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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하여야 할 악령 (마17:14-20)

본문

간질병에 걸려 몹시 고생하는 한 어린아이의 아버지가 예수의 제자들에 게 자기 아들을 데려와서 고쳐주기를 간청하였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이 아 이를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께서는 아이를 데려오게 하고 그 아이속에 들어가 그를 괴롭히는 귀신을 꾸짖자 귀신이 나가고 아이는 깨끗히 나았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난 다음에 제자들은 조용히 예수님께 와서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까'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이 질문은 굴욕적인 자기들의 실패 이유를 묻는 속직한 질문이었습니다. 그 때 에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믿음이 적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믿음 이 적기 때문에 영적인 일에서 실패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이 적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귀신을 쫓아 낸다는 것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무 슨 의미인가를 생각하여 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아이가 간질병이라고 하면서 귀신이 그 아이속에 들 어가서 괴롭히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의학에서는 간질병을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서시대에는 모든 병은 귀신이 일으키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사람에게 악한 영이 들어가서 작용함으로 각종 질병을 유 발시키고 사람을 심히 괴롭히는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병을 치 료하는 것도 병의 원인이 되고 있는 귀신이나 악령을 내여 쫓아 버리면 낫 게 된다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아이를 고쳐 주실 때에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 신이 나아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중세기까 지만 해도 성직자들의 고유한 업무중에 하나는 엑소시즘(Exorcism)이라고 해서 주문같은 것을 외무면서 악령을 추방하고자하는 종교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귀신이 나가지는 않았으며 오늘날에는 물론 그런 일 은 하지 않습니다. 질병의 치료는 의사가 담당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은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궁금한 것은 왜 그 때에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택하신 제자들이며, 보냄을 받은 사도 들이었으며, 또한 그러한 일을 행할 능력을 부여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열두 사도들을 보내실 때에,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 든 약한 것을 고치시는 권능을 주셨다(마 10:1)고 했으며 또 병든 자를 고치 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마 10:8)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전도여행에서 돌아와 자기들이 한 일을 보고 할 때에 대단히 흥분한 어조로 '주님의 이름 앞에서 귀신들도 모조리 항복 하더이다'(눅 10:17)라고 했으며 이 때에 주님께서도 '사탄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눅 10:19-)고 하셨습니다. 이 제자들로 말하면 그러한 능력과 권능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그런 실적을 나타냈던 사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아이에게는 할 수가 없었습니까 그 이유는 '믿음이 부족 한 연고'라고 하였습니다. 성서 원어는 여기 믿음이 부족하다는 말을 '아피 스토스'라는 말로 썼는데 불신앙 불성실이란 뜻입니다. 그러면 과연 이 제자 들에게 믿음이 없었을까요 믿음이 겨자씨 만큼도 없었습니까 믿음이 적다는 말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기도가 부족했던 것일까 노력이 부족했다는 말인가 의무를 아니했다는 것인가 회개가 없었다는 것인가 믿기는 믿으 나 아직 어떤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는 뜻인가 적어도 여기에서 믿음이 부 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제자들은 일반적인 믿음의 도리는 다 잘 지켰습니다. 정상적인 믿음의 생활, 즉 우리 같으면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며 새벽기도를 잘하고 성경읽는 것, 속회에 참여하는 것, 헌금을 바치고 구제하고 봉사하고 기회있는대로 전도하고 이런 모든 일은 다 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반적인 믿음 의 생활을 잘못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믿음이 부족하거나 불성실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믿음에는 이러한 일반적인 믿음이 있고, 사탄을 향하여 일전을 겨루는 전투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사탄은 굉장한 힘을 가진 대적자 이기 때문에 비상한 힘과 노력이 없이는 압도되지 않는 적인 것입니다. 이러 한 비상사태에서는 비상한 믿음의 힘이 발동되어야 합니다. 