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경이 소경을 (마15:14,눅6:39)
본문
오늘부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Q자료)에 나오는 비유들을 차례대로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지난 94년 7월 24일 1907년 기상관측이래 38.4도 로 최고의 무더위를 기록했습니다. "더운 날씨에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라고 인사를 하게된 무더운 날씨입니다. 저도 사무실에서 에어콘이 하나 있 기는 한데 하루 날잡아서 틀었는데 그날 건물에 들어오는 전기선이 불에타 서 화제가 발생할뻔 하고 다행스럽게 정전만 되고 말았습니다. 잘 참다가 어찌 더운지 한번 틀었던 것이 그 날 하필 문제가 생긴것 입니다. 그 이후 로 전기가 다시 복구되었지만 전력사정 등을 감안하여 감히 에어콘을 틀 엄 두를 못내고 지내고 있습니다. 시장에 갔더니 어떤 아줌마가 "하루만 더 이 렇게 더우면 저는 죽어요." 라고 도저히 이제 더위 참는데 한계를 느꼈다고 말한다. "
그런데 아줌마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뭔데요 내일 더 더워요, 아니면 비가그것은 잘 모르고요 한가지 아는것 있습니다.뭐예요맨입으로 됩니까저거 하나 더 주세요예 알았습니다. 이것 하나 더 드리지요지옥은요 이것도다 아마 10배 아니 100배, 1000배 그보다 더 더울걸요거기 가시겠어요 안가는 방법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 꽁무니만 따라다 니는 겁니다." 오늘 말씀을 보고 듣는 여러분 모두에게 구원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소경은 예수님시대에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질병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난, 비위생적인 생활조건, 밝은 태양, 지나친 열, 불어오는 먼지 바람, 전 쟁 등이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한글(개역)성경에는 소경이라는 단어가 75 개 나오는데 구약에 21개 신약에 54개나 나옵니다. 이런 소경은 예수님 공 생애 기간 동안에도 어렵지 않게 그들과 마주쳤던 사건이 많이 있었습니다. (요 9:
1)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마 9: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눅 18:35) 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 한 소경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 가 예수님이 길 가실 때, 집에 들어가시니 소경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소경 의 눈을 고치는 일도 하셨습니다. (마 15:30)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 (막 10:46)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막 10: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막 10: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막 10: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막 10:50)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막 10:51)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막 10: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예수님은 오늘도 흔히 눈에 띄는 소경에 대해서 육신적인 눈을 고쳐 주셨 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눈이 멀은 것에 대하여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바로 그런점에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마태와 누가가 약간씩 다른관점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마태는 15:1절에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라고 시작한 말씀에 서 오늘 비유가 나타납니다. 누가는 6:20절에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눅 6:27절에 "그러나 너희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라는 말씀 시작에서 연결되어 오늘 비유가 나타납니다. 마태 = 바리새인과 서기관에 주는 비유 누가 = 제자와 듣는 청중에게 주는 비유로 기록했습니다. 아마 성경을 부인하거나 믿지않으려는 사람들은 성경이 틀렸다고 혹은 엉 터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양면성에 대해서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말씀에 대해서 여러가지 각도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흔히 우리는 이단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별 생각없이 이단이라고 말합니다. 이단은 한자어로는 끝이 다른 사람을 말한 것인데 중요한 것은 누구의 관점에서 이단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증인은 아마 기독교가 이단일 것입니다. 통일교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우리는 나와 다르면 이단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좀더 엄중히 말한 다면 예수와 다르면 이단입니다. 나와 다른것이 이단이 아닙니다. 예수와 다 른것이 이단입니다. 그러면 나는 예수와 같습니까 나도 예수와 다르면 이 단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제자나 듣는 무리들 중 하나인 청중일 수도 있 지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같은 신앙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그런 사람 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결국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제자이든 청중이든,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이면 오늘 회개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비유의 배경을 보면 마태복음 15:8-9절에 이사야(사 29:13)의 말씀에 대해서 강론하셨습니다. 그 내용은 (마 15: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 15: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걸림이 된줄 아시나이까"(마 15:12) 문제 가 되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말씀이 아니라 거부 반응을 보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말씀을 전달하면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거부반응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성경적인 설교말씀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의 악습과 가증스러운 믿음에 대하여 단호하고도 엄격한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무엇을 원하느냐 어떤 말씀을 좋아하니 그 말씀으로 전해 야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설교할 따름입니다. 뭐 할일이 없어서 여러분들의 비유나 맞추고 있습니까 혹 그렇게 해서 보이는 교회가 커지면 무엇하겠습니까 그것은 교회 성장도 하나님의 나라 를 이루는것 하고도 관계없는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 소경되지 않기 위함입니다. 제가 소경이면 좋겠습니까 그러면 오늘 여러분하고 구덩이에 빠지는 연습 이나 하는 것입니다. 젊은 목사한테도 야단 맡을 일이 있으면 야단 맡으시 기를 바랍니다. 설교의 목적은 하나님이 지금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달하시기를 원하시는 지 그것을 목사는 기도하고 바른 교훈으로 책망할 것은 책망하고 고칠것은 고치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 귀 다 막아놓 고 "당신은 월급이나 받고 설교만 하면되"라는 식으로 목사를 부리는 교회 가 있는가 하면 "나는 이목사보다 나이가 몇살 더 먹었어", 나는 "일류 대학 을, 유학을 했는데 박사 학위하나 같고 있지 않은 목사의 설교는 들어보나 마나야" 등 좌우지간 핑계도 많고 이유도 많고 아마 입씨름 하면 하나님도 당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물에빠져 죽으면 입만 둥둥 떴는데 지금은 물에빠져 죽으면 발바닥만 뜬답니다. 