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아에 살아계신 예수 (마28:1-8)
본문
지난 한 주간은 예수의 고난을 묵상하며 그 의미를 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내어던짐으로 모든 버려진 자들과 한 몸이 되셨습니다. 예수는 정의대로 심판하시는 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셨습니다.고통의 쓴잔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셔야 했으나 그것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의 기도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였습니다. 예수는 마침내 십자가의 끝에 매어달리어 비통한 고뇌의 시간을 차라리 감싸안아야 했습니다.인간의 반역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을 수는 있었지만 그러나 십자가에 달린 예수께서 스스로 정의하신 십자가의 뜻을 제한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당신의 십자가를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과 모든 인류를 용서하기 위한 사랑으로, 또한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으로 정의하셨습니다. 그는 당신의 십자가를 역사 속에서 인간의 완고한 마음과 그릇된 구조,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거부한 인간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달린 모든 인간들과의 하나됨으로 정의하셨습니다. 엘로이 엘로이 라마사막다니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처절한 고통과 고독 속에서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오늘 아무도 억누를 수 없는 희망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의 고난은 우리에게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물러설 수 없는, 물러서지 말아야 할 하나의 길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습니다. 끝내 이루어질 정의와 평화의 세계인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일에 관하여 희망없는 것을 희망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 것을 사랑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라는 가장 어려운 임무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결코 포기 하지 않고 성숙한 확신으로 살아가도록 말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의 십자가는 하나의 장식품이 아닌 것입니다. 십자가는 살아있는 자의 결코 불의에 굽힐 수 없는 움직임이며, 정의로운 몸짓 입니다. 오늘은 부활 주일입니다. “어둠이 깊으면 깊을 수록 새벽은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법”입니다. 실망과 좌절,어둠과 허탈을 이긴 용기있는 희망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큰 사랑은 없다”고 말씀하시던 예수는 그의 말씀대로 벗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고 말씀대로 죽으셨습니다. 또한 그의 가르침대로 “한알의 말알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불어오듯이 예수는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변화와 혁신,자명해진 새역사,거침이 없고 어떠한 것으로도 막아세울 수 없는 정의로운 움직임, 새로운 살림의 몸짓. 이것이 예수께서 다시사심의 의미입니다. 예수의 부활이 오늘 우리에게 의미있는 것은 그것이 가져오는 실제적인 희망과 용기로운 움직임으로 인하여 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억압과 착취가 상식이 되어버린 이 수치스런 역사가 끝장나고 비로소 시작될 새로운 현실을 갈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요구이거나 얇팍하고 속된 바램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오랜 아픔의 시절 속에서 사람다운 삶에 갈증을 느끼었고, 의로움에 굶주리었던 모든 이들의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염원입니다. 한심하고 어처구니 없는 이 불의한 현실 한 복판에서 가슴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고, 펄펄 뛰는 양심을 가두어 두지 못하여 몸서리 치는 이들의 희망이기도 합니다. 때가 된 것입니다. 바로 그 때가 이른 것입니다. 부활의 사건은 바로 그 때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성령님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누가 4:18-19)”라는 선포가 이제 모든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현실화 되는 것입니다. 온갖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미 새로움의 때는 시작되었고, 변화를 앞당기어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 새로움의 때는 갈릴레아에서 시작됩니다. “네 형제들에게 가서 갈릴레아로 가라고 하여라. 거기에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갈릴리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억눌린 자리를 의미합니다. 예수는 바로 그 자리에, 결코 희망을 저벼리지 않는 사람들 속에 그 희망으로 부활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둡고 칙칙하고 암담한 현실 속에서 늘 희망하며 살아 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예수를 만날 수 있는 곳은 다른 어떤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입니다. 우리가 이 지역에서, 이척박한 땅에서 끝내 포기하지 않으며 일구어 내야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여 봅시다. 변화와 혁신, 자명해진 새 역사,거침이 없고 어떠한 것으로도 막아세울 수 없는 정의로운 움직임,새로운 살림의 몸짓을 가져오신 예수의 부활이 오늘 우리에게 의미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여 봅시다. 실제적인 희망과 용기로운 움직임이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억압과 착취가 상식이 되어버린 이 수치스런 역사가 끝장나고 비로소 시작될 새로운 현실을 갈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요구이거나 얇팍하고 속된 바램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오랜 아픔의 시절 속에서 사람다운 삶에 갈증을 느끼었고, 의로움에 굶주리었던 모든 이들의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염원입니다. 한심하고 어처구니 없는 이 불의한 현실 한 복판에서 가슴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고, 펄펄 뛰는 양심을 가두어 두지 못하여 몸서리 치는 이들의 희망이기도 합니다.이 모든 희망에 자명한 승리를 보장하신 것이 부활의 사건입니다. 낙골교회가 앞으로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금 서로를 여미면서 우리의 공동체적 의지와 그 움직임을 기대하여 봅니다.
