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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무시는 주님 (막4:35-41)

본문

본 단원의 첫걸음은 “그날 저물 때에”(35절)로 시작됩니다. 그날 밝을 때에는 예수께서 갈리리 바닷가에서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4:1) 그러니까 하루 동안에 두 개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날 낮 동안에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리리 호수 위에 배를 띄워 올라 앉으시고 호반에 밀집한 무리들에게 천국 복음을 흥미로운 비유로 강설하셨습니다. 아름다운 갈릴리 바닷가에서 구름떼처럼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느 누구에게도 들어 보지 못했던 새롭고 기이한 비유의 말씀을 배 위에서 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너무도 훌륭해 보였을 것입니다. 한편 무리들에게는 아마도 그날의 산상설교 못지 않은 모임이 최고의 야외 예배였을 것입니다. 또한 열두 제자들의 경우에도 그날의 대집회는 크게 보람을 느낀 시간이었을 듯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자연히 안내가 필요하고 질서 유지를 위해 자리 정돈이나 광고를 해야 합니다. 그런 일들을 제자들이 했을 것입니다. 숱한 인파 앞에서 슈퍼 스타가 되신 예수님의 공중 야외 성회를 돕는 일은 제자들에게 긍지를 느끼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무리들 가운데는 유명 인사들도 있었을 테고 열두 제자들을 익히 잘 아는 한동네 사람들도 끼여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부 노릇이나 하던 베드로가 출세했구나. 안드레도 한몫 보는구나!” 하며 서로 수군 거렸을지도 모릅니다. 제자들도 과연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일이 퍽 보람이 있고 자랑스럽다고 여겼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같이 그 크신 어른을 놓치지 말고 바짝 따라다녀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낮 집회가 성황리에 끝난 후 날이 저물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 편으로 건너가자”(35절)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즉시 순종하였습니다. 아마도 낮에 들었던 비유의 말씀에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거나 생명의 말씀을 귀히 여겨야 한다거나 혹은 열매를 맺는 좋은 밭이 되어야 한다는 핵심적인 대목은 다 잊어먹고 예수님만 따라다니면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얻는 천국에 들어간다는 식으로 제자들이 오해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부지런히 그분을 추종하면 대풍작 인생을 누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노라 하고 행세할 것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저 편으로 건너가자”는 예수님의 제안에 한 마디의 반대도 없이 즉각 복종하여 예수님을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36절) 노를 저어 갔습니다.
그런데 그 같은 즉각적인 순종의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37절을 보시면 (막4: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 광풍 시련은 불순종의 대가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겠다고 나서는 자들에게는 그 모든 동기와 헌신의 비중을 달아 보는 정밀한 저울이 있습니다. 그 저울은 곧 환난과 핍박과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들입니다(참조4:17,19).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그날 낮에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들었고 그 해석까지도 별도로 듣는 특권을 누렸습니다.(4:10,11) 그럼에도 그들의 배가 풍랑에 시달리자 좋은 땅이 되어 풍성한 수확을 해야 한다는 비유의 본 뜻을 전혀 실제 상황에서 살리거나 적용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제자들이 그 귀한 야외 예배를 드리고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주님의 모든 천국 메시지를 잊고 주님에 대한 신뢰를 놓아 버린 까닭이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그들의 배에 승선하신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셨기 때문입니다.(38절) 제자들의 눈에는 곧 뒤집힐 것 같은 배 안에서 태연하게 주무시는 주님이 너무도 무책임하고 무능력함 긴급 사태를 전혀 의식치 못하는 아둔한 인물로 비쳤습니다. 그분은 자기가 날마다 데리고 다니는 제자들의 사활에 관심이 없고, 심지어 자신의 생명까지도 돌보지 않은 채 온통 물바다가 된 침수직전의 배 안에서 곤한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어찌 그런 사람을 믿고 자신의 인생을 맡길 수 있단 말입니까 낮에 설교 한 번 하시고는 그만 피곤해서 곯아떨어지시는 분이라면 어떻게 제자들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그분을 따라다닐 수 있겠습니까 그런 예수님의 모습에서 제자들은 분노까지 느꼈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38절) 그렇지만 진정 자신들을 돌아보아야 할 자는 선생님이 아니고 자기 자신들이던 것입니다.