붕어하고 말하냐고요" 아마 예수님의 꾸지람은 제가 하는것 보다 비교가 않될 정도였을 것입니다. 사실 분개할 일입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사람들이 그의 아들이 와 보니 엉망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과 가증함과 인간의 방법으로 보이기 위 한 신앙 생활 입이 있이는 말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여 기서 예수님 한마디 하신것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론의 말씀으로 오늘 비유를 주신 것입니다. 이제 다시한번 오늘 본문을 읽어봅시다. 실감 나실 것입니다. 약 한달간 비가 오지않아서 가뭄으로 날리입니다. 한달만 비가오지 않는 다고 이정도니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하시겠다고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위엄하심과 그분의 뜻을 해아리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소경 되지 않기 위해서 깨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남북 정상회담 이 열릴 것 같더니 김일성이가 죽었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 앞에 어떤일이 또 일어날 것인지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소경되지 않기 위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나마 7.26-27일 B급태풍 '월트'가 몰고온 비로 급한대로 해갈이 된 지 역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돈으로 계산하니 약 4천억원 짜리라고 하는군요. 농경지 전체 가뭄면적 19만 6천 ha 가운데 3만-4만ha 정도는 해갈되었다고 할때 이정도를 암반관정을 기준으로 최소한 4-6백억원 듭니다. 이렇게 저렇 게 계산하여 나온것 입니다. 어디 이것을 돈으로만 따질 수 있겠습니까 만 일 다 물을 대려면 이미 시간이 지나서 피해지역은 이미 더 늘어날 것입니다. 태풍이 가져 온 비는 한번에 끝내지 않습니까 우리는 일련의 기상과 관련해서도 기도해야 할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많은 것을 깨달아아 할 것입니다. 말씀을 좀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예수님은 영적인 소경에 대하여 여러 가 지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바른 훈계의 교훈을 우리가 의도적으로 피하고 사람들의 좋아하는 것으로만 교회를 치장하는 것은 소경입니다. (마 23:16) 화 있을찐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마 23:17)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 게 하는 성전이냐 (마 23:24)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마 23: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 도 깨끗하리라 (사 43:8)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 (롬 2:19)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1.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지 못하는것은 소경입니다.
2. 하나님의 뜩을 바로 전하지 못하면 소경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대하는 여러분들에게는 영적인 눈이 확 열려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눈을 떠야 합니다. 눈이 멀어 있으면 참 불편합니다. 목사만 눈이 떠 있어도 불편하며 성도만 눈이 떠 있어도 문제입니다. 저도 눈이 떠 있고 여러분들도 눈이 떠 있어 하나님의 올바르신 뜻이 무 엇인지를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 세상의 빛 성경
본문:요 6:30-35 해마다 장막절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나간 40년 광야 생활 중에 성실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 당시를 되돌아 보고 곡식을 거두 어 들인 후 행하는 추수감사절 행사입니다. 일곱째 달 15일부터 일주간 행 하는 장막절 기념절기가 되면 2가지중요한 행사가 거행됩니다.
1)실로암으로 부터 물을 길러오는 행사입니다. 수만명이 두줄로 나란히 서서 10리 밖에 있는 제사장들이 실로암에서 순금 항아리에 물을 길러오는데 이사야 12:3절, 시 113편, 118편,부르며 성전으로 올라와서 제단에 물을 붇습니다. 이 행사는 광야에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반석을 치신 역사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2)등 놀이(금 촛대) 행사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여인의 뜰에다가 4개의 큰 등을 달아놓고 제사장, 바리 새인 사두개인들이 춤을 추고 일반 백성들은 빙 둘러 앉아 구경을 하는 것 입니다. 이 행사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빛으로 시작 하셨으므로 빛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세상을 향하여 빛 이 되라는 자부심을 갖는 것입니다. 또 이 불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구름 기 둥과 불 기둥으로 갈 길을 보이시고 인도하셨음을 기념하는 것으로서 예루 살렘 도시의 어느 곳에서나 볼수 있을 만큼 밝았다고 합니다. 이 불빛은 예 루살렘의 아낙네들이 바느질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밝기를 가히 짐 작할 수 있습니다. 큰 등에 불이 붙어지면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는 백성들의 축제가 벌어집니다. 사람들은 여기 저기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춥니다. 장막절은 안식일에 시작해서 그 다음 안식일에 끝나는 것이 상례입니다. 장막절 절기 행사가 거의 끝나 가는 마지막 날인 안식일 저녁이었을 것입니다. 마치 올림픽의 성화가 꺼지듯 4개 촛대의 불이 가물 가물 꺼져가고 이제는 노래 소리도 들리지 않고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쉽고도 엄숙한 순간입니다. 이 때 한 젊은이가 군중들을 헤치고 여인 의 뜰의 한 복판에 들어 섭니다. 잠시 긴장이 감돌았습니다. 드디어 그 젊 은이가 무리를 향해서 외쳤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본 론
1.意味 "나는 세상의 빛이다" (I am the light of the world). =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 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12절). 이 말씀은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두번째 '나는 \이다' (I AM)이 라는 선언입니다. 여기에서 '나는\이다'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하나님이신 바로 그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인 어떤 일을 하실 것인가를 보여 주는 위대한 선언입니다. 이 선언은 헬라어에서 독특 한 의미를 갖습니다. 결코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이 나 홀로 빛이라는 선 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선언입니다. 구약의 불 기둥이 빛은 하나님 자신의 顯現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께서는 자신이 바로 세상에 빛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시편 기자는"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 요"(시27:1)신약성경에서 사도 요한도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빛이 시다"(요일1:5)
그런데 지금 주께서는 이렇게 선언하고 계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장막절 마지막 날 예루살렘 도성을 비추고 있던 모든 불빛이 스러져 가는 극적인 순간에 선언되었던 예수님의 이 위대한 선언! "나는 세상의 빛이다."
