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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잔치의 비유 (마22:1-10)

본문

I. 아들을 위한 혼인 잔치 (마22: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A. 그리스도를 위한 혼인 잔치 이 혼인 잔치의 비유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설명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가르침의 대부분을 하나님 나라에 할애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장 소중한 과제며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늘 나라는 그리스도를 위한 혼인잔치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나라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을 단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통치권을 가지고 사랑과 기쁨으로 정치하는 나라가 바로 하늘나라라는 뜻입니다. 때문에 이 하늘나라의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은혜이며 축복인 것입니다.
B. 그리스도를 통한 혼인 잔치 이 혼인 잔치의 중요한 특징은 그 잔치가 반드시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늘나라의 잔치라는 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잔치라는 말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전제로한 믿음의 잔치, 성도의 잔치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신앙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 잔치에 참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실상 성도의 삶은 매일매일 구주를 고백하는,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혼인잔치와 같은 삶이어야 합니다. 성도의 지상에서의 삶은 하나님 나라의 삶이기에 더욱 더 그 하나님 나라의 올바른 속성을 바로 나타내는 향기로운 생활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이 이런 내용을 탐지하지 못할 때 사실상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왜곡하며 포기하는 결과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C. 교회-혼인 잔치의 마당 교회는 이러한 잔치를 이 땅 위에서 베푸는 사랑과 희망의 공동체이며 혼인 잔치의 한마당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교회는 세속 역사 속에서 그 역사를 하나님 나라의 역사로 변혁시켜 나가는 전진 기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라는 말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창출하고 확장시키는 살아 있는 생명의 공동체임을 뜻합니다.
II. 처음 초청 받은 자 (마22: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마22: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A. 초청을 거부한 자들 하늘 나라의 임금이 많은 자들을 초청했습니다만 그들은 대부분 그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물론 나름대로의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자기 밭으로, 상업차로, 혹은 장가를 가야 한다는 이유로 더러는 소를 팔러가야한댜는 이유로 제각기 초청을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더욱더 주인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의 종들을 잡아서 죽이기까지 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 이러한 경우를 많이 직면합니다. 하늘 나라 잔치의 한마당인 교회의 일을 함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회피하는 경향이 요즈음의 성도들에게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교회 건축시 옛날에는 달밤에 모래를 이고 퍼날림, 주려가면서 함, 지금은 점심 때쯤 와서 먹고 가기만 함 진정으로 그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 나라의 의가 자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B. 초청을 거부하는 핑계들 표면상으로 보면 그들이 임금의 초청을 거부하는 이유들이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삶의 가치 위에서 임금의 초청보다는 그 임금의 초청을 거부하는 핑계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임금의 뜻과 호의를 저버리고서라도 자기의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자기의 일 외에는 그 무엇도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이들에게 돌아갈 것은 하나님의 분노 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고 주일을 지킨다 할지라도 진정으로 우리의 삶의 척도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면 세상의 다른 어떤 것에 매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생활은 당연히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나 중심이 되며 세상 중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C. 진멸을 당하는 거부자들 앞서 잠깐 언급한대로 하나님의 초청을 거부한 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분노를 사서 멸망할 뿐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하나님의 버림받은 것이기에 가장 무서운 형벌입니다. 하나님에게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모든 의미를 박탈당하는 죽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초청을 진정으로 받아들여 잔치에 동참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III. 나중에 초청 받은 자 (마22: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마22:9)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마22: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A. 보잘것없는 자들 초청 받은 자들이 그것을 거절하자 임금은 사거리 길에 나가서 만나는 대로 사람을 초청하여 자리를 채우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이 나중에 초청 받은 사람들은 처음에 초청 받은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보잘것없는 평민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사회현실과 연관시켜 하늘나라의 초청을 받고 참석한 자들이 자기의 의를 주장하고 내세우는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의 특권층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현실 속에서 진정으로 하늘나라의 초청을 받고 받아들이는 자들 즉 하나님 나라의 담당자들은 우리 사회의 저변에 깔려 있는 소외 받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B. 만민을 향한 하나님의 부름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정한 사람들만을 부르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런 특권도 없고 평범한 사람들을 부르시어 하늘 나라를 채우십니다. 즉 하나님 회에는 다른 어떤 것들도 의지할 것이 없는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현대 교회는 상당히 계급화 되어 있습니다. 물론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지만 자본주의의 악한 영향을 받아 물질을 과도하게 강조한 나머지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부한 사람들로 나뉘어지고 혹은 지식을 많이 가진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로 구분되어지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로 어우러져서 하늘나라의 올바른 모습을 구현하여 선장하기를 원하십니다.
C. 가득한 하나님의 나라 사거리에 있는 악한 자나 선한 자를 구별치 않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잔치에 데려오니 그 자리가 가득 찼습니다. 하늘나라의 잔치 마당인 교회를 채우는 일도 이와 같이 재물의 유무,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적극적으로 초청하여야 할 것입니다. 복음의 잔치에는 주를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사람들이 동참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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