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목격자 - 군중들 (막15:6-15)
본문
이달 마지막주는 부활주일입니다. 그리고 부활주일로 부터 46일전은 사순절 기간이 시작되는 날로서 금년에는 2/13일부터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주일 6일 을 빼면 40일이 되기에 이를 사순절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기간 을 보내고 있습니다. 교회역사상 이 사순절의 의미는 대단히 중요하게 취급되 어 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고난의 절정이 이 기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순절 기간동안의 주제는 십자가요 그 결론은 부활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고난주간까지 십자가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은 긍정적이든지 부정적이든지 어쨋든 십자가 사건의 증인들이 되고 있습니다. 가룟유다가 있었고 베드로가 있었고 빌라도, 바라바, 아리마대 요셉, 막 달라 마리아, 도마, 혜롯, 안나스와 가야바, 그리고 군중들.이 있었습니다. 그들가운데 특히 군중들의 모습을 통해서 십자가를 조명해 보고 우리의 모습 을 비춰보고자 합니다. 먼저 군중들의 모습을 살펴 보겠습니다. .군중들의 세가지 얼굴 예수님 주위에는 그 누구보다도 수많은 군중들이 운집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다음 세가지 얼굴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예수님을 환영하는 얼굴입니다.(마21:6-9) 종려주일날 이 수많은 무리들은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는 주님을 찬양하기 위 해 겉옷을 펴서 깔고 종려나무가지를 꺽어 열렬히 환영하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이들의 환영과 찬양은 결코 자신들 스스로 생각해서 한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6-7절에 보면 제자들이 먼저 자 기들의 겉옷을 펴서 예수님을 환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여기 군중들 의 환영행렬은 제자들의 환영행렬 바로 다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군중들은 제자들의 환영모습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적어도 종려주일을 중심으로 한 사건속에서 본 무리들은 그들이 어떤 마음의 동기였 든 간에 예수님의 편에 서기를 원했고, 그들의 입술을 열어 찬양했으며, 비록 제자들을 모방한 것이지만 적어도 예수님을 환영하는 행렬속에 있어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 주변에 있었던 무리들의 첫번째 얼굴입니다. 그러나 닷새후에 그들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 줍니다.
2.예수님을 배반하는 얼굴입니다.(막15:12-15) 그들은 바라바와 예수님중 누구를 석방 할 것인가에 대한 빌라도의 요구에 바 라바를 선택했으며, 뿐만아니라 "저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저주까지 합니다. 이것이 무리들의 두번째 얼굴입니다. 변신한 얼굴입니다. 바뀐 얼굴 입니다. 마치 야누스의 또 다른 얼굴 같습니다. 불과 닷새전에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그렇게 열렬히 환영했던 그들이 이제는 완전히 돌변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바라바를 놓으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박으소 서" 라고 외치는 그들은, 예수님을 환영하던 그 열광이 이제 예수를 죽이는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 이 대목에서도 주목 할 점이 하나 있는데. 11절에 보면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이 무리를 충동했다는 사실입니다. 적어도 무리들의 입장은 예수님을 반대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 제사장과 장로들이 "하나님의 아들."운운하면서 충동질하자 삽시간에 그들의 행동이 돌변합니다. 이것이 군중들의 두번째 얼굴입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50여일이 지난날, 이 군중들의 세번째 얼굴을 보게 됩니다.