2.주시는 교훈 =
1).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입니다.-마치 광야의 성막에서 영광스러운 빛이 주의 임재를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 심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서 찾아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바 로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한 임마누엘의 의미입니다.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죽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계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하나님!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우리 와 함께하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말씀 (LOGOS)이신 예수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을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손을 만졌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손을 만졌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무엇이었겠습니까광야길에는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걱정이 있었겠지만 그중 가장 큰 고통은 아마 고독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없는데서 오는 고독이 아닙니다. 적어도
2,000,000명에 가까운 군중들이 이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행진 중 에 많은 난관과 역경을 경험하게 되고 저마다 자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다 보면 사람은 많았지만 정말 마음을 터놓고 지낼 사람은 없었습니다. 자기의 삶을 다 내놓고 나눌만한 사람들이 없는 어떤 실존적인 고독이었을지도 모 릅니다. 고통이 올 때 우리는 저마다 홀로인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아무도 이 고통의 짐을 져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를 참으로 외롭게 합니다. 가 장 사랑하는 가족조차도 이 고통을 함께할 수 없다는 처절한 고독! 우리 인 생의 여정에는 이런 고독이 종종 있을 수 있습니다. 외롭고 힘겨운 광야 생활 중에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난 구름 기둥과 불 기둥! 누군가는 이렇게 소리쳤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시다."그 순간 이 광야를 걸어가면서 느껴야 했던 온갖 좌절과 방황은 새로운 희망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분 진실로 나의 모든 문제의 응답이신 그분 창조주이신 하나님. 나와 더불어 함꼐 계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이 하나님의 현현! 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놀라운 증거였던 것입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홀로 서기'라는 시가 있습니다. 서정윤이라는 젊은 시인이 쓴 시집 제목인데 시집으로는 우리나라 출판 사상 경이적인 판매 부수를 기록하고있습니다. 얼마나 유행했는가 하면 이 이름을 따서 '홀로 서기 찻집'도 생겼다고 합니다. 홀로서기
⑴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 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태어 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⑵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 아줄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 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다시 쓰러져 있었다. ⑹나의 전부를 버소 알몸뚱이로 모두를 대하고 싶다. 그것조차 가면이라고 말할지라도 변명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혼자가 되리라.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부리에 발톱에 피가 맺혀도 도와 주지 않는다.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 서기'를 익혀야 한다. 이것은 현대인들이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면서도 여전히 홀 로일 수밖에 없는 자기 실존에 대한 고독을 대표하고 있는 고백일지도 모 릅니다. 사실상 인간이 가장 깊은 의미의 고통 속에서 몰입할 때는 그 누구 도 함께해 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죽음의 다리를 건너갈 때 누구와 손 을 잡고 함께 건널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순간에도 나와 함께할 수 있는 분이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진정 놀라운 희망 이었습니다. 광야 생활 중에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신 하나님을 성경은 이 렇게 표현합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출 13:22)이것은 백성들에게 커다란 희망이었습니다. 걷고 있는 이 삶의 여정 에서 오늘의 고통이 아무리 심각하고 오늘의 방황이 아무리 어렵고 오늘의 좌절이 아무리 눈물겹다고해도 하나님만 떠나지 아니하신다면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만유를 창조하신 하나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섭 리하시는 그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길을 걸어갈수가 있습니다."볼찌어다.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세상 끝날까 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바로 이 빛은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였 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인도의 선언입니다.-우리가 말할 수 없는 가슴앓이와 고통을 당할 때 그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나눌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그들 이 우리와 함께 있어 줄 수는 있을지라도 우리를 인도해 주지는 못합니다. 광야 길을 방황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아마도 사 막의 無邊性이었을 것입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 그게 그것 같고 무 엇이 옳은지 분별하기도 힘듭니다. 이는 우리의 삶의 일상성을 말해 준다 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그저 그렇게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것 같 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길을 잃어버리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삶의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비 일비재 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사막의 강렬한 태양까지 연상해 보십시요 땡볕 아래에서 행군! 고통스러운 사막의 이 방황이 그들을 얼마나 지치게 했겠습니까