오늘 아무도 억누를 수 없는 희망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의 고난은 우리에게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물러설 수 없는, 물러서지 말아야 할 하나의 길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습니다. 끝내 이루어질 정의와 평화의 세계인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일에 관하여 희망없는 것을 희망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 것을 사랑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라는 가장 어려운 임무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결코 포기 하지 않고 성숙한 확신으로 살아가도록 말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의 십자가는 하나의 장식품이 아닌 것입니다. 십자가는 살아있는 자의 결코 불의에 굽힐 수 없는 움직임이며, 정의로운 몸짓 입니다. 오늘은 부활 주일입니다. “어둠이 깊으면 깊을 수록 새벽은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법”입니다. 실망과 좌절,어둠과 허탈을 이긴 용기있는 희망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큰 사랑은 없다”고 말씀하시던 예수는 그의 말씀대로 벗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고 말씀대로 죽으셨습니다. 또한 그의 가르침대로 “한알의 말알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불어오듯이 예수는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변화와 혁신,자명해진 새역사,거침이 없고 어떠한 것으로도 막아세울 수 없는 정의로운 움직임, 새로운 살림의 몸짓. 이것이 예수께서 다시사심의 의미입니다. 예수의 부활이 오늘 우리에게 의미있는 것은 그것이 가져오는 실제적인 희망과 용기로운 움직임으로 인하여 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억압과 착취가 상식이 되어버린 이 수치스런 역사가 끝장나고 비로소 시작될 새로운 현실을 갈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요구이거나 얇팍하고 속된 바램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오랜 아픔의 시절 속에서 사람다운 삶에 갈증을 느끼었고, 의로움에 굶주리었던 모든 이들의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염원입니다. 한심하고 어처구니 없는 이 불의한 현실 한 복판에서 가슴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고, 펄펄 뛰는 양심을 가두어 두지 못하여 몸서리 치는 이들의 희망이기도 합니다. 때가 된 것입니다. 바로 그 때가 이른 것입니다. 부활의 사건은 바로 그 때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성령님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누가 4:18-19)”라는 선포가 이제 모든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현실화 되는 것입니다. 온갖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미 새로움의 때는 시작되었고, 변화를 앞당기어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 새로움의 때는 갈릴레아에서 시작됩니다. “네 형제들에게 가서 갈릴레아로 가라고 하여라. 거기에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갈릴리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억눌린 자리를 의미합니다. 예수는 바로 그 자리에, 결코 희망을 저벼리지 않는 사람들 속에 그 희망으로 부활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둡고 칙칙하고 암담한 현실 속에서 늘 희망하며 살아 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예수를 만날 수 있는 곳은 다른 어떤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입니다. 우리가 이 지역에서, 이척박한 땅에서 끝내 포기하지 않으며 일구어 내야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여 봅시다. 변화와 혁신, 자명해진 새 역사,거침이 없고 어떠한 것으로도 막아세울 수 없는 정의로운 움직임,새로운 살림의 몸짓을 가져오신 예수의 부활이 오늘 우리에게 의미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여 봅시다. 실제적인 희망과 용기로운 움직임이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억압과 착취가 상식이 되어버린 이 수치스런 역사가 끝장나고 비로소 시작될 새로운 현실을 갈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요구이거나 얇팍하고 속된 바램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오랜 아픔의 시절 속에서 사람다운 삶에 갈증을 느끼었고, 의로움에 굶주리었던 모든 이들의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염원입니다. 한심하고 어처구니 없는 이 불의한 현실 한 복판에서 가슴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고, 펄펄 뛰는 양심을 가두어 두지 못하여 몸서리 치는 이들의 희망이기도 합니다.이 모든 희망에 자명한 승리를 보장하신 것이 부활의 사건입니다. 낙골교회가 앞으로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금 서로를 여미면서 우리의 공동체적 의지와 그 움직임을 기대하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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