3.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는 얼굴입니다.(행2:23-37)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오순절이 되었습니다. 이날 마가의 다락방에 있던 120문 도들은 뜨거운 성령님의 체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120명을 통해 에루살렘의 수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성령님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사도들이 성령님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예루살렘의 무리를 보고 "예수는 바로 당신들이 죽인 것이라"고 담대히 죄를 지적하고 나서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들의 악을 선용하셔서 구원의 기회를 주셨으니 이 복음을 믿으라"고 강력 히 증거합니다. 이 설교에 대해서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37절에 보면 "마음에 찔려, 어찌할꼬."하며 괴로워 했으며, 41절에 보면 무려 삼천 명씩이나 회개하고 예수 믿기를 작정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회개하고 있는 군중들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이 주는 교훈 지금까지 우리는 저 군중들의 세가지 얼굴을 보았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 손이여." 라고 외치는 환영하는 얼굴과, "저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라 고 외치는 배반하는 얼굴, 그리고 "어찌할꼬."하며 가슴을 치고 회개하는 얼굴입니다. 이와같은 군중들의 모습은 이천년전 십자가 주위에만 있던 사람 들의 모습만이 아니라 이천년이 지난 오늘, 고난주간이 얼마남지 않았고 십자가에 죽음당하신 그 끔직한 금요일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사순절 기간에 이 사건은 우리에게 커다란 두가지 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1.부화뇌동하는 신앙이 얼마나 위험하다는 것을 교훈합니다. 이는 군중심리에 의한 신앙의 위험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몰려가 니까, 제자들이 그렇게 하니까, 거기에 함성이 있으니까, 함께 찬양하고 덩달 아 종려가지를 흔들며 주님을 환영했지만 그것은 개인적 고백과 확신에서 나 온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인 신앙고백을 통해서 개인적인 확신에 도달 하지 못한 신앙은 결국 군중심리의 흥분의 물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군중심리가 바뀌면 신앙도 언제든지 바뀌게 된다는 사실을 군중들의 모습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어제는 주님을 환영하고, 내일은 주님을 배신했던 이 군중들, 이것은 확신없는 신앙이, 고백없는 신앙이 얼마나 위험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명백 증거들입니다. 왜 여러분들이 반드시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누가 뭐라해도, 어떤 환경이 와도 부화뇌동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 이단의 미혹에 끌리는 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시오. 그 율법을 지키겠습니다." 하 며 모세에게 큰소리 쳤은나 막상 모세가 율법을 가지고 내려왔을 때는 이미 몇몇 족속의 행동에 부화뇌동되어 금송아지를 만들어 율법을 파괴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모세는 저들에게 개인적 신앙고백을 요구했고 올바른 신아고백을 선택한 사람들은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부화뇌동한 사람들은 음부로 빠지고 말 았습니다. 또한 가나안땅에 들어가기만 하면 여호와만을 섬길 것 같이 하던 그들이 막상 가나안땅에 입성하자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부화뇌동되어 그들의 우상신을 섬기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버리기 시작했던 이스라엘 민족들, 그리 하여 여호수아는 마침내 마지막 확신을 가지고 저들에게 도전합니다. "너희들 은 오늘날 누구를 섬길것인가를 선택하라. 그러나 나와 내집은 여호와만을 섬 기겠노라(수24:15)" 이러한 개인적 확신이 없이는 이방신이 범람하는 가나안 땅에서 결코 하나님을 섬길 수 없음을 알았던 여호수아였습니다. 여러분은 저 갈멜산상의 뼈대없는 군중들을 기억하십니까 그들은 원래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들이었지만 대세에 따라 바알신을 추종하다가 엘리야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임이 불로서 입증되는 순간 그들은 또다시 하나님편에 섭니다. 그러한 군중 들에게 향하여 엘리야는 이렇게 신앙고백을 요구합니다. "너희가 어느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언제까지 지조없이 눈치만 살피고 있을 것 이냐는 것입니다. 바알신과 여호와신 사이에서 결단하지 못하고 대세에 휩쓸 리던 그 군중들 처럼 오늘은 예수를, 내일은 우상을, 주일날은 하나님을, 월-토요일 동안은 세상을 섬기는 군중의 물결속에서 휩쓸려 다니는 군중신앙의 위험성을 이 무리들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억하 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하나님은 오직 한분 뿐이 시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고백 없이는 절대로 신앙의 정조를 지킬 수 없을 뿐더러 끝까지 주님을 따를 수 없 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이 증거를 저 십자가 주변에 있던 군중들에게 서 오늘 확인 했습니다. 이것이 군중신앙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이 무리들의 모습을 통해서 또한가지, 더 중요한 교훈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2.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군중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장본인 역할을 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충동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찌라 도 "십자가에 저를 못박으소서"라고 입술을 열어 소리쳤던 장본인들이 바로 이 무리들이었습니다. 