그런데 이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方向喪失症이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가도 제자 리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얼마나 지겨운 고통이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 앞에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 기둥은 움직이며 갈 길을 제시 했습니다. 이 얼마나 인상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까 이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따라 한 발 짝 두 발짝 내딛는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없고 백성들의 입에서는 금새라도 찬양과 감사와 시가 쏟아져 나올 것 같습니다. 민수기 9장에는 이장면이 극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진행하였고 구 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17절) 구름이 진행하면 백성도 진행하고 구름이 머물면 그들도 머물렀습니다. '민 9:18-2
3''여호와의 명을 좇아' 주님의 인도를 경험하며 나아가는 장 면들! 얼마나 아름답고 인상적입니까 그러나 그들에게도 유혹이 있었습니다. 사막 길에서는 아따금씩 오아시 스를 마나게 됩니다. 그래서 오아시스가 있는 쉼터에 한번 주저 앉으면 다시 일어나고 싶지 않은 유혹을 느꼈을 것입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힘든 방황 길을 끝없이 걸어야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구름이 떠올라 움직 이면 그들은 다시 발걸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여러분! 계속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정말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결정하십니까 아니면 쉽고 편리한 쪽으로 결정하십니까 나의 편리와 나의 쉼과 나의 안식을 위해서 결정하지는 않습니까 참으로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며 주께서 내가 어디로 가기를 원하시는지 그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만약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누군 가가 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하나님의 인재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편리와 자신의 쉼을 위해서 좇아가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이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리석은 사건들이 우리들의 삶 속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중대한 결정을 할 때 성경을 열어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십니까 지금은 구름기둥이 뜨지 않고 불 기둥 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보다 더 확실한 성경의 메시지 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또한 성령님꼐서 우리 안에서 또 우리 곁에서 우리 의 마음과 생각을 조명하십니다. 그러나 이렇게 확신과 평안을 주시며 우리 의 길을 인도하신다고 선포하신 말씀에도 불구하고 내 편리를 위해서 어떤 결정을 내리지는 않습니까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 명의 빛을 얻으리라."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빛 가운데 거하는 이 놀라운 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따른다'는 것은 계속해서 따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신실하고 계속적으로 성실하게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 빛 가운 데 걸어가며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는 삶! 당신은 하나님의 인도와 은총을 체험하는 이 삶을 원하십니까 그 대답은 "참으로 주님 따르기를 원하는 가"라는 질문과 더불어 해결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삶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주님의 말씀을 열어 그 분의 인도를 구하며 나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좇아 걸을 때 이 모든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들의 것 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 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상징된 이 빛은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요 하나님의 인도의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3. 하나님 나라의 약속입니다. =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그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했습니다. 약속의 땅으 로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이야 말로 궁극적으로 그 백성이 가야 할 땅입니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처럼 오신 예수님, 자연의 불빛은 사라져도 여전히 우리를 인도하는 영원한 인도자가 되시기 위해서 우리 역사 가운데 찾아오신 예수님! 그분은 이렇게 선언하고 계십니다. "바로 내가 구름 기 둥이야, 내가 불 기둥이야."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던 그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임재 이상으로 더 정확하고, 더 아름답고, 더 평안하게 우리 삶 속에 간섭해 오시는 예수님! 그 분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기를 원 하십니까 바로 약속의 땅인 아버지의 나라로 인도하길 원하십니다.그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요14:6)고 하셨습니다. 광야에서 백성들이 내려야만 했었던 그 많은 결정들! 그들은 약속의 땅으 로 잘 나가다가 때떠로 방향을 잘못들어 방황하고 헤메이며 위험에 직면하 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우리의 소망을 하늘나라에 두게 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릇된 것입니다. 당신의 결정은 하나님께 시선을 두게 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사모하게 합니까 그리고 발걸음을 주님 앞으 로 이끌고 있습니까 만일 다른 곳에 눈을 두게 하고 하나님께 맞춰진 초 점을 흐리게 만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결정이 아닙니다. 광야 에서 직면했던 가장 큰 유혹이 있었다면 약속의 땅을 등지고 애굽으로 돌아 가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만일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예수님이 함께하시지 않았더라면 하나님 의 나라를 향해서 진행하던 우리의 발걸음도 어느 한 순간에 돌이키고 말 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싶은 별수 없는 인간들 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가야할 목표를 다시 바라봅니다. 세상의 유혹과 세상의 정욕이 순간순간 우리 삶의 초점을 흐리게 만들때에도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다시 주님 앞 에 나가게 됩니다. 맺는 말 가야 할 그 땅이 있기에 약속의 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에 우리는 精 進할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그 인도를 좇아 오늘도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이 행렬 속에 당신이 서 있음을 바라볼 수가 있습 니까 지금 당신의 삶은 빛 가운데 있습니까 아지고 어둠 가운데 있지는 않습니까 이 어둠의 죄에서 방황 무목표, 무의미, 무목적일 수 있습니다.
