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족케 하는 일 (마18:6-10)
본문
실족이라는 말은 발을 헛딛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발을 헛딛게 되면 넘어지게 되는 것처럼 정상적인 상태에서 이탈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사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를 유혹해서 믿음에서 떨어뜨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온 사람이라고 해서 다 믿음에 굳게 서서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잘하다가 나중에 넘어지는 자도 있고 처음부터 위태위태하다가 그만 넘어져 버리는 자도 있습니다. 넘어지게 되는 요인도 다양합니다. 때로는 핍박에 때로는 유혹에 넘어집니다. 오늘도 우리는 넘어뜨리려는 마귀의 궤계가 난무하는 이때에 실족하지 않으며 또 남을 실족케하지 않으며 견고히 신앙생활하는 성도가 다 되기를 바랍니다.
1.실족케 하는 자 마 18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 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
1)실족의 대상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소자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의 우선 순위가 어린 아이에게 있음을 말씀하신 주님은 이러한 어린 아이를 실족케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음을 교훈 하셨습니다. `소자'의 의미는 최소한의 것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을 믿는 최소한의 단위가 `소자'입니다. 어린 아이는 순수한 만큼 유혹에도 쉽게 넘어갑니다. 세상에는 어린 아이와 같이 믿음이 연약한 자가 많이 있습니다. 모든 믿는 자들 가운데 가장 연약한 자가 바로 소자입니다. 마귀는 이들을 노립니다. 이들을 유혹하고 넘어지게 합니다. 주를 믿는 모든 자들이 실족의 대상이 됩니다. 특히 믿음이 연약한 소자는 더욱 마귀의 초점이 되기에 주님은 특별히 소자를 지칭하신 것입니다.
2) 실족의 현실성 현 세대를 사단의 세대라고 합니다. 사단의 세계는 선보다는 악이, 진실보다는 위선이 앞서는 세대입니다. 진리가 왜곡되고 폭력이 난무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비유하셨습니다.(마 11:16-17) 사단의 세대는 이렇습니다. 피리를 불면 함께 즐거워하고 애곡하면 함께 슬퍼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입니다. 그러나 현시대는 반응이 없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실족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시대는 실족할 조건으로 가득차있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음은 실족케 함이 있어야 믿음의 진가가 돋보인다는 사실입니다. 편당이 있어야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듯이 실족함이 있어야 신앙의 가치를 더욱 인정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실족함을 인하여 좌절하거나 실망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시대적 현실성이 사단의 세대로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사랑하시는 예수께서 실족케하는 자를 감당하십니다. 소자를 귀히 여기시는 예수께서 비록 믿음이 연약한 자 일지라도 실족함을 원치 아니하시기에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성도는 더욱 겸손해지고 믿음에 굳게 서 어린 아이같이 자기를 낮추어야 할 것입니다.
2.화가 있음 마 18 7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1)실족케하는 일들 성도에게 있어서 실족케 되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 귀로 듣는 것, 입의 말과 몸의 행실, 이러한 모든 것이 실족의 요인입니다. 특히 믿음이 적은 소자에게 있어서 실족의 요인은 더욱 산재해 있습니다.
1 인간의 야망 세상적인 모든 야망은 사람의 본능입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 원했던 제자들의 야망은 인간의 본능에 의한 발로입니다. 누구라도 세상에서 큰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남보다 나은 위치와 자리에서 남에게 존경을 받고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세상적인 인간의 야망은 욕심을 부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 법칙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성도가 동일한 법칙에 의하여 실족함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2이기주의적 생각 이기주의적 생각은 타인을 배제합니다. 오히려 타인을 미워하고 증오합니다. 오직 자신만의 아성을 구축하여 그 곳에 안주하려 합니다. 이웃과 행동하지 않으며 자신만을 사랑합니다. 그러다가 끝내는 파멸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 불행을 자초합니다. 성도가 이기주의적 생각을 갖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실족케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3 불신앙적인 생활 성도의 생활은 성결한 삶 그 자체여야 합니다. 거룩한 삶은 타의 모범이며 거울입니다. 그러한 성도가 불신앙적인 생활을 보인다면 그것보다 더 큰 실족의 요인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삶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표준이 되어야 합니다.