누가 뭐라든, 무슨 변명과 핑개가 있든 그들이 분명히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빌라 도의 오판은 단순히 저들의 민란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마땅히 최 고의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보내셨고 당신을 못박았던 이 무리들에게 회개할 수 있도록 역사 하셨던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보십시오. 그들은 주님을 배신 했어도 주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 가슴에 못박았던 그들, 그 리고 그 얼굴에 침을 밸었던 장본인들,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쳐댔던 이 무 리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군중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시 고, 그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가슴과 영혼속에 역사하셨던 분이 바로 배신당 하셨던 당사자 주님이셨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무리중에 여러분과 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왜 십자가 지셨습니까 그 분이 왜 골고다 사형장으로 올 라가셔야만 했습니까 그것은 저와 여러분의 죄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저 와 여러분이 이천년전에 그 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죄는 여전히 그 무리들과 함께 있어서 소리지르고 손을 치켜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군중들과 함께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공모자들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위해 돌아 가셨기에 우리는 여전히 저 군중들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놓치지 마 십시오. 그러나 동시에 이 사실도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이미 우리를 용서 하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너그럽게도 우리에게 또한번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성령님을 통해 우리 죄를 지적해 주셨고 그 죄로 인하여 가슴을 치 게 하셨습니다. 그리고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우리는 십자가에 돌아와 무릎을 꿇 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이 은혜와 사랑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죽인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순절 기간에 다시금 십자가 를 향하여 걸어나갈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군중 들 속에 끼여서 "저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라고 소리친 폭도가 바로 나였음 을 고백합시다. 그리고 그러한 나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임했음도 바라봅시다. 이제 우리는 이 사랑에 근거해 담대히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갈 수 있게 되었 습니다. 이제 우리의 신앙은 더 이상 군중들에 휩싸이는 신앙이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과 1:1의 관계로 여러분의 신앙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고백에 따라 신앙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고난의 절정이 이 기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순절 기간동안의 주제는 십자가요 그 결론은 부활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고난주간까지 십자가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은 긍정적이든지 부정적이든지 어쨋든 십자가 사건의 증인들이 되고 있습니다. 가룟유다가 있었고 베드로가 있었고 빌라도, 바라바, 아리마대 요셉, 막 달라 마리아, 도마, 혜롯, 안나스와 가야바, 그리고 군중들.이 있었습니다. 그들가운데 특히 군중들의 모습을 통해서 십자가를 조명해 보고 우리의 모습 을 비춰보고자 합니다. 먼저 군중들의 모습을 살펴 보겠습니다. .군중들의 세가지 얼굴 예수님 주위에는 그 누구보다도 수많은 군중들이 운집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다음 세가지 얼굴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예수님을 환영하는 얼굴입니다.(마21:6-9) 종려주일날 이 수많은 무리들은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는 주님을 찬양하기 위 해 겉옷을 펴서 깔고 종려나무가지를 꺽어 열렬히 환영하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이들의 환영과 찬양은 결코 자신들 스스로 생각해서 한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6-7절에 보면 제자들이 먼저 자 기들의 겉옷을 펴서 예수님을 환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여기 군중들 의 환영행렬은 제자들의 환영행렬 바로 다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군중들은 제자들의 환영모습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적어도 종려주일을 중심으로 한 사건속에서 본 무리들은 그들이 어떤 마음의 동기였 든 간에 예수님의 편에 서기를 원했고, 그들의 입술을 열어 찬양했으며, 비록 제자들을 모방한 것이지만 적어도 예수님을 환영하는 행렬속에 있어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 주변에 있었던 무리들의 첫번째 얼굴입니다. 그러나 닷새후에 그들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 줍니다.
