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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변형 (마17:1-13)

본문

우리는 예수님의 성육신,변화산에서의 변형,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건,예수님의 승천,그리고 다섯번째 예수님의 재림을 예수님의 생애의 5대 사건이라고 합니다.그러니까 이 사건에 우리가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 예수님의 변화산에서의 변형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5대 사건 중에 하나인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은 공관복음에 전부 다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1.본문의 배경 변화산이란 예수님이 그 산에서 변형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본문 1절에는 ‘높은 산’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 높은 산이라 하면 헤르몬산입니다.이 헤르몬산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는 약 38km쯤 떨어진 산인데 그 헤르몬산은 높아서 여름에도 눈이 있습니다.그 눈이 녹아서 요단강으로 흐릅니다. 2절에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고 했습니다. 변형됐다는 말은 ‘메타모르페’라고 하는 말인데 영어성경에는 ‘trans formed’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내적인 내면세계의 변화를 말하고 있습니다.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 예수님께서 부활후에 영광스럽게 될 모습으로 변형이 된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이러한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을까요 거기에는 세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낙심하고 있는 제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기 위해서입니다.이제 얼마 후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십자가에 못박힌다고 하는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듣고 ‘이제 큰일났구나.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면 우리는 어디로 갈까 직장은 또 어떻게 구해야 되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우리가 함께 있을 것인가 흩어져야 할 것인가’하며 제자들은 마치 고아들처럼 마음이 뒤숭숭합니다.그런 제자들을 예수님이 위로해주고 격려해주신 것입니다.두 번째는 제자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입니다.저나 여러분들이나 확신이 없고 마음에 의심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사탄마귀가 마치 새처럼 머리위로 자꾸 왔다갔다하면서 우리 마음속에 의심을 심어줍니다.의심이 생기면 목사도 별 수 없고 장로님도 권사님도 별 수 없습니다.예수님의 제자들도 별 수 없었습니다.이렇게 의심이 생긴 제자들에게 ‘십자가에서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그것이 결론이 아니다.반드시 부활과 영생이 있다.’바로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몸,영체로 우리가 부활하게 된다는 확신을 제자들에게 심어주신 것입니다.세번째로 그리스도의 우월성과 오직 그에게만 영광을 돌릴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입니다.영광의 대상은 바로 예수님입니다.오직 예수님에게만 영광돌리며,오직 예수님만 소망하며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시기 위한 이런 목적으로 변화산에서의 체험을 저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변화산에서의 체험은 저나 여러분들에게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변화산에서의 체험이 없는 사람들을 보면 삐그덕삐그덕 소리가 납니다.
왜냐하면 기름이 없어서 그렇습니다.기름이 없는 기계나 마차바퀴가 돌아가려면 삐그덕거립니다.교인들도 기름칠한 교인이 있고 기름칠 안한 교인이 있습니다.기름칠한 교인은 성령님받은 교인이요 변화산에서의 체험을 한 교인입니다.이들은 소리가 안납니다.그저 묵묵히 헌신하고,기도하고,봉사합니다.성경이 가라고 하면 가고 서라면 서는 사람입니다.그런 사람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너무 요란해서 금방 표가 납니다.이것이 문제입니다.바라기는 우리는 모두 제자들처럼 이 변화산에서의 체험이 생겨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나타나심 예수님께서 변화산 위에서 나타나실 때에는 혼자 나타나신 것이 아닙니다.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 이렇게 삼대거두 회담이 거기서 있었습니다.모세는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님보다 약 1500년전에 이 땅에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고 홍해바다를 건너 40년간 광야생활을 통해 마침내는 가나인 땅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모든 일을 한 사람입니다.두 번째로 엘리야는 호렙산에서 나타난 유명한 선지자입니다.예수님보다 약 900년전에 살았던 사람입니다.그들이 왜 나타났습니까 그들이 죽은것이 아니다라는 말입니다.모세가 1500년 전에 살았고 엘리야는 예수님보다 900년전에 살았지만 부활해서 살아있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보여줌으로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공포증을 해소하고 그들의 마음에 부활과 영생의 확신을 넣어주는 것에 목적이 있었습니다.