2) 화 실족케하는 자는 차라리 연자맷돌을 달리우고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는 주님의 말씀은 실족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짐작케 해줍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구원받지 못한 죄입니다. 이 세상은 악하여 할 수만 있으면 실족케하여 구원에 이르지 못하도록 마귀는 유혹합니다. 마귀는 어찌하든지간에 성도를 멸망으로 향하게 함을 즐겨합니다. 이것이 세상이요 현실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세상을 향하여 화가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이화는 인간의 개인적 화가 아니라 종말에 있을 심판을 의미합니다.
3.소자의 귀중함 마 18 8 '1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 18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 으니라
1).찍어 내버리라. 막9:48에는 지옥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는 곳입니다. 이곳이 실족케 하는 자들이 가야 할 장소입니다. 주님의 실족에 대한 경고는 우리의 삶을 결단하게 합니다. 손이나 발이 범죄 하거든 찍어 버리고 눈이 범죄케하거든 빼어버려라는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요청입니다. 인간은 설사 손과 발이 실족케 했다 할지라도 차마 손가락하나 잘라 버릴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단호한 결단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주님의 이러한 명령은 원초적인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죄악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단절하여야만 합니다. 자의에 의한 실족이든 타의에 의한 실족이든 실족으로 이어지는 모든 요인을 찍어 내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신앙의 결단입니다. 비록 손목이 잘리고 발목이 잘리는 아픔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고통을 인내하며 영생의 참 소망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끊어야 할 것을 끊지 못하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면 마침내 그것이 올무가 되어 종국에는 죄악의 노예가 되고 말기에 완전한 신앙은 결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2)업신여기지 말라 실족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소자를 업신여겨서는 안된다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비록 소자일지라도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자를 통하여 영광 받으시며 소자에게 이 땅을 위임하셨습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애타게 찾으시며 돌아온 아들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더욱 그 의미가 새롭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업신여김을 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위하여 아끼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소자중 하나일지라도 그에게는 항상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며 성령님으로 함께하시기에 인격은 존중되어져야 하며 업신여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1.실족케 하는 자 마 18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 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
1)실족의 대상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소자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의 우선 순위가 어린 아이에게 있음을 말씀하신 주님은 이러한 어린 아이를 실족케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음을 교훈 하셨습니다. `소자'의 의미는 최소한의 것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을 믿는 최소한의 단위가 `소자'입니다. 어린 아이는 순수한 만큼 유혹에도 쉽게 넘어갑니다. 세상에는 어린 아이와 같이 믿음이 연약한 자가 많이 있습니다. 모든 믿는 자들 가운데 가장 연약한 자가 바로 소자입니다. 마귀는 이들을 노립니다. 이들을 유혹하고 넘어지게 합니다. 주를 믿는 모든 자들이 실족의 대상이 됩니다. 특히 믿음이 연약한 소자는 더욱 마귀의 초점이 되기에 주님은 특별히 소자를 지칭하신 것입니다.
2) 실족의 현실성 현 세대를 사단의 세대라고 합니다. 사단의 세계는 선보다는 악이, 진실보다는 위선이 앞서는 세대입니다. 진리가 왜곡되고 폭력이 난무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비유하셨습니다.(마 11:16-17) 사단의 세대는 이렇습니다. 피리를 불면 함께 즐거워하고 애곡하면 함께 슬퍼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입니다. 그러나 현시대는 반응이 없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실족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시대는 실족할 조건으로 가득차있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음은 실족케 함이 있어야 믿음의 진가가 돋보인다는 사실입니다. 편당이 있어야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듯이 실족함이 있어야 신앙의 가치를 더욱 인정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실족함을 인하여 좌절하거나 실망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시대적 현실성이 사단의 세대로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사랑하시는 예수께서 실족케하는 자를 감당하십니다. 소자를 귀히 여기시는 예수께서 비록 믿음이 연약한 자 일지라도 실족함을 원치 아니하시기에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성도는 더욱 겸손해지고 믿음에 굳게 서 어린 아이같이 자기를 낮추어야 할 것입니다.
