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용서하면 (마18:15-20)
본문
우리나라 국민중에 통일을 하지 말자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입으로는 통일을 말하지만 마음으로는 이것을 거부하거나 주저 하거나 정략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분은 '너무 이상적인 통일론은 금물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가 령 이인모씨를 북한으로 보낼 때에 '왜 이쪽에서는 아무 조건을 제시하지 않 았느냐 납북어부 몇사람이라도 왜 교환하지 못했느냐'고 말하는 것을 들은 바가 있습니다. 사실 납북된 사람들을 생각하면 매우 가슴 아픈 일이지만,그러나 또한편으로는 지금 우리가 통일에 대한 논의를 이렇게 활발히 할 수 있다는 것은 통일의 서광이 서서히 비쳐오고 있다는 희망과 확신을 가지게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평화통일의 희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여기에 모였습니다. 지금 읽은 성경말씀을 생각하여 볼 때에 남북의 평화통일은 진정한 용서에서 부터 시작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줍니다. 용서하지 않을 때 남과 북은 그 어떤 조건을 제시한다고 해도 참다운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며 또 화해가 없이는 진정한 통일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오늘은 마침 6.25를 하루 앞둔 날입니다. 6.25를 겪은 사람들은 공산주의 자들을 동족이라고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원수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입니다. 그들은 형제가 아니고 참략자들이며 그들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우리의 적들입니다. 과거에 우리에게 총부리를 돌려대고 잔인한 학살을 자행 한 자들, 적화통일을 위하여 온갖 만행을 가리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내 부모형제를 죽인 자들입니다. 저의 신학교 동창 한분은 6.25 전쟁때 자기 가 보는 앞에서 어머니가 공산주의자들의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그는 지금 도 그 악몽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그렇게 잔악합니다. 전에 어떤 분은 '남북분단을 잘된 일이다, 38선은 축복선이다' 라고 말한 분도 있었습니다. 그 분의 말은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악독한 사람들과 같 이 살 수 있겠는가, 38선을 그어 따로 살게 해 주신 것이 축복이 아니고 무 엇이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언제까지 이러한 분단과 반목을 계속하고 있어야 합니까 이제는 우리가 이들을 용서하고 하나가 되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용서가 없이는 화해가 없고 화해가 없이는 통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다른 길이 없지 않은가 하고 생각됩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 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두가 진심으로 서로를 용서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에게 통일을 허락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누구를 용서한다고 할 때 우리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을 용 서해야 하는 어려움에 부디치게 됩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쉽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혹 개별적으로 나는 원수를 용서할 수 있다고 하지만 국가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여기에서는 순수한 용서와 화해보다는 현실과 실리를 추구하는 정치적인 협상같은 것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형제의 죄를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였는데 그 용서해야 할 죄가 무슨 무슨 죄라고 한정하지를 않았읍니다. 이것은 내 가족을 살해한 공산주의자들까지도 용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무제한으로 적을 용서 해야한다는 것은 너무 현실을 무시한 이상론 같긷도 합니다. 그래서 진실하게 주님을 믿는 크리스천일찌라도 결단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란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 예수님의 말씀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 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라.(마태복음5:44-45) 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있을 때에 용서할 수 있는데 이것은 도 달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이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능한 현실입니다. 이 말씀 을 하신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무리들을 위하여 '아버지 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4)라고 기도하시고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알고서 범한 죄에 대하여는 용서의 여지는 그리 크지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고 범한 죄라면 용서의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비록 나의 부 모나 처자식을 죽인 원수일찌라도 그들이 무지몽매하여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용서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현대세계에서는 사상 이념의 대립이나 싸움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 습니다.