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믿음 (막2:1-5)
본문
예수께서 회당 순회여행을 끝마친 후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다. 그의 돌 아온 소식은 곧 널리 퍼졌다. 팔레스틴의 생활은 아주 개방적이었다.아침 이 되면 집의 문이 열리었다. 그리고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마음대로 출 입하였다. 외식적으로 사생활을 숨기려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문을 닫는일 은 절대로 없었다. 문을 열어 놓았다는 것은 누구나 들어오라는 개방적인 초대를 뜻한다. 여기에 인용뎁 집과 같이 변변찮은 집에는 현관의 홀이없 어서 문이 직접 거리쪽으로 열려 있었다.
그러므로 군중이 집안에 가득차는 데는 순간적이었다. 그리고 문 밖까지 입추의 여지도 없이 꽉 차 있었다. 그들은 매우 열심으로 예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 군중 가운데 네 사람이 중풍병자 친구 한 사람을 들것에 싣고왔다. 네 사람의 친구들은 예수의 소문과 예수에게 은혜를 입은 자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친구인 한 중풍병자를 들것에다 싣고 와서 어려운 고비를 통과 하여 주님을 만나기를 원했다. 그들은 군중을 뚫고 들어 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팔레스틴의 지붕은 평평하였다. 그것은 보통 휴식과 조용한 시간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그곳에 오르는 층계가 밖에 있는것이 보통이다. 지붕의 구조가 지혜가 있는 네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에 도움이 되었다. 지붕은 벽에서 벽으로 약 1미터 정도의 간격으로 걸쳐 놓은 대들보로 이루어졌다. 대들보 사이의 공간에는 점토로 꽉 채운 잡목으로 메꾸어져 있었다. 그리고 표면에는 회토로덮 여 있는 것이 일반주택이다. 지붕은 거의 흙으로되었고 팔레스틴의 지붕 위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대들보 사이에 메운 것을 파내는 일은손 쉬운 일이었다. 집을 크게 손상시키지도 않았다. 다시 파낸 곳을 수리하는 일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래서 네 사람은 두 개의 대들보 사이에 있는 흑을 파내고 친구를 직접 예수의 발 앞에 달아내렸다. 예수는 장애 물을 우습게 여긴 이 신앙을 보고 이해깊은 미소를 지었음이 분명하다.예수는 그 사람을 보고 "소자야 네가 죄 사람을 받아느니라"라고 하셨다. 유대인에게 병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다. 유대인은 죄와 고통을 완전히 연결시켰다. 어떤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으면 그것은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것은 사실 욥의 친구들이 낸 주장이었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죄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욥 4:7) 라고 대들었다. 유대 랍비는 "모든 죄에서 용서함을 받지 않아서 병고침을 받은 환자는없다."라는 격언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같이 오늘날도 원시인들 사회에서는 이와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것을 알 수 있다. 오늘 본문에서 마가복음2:1-5절에 보면 영혼을 사랑한 나머지 죽어가는 병자를 네 명의 친구값 구원해준 (영의 구원, 육신의 구원) 친구들은 믿음의놀라운 모습을 발견하 고 저들의 믿음이란 제목으로 우리 모두에게 같은 은혜가 체험이 있어야 남의 영혼을 불쌍히 여길 수 있는 것이다. 말로 만 덥게하라, 춥게하라, 먹여주라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들은 뜨거운 동정심과 믿음을 가지 고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은 우리의 친구를 구원하시리라"란 믿음으로 그 의 집을 찾아왔다. 병상에서 신음하는 친구에게 이 네 친구가 예수의 권능과 사랑을 열심으로 간중할 때 병자의 마음은 움직였을 것이다. 온갖약 들을 다 써보고 많은 돈을 허비하고 이제 육체는 기진맥진 쓰러져 다른사람의 부축 없이는 일어설 수 없는 병자(친구), 그들의 간증 그들의 소리 를듣고 병자의 마음은 움직여 예수께로 인도했다. 그러면 저들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야고보 선생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자체가 죽었다고 말씀 하셨다 (약2:26)
1. 저들의 믿음은 활동적이다. 병자를 보고 안됐다고 혀끝만 차는 자, 형제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데 가난과 옥고와 질병과 고통속에 떨고 있는데 배부르게 하라, 자유하라, 그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소리릉 지르는 한국교회여, 신앙의 작동이 되어 야 하지 않겠는가 나의 학생시절에 인천 소년교도소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교도소 강당에 벽에 이런 문구가 써있었다. "십자가 없는 일은 참 일이 아니요, 일할 것 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신자는 예수 믿는 일이 제일 큰 일이데,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눈과 그 들을 바라볼 때 나의 신앙이 작동되어야 한다.
2. 저들의 신아은 협동하는 믿음이다. 네 명의 친구들은 마음과 힘을 합하여 친구를 구원하였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성도와 성도가, 각 기관과 기관윌, 교파와 교파가 서로 힘을 합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 오순절에도 예수의 모친과 모든 여인들과 제자 들과 더불어 합심하여 기도할때 성령님이 강림하였다. 악마는 하나님과 인간사이를 이간하고 불화케 하나 성령님은 우리를 화목케 하시는 삼삼오오를 짝을 지어 한마음으로 한 영혼을 책임지고 예수께로 인도하자.
