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자들 앞에서 (마21:23-27,눅12:10)
본문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은 가난하고 눌리고 병든자들에게는 희망과 소망의 기간 이었습니다.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매우 못마땅하게 받아들여 졌고,눈에 가시처 럼 생각을 하였습니다.그들은 사두개인,바리새인,서기관들로 불리우는 정치,종교의 지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이들은 예수님를 대단히 못마당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이들이 늘 제기하는 문제는 예수님의 권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네가 뭔 데 하나님만이 할수 있는 죄를 사한다고 하고 네가 무슨권위로 이같이 하고 다니냐는 것입니다.고난주간 화요일에 예수님이 당하신 사건이 바로 이들과의 논쟁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셔서 가르치고 계셨습니다.그 때,대제사장과 백성의 장 로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그리고는 물었습니다.'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일을 하 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예수님게서는 직접 대답치 아니하시고 오히려 되물으셨습니다.즉 요한의 세례에 대한 권위를 물으셨습니다.요한의 세례가 하늘로 부터 왔느냐 사람으로부터 왔는냐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선듯 대답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추종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그들도 요한의 권위를 알고는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세례요한보다 더욱 능력이 있으신 주님이십니다.세례요한 자신도 예수님의 신발끈을 묶기에도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예수님은 분명 세례요한 보다 높고 위대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늘의 권세를 힘입고 이러한 사역을 하고 있 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 10절의 말씀도 역시 예수님의 권위를 강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님을 모독하는 자는 사 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이 귀절은 해석하기가 조금 난해한 말씀입니다.그러나예수님 이 자신의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이라고 이해하면 해석이 쉽습니다.종교지도자 들은 예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습니다.그러나 그들도 성령님의 존재와 성령님의 사역에 대하여는 알고 있었고 순종하지 않을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예수님은 바로 이 성령님의 권위를 힘입어서 자신의 권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말로 나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그럴수 있다는 것입니다.또 지금 실 제로 그러고 있습니다.그러나 성령님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사역을 성령님에 의해서 하고 있다고 누누히 말씀 하고 있습니다.또 실제로 그랬습니다.예수님의 모든 사역은 모두가 성령님이 함께 하 고 있다는 것입니다.따라서 예수님의 권위에 문제를 거는 것은 곧 성령님을 모독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예수님은 자신의 권위를 지키셨고 그리고 세우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고난주간 화요일을 보내면서 우리 성도들의 권위,교회의 권위를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교회의 권위가 얼마나 있는가를 우리는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교회의 권위는 곧 교회에 대한 신뢰도라고도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우리가 진정 세상의 빛이요 소금으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권위를 지키고 우리의 권위를 세워나가야 합니다.권위를 세우기 위하여서 예수님께서 시종일관 취 하신 두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우리도 그 방법을 배우고 실천하고 이시간 그것을 위해 기도하여야 할것입니다.
첫째는,성령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게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임하였습니다.누가복음 4장 18절 이하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말씀하시면서 가장 처음에 언급한 것도 역시 성령님이었습니다.'주의성령님이 내게 임하셨으니 '라고 말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교회는 성령님을 의지할때 권위를 갖습니다.설교자가 설교를 할 때에도 성령님의 권 위를 가지고 설교를 합니다.설교자보다도 훨씬 나이도 많고 인생경험도 설교자보다 훨씬 풍부한 회중들이 설교를 듣고,은혜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의 권위 때문입니다.초대교회가 권위있는 교회가 된 이유는 성령님의 충만에 있었습니다.교회가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성령님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따라서 우리는 이시간 에 성령님의 충만을 사모하고 성령님의 충만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낮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낮아지신 분입니다.스스로 낮아지신 주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져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 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그렇습니다.크고자하는 자는,으띄이 되고져 하는 자는, 먼저 남을 섬기는 자가 되라고 우리 주님 우리에게 가 르쳐 주셨습니다.그리고 우리 주님은 가장 낮아지심을 몸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더 이상 낮아질수 없는, 가장 낮아지신 사건이 바로 십자가의 사건입니다.빌립보서의 말씀대로 그는 원래 하나님과 본체이셨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우셨습니다.종의 형체를 가지셨고,사람의 모양으로 나 타나셨으며,자기를 낮추시기를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그는 심문을 받으실때 에도 털깍는 자앞에 양처럼 그 입을 열지 아니하셨습니다.그는 잠잠하셨습니다.그는 가장 낮아지신 삶과 가장 낮아지신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를 높이셨습니다.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모든 만물로 그의 무릎을 예수의 이름아래 꿇게 하셨습니다.가장 높은 곳에 올리 신 것입니다.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교회의 권위입니다.교회는 세상을 섬길때 권위를 가질수 있습니다.지도자들은 스스로 낮아질때 만이 존경과 함께 권위를 가질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종교인들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그들은 성령님보다는 자신들 의 가문이나 지식을 그리고 자신들의 행위를 더욱 앞세웠습니다.