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의 존재를 그 정도로밖에 볼 수 없는 제자들 자신들이아말로 스스로를 돌이켜 보았어야 합니다. 그들의 눈에는 주무시는 주님의 진정한 모습이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본문이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주무시는 주님의 진면모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을 다 맡기시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역경이나 환난에 의해 좌초될 수 없다는 것을 굳게 확신하는 참 믿음의 모습입니다. 그런 믿음은 주변 환경에 초연하며 폭풍 속에서도 편안히 잠들 수 있습니다. 만약 제자들이 주님의 이러한 신뢰의 모습이 지닌 의미를 깨달았더라면 구태여 예수님을 흔들어 깨울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마구 소리쳐 깨웠다는 것은 신뢰의 결핍이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광풍으로 다 틀어진다는 불신의 소치였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아직도 예수님의 존재와 능력을 몰랐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이시며 “그리스도”이십니다(막1:1)
마태복음 1:21절에서는 예수님이 구원자이시라고 천사가 일러 주었습니다.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은 결코 우리들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시지 않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죽게 된 우리 인간들을 구하러 오셨기에 그 이름이 예수 곧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구원자를 배에 태우고 가면서 두려워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모순인지 모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비유에서 가르치셨던 믿음과 신뢰의 자세를 직접 ‘광풍 속에서의 잠’으로써 실증해 보이고 있는데도 자기들의 구원자가 지닌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의 모습을 읽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바다를 잔잔케 하신 후에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막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예수님은 제자들의 심령 속에서 자연계의 광풍보다 더 맹렬한 폭풍과 높은 파도가 일고 있음을 보셨습니다. 제자들의 심령 속에는 예수님처럼 하늘 아버지를 신뢰하는 믿음과 천국 실현으 확실성을 끝까지 붙잡는 인내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온통 불안과 초조와 안달로 광풍 속의 배처럼 마구 뒤흔들렸습니다.“배에 가득하게”(37절) 채워진 바닷물만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이 탄 인생의 배 안에는 불안과 염려와 두려움의 물결이 가득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의 배가 조금만 파도에 밀려도, 조금만 물이 들어와도 금방 마음의 평강과 균형을 잃지 않습니까 흔들리는 인생의 배에서 깊은 고민에 바지고 한없이 유약해지며 당황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니다. 그런 우리들이 눈에는 예수님이 언제나 깊이 잠드신 분으로 보입니다. 그분은 내게 무관심하십니다. 그분은 나의 절박한 사정에 눈을 감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주무시는 주님을 필사적으로 흔들어 깨웁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내가 도저히 배겨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차라리 주님과 함깨 “죽으면 죽으리이다”(에5:16)라는 신앙의 절개가 없고 오히려 사치스럽게 들립니다. 예수님이 잡히실 때에도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마26:56)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주님과 함께 죽기를 무서워합니다. 하지만 주께서 내 인생의 배에 동선해 계시면 주님이 나와 함께 바다에 익사되실리 만무합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신 주님이시라면 나도 그분과 함께 항상 사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무시는 것과 광풍은 사실상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습니다. 주님이 잠드셨기 때문에 그 틈을 타서 태풍이 광태를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광풍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들어가 있는 하나의 과정이요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광풍을 사용하여 우리들의 믿음을 달아 보십니다. 인생의 풍랑은 우리들이 밝을 때에 주께로부터 들었던 진리의 말씀들을 저물 때에 얼마나 잘 적용시킬 수 있는지를 달아 보는 저울입니다. 광풍은 우리들의 알량한 신앙 생활의 취약성을 낱낱이 노출시키는 투시경입니다. 우리들은 험한 격랑을 맞아 요동하는 인생의 배 안에서 심한 멀미를 하고 당황하며 주님을 향해 절급한 원성(怨聲)을 지른 후에애 비로소 우리드르이 믿음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주께서 광풍을 통해 우리들의 진면모를 보게 하는 방법입니다. 우리 인생의 배를 타시고 주무시는 주님의 모습에서 우리들의 간과하는 한가지 중요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의 조그만하고 하잘것없는 배에 자신을 투신시켰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파도가 치고 바닷물이 넘쳐와도 주께서는 나의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초라한 인생의 소형 선박을 떠나지 않습니다. 어찌 그러실 수 있겠습니까 나를 구원하시는 구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요10:11)