3. 저들의 믿음에 예수는 열성적인 신앙을 보았다. 병든 친구를 찾아갔다. 우리 주위에는 병들고 이지러진 군중속에 울 고 있는 자가 부지기수다. 병든 친구를 찾아가 그를 들것에 들고 지붕까 지 올라값가 그 정열, 그 열심, 그 순수한 믿음, 남의 지붕을 뚫는 열성 은 주님의 마음을 움직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었다. 생명의 신앙은 열 심이 있는 법이다. 열성만이 인간의 생활을 썩지 않게 하는것이다. 요한계시록 3:19 에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말씀하였고 "열심으로 선 을 행하라, 열심으로 봉사하라, 열심으로 주를 섬겨라,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4. 저들에게 예수는 희생적인 믿음을 보았다. 희생이 없는 종교는 무가치한 것이다. 우리 주님은 이 땅위에 오셔서 자기의 살을 깍고 뼈를 깍는 자들에게까지 "아버지여 저들이 알지 못하여 그러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라고 하시면서 희생의 제물 이 되셨다. 네 친구들은 시간과 명예와 재산과 노력을 희생했다. 작은 믿음에는 작은 희생이 있고 큰 믿음에는 큰 희생이 있는 것이다. 한 알의밀 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 지 않는가 네 사람의 희생은 한 사람의 친구를 구원시키고 남음이 있었다.
5. 예수는 저들의 믿음에 절대적 신앙을 보셨다. 네 사람의 친구들은 병자를 지붕에서 달아내리고는 그 상에 매인 줄 을 붙잡고" 이 병자를 좀 보아주세요 고쳐주시면 좋고 안되면 다시 끌어 올리겠습니다" 하고 줄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줄까지 완전히 예수님께 내맡겨 버렸다. 이것이 신앙이다. 신앙은 맡기는 것이다. 시편 55:22에 "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요 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주님도 마 지막에 십자가 위에서 "나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라고 운명하 셨다.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는 신앙만이 기적을 나타내는 것이다. 6. 결론적으로 믿는 자는 주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리라. 네 믿음대로 되리라. 적게 믿으면 적게 되고 크게 믿으면 크게 되느니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 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믿음은 하나님을 보는 눈이요, 믿음은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 귀요. 믿음은 하나님을 붙잡는 소리요, 믿음은 하나님을 붙잡는 소리요, 믿음은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는 혀라"고 어느 성도는 말하였다. 저들의 믿음을 보신주님, 나의 믿음 없음을 용서하시고, 소신자가 되지 않고 큰 믿음, 산 믿음을 소유한 자가 되게 하소서.
그러므로 군중이 집안에 가득차는 데는 순간적이었다. 그리고 문 밖까지 입추의 여지도 없이 꽉 차 있었다. 그들은 매우 열심으로 예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 군중 가운데 네 사람이 중풍병자 친구 한 사람을 들것에 싣고왔다. 네 사람의 친구들은 예수의 소문과 예수에게 은혜를 입은 자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친구인 한 중풍병자를 들것에다 싣고 와서 어려운 고비를 통과 하여 주님을 만나기를 원했다. 그들은 군중을 뚫고 들어 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팔레스틴의 지붕은 평평하였다. 그것은 보통 휴식과 조용한 시간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그곳에 오르는 층계가 밖에 있는것이 보통이다. 지붕의 구조가 지혜가 있는 네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에 도움이 되었다. 지붕은 벽에서 벽으로 약 1미터 정도의 간격으로 걸쳐 놓은 대들보로 이루어졌다. 대들보 사이의 공간에는 점토로 꽉 채운 잡목으로 메꾸어져 있었다. 그리고 표면에는 회토로덮 여 있는 것이 일반주택이다. 지붕은 거의 흙으로되었고 팔레스틴의 지붕 위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대들보 사이에 메운 것을 파내는 일은손 쉬운 일이었다. 집을 크게 손상시키지도 않았다. 다시 파낸 곳을 수리하는 일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래서 네 사람은 두 개의 대들보 사이에 있는 흑을 파내고 친구를 직접 예수의 발 앞에 달아내렸다. 예수는 장애 물을 우습게 여긴 이 신앙을 보고 이해깊은 미소를 지었음이 분명하다.예수는 그 사람을 보고 "소자야 네가 죄 사람을 받아느니라"라고 하셨다. 유대인에게 병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다. 유대인은 죄와 고통을 완전히 연결시켰다. 어떤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으면 그것은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것은 사실 욥의 친구들이 낸 주장이었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죄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욥 4:7) 라고 대들었다. 유대 랍비는 "모든 죄에서 용서함을 받지 않아서 병고침을 받은 환자는없다."라는 격언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같이 오늘날도 원시인들 사회에서는 이와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것을 알 수 있다. 