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외식 (마15:1-11)
본문
본문의 내용은 유대전통에 대한 논쟁입니다.그래서 이 시간에는 그 당시 유대교의 전통과 예수님이 책망하신 이유와 본문이 주는 교훈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1.유대인의 전통 “그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1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왔다고 했습니다.이들은 예루살렘에 71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로부터 파송된 사람들입니다.이들은 예수라는 사람이 와서 가르치는데 유대교의 전통을 무시한다 하는 소문이 자자하여 어떻게 하든지 이를 조사하여 처벌하려고 왔던 것입니다.그들은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2절).유전이란 다른 말로 하면 전통(Tradition)입니다.또 장로들이란 주로 랍비들로서 지도급에 있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로 장로들의 유전은 미쉬나(Mishnah)입니다.그 당시 유태교에는 구약성경,미쉬나,탈무드를 경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미쉬나가 제일 실질적인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유대인들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 앞에서 계시를 받을 때에 두 종류의 계시를 받았는데,그것은 돌비에 기록된 말씀인 십계명과 입으로 전해진 말씀이라고 합니다.입으로 전해진 말씀이 구전되어진 것이 미쉬나,즉 장로들의 유전인 것입니다.그러나 실제로 하나님께서 구전으로 준 것은 아닙니다.미쉬나의 내용 가운데 안식일에 관한 규례를 보면 안식일에 해서는 안될 39가지 규례가 나옵니다.본문에는 손을 씻는 결례식에 대한 유전이 나옵니다.“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우리도 음식먹을 때 위생적인 측면에서 손을 씻지만 유대인들은 위생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하나의 의식으로써 먹기 전에 손을 씻습니다.
그런데 유대교의 전통은 이런 손 씻는 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레위기 11장에 보면 먹을 수 있는 고기와 먹을 수 없는 고기,먹을 수 있는 짐승과 먹을 수 없는 짐승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는 근거가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의 범죄와 관계된 것은 다 부정하다고 했습니다.또 위생과 관련된 것이 있습니다.예를 들어서 몽설을 했다든가 설정을 했을 경우 부정하다고 했습니다.그래서 반드시 목욕을 해야 됩니다.그 다음에 세 번째로 예배의 의식에 사용되어 지는 것 예를 들면 피같은 것은 먹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레위기에 보면 피가 바로 생명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성경에서 얘기하는 생명이 바로 피에 있다고 하는 말은 생명의 존엄성을 얘기하는 것이고 죄의 문제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피 흘리심으로 해결되었기 때문에 생명은 바로 피에 있다고 한 것입니다.그 다음 네 번째로 언약백성으로서의 구별된 삶을 위해서 모든 것을 정하다,부정하다 했습니다.레위기 11장 45절에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여기서 거룩하라는 말은 구별된 백성이 되라는 말입니다.하나님은 구별되었습니다.다른 신과 다릅니다.그러니까 하나님께 속한 성도들도 구별되어 빛과 소금의 생활을 해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정결한 의미를 가진 것들이 있습니다.예를 들어서 시편 51편 7절에 보면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라고 했습니다.성전에서 제단에 피를 뿌릴 때 손이 부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손에 피를 묻혀서 뿌리지 않고 우슬초에 피를 묻혀서 제단에 뿌립니다.또 그뿐만 아니라 문둥병을 정결케 하는 데도 사용했습니다.그래서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하소서 하는 말은 바로 피와 연결된 말입니다.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는 정결케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언급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슬초에 피를 묻혀서 뿌리기 때문에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모형입니다. 또 유대교의 전통가운데 중요한 것이 고르반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막 7:11) 고르반이라고 하는 말은 아람어로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는 그런 뜻입니다.당시의 법가운데 가장 무서운 법이 부모를 봉양하는 법입니다.부모에게 거역을 한다든지 훼방을 한다든지 마음 아프게 한다든지 부모를 봉양하지 아니하면 죽였습니다.
