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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나만의 시간 (마17:1)

본문

말씀의 접근 하나님께서 항상 다수보다는 소수를 통해서 일하셨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수세기를 통해서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하면서 그분의 계획과 목적이 담긴 비전을 받은 개인들과 소수의 무리들이 있어왔습니다. 이런 독특한 체험 때문에 그들은 타인에게 의미하는 섬김을 베풀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들 중에서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으로 구성된 하나의 영적인 서클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은 따로 부름을 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기도하러 가기도 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체험의 시간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사람을 높은 산에 데리고 올라가 기도하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한적한 장소로 따로 데리고 가셨다는 사실을 마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8번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기도, 가르침, 친교,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함이었습니다. 만일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와, 기도를, 위해 한적한 장소를 찾아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는 주님과의 분명한 만남이 있을 것이며, 우리의 삶은 매우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때에'. 세 번이나 반복된(5절) 이 감탄사(보라)는 그 사건이 갑작스러운 것이며 돌발적인 것을 나타냅니다. 그 당시 출현했던 사람들은 허상이나 가상적인 인물이 아니라 실제적인 인물로 목격 자들의 상태와 꼭 같은 몸으로서 객관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 누가는 항상 하늘의 방문객에게 따르는 빛의 광체로 “영광 중에 나타나서” 라고 부언합니다. 왜 이 두 성인이 이 중대한 때에 출현하도록 선택받았는가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동기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이 두 명사는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날 때에 모두 미증유의(이제까지 한번도 본적이 없이) 어떤 사실을 체험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하였고, 모세는 죽었으나 실로 하나님에 의하여 알려지지 않은 무덤에 장사되었으며, 그의 육신은 천사장 미가엘의 특별한 보호 아래 있었습니다(유9절). 따라서 우리는 그 육체가 썩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로부터 불러와서 메시야에게 경의를 표현했습니다.
1).모세는 낙원에서 최후의 완성을 기다리는 축복받은 영들의 모형이고,
2).엘리야는 부활 후 영육이 완성되어 영광에 들어갈 성도들의 모형입니다. 여기 율법과 선지자들의 대표가 있는데, 그들은 옛 언약의 주요한 지주들로서 옛 언약을 성취시키고 대치시키기로 되어있는 새언약의 소개자인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거짓되고 타락한 유대교에 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거부했으나, 진실한 정통주의 유대교에서는 그를 “모세와 선지자들이 기록한 바”(요1:45) 미리 예언했던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경외를 표하였습니다. 지금도 역시 예수님은 엘리야도 아니고 어떤 이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이 선지자 중의 하나가 아니라 그 모든 사람들과 다르며, 그들보다 뛰어나신 분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습니다. 즉 예수님은 생사를 주관하시는 권세를 가지셨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그가 원하시는 사람을 불러내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와 고난은 수치나 연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영광과 승리였습니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 됩니다. 베드로와 그 남은 자들(요한과 야고보)이 어떻게 이 두 하늘의 방문자들(모세와 엘리야)을 알아보았을까
1).거기에는 그들의 옷이나 용모에 있어서 그들을 곧 알아볼 수 있었던 관례적인 무엇이 있었을지도 모름니다.
2).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영적인 직관이나 특별 계시에 의해서 그들을 알아 보았을지도 모름니다.
3).혹은 그들이 엿들었던 대화에서 그들의 지식을 종합하였을지도 모름니다. 어쨌던간에 이 두 사람이 알려져야 할 필요가 있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의 출현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고, 세 제자들의 믿음을 확고히 하려는 의도는 실패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성도들이 육신으로 만나 본 적이 없었지만 과거에 알았던 거처럼 천국에서 서로 알게 될 것이라는 어떤 암시가 있지 않은가 “예수와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누가는 그의 신비로운 대화의 주제를 우리에게 말합니다. 즉 그들은 “창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들은 창세 전에 그가 가지고 계셨던 영광이나 그가 세우려고 하신 왕국에 관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두려운 문제가 되었던 고난과 죽음을 위해 오셨다는 것에 관하여 대화를 하였던 것입니다. 주님의 신성성이 계시되는 바로 이 순간에 진행된 대화는 주님의 수치와 십자가에 관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선생에게 닥쳐올 미래를 좀처럼 이해 하지 못하였습니다. 여기에 위대한 언약의 성도들이, 예언되었고 미리 전조를 보였던 것을 이루실 주님의 성취와 그의 신성한 인성의 수난으로 인해 어떻게 영원한 영광을 얻으실 것인가에 대하여 입증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염려나 위측감이 없이 담대하게 미래를 기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덤이나 죽음의 문을 통과하여 즐거운 부활과 천상의 행복으로 가는 길이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1.그리스도의 변형(마17:2) 마17:02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 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영광의 계시를 말로 묘사하시는 부적절한 것입니다.
1).이것은 위에서 비친 빛이 아니었습니다.
2).이것은 반사된 빛이 아니었습니다.
3).그리스도의 변형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빛을 내 비취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요한이 그의 복음서에서 말한 경험과 같은 것입니다. (요1: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 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2.하늘의 방문자 모세와 엘리야가 산 위에 나타났습니다. 이 두 구약의 인물들이 예수님께 다가왔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1).모세는 입법자입니다. 율법은 “죄를 범한 영혼은 반드시 죽으리라” 고 하였고, “죄의 값은 사망이다” 라고 말합니다. 예언적 계시자인 엘리야는 당신의 백성들 에게 하나님의 율법에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고 있으며 불의한 백성이라는 것을 드러낸 입법자입니다. 엘리야는 백성들의 죄 용서와 깨끗하게 함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것을 예언한 유명한 예언자들을 대표합니다.
3.이 두 사람의 방문자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출애굽)에 대해서 말하였습니다. (눅9:30-31)“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새” 영어판에서 ‘사망하다’ 라고 번역된 단어는 문자적으로 ‘탈출’ 을 의미합니다. (헬,엑소돈) 인데 이는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하늘로 떠나시는 것의 의미합니다.
1).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속박에서부터 이끌어 내었습니다.
2).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 게신 하나님께 되돌아올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3).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죄의 속박에서부터 해방시키시고 거룩한 생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결론” 산꼭대기는 주님의 제자들이 영원히 있어야 할 장소는 아닙니다. 베드로가 세 개의 초막을 짓고 변화산에 머물고자 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고통과, 곤고 가 있어, 사랑의 섬김이 필요한 골짜기로, 그의 제자들을 데리고 오셨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한 체험을 주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뿐만 아니라, 봉사를 행할 적절한 때와, 장소,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섬김의 기회를 살피고, 그것을 포착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도와 주실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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