전력을 다해 싸 우지 아니하면 이기기 어려운 대적이 바로 그것입니다. 본문의 말씀 21절은 누락되어 있지만 다른 성경사본에는 '기도와 금식이 아니고서는 이런 류가 나가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금식이란 밥을 몇 끼 굶는 그런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비상한 믿음의 힘을 동원하는 싸움의 준비를 말합니다. 이사야 선지는 말하기를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한 결 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하며 모든 명 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라고 했습니다. 보통때에는 성도로서의 일상적인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여러분이 정상적인 믿음의 생활을 꾸준히 잘하고 있다면 누가 믿음이 없다고 말하겠습니까 정상적인 때에는 정상적 인 믿음으로 족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활은 언제나 편안하고 언제나 정상적이지만은 않습니다. 비상한 때가 옵니다. 내 힘으로 이기기 곤란한 벅찬 상대와 씨름을 해야 할 경우가 생깁니다. 그런 때에 비상한 힘을 낼 수 있는 비상한 믿음이 없으면 불가불 패배를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자가 나타났을 때에 그것을 강아지 처럼 다룰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 적하라'(벧전 5:8)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권면한 것은 교회가 무서운 박해를 당하던 비상시국에 주신 사도 베드로의 말씀입니다. 여기 사랑하는 자기의 아들이 간질로 심히 고생하며 자주 불에도 넘어지 고 물에도 넘어져 언제 어떤 일을 당할런지 알 수 없는 때에 그 아이의 아 버지는 긴박하고도 비상한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믿음과 능력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믿음이라고 할 때에 그 믿음 자체가 어떤 힘을 발휘하거나 변화를 일으 킨다고 생각해서는 않됩니다. 그 믿음을 보시고 주님이 구원하여 주심을 믿 어야 됩니다. 우리의 믿음때문이 아니라 그 믿음을 보시고 역사하여 주시는 주님때문 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쳤을 때에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 였느니라.'(행 3:16-)고 하였습니다. 여기 제자들이 실패한 원인은 기도가 부 족했거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능히 고치지 못한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믿음이 부족 한 데 있었습니다. 믿음은 있었으나 그 믿음이 자기들의 노력이나 수단에 의 지하는 믿음이아었으니 불성실한 믿음이요, '오직 주님을 믿는 믿음'이 겨자 씨만큼도 없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주님은 이것을 책망한 것입니다. 나의 믿음이라는 그 공로나 그 자격 때문이 아니고 주님은 오직 자기만을 믿는 자 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귀신을 내쫓고 악마를 추방하는 엑소씨즘(Exorcism)같은 것은 하 지않지만 현대에도 추방하여야 할 악한 영들의 세력은 곳곳마다 있습니다. 그 일은 지금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인류사회는 어떻게 하면 악을 제거할 수 있을까 하는 것 때문에 생각하고 고민하고 싸워왔습니다. 정치 경제사회 문화 제분야에서 추방되어야 할 악의 세력들이 굳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참 으로 많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사람을 불에 넘어지게 하고 물에 빠지게 하며 인간 을 괴롭히는 악한 영들을 다 쫓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현대 우리 크리스쳔들 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민주화'라고 하는데 그것은 무엇입니까 독재에 대 한 국민의 항거입니다.
그렇다면 독재라는 것은 인간을 심히 괴롭히던 하나 의 정치적인 악령의 세력이었던 것입니다. 이 악한 영의 세력은 마땅히 추방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경제성장'을 말하는 것도 과거의 극심한 가난의 굴 레에서 벗어나서 이제사람답게 살아보자는 노력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빈곤 기아 가난같은 것은 인간을 넘어트리는 경제적 악령입니다. 가난하여 서 불에 넘어지고 물에 빠지게 하였던 빈곤이라는 악마의 사슬에서 해방되 기 위해서 그 악령을 추방해 버리자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교육'의 중요 선을 강조하는 것도 우리사회의 무지와 어두움의 악령을 추방하자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지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두움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분명 악의 세력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도덕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바른 것을 지키고 건전한 것을 지키고자하는 노력은 모든 부패와 타락과 불건전한 문화를 악마적이라고 규 정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화적으로도 그 귀신을 추방해야 됩니다. 기독교인들의 사명은 악의 세력을 추방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 님의 마지막 분부는 이것이었습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 를 받으리라. 