그리고 스스로를 낮 추기는 커녕,교만했고,우월감에 가득찼고,스그로를 분리해서 오만한 자리에 앉았습니다.그들의 독선과 오만,예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 그들의 우월감이 하나님의 아들,독생자를 십자가로 몰아내고 만것입니다. 이시간 우리의 기도의 제목입니다.고난주간 화요일을 맞으면서 오만과 편견,독 선을 다 버리게 하시고 낮아지는 섬김의 도를 배우게 하여 주옵소서,그리고 성령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이렇게 기도하여 예수님과 함께 낮아지고 예수님과 함 께 높아지는 축복을 이번 고난주간에 받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추종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그들도 요한의 권위를 알고는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세례요한보다 더욱 능력이 있으신 주님이십니다.세례요한 자신도 예수님의 신발끈을 묶기에도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예수님은 분명 세례요한 보다 높고 위대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늘의 권세를 힘입고 이러한 사역을 하고 있 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 10절의 말씀도 역시 예수님의 권위를 강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님을 모독하는 자는 사 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이 귀절은 해석하기가 조금 난해한 말씀입니다.그러나예수님 이 자신의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이라고 이해하면 해석이 쉽습니다.종교지도자 들은 예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습니다.그러나 그들도 성령님의 존재와 성령님의 사역에 대하여는 알고 있었고 순종하지 않을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예수님은 바로 이 성령님의 권위를 힘입어서 자신의 권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말로 나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그럴수 있다는 것입니다.또 지금 실 제로 그러고 있습니다.그러나 성령님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사역을 성령님에 의해서 하고 있다고 누누히 말씀 하고 있습니다.또 실제로 그랬습니다.예수님의 모든 사역은 모두가 성령님이 함께 하 고 있다는 것입니다.따라서 예수님의 권위에 문제를 거는 것은 곧 성령님을 모독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예수님은 자신의 권위를 지키셨고 그리고 세우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고난주간 화요일을 보내면서 우리 성도들의 권위,교회의 권위를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교회의 권위가 얼마나 있는가를 우리는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교회의 권위는 곧 교회에 대한 신뢰도라고도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우리가 진정 세상의 빛이요 소금으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권위를 지키고 우리의 권위를 세워나가야 합니다.권위를 세우기 위하여서 예수님께서 시종일관 취 하신 두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우리도 그 방법을 배우고 실천하고 이시간 그것을 위해 기도하여야 할것입니다.
첫째는,성령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게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임하였습니다.누가복음 4장 18절 이하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말씀하시면서 가장 처음에 언급한 것도 역시 성령님이었습니다.'주의성령님이 내게 임하셨으니 '라고 말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교회는 성령님을 의지할때 권위를 갖습니다.설교자가 설교를 할 때에도 성령님의 권 위를 가지고 설교를 합니다.설교자보다도 훨씬 나이도 많고 인생경험도 설교자보다 훨씬 풍부한 회중들이 설교를 듣고,은혜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의 권위 때문입니다.초대교회가 권위있는 교회가 된 이유는 성령님의 충만에 있었습니다.교회가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성령님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따라서 우리는 이시간 에 성령님의 충만을 사모하고 성령님의 충만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낮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낮아지신 분입니다.스스로 낮아지신 주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져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 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그렇습니다.크고자하는 자는,으띄이 되고져 하는 자는, 먼저 남을 섬기는 자가 되라고 우리 주님 우리에게 가 르쳐 주셨습니다.그리고 우리 주님은 가장 낮아지심을 몸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더 이상 낮아질수 없는, 가장 낮아지신 사건이 바로 십자가의 사건입니다.빌립보서의 말씀대로 그는 원래 하나님과 본체이셨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우셨습니다.종의 형체를 가지셨고,사람의 모양으로 나 타나셨으며,자기를 낮추시기를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그는 심문을 받으실때 에도 털깍는 자앞에 양처럼 그 입을 열지 아니하셨습니다.그는 잠잠하셨습니다.그는 가장 낮아지신 삶과 가장 낮아지신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를 높이셨습니다.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모든 만물로 그의 무릎을 예수의 이름아래 꿇게 하셨습니다.가장 높은 곳에 올리 신 것입니다.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교회의 권위입니다.교회는 세상을 섬길때 권위를 가질수 있습니다.지도자들은 스스로 낮아질때 만이 존경과 함께 권위를 가질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종교인들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그들은 성령님보다는 자신들 의 가문이나 지식을 그리고 자신들의 행위를 더욱 앞세웠습니다.그리고 스스로를 낮 추기는 커녕,교만했고,우월감에 가득찼고,스그로를 분리해서 오만한 자리에 앉았습니다.그들의 독선과 오만,예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 그들의 우월감이 하나님의 아들,독생자를 십자가로 몰아내고 만것입니다. 이시간 우리의 기도의 제목입니다.고난주간 화요일을 맞으면서 오만과 편견,독 선을 다 버리게 하시고 낮아지는 섬김의 도를 배우게 하여 주옵소서,그리고 성령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이렇게 기도하여 예수님과 함께 낮아지고 예수님과 함 께 높아지는 축복을 이번 고난주간에 받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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