그런데 자식들 가운데는 부모가 싫은 사람들이 있습니다.부모가 나이가 많은데 재산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그러면 부모를 봉양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그럴 때 고르반법을 적용한 것입니다.부모에게 말합니다.“부모님 우리 모든 재산은 모두 다 고르반 했습니다.하나님께 다 받쳤습니다.”그러면 부모 공양을 안해도 이들은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그러나 부모를 섬기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께 모두 다 바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물론 일부는 바친 척 하지요.그러나 그것은 다 속임수입니다.결국 그들은 부모부양의 책임을 회피하는 이기적인 목적으로 일부는 바치지만 나머지는 자기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2.예수님의 책망 바로 예수님은 이러한 유대인의 외식을 지적하면서 책망하셨습니다. 여기 본문 6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이 폐한다는 말은 “권리를 빼앗는다”는 말입니다.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바꾸어 버린 겁니다.완전히 대체시켜 버린 겁니다.그래서 예수님은 바로 이들을 7절에 보면 “외식이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배우라는 그런 말입니다.배우처럼 시나리오에 따라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자기들의 감정대로 하는 게 아닙니다.시나리오에 따라서 감독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외식하는 자들아’라고 하신 책망을 2000년 전에 하신 말씀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오늘 저나 여러분들을 향해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우리 한국사람은 4중 인격을 가지고 있습니다.이중정도가 아닙니다.생각은 불교적으로 하고 생활은 유교적으로 삽니다.기독교인들도 전부다 유교적으로 삽니다.그러면 믿음은 어떠냐 믿음은 무속적이요,무당적이요,기복적입니다.우리가 다 그럽니다.그래서 4중 인격입니다.불교적이고 유교적이고 무속적이고 기독교적이고 이게 한국 사람들입니다.우리들은 보면 다 외식하는 자들입니다.바로 주님의 책망입니다.그래서 여기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이사야서 29장 13절에 있는 말씀을 예수님이 인용을 하면서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사람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여기 헛되다고 하는 말은 마텐이라고 하는 말인데 열매가 없다는 뜻입니다.하나님을 믿기는 믿지만 열매가 없는 사람 헛되이 경배하는 사람입니다.신자에게는 성령님의 열매가 있어야 됩니다.성령님의 아홉가지 열매가 열려야 됩니다.전도의 열매가 열려져야 됩니다.기도의 열매가 열려져야 됩니다.그것이 없이는 그건 다 헛되이 경배하는 것입니다.또 그뿐만 아니라 11절에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여러분 입에 들어가는 것이 뭡니까 음식이죠.입에서 나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이죠.여기 더럽게 한다는 말의 뜻은 코이노이라고 하는 말인데 그 말은 “저속하게 한다,품위를 떨어 뜨린다” 그 말입니다.여러분 서민적인 음식을 먹는다고해서 그것이 우리의 품위를 떨어뜨립니까 아닙니다.입에서 나오는 말이 우리의 품위를 떨어 뜨리는 것이지 입에 들어가는 것이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입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많이 논했습니다.무슨 음식을 먹느냐 정한 음식,부정한 음식 그걸 가지고 따진 겁니다.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여기서 강하게 책망을 했습니다.
3.본문이 주는 교훈
첫째로 과연 나는 어떤가 외식하는 자는 아닌가 우리 자신을 반성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덧붙이는 것 그게 얼마나 위험하고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하는 것을 본문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말씀보다는 종교법을 앞세웠습니다.교회법을 앞세웠습니다.이것이 문제입니다.물론 우리에게 중요한 전통이 있습니다.좋은 전통은 계속해서 이어나가야 합니다.그러나 여러분 전통을 가지고 말씀을 바꾸려고 하면 안됩니다.무슨 말인고 하면 전통이 물론 중요한 것이지만 전통 중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습니다.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그것이 좋은 것일 때는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되겠지만 예를 들어서 우리 충현교회의 주일성수하는 좋은 전통을 지켜야 됩니다.그러나 전통 가운데는 잘못된 전통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전통보다는 말씀을 앞세우는 그런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세번째로 하나님이 원하는 예배는 어떤 예배냐 마음의 예배입니다.형식적이고 의식적인 그런 예배가 아닙니다.그래서 시편 51편 17절에 말하기를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했습니다.여기 상한 심령이라는 말은 깨어진 마음(brocken spirit)이라는 뜻입니다.