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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를 따르는 자들 (막14:43-54)

본문

4월은 고난의 달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실 때 주님의 따르던 사람들을 살펴 보면서 그 분들을 유형별로 분석하고 오늘 우리의 모습을 반추하며 주님의 은 혜를 받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데 어떤 목적과 어떤 자세를 가지고 따르느 냐에 따라 그 사람이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냐 아니냐를 우리는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을 따랐던 분들의 모습을 살펴 보면서 나는 어떤 사람 인가 다시 한 번 돌아 보며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본론'
1.12제자중 하나가 되엇지만 나중에 배신자가 된 가룟유다를 생각해 봅시다(43-46) 가룟유다는 어떤 동기로 주님의 제자가 되엇을까 본인의 마음속은 알지 못하지 만 확실한 것은 주님을 따르고자 열망하는 많은 지망자들 가운데서 주님께서 가룟 유다를 12중의 한 인물로 발탁을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셧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 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어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 하셧다. 주님은 그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거 듭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진정한 주님의 제자가 되고 사도가 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유다는 주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가지 거듭나지 못햇다. 예수님이 만찬석에 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목욕한 자는 깨끗하기 때문에 발만 씻으면 된다고 하 시면서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셧다. 그 말씀은 다른 제자들은 다 주님 을 믿고 그 말씀으로 거듭나서 영혼의 깨끗함을 받았지만 유다만은 옛사람 그대로 있다는 뜻이다.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나와 살구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 것처럼 마른 지팡이 같았던 제자들의 심령에도 구원의 싹이 나고 꽃이 피엇지만 가룟유다의 심령 만은 메마른 상태 죽은 상태, 생명이 없는 상태 그대로 남아 있었다. 왜그럴까 그는 물질의 탐욕에 매인 사람이라, 주님의 전도여행비를 위해 성도들 이 드린 헌금을 빼돌려 착복하는데 늘 관심과 열심이 있엇다. 돈의 탐욕에 매인 그 의심령은 변화 될 수 없었다. 그래도 내가 12명가운데 한 사람이란 교만이 더욱 더 그를 변화되지 못하게 햇다. 바울사도는 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 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고 경 고하였습니다. 물론 교회에 나오는 동기가 처음에 병을 낳기 위하여, 가정에 평화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입어 어떤 소워이 성취되기 위해 나올 수 잇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상의 자리에로 나아가지 않으면 않됩니다. 구원의 주님, 생명의 주님을 만나야만 한다. 특히 위험한 것은 교회를 통해서 어떤 명예를 획득하려는 정치적인 야망의 실현방법으로, 교인들에게 장사해 보자는 이권욕으로 교회에 나오는 경우이다. 이 런 분들이 있다면 크게 회개하여야 한다. 교회는 구원을 얻기 위한 집단이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지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순수한 집단이다. 그것을 내 인간적 욕 망을 이용하려 한다는 것은 가장 비열한 것이며 그런 탐욕이 그 마음속에 자리잡 고 잇는 한 그는 구원받기 어렵다. 가룟유다는 주님의 제자들 무리가운데 항상 탐 심에 눈이 먼 도둑으로 남아 잇엇고, 나중엔 피에 굶주린 강도의 안내자로서 주님 을 찾아왓습니다. 오늘날 주님의 교회에 장사꾼으로, 정치인 자격으로, 무슨 입후 보자 명목으로, 재야운동의 목적으로 나와서는 않된다. 그의 직업이 상인이든, 국 회의원이든, 건설업자든 불문하고 우리는 다 주님의 양으로, 주님의 제자로 주님앞 에 나와야 합니다. 여기 모이신 성도 여러분은 다 예수님의 어린 양으로서 주님 을 내 구주로 믿으시어 영생을 얻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가 되어 주님의 삶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2.호기심으로 주님을 따르다가 도망간 마가를 생각하자(51, 52절). 5절에 보면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제자들 마져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친 마당에 한 청년이 예수를 따라갔다는 기록은 인상적이다. 