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를 본다면, 과거는 '자기들이 하는 것이 무엇인 지 알지 못하였던 시대'라고 할 수 있을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민족 역사에 '새 일'을 시작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들을 용서하여야만 하겠습니다. 용서는 높은 이상이면서도 아주 현실적인 것입니다. 용서함으로 모든 것 이 변하고 새로워집니다. 용서는 이웃을 살리고 또 자신을 살리는 길입니다. 용서는 보이지 않는 큰 힘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할 수 있을 때 그것은 참으로 큰 힘이 될 것이고 이것이 통일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진심으로 용서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 들이는 상대방이 이를 거절한다면 용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손을 내밀어도 뿌리친다면, '우리가 왜 너희들의 용서를 받는다는 말이 냐'라고 한다면 우리의 용서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지금 봉독한 성경말씀은 잘못하는 사람을 바로 잡아주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해보라는 권고입니다 만일 말을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지만, 만일 듣지 않으면 이렇 게 이렇게 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이렇게 이렇게 하고. 또 그래도 듣지 않으면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용서의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용서뿐 만 아니라 화해를 이루기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은 끝까지 다 하라고 하는 권고입니다. 우리의 용서를 저들이 받아 들이게 하는 화해공작을 시도하고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진실과 최선을 다 하라는 명령입니다. 우리가 통일을 위하여 기도하며 용서와 화해를 이루기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통일을 이루게 하소서', '하나님 용서하고 화해하게 하소서' 하 고 빌고만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들 자신이 인간으로서 할 바를, 최선을다해 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끼리 합의된 한 목소리를 만든 후 확 고부동한 신념으로 화해를 이루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옛날 에서는 그 동생 야곱을 죽이고 한을 풀려고4 장장 20년을 기다렸습니다.(창세기 27:45)
20년 후 야곱이 금의환향할 때에 제일 큰 문제는 자기에 게 지금도 한을 품고 있는 형 에서였습니다. 이 때에 야곱은 자기 형 에서와 화해를 하려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최선을 다 했지만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그 마지막 날 밤 그는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면서 그 환도뼈가 위골되기까지 사력을 다해 기도했을 때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거 기서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고 힘을 얻고 은총을 입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자' 곧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이 두 형제가 만 났을 때에 그들은 얼싸안고 기뻐하고 반가워하며 진정한 화해가 이루었다고 합니다. 용서없이는 화해가 없고 화해하지 않고서는 통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던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태복음 18:18) 고 성서는 말합니다. 우리는 같은 동족끼리 너무나 오랫동안 매고 또 매어 그 매듭이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이 얼키고 설킨 매듭을 어떻게 풀수 있겠습니까 매면 매 이고 풀면 풀릴 것입니다. 이제는 남과 북이 서로 풀어 얼싸안고 하나가 되는 진정한 화해를 이뤄야 할 때입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립니다. 서 로 용서하면 하나님께서도 용서하시고 서로 화해하면 하나님과 화해되고 서 로 하나가 되면 하나님과도 하나가 됩니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로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 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태복음 5:23) 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한국 교회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을 이루는데는 인간이 할 일이 있고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다고 생각 됩니다.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태복음 18:19)고 했 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할 일은 먼저 용서하는 일입니다. 인간이 할 일은 서로 화해하고 합심하는 일입니다. 마음속에서 진심으로 용서하고 진심으로 화해하려는 의지는 없이 말로만, 구호로만 통일을 외치면 무슨 소용이 있겠 습니까 통일을 아무리 부르짖어도 진정한 용서가 없다면, 그리고 정말로 용 서할 자신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의 서광이 비치 고 통일의 희년을 준비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이제 우리가 용서하고 화해할 자신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용서와 화해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현실을 외면한 이상론만은 아닌 것 입니다. 