우리 영혼이 완전히 깨어진 그런 마음을 우리 하나님은 원하십니다.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가서 자기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 제가 죄인입니다 하는 그것이 바로 상한 심령입니다.이렇게 우리는 예수님이 유대전통에 대하여 비판하시는 말씀 속에서 중요한 세 가지 교훈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우리는 외식하는 자가 아닌가 자신을 살펴보고 상한 심령으로 회개하여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되지 아니하고 성령님충만한 성도,진실한 성도,열매맺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유대인의 전통 “그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1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왔다고 했습니다.이들은 예루살렘에 71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로부터 파송된 사람들입니다.이들은 예수라는 사람이 와서 가르치는데 유대교의 전통을 무시한다 하는 소문이 자자하여 어떻게 하든지 이를 조사하여 처벌하려고 왔던 것입니다.그들은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2절).유전이란 다른 말로 하면 전통(Tradition)입니다.또 장로들이란 주로 랍비들로서 지도급에 있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로 장로들의 유전은 미쉬나(Mishnah)입니다.그 당시 유태교에는 구약성경,미쉬나,탈무드를 경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미쉬나가 제일 실질적인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유대인들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 앞에서 계시를 받을 때에 두 종류의 계시를 받았는데,그것은 돌비에 기록된 말씀인 십계명과 입으로 전해진 말씀이라고 합니다.입으로 전해진 말씀이 구전되어진 것이 미쉬나,즉 장로들의 유전인 것입니다.그러나 실제로 하나님께서 구전으로 준 것은 아닙니다.미쉬나의 내용 가운데 안식일에 관한 규례를 보면 안식일에 해서는 안될 39가지 규례가 나옵니다.본문에는 손을 씻는 결례식에 대한 유전이 나옵니다.“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우리도 음식먹을 때 위생적인 측면에서 손을 씻지만 유대인들은 위생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하나의 의식으로써 먹기 전에 손을 씻습니다.
그런데 유대교의 전통은 이런 손 씻는 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레위기 11장에 보면 먹을 수 있는 고기와 먹을 수 없는 고기,먹을 수 있는 짐승과 먹을 수 없는 짐승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는 근거가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의 범죄와 관계된 것은 다 부정하다고 했습니다.또 위생과 관련된 것이 있습니다.예를 들어서 몽설을 했다든가 설정을 했을 경우 부정하다고 했습니다.그래서 반드시 목욕을 해야 됩니다.그 다음에 세 번째로 예배의 의식에 사용되어 지는 것 예를 들면 피같은 것은 먹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레위기에 보면 피가 바로 생명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성경에서 얘기하는 생명이 바로 피에 있다고 하는 말은 생명의 존엄성을 얘기하는 것이고 죄의 문제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피 흘리심으로 해결되었기 때문에 생명은 바로 피에 있다고 한 것입니다.그 다음 네 번째로 언약백성으로서의 구별된 삶을 위해서 모든 것을 정하다,부정하다 했습니다.레위기 11장 45절에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여기서 거룩하라는 말은 구별된 백성이 되라는 말입니다.하나님은 구별되었습니다.다른 신과 다릅니다.그러니까 하나님께 속한 성도들도 구별되어 빛과 소금의 생활을 해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정결한 의미를 가진 것들이 있습니다.예를 들어서 시편 51편 7절에 보면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라고 했습니다.성전에서 제단에 피를 뿌릴 때 손이 부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손에 피를 묻혀서 뿌리지 않고 우슬초에 피를 묻혀서 제단에 뿌립니다.또 그뿐만 아니라 문둥병을 정결케 하는 데도 사용했습니다.그래서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하소서 하는 말은 바로 피와 연결된 말입니다.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는 정결케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언급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슬초에 피를 묻혀서 뿌리기 때문에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모형입니다. 또 유대교의 전통가운데 중요한 것이 고르반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막 7:11) 고르반이라고 하는 말은 아람어로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는 그런 뜻입니다.당시의 법가운데 가장 무서운 법이 부모를 봉양하는 법입니다.부모에게 거역을 한다든지 훼방을 한다든지 마음 아프게 한다든지 부모를 봉양하지 아니하면 죽였습니다.