한 밤중 베홋이불을 두르고 벗은 몸으로 주님의 뒤를 따르다가 무리에게 잡히자 이 불을 두고 달아났던 그 청년은 누구일까 바로 이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이다. 그가 왜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따랏을까 주님일행이 최후의 한 주간동 안 지내면서 밤마다 모여 주님의 말씀을 듣고 최후에 성만찬을 햇던 장소는 바로 마가의 집이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부유한 여성이엇고 일찍부터 주님을 섬긴 신앙의 여성이엇다. 그러기에 마가도 주님의 말슴을 여러 번 들었고 주님을 존경했 고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밤중에 잠을 자는데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일행이 먼저 주님이 그 집에 잇는 줄을 알고 문을 두드리고 다락방을 보니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예수는 분명 겟세마네동산에 갔을 것이라고 알아차린 가룟유다의 인솔하에 그들은 급히 동산으로 사라졌다. 이 소동에 마가는 잠이 깨엇을 것이다. 마가는 급 히 예수님게 위험을 일러주려고 옷도 갈아 입지 못한 채 베홑이불만 두르고 동산 으로 뛰어갓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엇다. 제자들은 다 도망하고 예수님을 체포한 무리들이 거리로 내려오고 잇었다. 마가는 주님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발각이 되어 체포당하게 되자 번개같은 동작으로 홑이불을 벗어제치고 도망 했습니다. 이 사실에서 볼 때, 그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자 하는 각오를 가지고 뒤를 따 른 것은 아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되는 것일까 라는 호기심과 두려움에서 주님께 대한 일말의 연민에서 뒤를 따랏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과 함께 가고자 하는 영적 정신적 준비가 전혀 없었다. 육체의 벌거숭이됨처럼 그의 정신상태도 벌거숭이였던 것이다. 우리 예수님도 고난받으실 때 벌거벗기워 적신이 되셧고 롬 8:35에 바울은 주님을 위해서라면 적신이 되는 것도 각오햇노라고 햇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 랴!" 그들은 몸은 비록 적신이 되엇어도 오직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을 위해 죽으 리라는 확고한 각오로 마음에 옷을 입고 주님을 따랏던 것이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어야 한다. 예수를 위해 살고 예수를 위해 죽자는 각오로 옷을 입어 야 한다. 많은 분들이 교회에 출석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같다. 그러나 마가처럼 호기심에 의해 일시적 영웅심으로, 군중심리에 충동되어 주님을 따르는 것은 곧 좌절하고 만다. 중고등학교, 청년시절에 학생청년운동을 한참 하면 정말 성령님께 붙잡혀 힘써 충성하는 이들도 잇지만 개중엔 군중심리에 의해,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욕망으로 열심히 하는 자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임원직을 물러나 그 일이 없어지고 나면 내 가 언제 교회 다녔냐는 식으로 교회를 멀리하게 된다. 이런 분들은 다 그리스도로 옷입지 못한 자들이요,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각오로 옷을 입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마가가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진정 복음으로 거듭나고 성령님 충만함을 받아 선교사가 되엇고, 많은 연단을 거쳐 훌륭한 목회자가 되엇고, 이 마가복음을 기록하였다. 우리가운데 아직 주님을 믿지 못하시는 분, 주님을 다를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분들이 계십니까 포기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도 새롭게 되어 변화된 마 가와 같이 주님을 위해 귀하게 쓰임받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관망자적 자세로 주님을 따르다가 주님을 부인하고 만 베드로를 생각하자. 그는 처음엔 다 주를 버릴지라도 자신은 주님을 결코 버리지 않음녀 옥에도 죽는데도 함께 가리라는 굳은 각오를 햇던 사람이다. 예수님을 잡는 무리가 왔을 때 혈기가 일어나 칼을 빼내어 예수님께 먼저 접근해서 잡으려하던 대제사장 말고의 머리를 내리쳤다. 말고가 피하는 순간 그의 귀가 떨어 졌다. 예수님은 검을 도로 곶으라 검을 스는 자는 검으로 망하나도 하시면서 말고의 귀를 도로 붙여 주셨다. 그 후 주님께서 묵묵히 체포당하셨다. 검과 몽치와 검을 가진 대제사장의 하수인 들과 빌라도 수비대의 보병들은 예수곁에 있던 자들까지 체포하려 햇다. 더구나 베 드로는 저쪽편의 귀까지 자르면서 대항태세를 취하였으니 제자들가지 체포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에 제자들은 두려움으로 다 도망쳤다. 처음엔 큰 소리쳤던 베드로도 함게 도망쳤다. 잠시 후 베드로와 요한은 정신을 가다듬엇다. 도망만 갈 게 아니라, 저 멀리 사라저 가는 무리들틈에 끌려가는 주님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그 뒤를 따라 갔다.