믿는 자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 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마 16:15) 우리 사회 각계 각층에 귀신을 쫓아내는 일, 그것이 믿는 자들이 해야 될 일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는 이 일을 해보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슨 운동 무슨 캠페인같은 것을 수없이 하지만 이 세상의 악한 일들이 그렇게 쉽게 추방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정부나 지도자가 우리사회에 만연한 부 정과 불건전한 요소를 뿌리뽑겠다고 단호한 결단을 말하기도 하지만 뿌리가 뽑혀지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이 번져 나가고 있습니다. 결국 개인과 사회에 피눈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하고 고백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귀신과 악령은 그렇게 쉽게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결국 자신의 힘으로는 세상에서 악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기의 역량과 한계속에서 구원을 찾으려고 하면 환멸밖에 만날 것이 없습니다. 그 모든 헌신과 노력들이 자칫하면 자기 기만이 되기도 쉽습니다. 우리는 쫓아내지 못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부족한 연고입니다. 그러면 부족함이 없는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세상의 악을 제거하 려는 인간의 노력은 헛된 것이니다만 여호와 하나님께 복종하고 기다리면 하나님 의 때에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실 것이다 아마 그렇게 말할 수가 있 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 본성이 철저히 부패하고 타락하였으니 인간으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쫓아 낼수 없으니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지 않느냐 결국 그런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그러면 그것이 온전한 믿음일까요 여러분! 신앙은 우리의 현실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기도할 때 에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하도록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은 현실에 모 든 악으로부터 구원받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지금 당장 구원이 요구되고 있는 간질병 걸린 그 아들, 언제 불에 타죽을지 언제 물에 빠져 죽을지 모르는 그 다급한 상황에서 그저 참고 기다려 보라고만 말할 수는 없지않습니 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경건한 마음으로 의지하고 믿고 기다리되 또한 우리가 할 일은 비상한 각오를 가지고 해나가야 됩니다. 우리 인간이 스스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듯이, 또한 하나님께서도 인간에게 무슨 일이든지 다 해주시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역시 믿음의 부족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해 주시기만 기다리고 우리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신앙이 아니 라 미신입니다. 믿음의 부족이란 말은 우리가 그러한 면으로도 생각해야 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인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 스스로의 힘 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할 일이기 때문 이었습니다. 모세가 기도할 때에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백성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라. 그리고 지팡이를 들어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출 14:15)고 하시었습니다. 세상의 악을 제거하고 악에서 세상을 구원하려고 할 때에 이 일은 인간 만의 힘으로도 안되고 또 하나님 혼자서도 아니하실 것입니다. 하나님편에서는 하나님의 선물인 사랑을 통하여, 또한 인간편에서는 완전한 순종과 행동 을 통하여 이루어나아갈 때에 죄와 악의 치명적인 질병을 고치고 몰아 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귀신에게 사로잡혀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아슬아슬 한 위험한 불속을 달리고 있는 것 같은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병든 세상과 사회를 어떻게 구할 수 있으며 어떻게 악한 영의 세력들을 추방할 수가 있습니까 주님을 믿는 온전한 믿음과 사탄과 일전을 겨루는 비상한 믿음이 있지 아니하면 악을 추방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분명 영적인 비상시국입니다! 이때에 우리는 모두 악의 세력을 쫓아 낼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있는 백성들이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최후의 심판 성경


본문:막 14:12-25 오늘은 종려주일이라고 하는 고난주일입니다. 인류를 위해 고난받으 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신 우리 주님 예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 저는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 자리로 여러분을 안내해 드리려고 합니다. 최후 만찬은 유월절날 이루어졌습니다.