오늘 본문에서 마가복음2:1-5절에 보면 영혼을 사랑한 나머지 죽어가는 병자를 네 명의 친구값 구원해준 (영의 구원, 육신의 구원) 친구들은 믿음의놀라운 모습을 발견하 고 저들의 믿음이란 제목으로 우리 모두에게 같은 은혜가 체험이 있어야 남의 영혼을 불쌍히 여길 수 있는 것이다. 말로 만 덥게하라, 춥게하라, 먹여주라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들은 뜨거운 동정심과 믿음을 가지 고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은 우리의 친구를 구원하시리라"란 믿음으로 그 의 집을 찾아왔다. 병상에서 신음하는 친구에게 이 네 친구가 예수의 권능과 사랑을 열심으로 간중할 때 병자의 마음은 움직였을 것이다. 온갖약 들을 다 써보고 많은 돈을 허비하고 이제 육체는 기진맥진 쓰러져 다른사람의 부축 없이는 일어설 수 없는 병자(친구), 그들의 간증 그들의 소리 를듣고 병자의 마음은 움직여 예수께로 인도했다. 그러면 저들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야고보 선생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자체가 죽었다고 말씀 하셨다 (약2:26)
1. 저들의 믿음은 활동적이다. 병자를 보고 안됐다고 혀끝만 차는 자, 형제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데 가난과 옥고와 질병과 고통속에 떨고 있는데 배부르게 하라, 자유하라, 그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소리릉 지르는 한국교회여, 신앙의 작동이 되어 야 하지 않겠는가 나의 학생시절에 인천 소년교도소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교도소 강당에 벽에 이런 문구가 써있었다. "십자가 없는 일은 참 일이 아니요, 일할 것 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신자는 예수 믿는 일이 제일 큰 일이데,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눈과 그 들을 바라볼 때 나의 신앙이 작동되어야 한다.
2. 저들의 신아은 협동하는 믿음이다. 네 명의 친구들은 마음과 힘을 합하여 친구를 구원하였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성도와 성도가, 각 기관과 기관윌, 교파와 교파가 서로 힘을 합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 오순절에도 예수의 모친과 모든 여인들과 제자 들과 더불어 합심하여 기도할때 성령님이 강림하였다. 악마는 하나님과 인간사이를 이간하고 불화케 하나 성령님은 우리를 화목케 하시는 삼삼오오를 짝을 지어 한마음으로 한 영혼을 책임지고 예수께로 인도하자.
3. 저들의 믿음에 예수는 열성적인 신앙을 보았다. 병든 친구를 찾아갔다. 우리 주위에는 병들고 이지러진 군중속에 울 고 있는 자가 부지기수다. 병든 친구를 찾아가 그를 들것에 들고 지붕까 지 올라값가 그 정열, 그 열심, 그 순수한 믿음, 남의 지붕을 뚫는 열성 은 주님의 마음을 움직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었다. 생명의 신앙은 열 심이 있는 법이다. 열성만이 인간의 생활을 썩지 않게 하는것이다. 요한계시록 3:19 에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말씀하였고 "열심으로 선 을 행하라, 열심으로 봉사하라, 열심으로 주를 섬겨라,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4. 저들에게 예수는 희생적인 믿음을 보았다. 희생이 없는 종교는 무가치한 것이다. 우리 주님은 이 땅위에 오셔서 자기의 살을 깍고 뼈를 깍는 자들에게까지 "아버지여 저들이 알지 못하여 그러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라고 하시면서 희생의 제물 이 되셨다. 네 친구들은 시간과 명예와 재산과 노력을 희생했다. 작은 믿음에는 작은 희생이 있고 큰 믿음에는 큰 희생이 있는 것이다. 한 알의밀 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 지 않는가 네 사람의 희생은 한 사람의 친구를 구원시키고 남음이 있었다.
5. 예수는 저들의 믿음에 절대적 신앙을 보셨다. 네 사람의 친구들은 병자를 지붕에서 달아내리고는 그 상에 매인 줄 을 붙잡고" 이 병자를 좀 보아주세요 고쳐주시면 좋고 안되면 다시 끌어 올리겠습니다" 하고 줄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줄까지 완전히 예수님께 내맡겨 버렸다. 이것이 신앙이다. 신앙은 맡기는 것이다. 시편 55:22에 "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요 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주님도 마 지막에 십자가 위에서 "나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라고 운명하 셨다.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는 신앙만이 기적을 나타내는 것이다. 6. 결론적으로 믿는 자는 주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리라. 네 믿음대로 되리라. 적게 믿으면 적게 되고 크게 믿으면 크게 되느니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 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믿음은 하나님을 보는 눈이요, 믿음은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 귀요. 믿음은 하나님을 붙잡는 소리요, 믿음은 하나님을 붙잡는 소리요, 믿음은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는 혀라"고 어느 성도는 말하였다. 저들의 믿음을 보신주님, 나의 믿음 없음을 용서하시고, 소신자가 되지 않고 큰 믿음, 산 믿음을 소유한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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