제자들로 하여금 위로를 받게하고 마음에 확신을 갖게 하고 부활에 관한 소망을 갖게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한 누가복음의 기록을 보면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신 것을 말씀할쌔”(눅 9:31)라고 했습니다.우리말 번역에는 ‘별세’라고 되어 있는데 헬라어 성경에는 이 말이 ‘엑소도스’(Exodus)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출애굽기,출애굽이라는 말입니다.장차 우리 예수님께서 출애굽할 것을 예언했다.무슨 말입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엑소도스(Exodus)라고 표현했는데 엑소도스라는 말은 구약의 가장 대표적인 사건입니다.이 말은 구약의 출애굽과 대조가 되는 사건이 신약에 있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임을 말해줍니다.다시 말하면 출애굽 사건이 바로 십자가의 모형입니다.이스라엘 백성,선민,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한 사건이 바로 출애굽사건입니다.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 성도들을 구원하는 사건입니다.따라서 예수님의 별세,예수님의 죽으심을 엑소도스라고 표현한 것은 신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용어입니다.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은 단순한 죽으심이 아니라 선민 이스라엘,영적인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출애굽 사건의 완성이라 그말입니다.
3.베드로의 잘못 본문 17장 4절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시몬 베드로가 도무지 정신이 없습니다.이것은 베드로의 큰 잘못입니다.산 위에다가 주님과 엘리야와 모세를 위해서 집을 짓겠다고 했습니다.너무 황홀하고 좋으니까 집을 짓겠다는 것입니다.‘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했는데 이것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범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잘못과 너무너무 똑같습니다.지금 한국교회가 범하고 있는 죄가 바로 시몬 베드로가 범했던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를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우리가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개혁을 하고 어떻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냐,어떻게 우리가 섬기는 생활을 해야할 것이냐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산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이 땅의 행복만 탐을 내는 것입니다.산 밑에 가서 봉사하는 것은 힘드니까 싫고 그냥 여기 있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그래서 어떤 분들은 매일 기도원으로,부흥회로 밤낮 좇아다니는 분들이 있습니다.그러나 그런 마음속에는 이기주의가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우리만 생각하면 안됩니다.지금도 저 산 밑에는 귀신들린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것,주님을 알지 못하고 영원한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교회는 눈을 떠서 보아야 합니다.시몬 베드로의 또 하나의 다른 잘못이 무엇입니까 이사야서 53장에 말씀하신 고난의 종,고난의 주님을 간과하고 보지 못했습니다.이것도 역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해당되는 잘못입니다.오늘 우리들은 영광은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우리는 축복은 받기를 원하지만 십자가는 피하려고 합니다.그러나 십자가없는 면류관은 없습니다.십자가를 통과해야 그 다음에 면류관이 있는 것입니다.‘NO CROSS,NO CROWN’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변화되어야 합니다.가장 작게는 내 개인의 모습이,신앙의 모습이,인격의 모습이 변화되어야 합니다.이제는 빼그덕 소리가 들리지 말아야 합니다.또한 우리 가정의 모습이 변화되어야 합니다.그리고 우리 충현교회의 모습도 변화되어야 합니다.우리 찬양대원들 모습이 변화되어야 합니다.남녀전도회도 변화되어야 합니다.우리 당회와 교역자들도 변화되어야 합니다.이것을 위해 우리가 함께 기도합시다.금년이 6.25가 일어난지 43주년이 됩니다.우리가 변화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제2의 6.25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민족을 개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도적인 개혁이나 법적인 개혁,외부적인 개혁은 정부가 할 수 있지만 회개운동은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교회가 해야합니다.그러나 지금 교회가 안하고 있습니다.관심이 없습니다.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밤깊도록 동산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하나 슬픈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는 찬송가 가사처럼 우리는 세상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이번 가을에도 우리가 ‘예수사랑 큰잔치’를 통해서 안 믿는 남편,안 믿는 이웃,교회 안나오는 자녀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열심히 기도로 준비하고 최선을 다하여서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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