 연회석상에서 항상 상석에 앉을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의 그 모든 일들이 오히려 중한 판결을 받아야 할 일로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위선을 경고하며 책망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마 23:13-36)에 상세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들의 폐단과 죄상이 무었이었는 가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서기관들에게 언행이 불일치하는 위선의 폐단이있었습니다.(마23:3) 서기관들은 생활 구석구석에 구체적으로 율법르ㅎ 적용하기 위하여 율 법을 세부적으로 해석하는 일에 골몰하였습니다. 그렇게하여 마련된 율법 해석서 만도 무려 50권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해석들 중에는 너무도 무모하고 엄격하여 일반 백성들이 큰짐으로 여겨지는 부분들도 많이 있었 고, 어떤 내용은 꼭 지켜야 할 내용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바리새인 이나 서기관들은 종교적인 위선이 몸에 베어 있었으므로 스스로 가르친 바 를 지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에도 우려되는 문제입니다. 강단에서 외치는 자들은 한결같이 거룩한 행실을 강조하며,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바 높은 수준의삶 을 권면합니다. 그러나, 그 가르침대로 실천하여 먼저 모범을 보이는 자들 은 많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성도들 중에는 설교자의 표리부동한 모습을 보고서 실망하여 비판과 독설을 던진후, 자신 또한 성경의 가르침을 지키는 생활로 부터 멀어져가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처럼 말하기는 쉽고 행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비판하기는 쉬워도 스스로 모 범을 보이기는 힘든 것입니다. 이와같은 현상은 먼저믿은 성도와 나중믿은 성도 사이에서, 교회의 지도 적인 직분을 가진 자들과 평신도들 사이에서, 심지어는 가정에 부모의 신 앙과 자녀의 신앙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수 있는 현상인 것입니다.
2)서기관들에게 외식함이 폐단이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식 중에서 예수님은 경문과 옷술에 관한 외식 을 지적하셨습니다. 경문이란 "이것을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삼 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문자 그대로 이행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13:3-10,11-16;신6:4-9,11:13-21의 네군데의 성경말씀을 양피지에 적어 이 경문을 조그마한 상자에 넣고 끈을 달아 이마에 두르거나 손목에 만들 어 달고 다녔던 것입니다. 그리고 옷술이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기억하며 지키게하기 위하여 의복의 옷단 귀에 술을 달게하신 것입니다.(민15:37-41) 이와같은 하나님의 명령은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기 위하여 그들 의 일상생활까지 관여하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것을 종교적 지위를 표시하는 것으로, 혹은 경건의 모 양으로 악용하였던 것입니다. 특히, 이들의 십일조에관한 확대해석및 적용은 가히 가난한 자와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외식적인 해석이 겉치레 해석이 아닐수 없는 것입니다. 모 든 산업과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표로서 드려진 십일조는 레 위인들의생계를 위해(민18:21-24), 성전 유지비 조달을 위해(신12:6-7,11-19), 혹은 사회적으로 약자들을 구제하는 일을 위해(신26:12-15) 긴요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 자체는 반드시 지켜져야할 거룩한 규례 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십일조의 본래의 정신을 망각한 채 형식에 치우친 적용으로 십일조를 쓸모없는 일에 잘못 사용하는 잘못을 저 지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예로써, 유대인들은 박하나 회향이나 근채를 양념이나 약재로 쓰기 위하여 가정에서 소량으로 재배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런 사소한 것에까지 십일조를 주장하였습니다. 그것까지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렇게 철저하게 거둬들인 십일조를 율법대 로 요긴하게 사용되지 않고 종교 지도자들의 배를 채우는 일에 허비 되었 던 것입니다. 결국, 십일조가 가난한 과부의 생계를 보태주기는 커녕 가산 을 삼키는 제도로 둔갑되도록 잘못 적용시키고 만 것입니다.