혹시 당신의 삶이 이런 특징으로 묘사되고 있다면 당신은 어둠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여기 구름 기둥이 있습니다. 불 기둥이 있습니다. 빛으로 다가오시는 그분의 모습을 보십시오. 아니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자연의 불빛이 세상의 불빛이,친구들의 불빛이 理性의 불빛이 꺼지는 이순간에도 내 앞에 다가오시며 내게 말씀하시는 거룩한 주님! "나는 세상에 빛이닌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 빛은 당신을 위한 빛이십니다. 하늘나라로 가는 밝 은 빛이신 예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부르며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문 "광야같은 이 세상의 그 많은 사람 속에서도 여전히 홀로임을 느껴야 하는 우리들 그러나 이 고독과 고통속에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 아니하고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찾아오신 하나님 임마누엘이신 예수님! 주께서 이 땅에 오심을 감사합니다주님이 제게 오시지 않았더라면 제 삶의 방황은 언 제까지 계속되었을까요 주께서 제게 말씀하시고 주의 성령님을 통해 저를 인 도해 주셔서 제 삶의 목표를 바라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주님을 따 르렵니다. 어떤 댓가를 치른다해도 주님을 따름이 제 삶의 가장 큰 부요요, 승리요 영광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잠시 동안의 쾌락이 편리의 유혹때문에 주님 따르기를 주저하거나 포기하는 어리석은 저희들이 되지않게 하옵소서. 주 안에 거함이 빛 가운데 거함이여 주를 따름이 빛을 따름임을 알게 하 옵소서 영원한 빛으로 가득 찬 그 나라에 이를 때 제 인생 여정을 돌이켜보 며 주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오, 빛되신 주님의 인도 때문에 제 삶은 진정 의미있는 인생이었습니다.'라는 고백이 빛되신 주님을 따르기 원하는 저희 모두의 고백이요 결심 이게 하옵소서." 아멘
그런데 아줌마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뭔데요 내일 더 더워요, 아니면 비가그것은 잘 모르고요 한가지 아는것 있습니다.뭐예요맨입으로 됩니까저거 하나 더 주세요예 알았습니다. 이것 하나 더 드리지요지옥은요 이것도다 아마 10배 아니 100배, 1000배 그보다 더 더울걸요거기 가시겠어요 안가는 방법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 꽁무니만 따라다 니는 겁니다." 오늘 말씀을 보고 듣는 여러분 모두에게 구원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소경은 예수님시대에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질병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난, 비위생적인 생활조건, 밝은 태양, 지나친 열, 불어오는 먼지 바람, 전 쟁 등이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한글(개역)성경에는 소경이라는 단어가 75 개 나오는데 구약에 21개 신약에 54개나 나옵니다. 이런 소경은 예수님 공 생애 기간 동안에도 어렵지 않게 그들과 마주쳤던 사건이 많이 있었습니다. (요 9:
1)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마 9: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눅 18:35) 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 한 소경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 가 예수님이 길 가실 때, 집에 들어가시니 소경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소경 의 눈을 고치는 일도 하셨습니다. (마 15:30)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 (막 10:46)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막 10: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막 10: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막 10: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막 10:50)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막 10:51)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막 10: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예수님은 오늘도 흔히 눈에 띄는 소경에 대해서 육신적인 눈을 고쳐 주셨 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눈이 멀은 것에 대하여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바로 그런점에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마태와 누가가 약간씩 다른관점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마태는 15:1절에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라고 시작한 말씀에 서 오늘 비유가 나타납니다. 누가는 6:20절에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눅 6:27절에 "그러나 너희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라는 말씀 시작에서 연결되어 오늘 비유가 나타납니다. 마태 = 바리새인과 서기관에 주는 비유 누가 = 제자와 듣는 청중에게 주는 비유로 기록했습니다. 아마 성경을 부인하거나 믿지않으려는 사람들은 성경이 틀렸다고 혹은 엉 터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양면성에 대해서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말씀에 대해서 여러가지 각도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흔히 우리는 이단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별 생각없이 이단이라고 말합니다. 이단은 한자어로는 끝이 다른 사람을 말한 것인데 중요한 것은 누구의 관점에서 이단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증인은 아마 기독교가 이단일 것입니다. 통일교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우리는 나와 다르면 이단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좀더 엄중히 말한 다면 예수와 다르면 이단입니다. 나와 다른것이 이단이 아닙니다. 예수와 다 른것이 이단입니다. 그러면 나는 예수와 같습니까 나도 예수와 다르면 이 단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제자나 듣는 무리들 중 하나인 청중일 수도 있 지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같은 신앙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그런 사람 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결국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제자이든 청중이든,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이면 오늘 회개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비유의 배경을 보면 마태복음 15:8-9절에 이사야(사 29:13)의 말씀에 대해서 강론하셨습니다. 그 내용은 (마 15: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 15: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걸림이 된줄 아시나이까"(마 15:12) 문제 가 되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말씀이 아니라 거부 반응을 보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말씀을 전달하면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거부반응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성경적인 설교말씀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의 악습과 가증스러운 믿음에 대하여 단호하고도 엄격한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무엇을 원하느냐 어떤 말씀을 좋아하니 그 말씀으로 전해 야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설교할 따름입니다. 뭐 할일이 없어서 여러분들의 비유나 맞추고 있습니까 혹 그렇게 해서 보이는 교회가 커지면 무엇하겠습니까 그것은 교회 성장도 하나님의 나라 를 이루는것 하고도 관계없는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 소경되지 않기 위함입니다. 제가 소경이면 좋겠습니까 그러면 오늘 여러분하고 구덩이에 빠지는 연습 이나 하는 것입니다. 젊은 목사한테도 야단 맡을 일이 있으면 야단 맡으시 기를 바랍니다. 