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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따르는 길 (마20:20-28)

본문

이제 우리는 주님 오심의 성탄절을 한 주일 앞두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전 세계의 상가에서는 성탄 장식이며, 캐럴이며, 카-드를 주고 맏는 축제의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이제 기독교인이건 아니건 모두 큰 명절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주님이시기에, 전쟁과 갈등의 지역에서도 성탄절만은 휴 전을 하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형무소에서 죄수의 몸으로 고생하던 자들에게는 특사령으로 자유의 몸을 얻게 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탄의 절기를 맞이하면서, 2000년전 이 땅위에 오셔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가신 그리스도의 모습과 그의 가르치심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되 삭여 보아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오늘의 성탄은 너무나 상품화되었고, 세속화된 자기 본위로 전락되 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신앙이 너무나 상품화 된 신앙이란 말이기도 하고, 너무나 세속의 깊이 물든 것이란 의미도 되고, 너무나 자기밖에 모르는 이 ' 기주의적인 신앙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오늘 주님이 우리들의 모습을 보신다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 까 교회마다 우뚝 우뚝 솟은 웅장한 건물들, 수많은 구름 떼와 같이 몰려나오는 선남선녀들을 보시는 주님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도 생각하는 크리스천들이라면 우리의 현 사태를 보면서, 그리고 자신의 타성화 되어 의미 없이 따라가는 신앙생활을 보면서 무엇인가를 다 느낄 것이라 고 봅니다. 저는 이번에 병상에 누워서 마태복음을 있는 가운데서 몇 가지 자신의 걸어 온 삶의 내용을 깊이 반성해 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르친 길대로 내가 얼마나 따라왔는가 하는 자기 반성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의 본문에 유념하게 되었습니다.
1. 예수님이 가르치신 길대로 따르려면 바보 같은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오늘날 똑똑한 사람 치고 예수님이 가르친 대로 살겠다고 나설 사람이 얼마 나 되겠습니까 특별히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면 천재들이 많습니다. 어제까지 가난하던 사람이 대 재벌의 사위가 되어 돈을 물쓰듯하는가 하면, 어제까지 없이 살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목돈을 잡았는 음껏 사치하고, 방탕하며 유행의 첨단을 걷는 것을 보면 모두 천재들임에는 틀립이 없습니다. 오늘의 우리 사회를 보면, 수단이야 어떻게 되었든지,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 든지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높은 위치를 견고히 하고, 생활의 풍요를 누리 며, 내 자녀들의 출세에 순풍에 돛을 달았으면, 그것이 성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모두 그렇게 되어지지 못해서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나와서 주여! 주여! 하면 서 기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본문에 보면 20절에 "그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 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구하려고 예수 께 나왔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모두 예수님께 무엇을 구하려고 나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구하는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가 다아는바대로, 아들들의 출세, 성공, 높은 자리에 앉게 해 달라는 부탁 이었습니다. 세상의 어느 부모인들 자식들이 잘 되게 해 달라는 것이 무엇이 허 물이며, 나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우리도 지금 내 아들딸들이 좋은 곳 에 시집가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출세하기를 바라는 마음, 다 있는 것 아니겠 습니까
그런데 우리 주님의 답변을 잘 보시기를 바랍니다. 22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저들의 대답이 "예! 할 수 있나이다"라고.감히 말했습니다. 이때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3절에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 와 내 좌우 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준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고.
그런데 그 밑에 24절에 보니까, "열 제자가 다 듣고 두 형제에게 분히 여겼다 고" 하였습니다. 이때 주님은 제자들을 다 불러 놓고, 진지한 말씀으로 저들에게 가르쳐 말씀 하시기를 25절에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 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 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그러면서 28절에 자신이 이 땅에 오심에 목적을 가장 명쾌하게 뚜렷하게 나 타내 하신 말씀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고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시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세 가지 분명한 움직일 수 없는 진리의 교훈을 찾게 됩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어떤 길인가 여기에서 우리의 구할 바를 바르 게 알게 되고,
둘째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선 제자들의 생각은 어떠해야 하겠는가 여기에서 오늘의 수많은 신학을 지원하는 자들, 아니 이미 교역자의 길을 걷 기로 한 목사들과 교회의 치리를 담당하는 장로들의 생각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 를 깨닫게 되고,
셋째로, 예수를 구세주로 믿고 그의 말씀을 진리라고 고백하는 성도들이라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합니다.