그런데 자식들 가운데는 부모가 싫은 사람들이 있습니다.부모가 나이가 많은데 재산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그러면 부모를 봉양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그럴 때 고르반법을 적용한 것입니다.부모에게 말합니다.“부모님 우리 모든 재산은 모두 다 고르반 했습니다.하나님께 다 받쳤습니다.”그러면 부모 공양을 안해도 이들은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그러나 부모를 섬기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께 모두 다 바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물론 일부는 바친 척 하지요.그러나 그것은 다 속임수입니다.결국 그들은 부모부양의 책임을 회피하는 이기적인 목적으로 일부는 바치지만 나머지는 자기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2.예수님의 책망 바로 예수님은 이러한 유대인의 외식을 지적하면서 책망하셨습니다. 여기 본문 6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이 폐한다는 말은 “권리를 빼앗는다”는 말입니다.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바꾸어 버린 겁니다.완전히 대체시켜 버린 겁니다.그래서 예수님은 바로 이들을 7절에 보면 “외식이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배우라는 그런 말입니다.배우처럼 시나리오에 따라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자기들의 감정대로 하는 게 아닙니다.시나리오에 따라서 감독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외식하는 자들아’라고 하신 책망을 2000년 전에 하신 말씀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오늘 저나 여러분들을 향해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우리 한국사람은 4중 인격을 가지고 있습니다.이중정도가 아닙니다.생각은 불교적으로 하고 생활은 유교적으로 삽니다.기독교인들도 전부다 유교적으로 삽니다.그러면 믿음은 어떠냐 믿음은 무속적이요,무당적이요,기복적입니다.우리가 다 그럽니다.그래서 4중 인격입니다.불교적이고 유교적이고 무속적이고 기독교적이고 이게 한국 사람들입니다.우리들은 보면 다 외식하는 자들입니다.바로 주님의 책망입니다.그래서 여기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이사야서 29장 13절에 있는 말씀을 예수님이 인용을 하면서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사람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여기 헛되다고 하는 말은 마텐이라고 하는 말인데 열매가 없다는 뜻입니다.하나님을 믿기는 믿지만 열매가 없는 사람 헛되이 경배하는 사람입니다.신자에게는 성령님의 열매가 있어야 됩니다.성령님의 아홉가지 열매가 열려야 됩니다.전도의 열매가 열려져야 됩니다.기도의 열매가 열려져야 됩니다.그것이 없이는 그건 다 헛되이 경배하는 것입니다.또 그뿐만 아니라 11절에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여러분 입에 들어가는 것이 뭡니까 음식이죠.입에서 나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이죠.여기 더럽게 한다는 말의 뜻은 코이노이라고 하는 말인데 그 말은 “저속하게 한다,품위를 떨어 뜨린다” 그 말입니다.여러분 서민적인 음식을 먹는다고해서 그것이 우리의 품위를 떨어뜨립니까 아닙니다.입에서 나오는 말이 우리의 품위를 떨어 뜨리는 것이지 입에 들어가는 것이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입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많이 논했습니다.무슨 음식을 먹느냐 정한 음식,부정한 음식 그걸 가지고 따진 겁니다.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여기서 강하게 책망을 했습니다.
3.본문이 주는 교훈
첫째로 과연 나는 어떤가 외식하는 자는 아닌가 우리 자신을 반성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덧붙이는 것 그게 얼마나 위험하고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하는 것을 본문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말씀보다는 종교법을 앞세웠습니다.교회법을 앞세웠습니다.이것이 문제입니다.물론 우리에게 중요한 전통이 있습니다.좋은 전통은 계속해서 이어나가야 합니다.그러나 여러분 전통을 가지고 말씀을 바꾸려고 하면 안됩니다.무슨 말인고 하면 전통이 물론 중요한 것이지만 전통 중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습니다.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그것이 좋은 것일 때는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되겠지만 예를 들어서 우리 충현교회의 주일성수하는 좋은 전통을 지켜야 됩니다.그러나 전통 가운데는 잘못된 전통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전통보다는 말씀을 앞세우는 그런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세번째로 하나님이 원하는 예배는 어떤 예배냐 마음의 예배입니다.형식적이고 의식적인 그런 예배가 아닙니다.그래서 시편 51편 17절에 말하기를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했습니다.여기 상한 심령이라는 말은 깨어진 마음(brocken spirit)이라는 뜻입니다.우리 영혼이 완전히 깨어진 그런 마음을 우리 하나님은 원하십니다.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가서 자기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 제가 죄인입니다 하는 그것이 바로 상한 심령입니다.이렇게 우리는 예수님이 유대전통에 대하여 비판하시는 말씀 속에서 중요한 세 가지 교훈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우리는 외식하는 자가 아닌가 자신을 살펴보고 상한 심령으로 회개하여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되지 아니하고 성령님충만한 성도,진실한 성도,열매맺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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