유월절은 유대인의 3대절기중 최초의 축제 절기입니다. 이날 유대인들은 무교절기(무교병을 먹는 날-출 23:15,눅22:1)라고도 하는데 1년에 한차례 성지를 순례하면서 지키는 봄의 축제날입니다. 유월절은 패스카라고 하는데 넘어간다 지나 쳐간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처음에는 첫번째 새끼를 잡아 드리는 목축제였는데 여기에 누룩을 넣지않은 떡(무교병)을 먹음으로 농경제 가 결합된 축제가 되었습니다. 그후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는 민족구원의 과정에서 장자의 죽음을 면 케하는 문설주의 양의 피를 바름으로서 죽음의 사자가 넘어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집마다 양의 피가 있었고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장자 의 죽음이라는 비극이 피해간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을 기념하여 드 리는 축제일이 된 것입니다. 이날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노래하고 민족탄생을 축하하는 기념 일이 되어 예수님 당시까지 지켜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과 함께 이 유월절을 지키신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은 베다니에 머물 러 계셨는데 유월절을 예루살렘 성내에서만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흩어져 있던 백성들이 성지를 향해 모여옵니다. 그리고 아무집 에나 빈방이 있으면 그날만은 치널히 비워주어서 유월절을 지키게 해 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중에 베드로와 요한을 보 내어 유월절을 준비하게 하셨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눅 22:8) 이 유월 절은 예수께서 이땅에서 드린 마지막 유월절이었고 제자들과는 최후의 만찬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유월절은 주님의 성만찬의 원형이 되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마지막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신 것입니다. 바울은 고전 5:7에 우리의 유월절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 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없는 떡으로 하자고 하셨 습니다. 예수님과 마지막 유월절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오늘 말씀중에 25절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 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의 나라에 새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의 의미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세상의 유월절은 끝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주는 희 망적인 것임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애굽에서 고난당한 이스라엘을 해방시켰던 유워절은 끝나고 친히 유 월절의 어린양의 피를 흘림으로서 모든 사람의 죄악을 씻으시고 구원 을 이룩하신 새로운 구속의 축제일이 되고 친히 유월절의 어린양의 피 를 흘림으로서 모든 사람의 죄악을 씻으시고 구원을 이룩하신 새로운 구속의 축제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에는 문설주에 양의 피가 묻혀진 가정마다 죽음의 사자가 넘어갔지만 이제 어린양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그 마음에 믿고 순종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 의 축복을 경험하게 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죄에서의 해방과 저주와 고통 그리고 두렵고 슬픈 세상에서의 자유와 희망을 노 래할 수 있는 은총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은 그래서 온 인류에게 남겨주신 영원한 생명의 만찬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룩없는 떡을 떼시고 축사하시더니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나누어 준 마지 막 떡 그 떡을 예수님은 나의 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몸된 떡을 받으라고 하셨는데 이 말은 예수를 따르는 백성들이면 누구나 받아들 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몸입니다. 이 만찬이 있기전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생명의 떡을 받지 못하면 누구도 영생의 은총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감히 예수님의 몸을 뗄 수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은 30에 예수님을 팔아먹은 가롯유다였습니다. 그는 그 성찬의 자리가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조그마한 이권에 예수를 파라먹는 사람, 예수의 이름을 망령되 이 여기는 사람이 어떻게 떳떳하게 생명의 떡을 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성찬에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그리고 나를 위해 드린 생명의 떡되심을 믿음으로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가 되셔야 할줄 믿습니다. 제자들은 그 떡을 받아먹었습니다. 이 잔은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드린 포도주는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의 제사법에는 어린양 피의 제사가 있습니다. 그 양의 피는 나의 죄를 용서하시는 증표로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은 많은 사람을 위한 보혈입니다. 곧 언약의 피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보혈을 믿기만 하면 주홍같이 붉은 죄 가 있다하더라도 양털같이 희개 해주는 언약의 성취가 이루어 진 것입니다. 이 성만찬의 자리는 그래서 진통의 유월절이 변해서 인류구원의 축복 을 선언하는 의미를 부여해 주시는 장소가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이 만찬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기만 하면 구원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죄와 저주의 고통에서 구원받습니다. 지옥의 백성이 천국의 백성되는 영광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두려움에 싸여 있습니다. 전쟁의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만약 미친개가 물어 뜯기 로 작정만하면 1주일안에 전쟁의 승패가 가려지는 엄청난 재앙이 일어 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두려움과 고통 그리고 재앙의 위협속 에서 우리를 위해 최후의 만찬을 통해 보여주는 구원의 주님이 계신 것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최후의 만찬은 그래서 우리에게 희망이요 영광이요 생명의 은총을 누 리게 하는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잔치입니다. 이 만찬의 자리에 같이 하는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최후의 대심판 성경