용서와 화해는 오히려 현실적인 것이고 구체적인 것이며 통일의 가장 확실하고, 또한 가능한 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 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이라고 말씀했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할 일입니다. 이 일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실 것입니다. 사람이 할 일 을 해야 됩니다. 남북통일은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 이루어 질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민족 으로서 남과 북이 속히 평화롭게 하나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 일은 말로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먼저 내가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으며 화해를 모색하려는 뜨겁고 열열한 의지와 노력이 있을 때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할 일은 두 사람이 합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먼저 진심으로 용서하려는데서 시작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우리 민족의 마음을 또 남과 북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마지 않습니다. 지혜의 초대장 성경
본문:잠 9:1-6 우리는 종종 초대장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제 시원한 가을이 오면 많 은 곳에서 초대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초대장의 내용은 기쁜 일을 함 께 나누기 위한 초대장일 때도 있고, 슬픈 일을 함께 나누기 위한 초대장일 때도 있습니다. 슬픈 일을 당했을 때의 초대장 보다는 기쁜 일을 당했을 때 의 초대장이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개의 초대장이 함께 왔을 때에 우리는 슬픈 일을 당한 곳에서 온 초대장에 함께 동참하는 것이 우리네의 상식이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어디서나 두 개의 길이 열려 있고 그 두 길 가운데서 한 길 을 선택하도록 두 개의 초대장이 언제나 사람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두 길 가운데 한 길은 생명에 이르게 하는 길이요, 또한 길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길입니다. 만약 이렇게 두 갈래의 길 가운데 하나를 선 택하라고 한다면 아무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초대에 기꺼이 나아갈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어느 한 길을 갈 수 있을 만큼 쉽게 생명에 이르는 길을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어느 길이 과연 생명에 이르게 하는 길이냐를 판가름 할 수 있는 선택 의 기준을 모르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저마다 각각 그 판단의 기준을 가지 고 있어서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길이야말로 참된 생명의 길임을 주장하곤 합니다.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초대장이 우리에게 항 상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길을 선택하지 못하여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을 볼 때에 그 안타까움 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본론'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얻게 하시려고 잔치 자리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1) 오늘 본문에서의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말씀되신 하나님은 바로 이 지혜이십니다. 지혜는 사람처럼 나타나서 모든 이들을 초대 하였습니다. 초대된 사람들을 위하여 앉을 집도 크게 새로 지었습니다. 초대된 사람들이 자리가 없어서 한 사람도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새롭게 준비를 했습니다.
(2) 그것은 일곱 기둥으로 받혀진 크고 훌륭한 집이었습니다. 으리으리한 궁전이었고 완전한 구원의 집이었습니다. 바로 그곳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지혜가 어리석은 자들이 와서 생명을 얻도록 불러들 일 축제의 장소를 마련한 것입니다. 이 집에 들어오면 아무것도 부족한 것 이 없는 곳,
(3) 그래서 이 지혜는 풍성한 음식도 마련 하였습니다. 한 사람도 모자람 이 없이 먹고 즐길 수 있도록 고기와 술을 준비했습니다. 훌륭한 잔치가 준비되도록 "그는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였습니다." 자기가 가지 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살찌고 윤이 나는 것 중에서 그는 자기의 희생제물 을 잡았습니다. 자신이 희생하지 않고는 이렇게 훌륭한 잔치가 준비될 수 없기 때문에 집안 내력을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요, 많은 것으로 풍성하게 먹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서 뽐내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더 더구나 자신의 수고로움을 알아달라고 하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이 잔치는 호사스런 잔치이지만, 성스러운 잔치요, 희생의 잔치였습니다.지혜는 영혼이 바라고 만족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완전하게 상을 갖추었습니다. 즉 그는 의와 은혜, 화평과 희락,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 성령님의 위로, 그리고 영생에 대한 온갖 보증과 증거 등으로 자기 상을 채웠습니다. 누구나 이 잔치 자리에 앉기만 하면 흠뻑 빠져서 그 달콤하고 향기로 운 음식에 배를 불리고, 만족감을 얻으며, 참된 평안의 안식을 얻을 수 있 기에 그 맛을 아는 사람들은 다시는 다른 것을 얻기 위하여 몸부림 치지 않 아도 되는 그러한 자리였습니다.
2. 이렇게 준비된 자리에 하나님은 누구나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초대를 하셨습니다.