1)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세상의 집권자들을 추종하는 그런 길'이 아니 라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의 정치 현실을 보면, 어느 정당에, 어떤 정치적 보수를 따라야 다음에 집권할 때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해서 퍽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현실이 아닙니까 예수 믿고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신앙생활의 길은 그런 길이 아니란 말입니다. 세베대의 아내는 아들의 출세를 위하여 예수님게 부탁을 했지만, 예수님을 몰라서도 한참 몰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초기에 제자들이 모두 그러했습니다. 이적 기사를 행하시고,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이시고, 물위로 걸어오시고, 소 경을 고치시고, 문둥이를 낳게 하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그 능력을 보고는, 예수님을 세상의 집권자들처럼 착각 착각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이런 생각으로 따른다면 큰 착각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신앙의 길로 들어오지 못하고, 예수를 자기의 출세의 수 단으로 따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예수를 돈 많이 벌게 하는, 그리고 아들딸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 달 라는 목적으로만 나와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신 목적은 그런 것 채워 주기 위해서가 아니란 말입니다.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라고 했듯이 우리의 구하는 바를 알 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서 어떻게 기도 하라고 했습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라 고. 어디에 한귀절이나마 그런 말이 있습니까 그러나, 마태복음 6: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 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였습니다.
2) 그런가 하면, 오늘 주님을 따라 나선 자들이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이 어야 하겠습니까 결론부터 말씀들이면, 바보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똑똑한 사람들은 으뜸이 되고, 크게 되기 위하여 출세의 길을 찾아 재 빠르게 이리저리 줄타기를 잘하지만, 너희는 그렇지 아니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너희가 크고자 하면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면 종이 되라' 고 하 였습니다. 여러분! 이 말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자들이라면, 분명히 이 시대적 감각으로 보면 바보들입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왜 섬김을 받는 것이 좋지 무엇 때문에 섬기는 자가 되며, 으뜸이 되는 것이 좋지 왜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겠습니까 일찍이 니이체는, 이러한 예수의 교훈을 엽겹다고 생각하여, 노예의 도덕이라 고 박차 버리고, 초인, 수펴맨을 주장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를 따른다고 나선 자들에게 간단없이 찾아오는 유혹이 있다 면, 섬기는 자 보다는, 섬김을 받으려는 유혹이 있고, 종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 보다는 으뜸이 되고자 하는 생각으로 차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모두 목회의 성공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큰 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기를 원 합니다. 같은 목사들 중에서도 이름이 나기를 원합니다. 동료 동역 자들 중에도 내가 학벌이나, 지식이나, 능력 면에서 낫다고 은근히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목연과 보다는 신대원출신이 더 잘할 것이라고 생각 하고 그렇게 인정하는 것이 실제적 현실입니다. 그런가 하면, 제아무리 인류 대 학을 나왔으면 무엇하나, 성령님 체험도 없는 것이.방언도 못하는 것이.라고 하 면서 영계에서는 내가 으뜸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 모든 것을 주님이 보신다면, 얼마나 웃기는 일이라고 하겠습니까 목회에 무슨 성공이란 말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있다면, 얼마나 주님의 뒤를 진지하게 따랐느냐 하는 진실만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가르치신 '섬김의 도' '고난받는 종의 도'를 얼마나 묵묵히 따랐느 냐 거기에 평가가 따를 뿐일 것입니다. 그래서 '착하고 신실한 종아!'라는 말은 있어도 '크고 으뜸된 종아!'라는 칭찬은 없습니다. 아무리 큰 교회를 담임했으면 무엇합니까 아무리 으뜸이라고 자부했으면 무엇하겠습니까 모두 쓸데 없는 것 뿐입니다.