2.예수님을 배반하는 얼굴입니다.(막15:12-15) 그들은 바라바와 예수님중 누구를 석방 할 것인가에 대한 빌라도의 요구에 바 라바를 선택했으며, 뿐만아니라 "저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저주까지 합니다. 이것이 무리들의 두번째 얼굴입니다. 변신한 얼굴입니다. 바뀐 얼굴 입니다. 마치 야누스의 또 다른 얼굴 같습니다. 불과 닷새전에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그렇게 열렬히 환영했던 그들이 이제는 완전히 돌변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바라바를 놓으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박으소 서" 라고 외치는 그들은, 예수님을 환영하던 그 열광이 이제 예수를 죽이는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 이 대목에서도 주목 할 점이 하나 있는데. 11절에 보면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이 무리를 충동했다는 사실입니다. 적어도 무리들의 입장은 예수님을 반대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 제사장과 장로들이 "하나님의 아들."운운하면서 충동질하자 삽시간에 그들의 행동이 돌변합니다. 이것이 군중들의 두번째 얼굴입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50여일이 지난날, 이 군중들의 세번째 얼굴을 보게 됩니다.
3.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는 얼굴입니다.(행2:23-37)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오순절이 되었습니다. 이날 마가의 다락방에 있던 120문 도들은 뜨거운 성령님의 체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120명을 통해 에루살렘의 수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성령님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사도들이 성령님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예루살렘의 무리를 보고 "예수는 바로 당신들이 죽인 것이라"고 담대히 죄를 지적하고 나서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들의 악을 선용하셔서 구원의 기회를 주셨으니 이 복음을 믿으라"고 강력 히 증거합니다. 이 설교에 대해서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37절에 보면 "마음에 찔려, 어찌할꼬."하며 괴로워 했으며, 41절에 보면 무려 삼천 명씩이나 회개하고 예수 믿기를 작정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회개하고 있는 군중들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이 주는 교훈 지금까지 우리는 저 군중들의 세가지 얼굴을 보았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 손이여." 라고 외치는 환영하는 얼굴과, "저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라 고 외치는 배반하는 얼굴, 그리고 "어찌할꼬."하며 가슴을 치고 회개하는 얼굴입니다. 이와같은 군중들의 모습은 이천년전 십자가 주위에만 있던 사람 들의 모습만이 아니라 이천년이 지난 오늘, 고난주간이 얼마남지 않았고 십자가에 죽음당하신 그 끔직한 금요일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사순절 기간에 이 사건은 우리에게 커다란 두가지 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1.부화뇌동하는 신앙이 얼마나 위험하다는 것을 교훈합니다. 이는 군중심리에 의한 신앙의 위험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몰려가 니까, 제자들이 그렇게 하니까, 거기에 함성이 있으니까, 함께 찬양하고 덩달 아 종려가지를 흔들며 주님을 환영했지만 그것은 개인적 고백과 확신에서 나 온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인 신앙고백을 통해서 개인적인 확신에 도달 하지 못한 신앙은 결국 군중심리의 흥분의 물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군중심리가 바뀌면 신앙도 언제든지 바뀌게 된다는 사실을 군중들의 모습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어제는 주님을 환영하고, 내일은 주님을 배신했던 이 군중들, 이것은 확신없는 신앙이, 고백없는 신앙이 얼마나 위험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명백 증거들입니다. 왜 여러분들이 반드시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누가 뭐라해도, 어떤 환경이 와도 부화뇌동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 이단의 미혹에 끌리는 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시오. 그 율법을 지키겠습니다." 하 며 모세에게 큰소리 쳤은나 막상 모세가 율법을 가지고 내려왔을 때는 이미 몇몇 족속의 행동에 부화뇌동되어 금송아지를 만들어 율법을 파괴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모세는 저들에게 개인적 신앙고백을 요구했고 올바른 신아고백을 선택한 사람들은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부화뇌동한 사람들은 음부로 빠지고 말 았습니다. 또한 가나안땅에 들어가기만 하면 여호와만을 섬길 것 같이 하던 그들이 막상 가나안땅에 입성하자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부화뇌동되어 그들의 우상신을 섬기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버리기 시작했던 이스라엘 민족들, 그리 하여 여호수아는 마침내 마지막 확신을 가지고 저들에게 도전합니다. "너희들 은 오늘날 누구를 섬길것인가를 선택하라. 그러나 나와 내집은 여호와만을 섬 기겠노라(수24:15)" 이러한 개인적 확신이 없이는 이방신이 범람하는 가나안 땅에서 결코 하나님을 섬길 수 없음을 알았던 여호수아였습니다. 