설교의 목적은 하나님이 지금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달하시기를 원하시는 지 그것을 목사는 기도하고 바른 교훈으로 책망할 것은 책망하고 고칠것은 고치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 귀 다 막아놓 고 "당신은 월급이나 받고 설교만 하면되"라는 식으로 목사를 부리는 교회 가 있는가 하면 "나는 이목사보다 나이가 몇살 더 먹었어", 나는 "일류 대학 을, 유학을 했는데 박사 학위하나 같고 있지 않은 목사의 설교는 들어보나 마나야" 등 좌우지간 핑계도 많고 이유도 많고 아마 입씨름 하면 하나님도 당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물에빠져 죽으면 입만 둥둥 떴는데 지금은 물에빠져 죽으면 발바닥만 뜬답니다. 붕어하고 말하냐고요" 아마 예수님의 꾸지람은 제가 하는것 보다 비교가 않될 정도였을 것입니다. 사실 분개할 일입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사람들이 그의 아들이 와 보니 엉망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과 가증함과 인간의 방법으로 보이기 위 한 신앙 생활 입이 있이는 말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여 기서 예수님 한마디 하신것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론의 말씀으로 오늘 비유를 주신 것입니다. 이제 다시한번 오늘 본문을 읽어봅시다. 실감 나실 것입니다. 약 한달간 비가 오지않아서 가뭄으로 날리입니다. 한달만 비가오지 않는 다고 이정도니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하시겠다고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위엄하심과 그분의 뜻을 해아리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소경 되지 않기 위해서 깨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남북 정상회담 이 열릴 것 같더니 김일성이가 죽었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 앞에 어떤일이 또 일어날 것인지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소경되지 않기 위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나마 7.26-27일 B급태풍 '월트'가 몰고온 비로 급한대로 해갈이 된 지 역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돈으로 계산하니 약 4천억원 짜리라고 하는군요. 농경지 전체 가뭄면적 19만 6천 ha 가운데 3만-4만ha 정도는 해갈되었다고 할때 이정도를 암반관정을 기준으로 최소한 4-6백억원 듭니다. 이렇게 저렇 게 계산하여 나온것 입니다. 어디 이것을 돈으로만 따질 수 있겠습니까 만 일 다 물을 대려면 이미 시간이 지나서 피해지역은 이미 더 늘어날 것입니다. 태풍이 가져 온 비는 한번에 끝내지 않습니까 우리는 일련의 기상과 관련해서도 기도해야 할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많은 것을 깨달아아 할 것입니다. 말씀을 좀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예수님은 영적인 소경에 대하여 여러 가 지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바른 훈계의 교훈을 우리가 의도적으로 피하고 사람들의 좋아하는 것으로만 교회를 치장하는 것은 소경입니다. (마 23:16) 화 있을찐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마 23:17)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 게 하는 성전이냐 (마 23:24)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마 23: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 도 깨끗하리라 (사 43:8)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 (롬 2:19)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1.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지 못하는것은 소경입니다.
2. 하나님의 뜩을 바로 전하지 못하면 소경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대하는 여러분들에게는 영적인 눈이 확 열려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눈을 떠야 합니다. 눈이 멀어 있으면 참 불편합니다. 목사만 눈이 떠 있어도 불편하며 성도만 눈이 떠 있어도 문제입니다. 저도 눈이 떠 있고 여러분들도 눈이 떠 있어 하나님의 올바르신 뜻이 무 엇인지를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 세상의 빛 성경
본문:요 6:30-35 해마다 장막절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나간 40년 광야 생활 중에 성실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 당시를 되돌아 보고 곡식을 거두 어 들인 후 행하는 추수감사절 행사입니다. 일곱째 달 15일부터 일주간 행 하는 장막절 기념절기가 되면 2가지중요한 행사가 거행됩니다.
1)실로암으로 부터 물을 길러오는 행사입니다. 수만명이 두줄로 나란히 서서 10리 밖에 있는 제사장들이 실로암에서 순금 항아리에 물을 길러오는데 이사야 12:3절, 시 113편, 118편,부르며 성전으로 올라와서 제단에 물을 붇습니다. 이 행사는 광야에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반석을 치신 역사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2)등 놀이(금 촛대) 행사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여인의 뜰에다가 4개의 큰 등을 달아놓고 제사장, 바리 새인 사두개인들이 춤을 추고 일반 백성들은 빙 둘러 앉아 구경을 하는 것 입니다. 이 행사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빛으로 시작 하셨으므로 빛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세상을 향하여 빛 이 되라는 자부심을 갖는 것입니다. 또 이 불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구름 기 둥과 불 기둥으로 갈 길을 보이시고 인도하셨음을 기념하는 것으로서 예루 살렘 도시의 어느 곳에서나 볼수 있을 만큼 밝았다고 합니다. 이 불빛은 예 루살렘의 아낙네들이 바느질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밝기를 가히 짐 작할 수 있습니다. 큰 등에 불이 붙어지면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는 백성들의 축제가 벌어집니다. 사람들은 여기 저기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춥니다. 장막절은 안식일에 시작해서 그 다음 안식일에 끝나는 것이 상례입니다. 장막절 절기 행사가 거의 끝나 가는 마지막 날인 안식일 저녁이었을 것입니다. 마치 올림픽의 성화가 꺼지듯 4개 촛대의 불이 가물 가물 꺼져가고 이제는 노래 소리도 들리지 않고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쉽고도 엄숙한 순간입니다. 이 때 한 젊은이가 군중들을 헤치고 여인 의 뜰의 한 복판에 들어 섭니다. 잠시 긴장이 감돌았습니다. 드디어 그 젊 은이가 무리를 향해서 외쳤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본 론
1.意味 "나는 세상의 빛이다" (I am the light of the world). =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 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12절). 이 말씀은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두번째 '나는 \이다' (I AM)이 라는 선언입니다. 여기에서 '나는\이다'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하나님이신 바로 그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인 어떤 일을 하실 것인가를 보여 주는 위대한 선언입니다. 이 선언은 헬라어에서 독특 한 의미를 갖습니다. 결코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이 나 홀로 빛이라는 선 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선언입니다. 구약의 불 기둥이 빛은 하나님 자신의 顯現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께서는 자신이 바로 세상에 빛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시편 기자는"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 요"(시27:1)신약성경에서 사도 요한도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빛이 시다"(요일1:5)
그런데 지금 주께서는 이렇게 선언하고 계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장막절 마지막 날 예루살렘 도성을 비추고 있던 모든 불빛이 스러져 가는 극적인 순간에 선언되었던 예수님의 이 위대한 선언! "나는 세상의 빛이다."