(1) 잔치 자리에의 초대-이 은혜로운 초청은 몇몇 특별한 친구를 대상 으로 준비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인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언약 속에서 그 계약 조건에 기꺼이 응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무나 와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와 지혜 없는 자소박한 자나 분별력이 없는 자" 누구도 응답하기만 하면 올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마태복음 22장의 천국 잔치의 초대는 오히려 처음에 청했을 때의 사람들이 오지를 않자 종들을 길에 내어보내 악한 자나 선한 자 만나는대로 모두 데려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오라 하시니 아무나 와도 좋소" 하는 찬송가 가사처럼 정말 아무나 와도 좋은 자리였습니다. 건강한 자에겐 의사가 필요 없습니다. 배부른 자에게는 음식이 필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지식에 만족한 사람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 즉, 지혜앞에 겸손한 자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다른 어느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 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사람이며, 자신이 생각하고 일하는 자리가 가장 급하 고 중요하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에 눈을 뜨지 못하는 가장 어리석으면서도 어리석다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초대의 자리에 참 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떡에 배고픔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자신의 어리석음을 느끼며, 자신의 무지를 깨달으며, 희미하게나마 빛을 더듬어 가기를 원하는 자들만이 이 지혜의 향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의 구원의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초대되어 풍성한 생 명의 떡을 먹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하나님 나라까지 이르는데 힘있게 승리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2) 이 자리는 어떠한 자리일까요 값을 받지 않는 자리입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 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고 이사야 55장 1-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 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마태복음 11장2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 서 마시라."고 요한복음7장 37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값을 받 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받기를 원하고 사모하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은 독 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믿기만 하면, 받아들이기만하면, 영접하기만하면, 잔치자리에 참여하기만하면,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십니다.
3.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그 목적은 무엇일까요 "생명을 얻게" 해 주 시겠다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사람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 로 살아야 합니다. 신명기 8장 3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매일 먹고 사는 가운서 주신 말씀입니다. 육신을 위한 만나도 먹어 야 하지만 영혼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도 먹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생명의 떡" 입니다. 우리가 원하기 전 이미 생명 을 얻는 길을 열어 놓으시고 잔치를 준비하셔서 우리를 초대하실 때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어리석음을 버려야 합니다. "어리석음을 버리고" 불의를 버리고 죄의 행실을 끊고 죄의 무리와의 교제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어리석음은 나 스스 로 버려야합니다. 내가 어리석은 것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벗어 버릴 수 없습니다. 어리석다는 말은 미련하다, 둔하다는 말로 많이 배운 것과는 다릅니다. 어리석음은 지혜를 얻어야만이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지 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 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그리스도와의 긴밀한 교제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혜의 떡을 먹고 생명의 물을 마시고 진리와 성결과 사랑과 지혜의 길로 행해야 합니다. "명철의 길로 행해야"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와의 긴밀한 교제를 통해 서만 갈 수 있는 길입니다.