여러분은 저 갈멜산상의 뼈대없는 군중들을 기억하십니까 그들은 원래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들이었지만 대세에 따라 바알신을 추종하다가 엘리야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임이 불로서 입증되는 순간 그들은 또다시 하나님편에 섭니다. 그러한 군중 들에게 향하여 엘리야는 이렇게 신앙고백을 요구합니다. "너희가 어느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언제까지 지조없이 눈치만 살피고 있을 것 이냐는 것입니다. 바알신과 여호와신 사이에서 결단하지 못하고 대세에 휩쓸 리던 그 군중들 처럼 오늘은 예수를, 내일은 우상을, 주일날은 하나님을, 월-토요일 동안은 세상을 섬기는 군중의 물결속에서 휩쓸려 다니는 군중신앙의 위험성을 이 무리들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억하 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하나님은 오직 한분 뿐이 시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고백 없이는 절대로 신앙의 정조를 지킬 수 없을 뿐더러 끝까지 주님을 따를 수 없 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이 증거를 저 십자가 주변에 있던 군중들에게 서 오늘 확인 했습니다. 이것이 군중신앙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이 무리들의 모습을 통해서 또한가지, 더 중요한 교훈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2.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군중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장본인 역할을 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충동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찌라 도 "십자가에 저를 못박으소서"라고 입술을 열어 소리쳤던 장본인들이 바로 이 무리들이었습니다. 누가 뭐라든, 무슨 변명과 핑개가 있든 그들이 분명히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빌라 도의 오판은 단순히 저들의 민란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마땅히 최 고의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보내셨고 당신을 못박았던 이 무리들에게 회개할 수 있도록 역사 하셨던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보십시오. 그들은 주님을 배신 했어도 주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 가슴에 못박았던 그들, 그 리고 그 얼굴에 침을 밸었던 장본인들,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쳐댔던 이 무 리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군중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시 고, 그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가슴과 영혼속에 역사하셨던 분이 바로 배신당 하셨던 당사자 주님이셨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무리중에 여러분과 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왜 십자가 지셨습니까 그 분이 왜 골고다 사형장으로 올 라가셔야만 했습니까 그것은 저와 여러분의 죄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저 와 여러분이 이천년전에 그 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죄는 여전히 그 무리들과 함께 있어서 소리지르고 손을 치켜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군중들과 함께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공모자들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위해 돌아 가셨기에 우리는 여전히 저 군중들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놓치지 마 십시오. 그러나 동시에 이 사실도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이미 우리를 용서 하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너그럽게도 우리에게 또한번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성령님을 통해 우리 죄를 지적해 주셨고 그 죄로 인하여 가슴을 치 게 하셨습니다. 그리고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우리는 십자가에 돌아와 무릎을 꿇 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이 은혜와 사랑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죽인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순절 기간에 다시금 십자가 를 향하여 걸어나갈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군중 들 속에 끼여서 "저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라고 소리친 폭도가 바로 나였음 을 고백합시다. 그리고 그러한 나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임했음도 바라봅시다. 이제 우리는 이 사랑에 근거해 담대히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갈 수 있게 되었 습니다. 이제 우리의 신앙은 더 이상 군중들에 휩싸이는 신앙이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과 1:1의 관계로 여러분의 신앙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고백에 따라 신앙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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