2.주시는 교훈 =
1).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입니다.-마치 광야의 성막에서 영광스러운 빛이 주의 임재를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 심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서 찾아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바 로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한 임마누엘의 의미입니다.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죽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계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하나님!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우리 와 함께하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말씀 (LOGOS)이신 예수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을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손을 만졌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손을 만졌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무엇이었겠습니까광야길에는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걱정이 있었겠지만 그중 가장 큰 고통은 아마 고독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없는데서 오는 고독이 아닙니다. 적어도
2,000,000명에 가까운 군중들이 이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행진 중 에 많은 난관과 역경을 경험하게 되고 저마다 자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다 보면 사람은 많았지만 정말 마음을 터놓고 지낼 사람은 없었습니다. 자기의 삶을 다 내놓고 나눌만한 사람들이 없는 어떤 실존적인 고독이었을지도 모 릅니다. 고통이 올 때 우리는 저마다 홀로인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아무도 이 고통의 짐을 져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를 참으로 외롭게 합니다. 가 장 사랑하는 가족조차도 이 고통을 함께할 수 없다는 처절한 고독! 우리 인 생의 여정에는 이런 고독이 종종 있을 수 있습니다. 외롭고 힘겨운 광야 생활 중에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난 구름 기둥과 불 기둥! 누군가는 이렇게 소리쳤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시다."그 순간 이 광야를 걸어가면서 느껴야 했던 온갖 좌절과 방황은 새로운 희망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분 진실로 나의 모든 문제의 응답이신 그분 창조주이신 하나님. 나와 더불어 함꼐 계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이 하나님의 현현! 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놀라운 증거였던 것입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홀로 서기'라는 시가 있습니다. 서정윤이라는 젊은 시인이 쓴 시집 제목인데 시집으로는 우리나라 출판 사상 경이적인 판매 부수를 기록하고있습니다. 얼마나 유행했는가 하면 이 이름을 따서 '홀로 서기 찻집'도 생겼다고 합니다. 홀로서기
⑴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 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태어 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⑵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 아줄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 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다시 쓰러져 있었다. ⑹나의 전부를 버소 알몸뚱이로 모두를 대하고 싶다. 그것조차 가면이라고 말할지라도 변명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혼자가 되리라.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부리에 발톱에 피가 맺혀도 도와 주지 않는다.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 서기'를 익혀야 한다. 이것은 현대인들이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면서도 여전히 홀 로일 수밖에 없는 자기 실존에 대한 고독을 대표하고 있는 고백일지도 모 릅니다. 사실상 인간이 가장 깊은 의미의 고통 속에서 몰입할 때는 그 누구 도 함께해 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죽음의 다리를 건너갈 때 누구와 손 을 잡고 함께 건널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순간에도 나와 함께할 수 있는 분이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진정 놀라운 희망 이었습니다. 광야 생활 중에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신 하나님을 성경은 이 렇게 표현합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출 13:22)이것은 백성들에게 커다란 희망이었습니다. 걷고 있는 이 삶의 여정 에서 오늘의 고통이 아무리 심각하고 오늘의 방황이 아무리 어렵고 오늘의 좌절이 아무리 눈물겹다고해도 하나님만 떠나지 아니하신다면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만유를 창조하신 하나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섭 리하시는 그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길을 걸어갈수가 있습니다."볼찌어다.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세상 끝날까 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바로 이 빛은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였 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인도의 선언입니다.-우리가 말할 수 없는 가슴앓이와 고통을 당할 때 그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나눌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그들 이 우리와 함께 있어 줄 수는 있을지라도 우리를 인도해 주지는 못합니다. 광야 길을 방황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아마도 사 막의 無邊性이었을 것입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 그게 그것 같고 무 엇이 옳은지 분별하기도 힘듭니다. 이는 우리의 삶의 일상성을 말해 준다 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그저 그렇게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것 같 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길을 잃어버리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삶의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비 일비재 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사막의 강렬한 태양까지 연상해 보십시요 땡볕 아래에서 행군! 고통스러운 사막의 이 방황이 그들을 얼마나 지치게 했겠습니까
그런데 이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方向喪失症이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가도 제자 리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얼마나 지겨운 고통이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 앞에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 기둥은 움직이며 갈 길을 제시 했습니다. 이 얼마나 인상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까 이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따라 한 발 짝 두 발짝 내딛는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없고 백성들의 입에서는 금새라도 찬양과 감사와 시가 쏟아져 나올 것 같습니다. 민수기 9장에는 이장면이 극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진행하였고 구 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17절) 구름이 진행하면 백성도 진행하고 구름이 머물면 그들도 머물렀습니다. '민 9:18-2
