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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마15:21-28)

본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큰 믿음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이라고 해서 다 같은 믿음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믿음 중에도 큰 믿음이 있고 적은 믿음이 있으면, 또한 죽은 믿음이 있는가 하면 산 믿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작은 믿음 죽은 믿음이 아니라 큰 믿음 산 믿음을 원하십니다. 만일 성들의 믿음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에까지 도달하지 못하면 성도들은 주님에게 책망을 듣게 됩니다. 한 번은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 오시는 예수님을 향해 배에서 내려 물위를 걷다가 의심함으로 물속으로 빠져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손을 잡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을 하였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보시는 것은 성도들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수 많은 병자를 곤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의 병을 고치실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밈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두루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자 가나안 여자 하나가 소리를 지르며 흉악한 귀신들린 자기 딸을 구해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소리르지르오니 보내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제자들의 이 말의 뜻은 ‘소리를 지르고 성가시게 하니 빨리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어 보내소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외침에 대답하지 않니하시고 대신 제자들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 자신은 이스라엘의 잃은 양만을 찾을 의무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때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 앞에 와서 절을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라고 거절 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반가이 맞으시며 선뜻 딸을 붙들어 고쳐 주실 줄로 알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예기치 않은 주님의 냉대함에 당황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물러서지 않고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이 여자의 믿음에 감동하셨어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의 딸은 그시로부터 흉악한 귀신에게 놓임을 받고 자유함과 고침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믿음 없는 연고로 책망받은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으로 부터 큰 믿음을 가졌다고 칭찬을 받은 자는 단지 두 사람 뿐이 었습니다. 마8:5-13에 보면 가버나움에서 한 백부장이 주님에게 나아와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와하나이다” 라고 하인의 병을 고처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하인을 사랑하는 백부장에게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예수님께 대답하기를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백부장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백부장의 소원대로 예수님께서 그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본문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이 바로 믿음의 칭찬을 받는 주인공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럼 주님의 제자들도 이스라엘인도 부러워하는 주님의 칭찬을 듣고 이방인으로서 복음서에까지 기록이 되고 오늘날까지 수 많은 성도들에게 신앙의 귀감이 된 이 여인이 축복을 받고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첫째 주님의 냉대와 멸시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자신에게 ‘부스러기 은혜라도’주실 것을 호소하면서 겸손히 엎드렸기 때문입니다. 본문 25절에 보면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비통에 찬 간구를 하였어도 예수님께서는 전혀 반응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가나안 여인은 자기의 호소가 예수님으로부터 무시당하고 거절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위축됨이 없이 그녀는 예수님 앞에 와서 절을하고 예수님의 발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저를 도우소서” 라고 간구했습니다. 즉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의 무시와 냉대를 당하면 당할수록 더욱 강력하게 부르짖으며 겸손히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성서를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그당신의 이 가나안 사람들은 ‘아스도렛’라는 여신을 섬기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이 자기의 불쌍한 딸을 위해 이우상.저우상 찾아 다니면서 그 우상 앞에서 얼마나 열심히 빌었겠습니까 그러다가 종내 고침을 받지 못한 채 지내오다가 이제는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는 예수님께로 달려 온것입니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예수님은 냉혹하셨고 이 여인의 간구를 못 들은 척 하셨습니다. 이여인이 예수님을 향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맨 먼저 하는 말이 “나를 불상히 여기소서.내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렷나이다”라고 하였지만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단 한 말씀도 대답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한대 이야기를 걸었을 때에 상대편 사람이이 아무런 대답이 없으면 그것처럼 기분 나뿐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에게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라고 큰 소리로 애원을 하였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대답이 었습니다. 그래서 듣다 못해 제자들이 여인을 대신해서 예수님께 간구하기를 “이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라고 청했습니다. 즉 제자들의 이 말의 뜻은 ‘저 불쌍한 이방 여인이 귀신들린 딸 때문에 소리를 지르고 성가시게 하니 빨리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어 보내소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여자가 지르는 소리에 지금까지 아무런 대답을 하시지 않다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라고 말씀하시 것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을 중심하여 구속사를 전개하시는 하나님의 듯에 따라 먼저 유대인들을 구원할 사명을 띠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증거하기를 요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마10:5-6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즉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구속사에 있어서 유대인들만 포함되고 이방인들은 제외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온 세게의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유대인들에게만 전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도록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라는 말씀들은 한시적인 것이며 또한 예수님의 이같은 명령은 영원히 지켜야 할 명령도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먼저 유대인들 중 남은 자로부터 시작하여 이방세계에까지 확장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원이 먼저 유대인들에게 있는 것은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계시를 맡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도 한 유대인으로 또한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셨고, 또한 예수님은 최우선적으로 유대의 남은 자들을 구원하는 일에 심혈을 기우려야 했었습니다. 