2.화가 있음 마 18 7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1)실족케하는 일들 성도에게 있어서 실족케 되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 귀로 듣는 것, 입의 말과 몸의 행실, 이러한 모든 것이 실족의 요인입니다. 특히 믿음이 적은 소자에게 있어서 실족의 요인은 더욱 산재해 있습니다.
1 인간의 야망 세상적인 모든 야망은 사람의 본능입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 원했던 제자들의 야망은 인간의 본능에 의한 발로입니다. 누구라도 세상에서 큰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남보다 나은 위치와 자리에서 남에게 존경을 받고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세상적인 인간의 야망은 욕심을 부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 법칙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성도가 동일한 법칙에 의하여 실족함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2이기주의적 생각 이기주의적 생각은 타인을 배제합니다. 오히려 타인을 미워하고 증오합니다. 오직 자신만의 아성을 구축하여 그 곳에 안주하려 합니다. 이웃과 행동하지 않으며 자신만을 사랑합니다. 그러다가 끝내는 파멸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 불행을 자초합니다. 성도가 이기주의적 생각을 갖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실족케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3 불신앙적인 생활 성도의 생활은 성결한 삶 그 자체여야 합니다. 거룩한 삶은 타의 모범이며 거울입니다. 그러한 성도가 불신앙적인 생활을 보인다면 그것보다 더 큰 실족의 요인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삶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표준이 되어야 합니다.
2) 화 실족케하는 자는 차라리 연자맷돌을 달리우고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는 주님의 말씀은 실족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짐작케 해줍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구원받지 못한 죄입니다. 이 세상은 악하여 할 수만 있으면 실족케하여 구원에 이르지 못하도록 마귀는 유혹합니다. 마귀는 어찌하든지간에 성도를 멸망으로 향하게 함을 즐겨합니다. 이것이 세상이요 현실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세상을 향하여 화가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이화는 인간의 개인적 화가 아니라 종말에 있을 심판을 의미합니다.
3.소자의 귀중함 마 18 8 '1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 18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 으니라
1).찍어 내버리라. 막9:48에는 지옥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는 곳입니다. 이곳이 실족케 하는 자들이 가야 할 장소입니다. 주님의 실족에 대한 경고는 우리의 삶을 결단하게 합니다. 손이나 발이 범죄 하거든 찍어 버리고 눈이 범죄케하거든 빼어버려라는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요청입니다. 인간은 설사 손과 발이 실족케 했다 할지라도 차마 손가락하나 잘라 버릴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단호한 결단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주님의 이러한 명령은 원초적인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죄악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단절하여야만 합니다. 자의에 의한 실족이든 타의에 의한 실족이든 실족으로 이어지는 모든 요인을 찍어 내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신앙의 결단입니다. 비록 손목이 잘리고 발목이 잘리는 아픔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고통을 인내하며 영생의 참 소망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끊어야 할 것을 끊지 못하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면 마침내 그것이 올무가 되어 종국에는 죄악의 노예가 되고 말기에 완전한 신앙은 결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2)업신여기지 말라 실족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소자를 업신여겨서는 안된다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비록 소자일지라도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자를 통하여 영광 받으시며 소자에게 이 땅을 위임하셨습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애타게 찾으시며 돌아온 아들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더욱 그 의미가 새롭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업신여김을 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위하여 아끼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소자중 하나일지라도 그에게는 항상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며 성령님으로 함께하시기에 인격은 존중되어져야 하며 업신여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