3''여호와의 명을 좇아' 주님의 인도를 경험하며 나아가는 장 면들! 얼마나 아름답고 인상적입니까 그러나 그들에게도 유혹이 있었습니다. 사막 길에서는 아따금씩 오아시 스를 마나게 됩니다. 그래서 오아시스가 있는 쉼터에 한번 주저 앉으면 다시 일어나고 싶지 않은 유혹을 느꼈을 것입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힘든 방황 길을 끝없이 걸어야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구름이 떠올라 움직 이면 그들은 다시 발걸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여러분! 계속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정말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결정하십니까 아니면 쉽고 편리한 쪽으로 결정하십니까 나의 편리와 나의 쉼과 나의 안식을 위해서 결정하지는 않습니까 참으로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며 주께서 내가 어디로 가기를 원하시는지 그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만약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누군 가가 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하나님의 인재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편리와 자신의 쉼을 위해서 좇아가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이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리석은 사건들이 우리들의 삶 속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중대한 결정을 할 때 성경을 열어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십니까 지금은 구름기둥이 뜨지 않고 불 기둥 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보다 더 확실한 성경의 메시지 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또한 성령님꼐서 우리 안에서 또 우리 곁에서 우리 의 마음과 생각을 조명하십니다. 그러나 이렇게 확신과 평안을 주시며 우리 의 길을 인도하신다고 선포하신 말씀에도 불구하고 내 편리를 위해서 어떤 결정을 내리지는 않습니까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 명의 빛을 얻으리라."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빛 가운데 거하는 이 놀라운 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따른다'는 것은 계속해서 따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신실하고 계속적으로 성실하게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 빛 가운 데 걸어가며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는 삶! 당신은 하나님의 인도와 은총을 체험하는 이 삶을 원하십니까 그 대답은 "참으로 주님 따르기를 원하는 가"라는 질문과 더불어 해결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삶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주님의 말씀을 열어 그 분의 인도를 구하며 나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좇아 걸을 때 이 모든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들의 것 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 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상징된 이 빛은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요 하나님의 인도의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3. 하나님 나라의 약속입니다. =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그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했습니다. 약속의 땅으 로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이야 말로 궁극적으로 그 백성이 가야 할 땅입니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처럼 오신 예수님, 자연의 불빛은 사라져도 여전히 우리를 인도하는 영원한 인도자가 되시기 위해서 우리 역사 가운데 찾아오신 예수님! 그분은 이렇게 선언하고 계십니다. "바로 내가 구름 기 둥이야, 내가 불 기둥이야."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던 그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임재 이상으로 더 정확하고, 더 아름답고, 더 평안하게 우리 삶 속에 간섭해 오시는 예수님! 그 분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기를 원 하십니까 바로 약속의 땅인 아버지의 나라로 인도하길 원하십니다.그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요14:6)고 하셨습니다. 광야에서 백성들이 내려야만 했었던 그 많은 결정들! 그들은 약속의 땅으 로 잘 나가다가 때떠로 방향을 잘못들어 방황하고 헤메이며 위험에 직면하 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우리의 소망을 하늘나라에 두게 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릇된 것입니다. 당신의 결정은 하나님께 시선을 두게 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사모하게 합니까 그리고 발걸음을 주님 앞으 로 이끌고 있습니까 만일 다른 곳에 눈을 두게 하고 하나님께 맞춰진 초 점을 흐리게 만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결정이 아닙니다. 광야 에서 직면했던 가장 큰 유혹이 있었다면 약속의 땅을 등지고 애굽으로 돌아 가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만일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예수님이 함께하시지 않았더라면 하나님 의 나라를 향해서 진행하던 우리의 발걸음도 어느 한 순간에 돌이키고 말 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싶은 별수 없는 인간들 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가야할 목표를 다시 바라봅니다. 세상의 유혹과 세상의 정욕이 순간순간 우리 삶의 초점을 흐리게 만들때에도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다시 주님 앞 에 나가게 됩니다. 맺는 말 가야 할 그 땅이 있기에 약속의 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에 우리는 精 進할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그 인도를 좇아 오늘도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이 행렬 속에 당신이 서 있음을 바라볼 수가 있습 니까 지금 당신의 삶은 빛 가운데 있습니까 아지고 어둠 가운데 있지는 않습니까 이 어둠의 죄에서 방황 무목표, 무의미, 무목적일 수 있습니다.
혹시 당신의 삶이 이런 특징으로 묘사되고 있다면 당신은 어둠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여기 구름 기둥이 있습니다. 불 기둥이 있습니다. 빛으로 다가오시는 그분의 모습을 보십시오. 아니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자연의 불빛이 세상의 불빛이,친구들의 불빛이 理性의 불빛이 꺼지는 이순간에도 내 앞에 다가오시며 내게 말씀하시는 거룩한 주님! "나는 세상에 빛이닌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 빛은 당신을 위한 빛이십니다. 하늘나라로 가는 밝 은 빛이신 예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부르며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문 "광야같은 이 세상의 그 많은 사람 속에서도 여전히 홀로임을 느껴야 하는 우리들 그러나 이 고독과 고통속에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 아니하고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찾아오신 하나님 임마누엘이신 예수님! 주께서 이 땅에 오심을 감사합니다주님이 제게 오시지 않았더라면 제 삶의 방황은 언 제까지 계속되었을까요 주께서 제게 말씀하시고 주의 성령님을 통해 저를 인 도해 주셔서 제 삶의 목표를 바라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주님을 따 르렵니다. 어떤 댓가를 치른다해도 주님을 따름이 제 삶의 가장 큰 부요요, 승리요 영광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잠시 동안의 쾌락이 편리의 유혹때문에 주님 따르기를 주저하거나 포기하는 어리석은 저희들이 되지않게 하옵소서. 주 안에 거함이 빛 가운데 거함이여 주를 따름이 빛을 따름임을 알게 하 옵소서 영원한 빛으로 가득 찬 그 나라에 이를 때 제 인생 여정을 돌이켜보 며 주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오, 빛되신 주님의 인도 때문에 제 삶은 진정 의미있는 인생이었습니다.'라는 고백이 빛되신 주님을 따르기 원하는 저희 모두의 고백이요 결심 이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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