(3) 하나님 안에 있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잔치 자리에는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나 먹지 않으면 내 것 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 하나님과 함께 있는 그 풍성하신 생명이 우리를 향해 놓여있어도 내 것으로 삼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결론' 생명의 잔치 자리에 초대를 받으신 성도님들은 잘 차려진 음식을 고루 잘 섭취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온전하게 바르게 갈 수 있는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누구를 용서한다고 할 때 우리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을 용 서해야 하는 어려움에 부디치게 됩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쉽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혹 개별적으로 나는 원수를 용서할 수 있다고 하지만 국가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여기에서는 순수한 용서와 화해보다는 현실과 실리를 추구하는 정치적인 협상같은 것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형제의 죄를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였는데 그 용서해야 할 죄가 무슨 무슨 죄라고 한정하지를 않았읍니다. 이것은 내 가족을 살해한 공산주의자들까지도 용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무제한으로 적을 용서 해야한다는 것은 너무 현실을 무시한 이상론 같긷도 합니다. 그래서 진실하게 주님을 믿는 크리스천일찌라도 결단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란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 예수님의 말씀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 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라.(마태복음5:44-45) 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있을 때에 용서할 수 있는데 이것은 도 달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이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능한 현실입니다. 이 말씀 을 하신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무리들을 위하여 '아버지 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4)라고 기도하시고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알고서 범한 죄에 대하여는 용서의 여지는 그리 크지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고 범한 죄라면 용서의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비록 나의 부 모나 처자식을 죽인 원수일찌라도 그들이 무지몽매하여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용서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현대세계에서는 사상 이념의 대립이나 싸움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 습니다.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를 본다면, 과거는 '자기들이 하는 것이 무엇인 지 알지 못하였던 시대'라고 할 수 있을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민족 역사에 '새 일'을 시작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들을 용서하여야만 하겠습니다. 용서는 높은 이상이면서도 아주 현실적인 것입니다. 용서함으로 모든 것 이 변하고 새로워집니다. 용서는 이웃을 살리고 또 자신을 살리는 길입니다. 용서는 보이지 않는 큰 힘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할 수 있을 때 그것은 참으로 큰 힘이 될 것이고 이것이 통일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진심으로 용서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 들이는 상대방이 이를 거절한다면 용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손을 내밀어도 뿌리친다면, '우리가 왜 너희들의 용서를 받는다는 말이 냐'라고 한다면 우리의 용서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지금 봉독한 성경말씀은 잘못하는 사람을 바로 잡아주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해보라는 권고입니다 만일 말을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지만, 만일 듣지 않으면 이렇 게 이렇게 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이렇게 이렇게 하고. 또 그래도 듣지 않으면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용서의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용서뿐 만 아니라 화해를 이루기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은 끝까지 다 하라고 하는 권고입니다. 우리의 용서를 저들이 받아 들이게 하는 화해공작을 시도하고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진실과 최선을 다 하라는 명령입니다. 우리가 통일을 위하여 기도하며 용서와 화해를 이루기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통일을 이루게 하소서', '하나님 용서하고 화해하게 하소서' 하 고 빌고만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들 자신이 인간으로서 할 바를, 최선을다해 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끼리 합의된 한 목소리를 만든 후 확 고부동한 신념으로 화해를 이루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옛날 에서는 그 동생 야곱을 죽이고 한을 풀려고4 장장 20년을 기다렸습니다.(창세기 27:45)
20년 후 야곱이 금의환향할 때에 제일 큰 문제는 자기에 게 지금도 한을 품고 있는 형 에서였습니다. 이 때에 야곱은 자기 형 에서와 화해를 하려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최선을 다 했지만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그 마지막 날 밤 그는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면서 그 환도뼈가 위골되기까지 사력을 다해 기도했을 때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거 기서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고 힘을 얻고 은총을 입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자' 곧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이 두 형제가 만 났을 때에 그들은 얼싸안고 기뻐하고 반가워하며 진정한 화해가 이루었다고 합니다. 용서없이는 화해가 없고 화해하지 않고서는 통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던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태복음 18:18) 고 성서는 말합니다. 우리는 같은 동족끼리 너무나 오랫동안 매고 또 매어 그 매듭이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이 얼키고 설킨 매듭을 어떻게 풀수 있겠습니까 매면 매 이고 풀면 풀릴 것입니다. 이제는 남과 북이 서로 풀어 얼싸안고 하나가 되는 진정한 화해를 이뤄야 할 때입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립니다. 