3. 그러므로 주님을 구세주로 고백하고 따르는 성도들이라면 어떻게 한평 생 이 세상을 살다 가야 하겠습니까 '진정한 섬김의 길'을 걸으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말은 쉽지 만 행동으로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살다가는 바보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19세기의 테인(Hippolyte Taine)의 작품중 '그렌조르제의 생애와 사상'이 란 글에서 '세상에는 4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1 사랑하는 자2 기회주의 자3 방관자4 바보라고.그러면서 이 넷 주에 가장 행복 한자는 바보들이라고 했습니다. 진정 우리 주님은 세상적 표준으로 보면, 바보 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바보같 은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하늘의 영화를 버리고 육신으로 오셔서 섬김의 도로 종 의 길을 걸으셨다는 것!,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분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면서, 그 분의 말씀이 진리라고 하면서, 얼마나 그분처럼, 바보 같은 종의 길을 걸어가고 있느냐 입니다. 예수믿어 모두 출세하고, 예수 믿어 모두 훌륭한 사람, 훌륭한 직업, 가지기를 원하지 섬기려고 하는 바보들이 얼마나 되느냐 입니다. 이 종의 길은 성공이나 실패라는 단어에 좌우되지 않는 길입니다. 얼마나 중심으로 진지하게 따랐느냐 일 뿐입니다. 몇년전 재미 작가 김은국씨의 순교자라는 소설이 대단한 인기를 얻었던 일 이 있었습니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지에 까지 그에 관하여 논평했던 일이 있 었습니다. 이 순교자란 소설의 내용인즉, 6.25를 배경으로 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바보 같이 산 사람에 관한 얘기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14명이 공산군 장교 앞에 끌려와 심문을 받습니다. '이제 더 이상 과거를 묻지 않을 테니 이 자리에서 예수를 더 이상 믿지 않겠 다고 약속할 사람은 좌편으로 나와 서라고.' 영리한 사람들은 머리 속에 우선에 살기 위하여 이 위기를 넘겨야 한다고, 그 리고 다시 믿으면 되지 않겠느냐고.그래서 13명은 좌편에 나와 섰습니다.
그런데 단 한사람, 바보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너는 무어야 예수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자초할 작정인가', 바복같은 자식!' 그 사람은 바보같이 아무런 변명 없이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때 장교는 13명을 향하여 크게 말 '이 배신자들아! 너희 놈들은 앞으로 살려주어도 또 배신할 놈들이야! '예수를 믿으려면, 저 사람들처럼 믿어!' 라고 하면서 한꺼번에 기관총으로 사 살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부터 일어났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살아온 이 사람에게 도리어 배신자란 낙인을 찍습니다. 죽은 13명은 순교자라고 했고, 너는 배신했기에 살아 올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갖은 모욕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묵묵히 지냈습니다.
그런데 전세는 바뀌어 인민군은 퇴각하게 되었고, 동네 청년들에게 한 인민군 장교는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13명을 사살했던 장본 이었습니다. 이 인민군 장교로 인하여 진실은 밝혀지고 바보 같은 사람은 더 이상 바보가 아니고, 참된 살아 있는 순교자로서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조만간 주님 앞에 다 설 사람들입니다. 남에게 으뜸이 되면, 얼마나 으뜸이 되며, 남보다 크면 얼마나 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오늘의 우리의 현실을 보십시오, 크고 섬김 받던 자들이 줄줄이 형무소행을 가는 모습을. 이 세상에서 필요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 니까 가난하면서도 남을 섬기는 사람들, 자신의 것을 자기 하나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남을 도우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것이 예수믿는 사람들, 진정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 섬기면서 사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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