본문:계 20:11-15 지난주 "검찰복음화"집회가 있어서 검사및 법관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 " 이 세상의 고등법원이나 대법원이 마지막 심판이 아니라 우주적인 최후의 대심판이 있습니다. 그때는 검사님,판사님들,아니 대통령들도 어김없이 심 판을 받을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고 담대히 전할 때, 물뿌린 듯이 조용한 가운데 은혜받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봄에 파종하고 여름에 김매고 기름주고 땀흘려 수고하는 것은, 가을에 추수하는 때를 바라보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알곡은 모아 창고에 들이고,쭉정이는 모아 불에 태웁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이 불 공평한 것같이도 보이고, 악인이 더 잘 되는 것같이 보이지만, 최후에 공평 무사하게 심판하는 날이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내일 될 일 일년 후에 될일 다 분명치 않으나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하고(재림이 더디다면),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성경은 엄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교묘 하게 법의 심판을 피할 수도 있고, 검사나 형사의 눈을 피해 숨을 수 있으 나, 우주적인 대심판의 날 천사들을 피해 숨을 사람이나, 숨을 장소는 결코 없는 법입니다. 사도행전 17장 31절에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 할 날을 작정하셨다."고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관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2장 16절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검사나 판사는 나타난 결과만 보고 심판하지만, 최후의 대심판에서는 모든 은밀한 것과 숨은 동기 까지 다 파헤쳐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밀한 죄가 없이, 불꽃같으신 주님의 눈앞에서 생각도 하고 행동도 하며 매일매일 살아가야 합니다. 이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믿기를 거부한 모든 죄인들에게 행하 여지는 것이며, 하나님의 크고 흰 보좌 앞에서 행하여 지는 것입니다. 심판 의 때는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천년왕국시대가 지나서, 영원무궁시대에 들어 가기 직전에 시행되는 것입니다. 예수믿고 좌사함을 받은 성도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생명의 부활을 얻 게 됩니다. 구원받지 못한 성도들은 죽은후에 그 영혼이 먼저 고통의 장소인 음부에서 고통을 받다가, 천년왕국시대 후에 부활하여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가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3-14절에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이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 요한이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 밧모섬에 귀양가서 외롭게 지낼 때에 깊이 기도하던 중,장차 될일에 대해서 계시를 받고 이 계시록을 쓴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천국의 아름다움과 즐거운 장면을 보여 주셨을 뿐 아니라, 무서운 지옥과 불쌍한 죄인들에게 나타날 최후의 대심판의 장면을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1. 심판주는 누구입니까 재판할 때에는 반드시 형벌을 결정짓는 판사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 최 후심판은 너무 크고 엄숙하기 때문에 하늘과 땅도 그 앞에서 간데 없더라고 했습니다. 이때에 심판주는 한분이신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은 우리의 구주가 되시지만 그때에는 심판자가 되십니다. 지금은 예수를 부르고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 시지만, 그때에는 예수님을 믿지않고 배척한 사람들을 평생에 지은 죄를 낱 낱이 엄하게 심판하시게 됩니다. 지금은 그분을 믿지 않을 수도 있고 배척할 수도 있지만, 최후의 심판 때 에는 당신의 심판자로 오시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게 됩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죄를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지만, 그때에는 오직 공의 로 심판을 단행하시게 됩니다. 그때에 예수를 배척하고 제멋대로 죄를 짓던 모든 사람들은 슬피울며 탄식 하여 그 소리가 하늘을 찌를듯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1절에 보면 "살아게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러나 이것은 잃어버린 죄인들에게만 행해지는 심판입니다. 예수를 믿고 그 앞에 나오기를 거절한 사람들에게만 행해지는 심판입니다. 지금은 마음대로 죄지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도 이를 방해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흰보좌 앞에서 권세와 능력으로 나타나시는 예수님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때에는 예수를 배척한 죄가 얼머나 무섭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깨달을 것입니다. 갈보리 산상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을 배척했기 때문에, 당신을 심판하시는 심판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2. 심판받을 사람들은 누구이겠습니까 요한계시록 20장 12-13절에 보면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퍼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 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엄히 기록되 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아 중생한 크리스챤들 은 그곳에 나타나기는 하지만, 죄는 사함받았으므로 믿음안에서 행한 선행 을 따라 보상을 받기 위해 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선한자나 악한자나 불문하고 예수를 거절 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가끔 출석도 하고 헌금도 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어도, 그 중심에 진심으로 예수를 그리스도 로 영접하지 않았으면 잃어버린 죄인이므로 틀림없이 심판을 받게 되는것입니다. 