서 로 용서하면 하나님께서도 용서하시고 서로 화해하면 하나님과 화해되고 서 로 하나가 되면 하나님과도 하나가 됩니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로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 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태복음 5:23) 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한국 교회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을 이루는데는 인간이 할 일이 있고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다고 생각 됩니다.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태복음 18:19)고 했 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할 일은 먼저 용서하는 일입니다. 인간이 할 일은 서로 화해하고 합심하는 일입니다. 마음속에서 진심으로 용서하고 진심으로 화해하려는 의지는 없이 말로만, 구호로만 통일을 외치면 무슨 소용이 있겠 습니까 통일을 아무리 부르짖어도 진정한 용서가 없다면, 그리고 정말로 용 서할 자신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의 서광이 비치 고 통일의 희년을 준비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이제 우리가 용서하고 화해할 자신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용서와 화해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현실을 외면한 이상론만은 아닌 것 입니다. 용서와 화해는 오히려 현실적인 것이고 구체적인 것이며 통일의 가장 확실하고, 또한 가능한 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 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이라고 말씀했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할 일입니다. 이 일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실 것입니다. 사람이 할 일 을 해야 됩니다. 남북통일은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 이루어 질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민족 으로서 남과 북이 속히 평화롭게 하나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 일은 말로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먼저 내가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으며 화해를 모색하려는 뜨겁고 열열한 의지와 노력이 있을 때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할 일은 두 사람이 합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먼저 진심으로 용서하려는데서 시작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우리 민족의 마음을 또 남과 북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마지 않습니다. 지혜의 초대장 성경
본문:잠 9:1-6 우리는 종종 초대장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제 시원한 가을이 오면 많 은 곳에서 초대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초대장의 내용은 기쁜 일을 함 께 나누기 위한 초대장일 때도 있고, 슬픈 일을 함께 나누기 위한 초대장일 때도 있습니다. 슬픈 일을 당했을 때의 초대장 보다는 기쁜 일을 당했을 때 의 초대장이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개의 초대장이 함께 왔을 때에 우리는 슬픈 일을 당한 곳에서 온 초대장에 함께 동참하는 것이 우리네의 상식이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어디서나 두 개의 길이 열려 있고 그 두 길 가운데서 한 길 을 선택하도록 두 개의 초대장이 언제나 사람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두 길 가운데 한 길은 생명에 이르게 하는 길이요, 또한 길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길입니다. 만약 이렇게 두 갈래의 길 가운데 하나를 선 택하라고 한다면 아무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초대에 기꺼이 나아갈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어느 한 길을 갈 수 있을 만큼 쉽게 생명에 이르는 길을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어느 길이 과연 생명에 이르게 하는 길이냐를 판가름 할 수 있는 선택 의 기준을 모르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저마다 각각 그 판단의 기준을 가지 고 있어서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길이야말로 참된 생명의 길임을 주장하곤 합니다.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초대장이 우리에게 항 상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길을 선택하지 못하여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을 볼 때에 그 안타까움 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본론'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얻게 하시려고 잔치 자리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1) 오늘 본문에서의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말씀되신 하나님은 바로 이 지혜이십니다. 지혜는 사람처럼 나타나서 모든 이들을 초대 하였습니다. 초대된 사람들을 위하여 앉을 집도 크게 새로 지었습니다. 초대된 사람들이 자리가 없어서 한 사람도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새롭게 준비를 했습니다.
(2) 그것은 일곱 기둥으로 받혀진 크고 훌륭한 집이었습니다. 으리으리한 궁전이었고 완전한 구원의 집이었습니다. 바로 그곳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지혜가 어리석은 자들이 와서 생명을 얻도록 불러들 일 축제의 장소를 마련한 것입니다. 이 집에 들어오면 아무것도 부족한 것 이 없는 곳,
(3) 그래서 이 지혜는 풍성한 음식도 마련 하였습니다. 한 사람도 모자람 이 없이 먹고 즐길 수 있도록 고기와 술을 준비했습니다. 훌륭한 잔치가 준비되도록 "그는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였습니다." 자기가 가지 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살찌고 윤이 나는 것 중에서 그는 자기의 희생제물 을 잡았습니다. 자신이 희생하지 않고는 이렇게 훌륭한 잔치가 준비될 수 없기 때문에 집안 내력을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요, 많은 것으로 풍성하게 먹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서 뽐내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더 더구나 자신의 수고로움을 알아달라고 하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이 잔치는 호사스런 잔치이지만, 성스러운 잔치요, 희생의 잔치였습니다.지혜는 영혼이 바라고 만족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완전하게 상을 갖추었습니다. 즉 그는 의와 은혜, 화평과 희락,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 성령님의 위로, 그리고 영생에 대한 온갖 보증과 증거 등으로 자기 상을 채웠습니다. 누구나 이 잔치 자리에 앉기만 하면 흠뻑 빠져서 그 달콤하고 향기로 운 음식에 배를 불리고, 만족감을 얻으며, 참된 평안의 안식을 얻을 수 있 기에 그 맛을 아는 사람들은 다시는 다른 것을 얻기 위하여 몸부림 치지 않 아도 되는 그러한 자리였습니다.