3)서기관들에게 교만의 폐단이 이었습니다. 이 교만은 곧, 앞에서 언급된 위선과 외식의 근본 원인이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들은 일반 백성위에 군림하여 존대받기 원했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지켜 지지도 않는 온갖 엄중한 계명들을 장황하게 설교하였으 며 또한, 경문과 옷술을 보란듯이 크게 만들어 과시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모든 과오와 폐단을 시정하는 유일한 길은 회개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 뿐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과오는 어느 세대든지 반복하여 재현될 가능성이 이 있는 것입니다. 지도자이든 평신도이든, 직분이 있든지 없든지 바리새 인과 서기관들의 누룩을 조심해야 합니다. 위선과 외식과 교만이라는 누룩 에 오염되지 않으려면 예수님처럼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2.부자; 많이 드리고도 칭찬을 받지 못했습니다.'중심을 보시는 0'(41,44) 예수님께서 성전의 연보궤 앞에서 부자의 연보하는 것을 보시고 분명히 많은 금액을 헌금 하였는데도 칭찬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부자의 연 보를 보고 칭송 받을만한 자로 여겼습니다. 사실, 부자가 헌금을 잘못 바 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여기 말씀하시는 바는 액수 자체가 아니라, 마음과 정성을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부자는 자기의 풍족한것 중에서 얼마를 바쳤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칭찬 받을만한 연보가 되려 면 부자의 수준에 맞추어야지 세상 사람들의 수준에 맞추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외모나, 현상이나, 그 양을 중요시 하지마는 주님은 그 마음중심과 처지를 헤아려 판단하시는 분으로서 결코 치우침이 없으신 분 니신 것입니다.
3.과부; 아주 적은 양을 드렸지만 칭찬을 받았습니다.(42-44절) 성전에는 제사장의 뜰, 이스라엘(남자들)의 뜰, 여인들의 뜰, 이방인의 뜰이 있었는데, 여인의 뜰에는 마치 나팔모양과 같이 생긴 13개의 연보궤 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증 9개는 성전세와 제물을 위한 연보궤였 고, 4개는 각종 구제를 위한 연보궤였습니다. 어느날, 예수님꼐서 이 연보궤 앞에 앉으셨을 때에 많은 헌금을 드린 부 자들 틈에 한 과부가 나서서 헌금하는 것을 보고 하신 말씀이 본무에 나타 난 말씀입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단지 두렙돈을 연보 하였습니다. 이 렙돈이란 팔레스틴 에서 통용되는 돈 중에서 가장 적은 단위의 동전으로서 노동자 하루 품삯 인 한 데나리온의 128분의 1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녔습니다. 두렙돈 이었 으니 우리나라 돈으로 500원 짜리 동전 두개정도인 1000원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보면 많이 보아 줄수있는 금액일 것입니다. 액수를 보아서는 부 자와는 비교도 안되는 금액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부자의 연보보다, 이 과부의 연보를 더 많은 연보로 보아 주었습니다. 바로 그 이유는 다음 과 같습니다.
1)과부는 자기 생활비 전부를 드린 것입니다.(44절) 과부가 바친 금액이 적었으나, 그것은 하루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용 근 로자가 가질수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에 가장 많은 헌금을 한 것 이라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눈에 비쳐진 과부의 헌금태도는 자기 생존에 필요한 생활비, 곧 생명의 헌신으로 간주하신 것입니다. 이 과부에게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점은 자기의 것을 하나님께 다 바치는 그 정신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헌금은 우리의 것중에서 일부를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액수에 상관없이 우리의 것을 다 바치는 정신으로 바쳐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누리고 갖고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전부를 다 바치는 자세로 드리는 헌금을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2)과부는 자원하여 즐겁게 드렸습니다. 헌금정신의 본질은 금액의 다소에 있지않고, 얼마만큼 자원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바쳤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헌금을 바쳤다 하더라도 자원하지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바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 지않는 헌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만일 과부가 아무리 그날의 생활비 전 부를 털어 바쳤다 하더라도 억지로 하였다면 예수님의 칭찬을 들을수 없었 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성막을 짓게 되었을 때에 모세는 백성들 에게 자원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도록 권유하였습니다.(출3 5:21-22)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헌금에 깃든 인간들의 마음을 기뻐게 흠 향하시는 것입니다.
3)과부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렸습니다. 헌금을 바치는 일에 있어서 본질적인 정신의 또 하나는 액수의 많고 적 음의 상관없이 그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치는데에 있습니다. 헌금은 근 본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요, 의식주를 해결해 주신 그분의 사랑에 대한 감사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없는 헌금은 헌금이 아 닌것입니다. 다윗도 성전을 짓기위한 헌금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쳤고(대상29:3-4),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수리할 때에도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바쳤습니다.(대하24:10) 사도 바울은 헌금을 사랑의 표시라고(고후2:8)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받고 싶어하는 것은 헌금의 액수가 아니라, 지 극히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이 땅에 충만한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그 러기에 우리가 바친 것으로 하나님의 것으로 삼지는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제 헌금할 때마다 지극한 감사로 드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사람은 속일수 있으나, 주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으시지 않습니다. 중심과 진실과 감사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므로 하나님을 기뻐시게 해 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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