최후의 심판대에는 큰자나 작은자나 선한자나 악한자나 다 심판을 받게 되는것입니다. 혹시 나는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았으니 나 같은 사람은 그 심판은 한 사람도 빼놓지 않습니다. 바다도 죽은자들을 내어 주고 음부 도 죽은자들을 다 내어 놓아서 부활하여 심판을 받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 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 영혼이 낙원에 있다가 주님 재림시에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고,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의 영혼은 음부에서 고통 을 당하다가 천년왕국 끝에 부활하여,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던지워 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조롱할 수도 있고, 멸시할 수도 있고, 예수님을 배척할 수 있으나, 그날에는 백보좌 앞에서 떨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그날에는 그들이 어린양의 얼굴을 피하여 숨으려고 바위야 날 가려라, 산아 날 가려라 하고 부르짖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무곳에도 숨을곳이 없고 아무도 구해주는 이가 없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제멋대로 살 수 있으나, 어느날엔가는 당신을 심판대 앞으로 끌고 갈때가 틀림없이 오고야 맙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빌라도도 거기 있을 것이며, 가롯 유다도 거기 있을 것이며, 히틀러도, 스탈린도 모택동도, 김일성도 죄의 값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 누구라도 그리스도를 배척했다면 백보 좌 앞에서 예수님을 심판주로 만나도록 약속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약속은 어길 수 있으나 그 약속만은 어길 수 없습니다. 여 기서는 시간에 늦을 수도 있고 재판을 늦출 수도 있으나, 그 심판의 날에는 늦을 수도 없고 정한 시간에 어김없이 심판을 받게 됩니다.세상에서는 범죄 하고 법관을 피해서 일생을 살 수도 있으나, 하나님의 사자들은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다 붙들어 옵니다. 지금은 교회 안나올 수도 있고 예수를 안 믿을 수도 있으나 그때에는 심판 대 앞에 안 나올 수가 없고 심판주를 대면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녔을지라도 예수님과 생명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은 그곳에 서게 됩니다. 흉악한 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이 다 회개치 않았으므로 다 심판대에 서게 됩니다. 특별히 믿지않는 자들은 집사든, 목사든, 신학박사든 다 서게 됩니다.
3. 심판받을 기록은 무엇이겠습니까 죄인들이 그때에 가서 천국이냐 지옥이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 정된 사실을 판정받는 것입니다. 이 세사에서 예수 믿기를 거절한 사실이 지옥의 판결로 결정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8절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 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예수님을 대속주로 보내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사실을 믿지않는 사실이 심판받을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아들(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이 자기가 행한 업적에 따라 되는 줄 압니다. 사람이 일생동안 행한 선한 일과 악한 일을 대조해서 선행이 악보다 많으면 구원받는 줄 아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구원받느냐, 멸망으로 떨어지느 냐 하는 것은,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었느냐 안믿었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그 런 사람들은 평생에 지은 죄를 기록한 책에 의해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들도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와 상관없이 구원을 받지만, 믿음 안에서 행한 선행에 따라 천국에서 받을 상급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주님의 일을 즉 봉사, 전도,헌금,기도,구제 등을 얼마나 했느냐에 따라 상급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지옥에서도 그가 지은 죄에 따라 고통이 더할 수도 있고 덜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죄가 불의 뜨거움을 더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이냐 지옥이냐 결정짓는 것은, 예수를 생명의 구주로 믿었느냐 안믿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책을 한권씩 기록하고 있으며, 요사이 말로 하면 하늘나라 컴퓨터에 말하는 것,생각하는 것,행동 하는 것, 하나 하나를 입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 모르게 행한 것, 남편 모르게 행한 것, 목사 모르게 행한 것, 부모 모르게 행한 것, 그 어느 것이나 다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일 매일 순간 순간 은밀한 조가 없이 불꽃같은 하나님의 눈 앞에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최후심판 앞에서 "나는 그런 말 안했어요, 나는 그런 짓 안했어요"하고 변 명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때 책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컴퓨터 세 입력된 대로, 다 보여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웹스터(Daniel Webster)란 사람이 말하기를 "나에게 제일 중요하고 엄숙한 생각은 내가 지금 하는 모든 일을 이 다음에 내가 하늘나라에 가서 책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4. 심판의 결과는 어떤 것인가 본문 15절에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고 했습니다. 심판이 끝나면 그 죄의 정도에 따라 지옥에서 고통이 가해집니다. 그 고통은 가히 상상도 못합니다. 엠.알 리치 (M.R.Rich) 라는 사람은 "지옥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불 붙는 난로위에 백만년 동안 누워있는 편이 훨씬 낫다"고 표현했습니다. 