2. 이렇게 준비된 자리에 하나님은 누구나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초대를 하셨습니다.
(1) 잔치 자리에의 초대-이 은혜로운 초청은 몇몇 특별한 친구를 대상 으로 준비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인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언약 속에서 그 계약 조건에 기꺼이 응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무나 와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와 지혜 없는 자소박한 자나 분별력이 없는 자" 누구도 응답하기만 하면 올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마태복음 22장의 천국 잔치의 초대는 오히려 처음에 청했을 때의 사람들이 오지를 않자 종들을 길에 내어보내 악한 자나 선한 자 만나는대로 모두 데려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오라 하시니 아무나 와도 좋소" 하는 찬송가 가사처럼 정말 아무나 와도 좋은 자리였습니다. 건강한 자에겐 의사가 필요 없습니다. 배부른 자에게는 음식이 필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지식에 만족한 사람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 즉, 지혜앞에 겸손한 자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다른 어느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 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사람이며, 자신이 생각하고 일하는 자리가 가장 급하 고 중요하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에 눈을 뜨지 못하는 가장 어리석으면서도 어리석다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초대의 자리에 참 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떡에 배고픔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자신의 어리석음을 느끼며, 자신의 무지를 깨달으며, 희미하게나마 빛을 더듬어 가기를 원하는 자들만이 이 지혜의 향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의 구원의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초대되어 풍성한 생 명의 떡을 먹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하나님 나라까지 이르는데 힘있게 승리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2) 이 자리는 어떠한 자리일까요 값을 받지 않는 자리입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 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고 이사야 55장 1-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 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마태복음 11장2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 서 마시라."고 요한복음7장 37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값을 받 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받기를 원하고 사모하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은 독 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믿기만 하면, 받아들이기만하면, 영접하기만하면, 잔치자리에 참여하기만하면,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십니다.
3.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그 목적은 무엇일까요 "생명을 얻게" 해 주 시겠다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사람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 로 살아야 합니다. 신명기 8장 3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매일 먹고 사는 가운서 주신 말씀입니다. 육신을 위한 만나도 먹어 야 하지만 영혼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도 먹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생명의 떡" 입니다. 우리가 원하기 전 이미 생명 을 얻는 길을 열어 놓으시고 잔치를 준비하셔서 우리를 초대하실 때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어리석음을 버려야 합니다. "어리석음을 버리고" 불의를 버리고 죄의 행실을 끊고 죄의 무리와의 교제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어리석음은 나 스스 로 버려야합니다. 내가 어리석은 것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벗어 버릴 수 없습니다. 어리석다는 말은 미련하다, 둔하다는 말로 많이 배운 것과는 다릅니다. 어리석음은 지혜를 얻어야만이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지 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 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그리스도와의 긴밀한 교제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혜의 떡을 먹고 생명의 물을 마시고 진리와 성결과 사랑과 지혜의 길로 행해야 합니다. "명철의 길로 행해야"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와의 긴밀한 교제를 통해 서만 갈 수 있는 길입니다.
(3) 하나님 안에 있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잔치 자리에는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나 먹지 않으면 내 것 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 하나님과 함께 있는 그 풍성하신 생명이 우리를 향해 놓여있어도 내 것으로 삼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결론' 생명의 잔치 자리에 초대를 받으신 성도님들은 잘 차려진 음식을 고루 잘 섭취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온전하게 바르게 갈 수 있는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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