어찌 주께서 나의 작은 배를 타시고 험난한 인생의 갈릴리 바다를 건너실 수 있겠습니까 주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투신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무십니까 예수님은 광풍 속에서 전능하신 하늘 아버지의 보호를 믿고 깊은 잠을 주무실 수 있기에 우리들을 넉넉히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태풍과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태연히 누어 안식하실 수 있기에 주님은 내 마음의 태풍과 흔들림을 진정시킬 수 있습니다. 주께서 주님십니까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내가 탄 배 안에 계십니다. 주께서는 내가 겪는 모든 파도 속에 함께 계십니다. 내가 맞는 광풍 속에 주께서 함께 하십니다. 주께서 곤히 주무시기 때문에 불안하고 두려움을 느낍니까 하지만 주무시는 주님과 함께 태풍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주님이 계시지 않는 무풍 지대에서 사는 것보다 휠씬 더 안전합니다. 우리들이 거친 인생의 갈릴리 바다를 횡단할 때에 곧잘 망각하는 또 하나의 측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갈릴리 바다 “저 편으로 건너가자”고 먼저 제안하신 분이 예수님 자신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저 편으로 건너가는 것은 주님 자신의 선한 뜻이었고 주님의 손에 잡혀진 구원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그렇다면 주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반드시 저 편으로 건너가십니다. 물론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노를 저었습니다(36절). 그러나 실상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저 편을”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동선해 계셨고 갈릴리 바다를 지나는 것이 주님 자신의 뜻이었기에 제자들이 탄 배는 태풍과 파도에도 불구하고 목적지까지 틀림없이 당도하였습니다.
시편 107:24-30절은 제자들이 당했던 광풍의 체험을 너무도 여실히 묘사해 줍니다. (시107:24)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서 보나니 (시107:25) 여호와께서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시107:26) 저희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도다 (시107:27) 저희가 이리 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 하도다 (시107:28)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시107:29)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 (시107:30)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우리 인생의 갈릴리 바다에는 종종 광풍이 일고 파도가 칩니다. 내가 가진 배는 격랑의 파고를 넘기에는 너무도 무력합니다. 내 인생의 작은 배를 때리며 미친 듯이 할퀴는 파도를 지켜 보는 나의 마음은 너무도 두렵습니다. 결국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께 부르짖으면 노한 바다가 죽은 듯이 잔잔해집니다. 주님은 자연계까지 통어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말씀 한마디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합니다(41절). 폭풍과 파도를 제압하는 주님의 위용을 목도하는 것은 놀라운 체험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휠씬 더 놀라운 일을 우리 인생의 항해에서 목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침몰 직전에 놓인 나의 작은 배 안에서 깊이 잠들어 계신 모습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만유의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의탁하고 폭풍과 파도의 소용돌이 속에서 안식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얼마나 더 위대합니까1 우리들을 죄와 죽음과 율법의 정죄로부터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톡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하늘 아버지의 가이없는 사랑과 지혜와 능력을 몸과 마음과 정성을 바쳐 생사를 므릅쓰고 철저히 신뢰하는 주님의 모습이 얼마나 더 장대합니까 이 같은 믿음의 위용을 지니신 분이 우리 인생의 배에 승선해 계십니다.
그렇다면 내가 맞는 크고 작은 인생의 풍파 속에서 주무시고 계신 주님의 모습은 나으 작은 믿음을 고취시키고 하늘 아버지의 구원을 더욱 신뢰케 하는 크나큰 격려와 희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주무시는 주님과 함께한 내가 행복한 것이고 나의 길을 인도하시고 안내하시기 위해 내 인생의 배에 승선해 계신 주님으로 부터 만족과 감사가 더욱 넘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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