다 시는 기회도 없고,사랑하는 사람과도 영원히 분리되고, 하나님과도 영원히 분리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0절에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못에 던지 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마귀와 더불어 영원히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대신 마귀를 따라가는 죄짓는 생활을 했 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 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고 했습니다. 지옥은 고통의 장소일뿐만 아니라 가장 흉악자들과 함께 지내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위에 기록된 죄를 범했을 지라도 예수를 믿고 죄사함 받으면 누구 든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는 씻지 못할 죄가 없고, 용서받 지 못할 죄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회개하고 돌아서면 됩니다. 지옥에 가는 것은 죄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 지 않았기 때문에 가는 것이요, 예수님을 거절했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무서운 심판을 면하기 위해 왜 지금 예수께로 나오지 않습니 까 크리스챤들은 그때에 주님과 함께 심판을 돕기 위해 그곳에 서게 됩니다. 심판이 끝나면 어데로 갑니까 크리스챤들은 즐거운 천국으로 올라가 영원 히 주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우리는 거기서 영원히 즐겁게 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선해서도 아니고, 세례받았기 때문도 아니고, 십일조 했기 때문도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 받았기 때문이며, 예수님이 받아 주 셨기 때문입니다. 홍수 심판 때 노아를 비웃던 사람들이 심판을 받은 것같이, 심판이나 지옥 은 비웃던 사람들이 다 그와 같이 됩니다. 여러분은 진정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잃어버린 영혼을 얼마나 생각하고 전도하십니까 최후에 승리하는 길 성경


본문:시 142:1-7 '나는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서 건지소서 저희는 나보다 강하니이다' 어느 경건한 사람의 개인적 고통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 앞에 토하며 내 우환으로 진술하는도다' 괴로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할 때에도.' 그는 말할 수 없이 상심한 사람입니다. ' 내 우편을 살펴보소서 나를 아는 자도 없고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 을 돌아보는 자도 없나이다' 그에게는 아무도 도와주는 자도 동정하는 자도 없고 설상가상 당면한 이 괴로움에서 피할 길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비천하게 된 사람으로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를 핍박하는 자에게서 건짐 을 받도록 하나님께 애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실제로 감옥에 갇 힌 사람으로 어서 속히 자유의 몸이 되는 날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7 절). 본문의 주인공은 자기의 의지할 분과 믿을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밖 에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난의 궁지에 몰려 자기를 괴 롭히는 원수들과는 감히 비교할 수없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호소하는 말이 '저희는 나보다 강하니이다'(6절) 고 했습니다. 이 시인의 말,'저희는 나보다 강하니아다' 이 말은 불의와 악이 지배 하는 세계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탄식할 수 말입니다. 우리의 원통함,우환,마음의 괴로움(상심), 속상함(원수의 함정), 이 웃의 올무에서 도와줄 자 아무도 없으면 '저희는 나보다 강합니다'라 고 말할 것입니다. 출애굽하기 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바로와 그의 신하들에 의해 모진 학대를 당했습니다. 그들의 잔등은 채찍으로 피멍 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힘으로는 애굽의 군대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 습니다. 이때 이스라엘백성이 할 수 있었던 말은 '주여 저희는 우리보 다 강하니이다'라는 것입니다. 이런 절망적인 호소를 하고서 그들의 출애굽 계획이 좌절된 것이 아닙니다.비록 원수가 그들보다 강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육지같이 거너고 출애굽할 수 있었습니다. 엘리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합왕과 이세벧의 박해가 너무 견딜 수 없었습니다. 아합왕이 갈멜산상에서 된 일을 이세벧에게 고했습니다. 엘리야가 기손강가에서 이세벧이 섬기는 바알의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이세벧이 이를 갈면서 사자를 보내어 '너를 내일 이맘때에 바알 선지자들 중 한 사람에게 한 것처럼 하리라'고 하면서 그의 신의 이름 으로 저주를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도망하여 유다지방 브엘세바에서 광야로 들어가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며''여호와여 넉넉 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살 의욕이 없어 낙심하여 죽기를 원했습니다. 로뎀나무 아래서 누워 자더니 자는 중에 천사가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가 보니 머리맡에 숯불구이 떡과 생수 한병이 있었습니다.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하나님이 사자가 또다시 어루만지며 '일어 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고 했습니다. 이에 일 어나서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일 밤낮을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하여 굴속에서 지내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엘 리야야 너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고 했습니다. '주의 선지자들을 다 죽이고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고 있습니다'(왕상 19:10). 이 말씀은 '저희가 나보다 강하니이다'함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 편에 서시고 그를 도와 이세벧의 핍박에서도 살아나 게 하셨습니다. 일본제국주의가 이 강토를 짓밟았습니다. 우리는 힘이 없어 을사보호 조약 이후 국토를 빼앗겼습니다. 땅을 빼앗긴 백성이 고향산천을 떠나 먼곳 압록강을 건너고 두만강을 건너 뿔뿔이 흩어졌습니다.많은 사람 들이 굶어죽고 얼어죽고 맞아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주권을 빼았습니다. 