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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다섯시에 온 일군 (마20:1-16)

본문

하나님의 상급을 사람들은 대단히 착각한다. 무엇을 착각하는가 세상의 상급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가 무엇을 행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마치 세사에서 효자상받고 선한 시민상받고 수출상을 받는 것처럼 이해를 한다. 이 것들을 어떻게 해서 받는가효 자상 받으려면 효자 노릇해야하고 시민상 맏으려면 도둑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도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상을 받을 수 있다. 세상의 상은 어떤 불변의 기준이 있는게 아니다.그저 비교해서 상을 주는 것이요 또한 좀 부족해도 사람들이 본받게 하려고 준다. 상받는 사람은 자신을 정리하고 새사람이 될 필요가 전혀 없다. 다른 여러가 지가 부족해도 한 분야를 남보다 잘하고 운이 좋으면 받는다. 그리고 이 상이라는 것이 팔자를 고치는 것도 무슨 큰 지위를 얻는게 아니다. 그저 잠시 동안의 명예일뿐이다.곧 잊혀지고 만다. 하지만 하나님의 상은 어떠한가그것을 이 정도로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인가 자고로 이 상에 도전한 사람들은 동서고금에 셀 수 없이 많았다. 어떤이는 가족을 버리고 자신까지도 버렸다. 자기의 한평생을 다 버리려가면서 하나님의 상을 얻고자 덤벼들었다. 세상의 모든 종교들 이 다 그 상을 얻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본다면 크게 틀않는다. 착각한 인간들의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께 무엇을 요구하거나 기대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하나님께 지은 빚을 해결해야 한다.
그를 배반하고 그의 명령을 도무지 지키지 않았다. 우리가 그의 계명중 어느 것을 지켰단 말인가 우리의 마음은 그를 싫어하였다.하루에 지은 죄가 열 가지만 된다해도 삼십, 사십,오십이 되는 동안 십만,십오만 이상의 하나님 모독하는 악을 행 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고도 무엇을 요구하는가 그러므 인간이 하나님에게 무엇을 요구하면서 '나를 왜 이렇게 만 드셨나요, 내게 왜 이런 고통을 주셨나요"하고 따지는 것이 전혀 합 당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자니간이 밤을 새워서 기도하면서 무엇을 달라고 한들 자기의 죄악이 그렇게해서 씻어지겠는가 인간이 남에게 제 것 일부를 나누어준다고 빚이 갚아지겠는가 어떤 위대한 일을 한 다고 그것으로 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상급은 인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상급이기 보다는 선물이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크기 때문에 상급이라고 한다. 인간 의 힘으로는 전혀 자신에게 유익을 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냥 자기의 것을 거저 주신다. 이 선물을 인간 세상의 관행으로 생각한다 면 절대로 받을 수 없다.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데 그냥 준다니, 그 게 무슨 소리인줄 모르면 손에 쥐고도 자기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 宕湧 그렇게 악하고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의 의복을 받았으면 자기 더러운 몸을 씻고 그것으로 갈아입어 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앞에 하나님의 쳐져 있다. 그 저 육신의 욕망을 채울 선물이나 더 요구하면서 자기의 옛 모습과 옛 힘으로 살아간다. 열심낼 일은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일 이다.그것이 제대로 되면 다른 열심은 저절로 나온다. 구원은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이다. 그의 힘으로 그의 주신 상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탕감된 빚의 만분의 일이라도 돌려드리 기 위한 것이다. 그의 상급이 어떤 것인지 날마다 살펴보고 확인하라.
우리의 힘으로는 우리의 몸 유지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세상에서 돈 좀 모으고 권력 좀 잡아도 여전히 하늘처럼 높아진 우리의 죄악을 어 찌할 수 없다. 거룩한 삶은 더욱 살아갈 힘이 없다. 이렇게 해보라. 하나님이 주신 상급으로 하루를 살아보라. 자기의 목 숨과 힘을 신뢰하지 말고 하나님의 생명이 자신 안에 주어졌음을 믿음 으로 확인하라 속이고 허세부리고 남의 것 덜 주어서 부요해지려 하 지 말라. 이미 하나님의 완전한 부요가 자신 안에 있음을 알고 그 부 요를 누려보는 것이다. 기쁨도 평안도 모든 확신도 마찬가지이다. 당 당하게 그러나 온유하고 겸손하게 그리스도처럼 싸우라. 포도원의 비유는 그런 것이다. 아침 일찍 주께서 일하는 사람들을 부 르러 나갔다. 그들은 할 일이 없어서 빈둥대고 있었다. 일할데가 없었 던 것이다. 하루치의 품삯을 약속하고는 포도원에서 일하도록 하였다. 아홉시 열두시 오후 세시에도 계속나가서 그만큼의 품삯을 주기로 하 고 포도원으로 불렀다.마지막에는 오후 다섯시에도 나가서 놀로 있는 품군들을 불러 들였다. 그렇게 여섯시까지 일한다. 이제 품삯을 주게 되었다. 주는 다섯시에 온 품군에게 하루치 품삯을 주었다. 그는 이게 웬 떡이냐 하고는 기쁨이 넘쳐서 돌아갔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오후 세시에 온 사람도 열두시에 온 사람도 역시 같은 한 데나리온을 준다 그러자 아침 일찍 온 품군들은 겁이 났다. 혹시 나에게도 한 시간만 일한 사람과 같은 걸 주지 않을까 과연 그러했다. 주인은 새벽에 온 사람들에게도 하루치만 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불평한다. "어찌 이렇게 불공평합니까 한 시간 일한 사람과 열시간을 뙤약빛에서 일한 사람과 똑같이 대우하십니까" 남과 비교해서 행복해지는 사람들이다. 주인은 대답했다. "내가 당신과 약 속한 그 금액을 주지 않았소 내가 불공평한게 무엇이 있습니까 오히 려 내가 자비로운 점을 감사해야지 않습니까친구들이 일한게 없어도 구원받은 것을 기뻐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다섯 시에 온 행운아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이어야 한다. 거의 한 일이 없다. 끝날 때 와서 일좀 하려다가 구원을 받은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요 이것이 주 앞에서 우리의 마음 이다. 우리의 받은 구원에 감격하며 염치가 없다. 그저 죄송하며 감사 하다. 여기 어디 우리 공로가 들어설 자리가 있는가.구원과 구원의 삶 은 이와 같다. 그냥 선물받은 고마움을 가진다. 그리고 그 받은 것으로 산다 이것이 바로 신자의 삶이다. 만약 아침 부터 일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면 구워의 기쁨이나 능력은 전혀 나타나 지 않는다. 죄짓고 망해가는 인간을 불러서 하늘 포도원을 위해 일하 게 하셨다. 그리고 구원의 상급을 주셨다. 감사함으로 받고 그것을 누 려야 한다. 만약 내가 기도하고 선행한 댓가로 받아야 하고 아무개보 다 내가 나아서 더 받을 수 있다 생각하면 착각이다. 하루치 품삯은 우리의 구원을 비유한 것이다. 이 품삯은 이미 믿는 순간에 주어졌다. 마치 오후 다섯 시에 온 일군처럼 우리는 아무 것도 안하고 받았다. 우리는 주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그 빚의 만분의 일이라도 갚기 위해서도 헌신한다. 헌신의 힘은 이미 주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 신자는 한 것 없이 품삯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능력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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