그런데 본문 54, 베드로가 에수를 멀직이 좇아갓다. 말찍이 따라갓다는 것은 주님 과 함게 고난받고자 하는 각오를 포기하고 주님이 어떻게 되시는가를 구경해 보자는 자세이다. 그래서 주님이 안뜰에서 심문받으시는 동안 그는 좀 떨어진 곳에서 여러 구경하는 사람들과 함께 불을 쬐며 앉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베드로가 앉아 잇는 자리는 예수와 함게 고난받는 자리가 아니다. 예수의 고난을 구경하는 자리다. 우리가 베드로처럼 멀찍이 주님을 따르겟노라는 입장을 택한다면 주님의 고난과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신앙생활을 연극으로 비유한다면 배우들을 비롯한 출연진이 잇고 그것을 구경하는 관객들이 잇는데, 진정한 신앙인은 출연진이 되어야지 관객으로 남아 있으면 안된다. 베드로처럼 관망자의 자리에 잇는 분은 예수님은 배우요 나는 관객일 뿐이다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당하시는데 나는 감상만 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나도 그 무대위에 뛰어 올라가서 배역을 맡아 나도 극중 인물이 된다는 것이다. 요즈음 큰 교회를 선호하는 교인들 가운데 큰 교회나가면 얼굴도 모르고 간섭하는 사람도 없으니 좋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교회의 활동에 참여자가 되기 보다는 구경 군으로, 천국확장이라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출연진이 되기 보다는 관객으로 남아 있겠다는 것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구제니 선교니 기도원 건립이 니 분주하게 움직이고 많은 분들이 힘써 봉사하고 물질을 드린다.
그런데 자기를 교회에 일체화해서 함게 십자가를 지고 책임의식을 가지고 희생하는 이가 잇고, 구 경만 하고 비판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주님을 멀찍이 따르려는 이들이요, 교회활동의 관망자로 남아 잇고자 하는 자들인 것이다. 이런 분들은 환란핍박이 올 때 10중 8, 9는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하기 쉽상이다. 성도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에서 관객이 되지 맙시다. 천국 사업이라는 무대 위에 뛰어 올라 내가 맡아야 할 배역을 책임지고 성도의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는 사람, 다시 말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는 주님의 제자가 되십시다.
3.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는 자들이 있다. 마가도, 베드로도, 주님을 버려두고 도망갔던 제자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오순전날 성령님의 세레를 받은 후로는 능력을 받아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들이 되었 고,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는 다 주님을 위한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처음 12제자의 무리속에나 주님을 따르던 수십 수백명에 끼어잇지 못햇지만 바울사도는 나중에 주 님의 제자가 되어 주님의 나라를 크게 확장하소 마침내 로마의 압비아거리에서 순 교하였다. 기독교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이 축복된 십자가의 대열에 서서 걸어갓다. 그들 은 주님의 교회를 진심으로 염려하여 함께 기도하고 함께 헌심하고 물질을 드리고 몸을 드렷다. 전도와 선교사업에 진실한 열심을 보였다. 교회의 부흥과 선교 활동, 주님나라의 확장은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을까 가룟유다처럼 자기이권을 위하여 교회를 이용이나 해보자는 자들, 마가처럼 호기 심, 영웅심리,일시적 군중심리에 의해서 교회일에 잠간 열심내는 사람들, 멀찍이 주님의 뒤를 따르고자 하는 주님 사업에 관망자로 있고자 하는 이들과 교회의 부흥 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결론' 성도 여러분! 여러분게서는 어떤 자리에 서 계십니까 주님게서는 우리 모두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내 일보다 더 귀히 여기며 충성봉사하기를 원하십니다. 무슨 일을 하든 지 주님게서 나와 함게 하신다는 주님의 임재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사람과 주님을 일치시켜 살고자 하는 성도, 이런 분들의 헌신을 기뻐하시고 이런 분들을 통해서 주님의 교회는 부흥성장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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