글을 빼앗고 이름을 빼앗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징병에 끌려 갔습니다. 전쟁의 위안부 정신대로 끌려갔습니다. '아, 하나님! 저희는 우리보다 강합니다' 고 한탄했습니다. 누가 이 민족을 독립시켜주며 이 땅에 해방과 자유를 줄것인가, 이 땅은 힘없고 못배우고 어리석어 나라 잃은 서러움으로 갖은 학대와 차 별을 당해야 했습니다. 시편 142편 4절 말씀에 '그의 우편을 살펴보나 아는 자 없고 피난처도 없고 돌부는 자도 없었다'고 한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민족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백성을 건져주셨습니다. 원수의 올무에서 구해주셨습니다. 이 민족의 원통함 을 토하였을 때 응답해주셨습니다. 이 백성의 괴로움을 벗겨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하고 그의 구원을 믿는 사람에게는 '저희가 나보다 강 하다'는 말이 변하여 '내가 오히려 저희보다 강하게 될 수 있습니다.' 로 바뀌어질 것입니다. 경건한 자의 애원과 탄식은 '저희가 나보다 강하다'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도움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저희보다 강하니 이다'하는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 여 내시리로다.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피할 수 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 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구약성경에 나타난 신앙 간증은 약한데서 강해지면 함정에서 건짐받 고 사방으로 에워싸임을 받아도 자기 길이 열리고 넘어짐에서 일어나 고 쫓김을 당하다가 오히려 원수를 축복할 수 있는 상황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막힌 곳이 열려질 것입니다. 어두움이 빛이 될 것입니다. 함정이 변하여 감사와 찬송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아무리 저희 원수의 힘이 강하다가 해도 그들에게 최후의 승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핍박을 당하는 사람이 최후의 승리를 얻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하다고 하셨습니다. 비천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 을 존귀하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하나님께 의지하고 말씀을 붙 잡으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우등감으로 가슴이 밤마다 뛰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우리가 저희보다 강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첫째, 절망적인 환경속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도의 용어를 보면 '부르짖는다''소리내어 간구한다' '그 앞에서 원통함을 토한다'' 내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한다'라는 말들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매달리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될 것에 대해 이런 비율 를 드셨습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서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라고 했습니다. 그가 얼마동 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 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 을 풀어 주시지 않겠느냐고' 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둘째로 '주께서 내 길을 아신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운명을 아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만이십니다. 우리가 비 록 길을 걸어간다고 해도 우리는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합니다. 시편 139편에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읽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십니다.우리길을 원하십니다. 멀리서도 우리생각 을 아시고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십니다. 내가 내 길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인간자신의 교만이 있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강함앞에 굴 복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잠 16:9) 고 하셨습니다. 가는 길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옮겨 놓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한 발자국의 방향이 우리 인생의 길 전체의 방 향을 정합니다. 우리 길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 내 길을 맡기고 걸어가 면 우리는 곁길로 나갈 수 없고 함정에 빠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바른 길로 당당히 갈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저희보다 강하고 담대히 걸어갈 수 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이 생존세계에서 나의 분깃이라'(5절) 했습니다. 구약에서 다른 지파들은 땅을 분깃으로 받았지만 레위지파는 하나님 자신을 분깃으로 받았습니다 (신10:9) . 레위 자손들은 땅을 경작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민 18:20). 하나님을 자기 유산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 부를 누 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는 것 보다 하나님의 부요를 쌓는 사람이 더 튼튼한 삶을 산다고 하셨습니다(눅 12:11). 하나님을 자기 몫의 분깃으로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다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저희보다 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원수'들을 직접 상대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싸 워주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만일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 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이런 용기는 '저희 들보다 내가 강하다'는 신앙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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