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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를 모르는 종 (마18:28-30)

본문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도달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계속해서 거룩하게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순간 순간들을 경험합니다. 항상 하나님께 빚진 자로서 살아가는데 그 빚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갚을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갚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갚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이웃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진 빚을 갚도록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기회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믾은 순간에 이것을 망각하고 기회를 잃어가면서 인생을 헛되이 보내는 것을 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그것을 지적하시며 바르게 살것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I. 긍휼 없는 인간의 본성 (마18:28)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A. 인간 본성의 부패
첫째 아담을 통해서 들어온 죄는 인간의 본성을 완전히 부패새켰습니다. 이것의 결과로 인간은 하나님과 단절되었으며 인간들끼리도 분열되었습니다. 선악과에 현혹된 인간의 마음은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욕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게 사용되어져야 할 돈이 오히려 사람을 죄짓게 하는 도구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누구의 책임입니까 죄의 근원이 욕심이라면 나 자신의 조그만 욕심이 책임자입니다. 욕심이 없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모드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욕심이 형제를 욕하고 옥에 가두는 것입니다.
B. 부패한 인간의 모습 비유에서 채권자는 채무자를 어떻게 대합니까 먼저 ‘붙들었다’고 합니다. 부패한 인간은 이웃의 자유를 박탈합니다. 놓아주지 않고 잡아서 복종시키려 합니다. 다음은 ‘목을 잡고’윽박지릅니다. 목을 잡는 행위는 죽이려는 위협입니다. 부패한 인간 세계에서는 남의 자유를 박탈하기도 하고 자신의 자유를 박탈당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서 생명을 죽이기도 하고 생명을 잃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와 생명을 파괴하는 인간의 행위에서 부패한 우리 자신의 모습이 뚜렷이 보이고 있습니다. 억누르거나 억눌리는 일체의 모습을 하나님은 결코 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C. 용서 없는 인생 욕심으로 채워진 인간의 마음은 하늘을 가리우고 자연을 황폐화시킴으로써 인간 서로간의 인정마저 고갈시키고 있습니다. 죄된 본성의 청산이 시급한 이 때에 욕심의 살을 찌우기 위한 무수한 노력들이 이웃과의 단절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노력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도 모르는 채 영혼을 스스로 죽이고 있습니다. 사랑이 식어진 영혼은 죽은 것입니다. 용서는 사랑이 없으면 나타나지 않으며 부패한 본성에서는 나올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맛보지 않는 자는 용서 없는 인생을 살아갈 뿐입니다.
II. 하나님의 은혜를 잊음 (마18: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마18: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마18:31)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A. 잊을 것과 기억할 것 우리네 사람들은 사소한 일은 기억하면서도 중요한 일은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빌린 돈은 잊지만 빌려준 돈은 잘 기억합니다. 도움 받은 것은 쉽게 잊지만 도와준 것은 잘도 기억합니다. 자신을 높이는 일은 빠짐 없이 기억하는가 하면 낮아지는 일은 애써 잊으려 합니다. 문제는 중요한 것을 망각한다는 사실입니다. 죄된 성품은 완전히 잊혀질 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죄된 성품을 깨닫게 한 것까지 잊어서는 안됩니다. 망각할 것과 기억할 것은 엄연히 있으되 자신이 받은 것, 낮아지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족한 것을 알아야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B. 하나님의 은혜를 잊음 용서하지 않는 종은 잊을 것을 기억하고 기억할 것을 잊은 어리석은 자 입니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만을 기억한 무지한 자 입니다. 임금과 자신의 관계를 자신과 자신의 친구의 관계에서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탕감해 준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값없이 얻은 것을 비싸게 매매하려고 한 종은 누구입니까 우리 자신입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아니하고 수확을 기대하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사는 어리석은 자 입니다.
C. 은혜를 기억하는 자의 즐거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자는 감사의 생활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웃을 용서하게 되고 또 용서함으로 이웃과의 관계도 화목해지는 것입니다. 감사와 용서, 그리고 화평은 그 내용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결과입니다. 은혜를 기억하려면 생각을 해야 합니다. 무엇이 은혜인가를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 이것을 우리 신앙인은 기도라고 말합니다. 요구하고 달라는 기도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에 기꺼이 참여하리라는 기도입니다. 수동적이고 타성에 끌리는 기도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기도입니다. 생각하기 싫어하는 신앙인은 짧은 즐거움으로 만족하지만 생각하는 신앙인은 영원한 즐거움으로 기뻐합니다.
III. 하나님을 배워야 함
A. 포용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은 사람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미처 사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말입니다. 도저히 인간에게는 용서받지 못할 범죄라도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을 말입니다. 죄인은 무엇인가 불안하고 도저히 메꾸지 못할 정도의 공허함이 마음에 있습니다. 세상 법은 그저 몸 하나만을 사회와 격리시켜 죄인을 방치하지만 하나님은 불안함과 공허함까지 메꾸어 주시므로 그토록 중요한 자유를 그냥 조건 없이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범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배워야 합니다.
B. 거룩한 분노의 하나님 성을 내거나 분노하는 일이 결코 신앙인의 모습은 아닙니다. 신앙인은 온유하며 항상 부족한 것을 깨닫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서가 깨어진다면 신앙인은 제사장 적인 자세에서 예언자적인 자세로 바뀌어야 합니다. 용서하지 않는 종을 심판한 임금의 진노는 하나님의 노여움입니다. 하나님의 질서가 깨어진 것에 대한 예언자들의 분노, 이것을 거룩한 분노라고 합니다. 세상의 분노는 질서를 깨뜨리지만 거룩한 분노는 새로운 질서를 세웁니다. 세상의 분노는 복음을 가리우지만 거룩한 분노는 복음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인간의 분노는 하나님을 가립니다. 때문에 우리는 분노하는 것까지도 하나님께 배워야 합니다.
C. 사랑의 하나님 모든 인간에 대한 차별 없는 사랑의 근원이 하나님입니다. 차별 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진노하시는 하나님도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다툼과 분쟁으로 상처 입은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화평을 이루시기 위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너무 많은 물질로 죄를 지을 것 같아 필요한 것만큼 허락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많은 재물로 허덕이는 사람은 그것 대문에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필요 없는 것들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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