그 이유는 만일 예수님께서 제한된 시간 안에 이방선교에 시간을 투자하시게 되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비통에 찬 간구로 주님에게 부르짖어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아무런 대답도 아니하시고 냉혹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자기의 호소가 예수님으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거절을 당했어도 그녀는 예수님 앞에 와서 절을 하고 무릎을 꿇고 “저를 도우소서”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누구든지 어려운 역경 속에서 주님께 간구하였는데도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이 없으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기도에 대해서 의심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존재까지 의심하게 됩니다. 이 여인도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간절히 주님에게 간구했지만 주님으로 부터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 여인은 주님으로부터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라는 치욕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또한번 놀라운 사실은 주님의 냉대와 치욕적인 말을 듣고도 그녀는 예수의 발 아래 계속하여 엎드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자신이 비천한 개와 같은 존재임을 인정하고 겸손한 자세로 계속 간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여인의 믿음과 겸손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제자들도 이스라엘인도 부러워하는 주님의 칭찬을 듣고 이방인으로서 복음서에까지 기록이 되고 또한 오늘날까지 수 많은 성도들에게 신앙의 귀감이 되고, 축복을 받게 된 원인은 주님의 냉대와 멸시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 여인은 주님께서 자신에게 ‘부스러기 은혜라도’주실 것을 호소하면서 겸손히 엎드려 간구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구약성경 삼상24:14;삼하9:8;왕하8:13에 보면 자신을 개와 같은 존재로 여기고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를 지극히 겸손한 행위로 여겼습니다. 이 여인도 자신은 개와 같은 존재로 인정하고 겸손히 엎드려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자신은 유대인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구원과 은헤의 식탁에 결코 참예할 수 없지만 그러나 개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을 수 있는 것과 같이 그녀도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은혜의 일부는 누릴 수가 있다고 주님께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이처럼 가난안 여인의 믿음과 겸손에 감동하신 예수님께서는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녀의 소원을 들어 주셨습니다. 두번째 이 여인이 주님으로 부터 기도의 응답과 축복을 받게된 원인은 이 여인의 믿음이 컷기 때문입니다. 서두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믿음의 종류에는 큰 믿음 작은 믿음, 산 믿음 죽은 믿음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적은 믿음은 의심의 믿음이고 죽은 믿음은 귀신의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이 적은 자들에게 왜 의심을 하느냐고 책망하셨고 약2:17절 이하에 보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으며, 그리고 그 죽은 믿음을 귀신에게다 비유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도 적은 믿음 밖에는 없었는데 어떻게 해서 이방 여인이 주님으로부터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라는 칭찬과 함께 축복을 받았을까요 이 여인은 사랑하는 딸의 흉악한 귀신들린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이곳 저곳에 세워진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을 찾아다니며 빌기도하고 재물을 받치기도 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하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우상들은 이 여인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예수님의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그 예수님은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로 지나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여인은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지금까지 섬겼던 모든 우상들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끝가지 그 예수님으로부터의 응답을 받아 내겠다고 하는 믿음의 확신을 가졌습니다. 바로 예수님께 대한 이러한 믿음이 큰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가 아니면 않된다는 믿음, 이것이 바로 큰 믿음이요, 산 믿음인 것입니다. 이여인의 믿음은 그저 이방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단순한 믿음 그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단순한 믿음을 큰 믿음이라고 칭찬하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증거하기를 롬14:23 “믿음을 좇아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 처럼 우리는 언제나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말하며 믿음으로 행함으로 그 믿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그릇이 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은혜의 축복은 믿음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다고 하는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이며 고백이되어야 할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여인의 믿음은 성경적 지식을 많이 알고 있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드리는 제사 의식에도 참예한 경험도 없었습니다. 이 여인이 그저 안다고 하는 것은 예수가 다윗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라는 것 밖에는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성경은 증거하기를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 했습니다. 즉 구원의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의 그 단순한 믿음과 예수님을 아는 지혜만으로는 그녀가 주님으로부터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라는 축복의 말씀은 들를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큰 믿음으로 인정을 받고 축복을 받게 된 것은 주님의 치욕적인 시험을 인내 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여인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인의 요청을 거절하는 말씀이 아니라 그녀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의도였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는 왜 이 여인을 향하여 개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을까요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 사람들을 가리켜서 개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유는 이방사람들은 만나거나 모임을 가질때마다 싸운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말에도 이러한 것을 가리켜 모이면 개처럼 싸움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쨌든 화목함이 없이 서로 헐뜯으며 싸우는 이방사람들에게서 유대인들은 개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음란하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는 개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이 음란하다는 것은 비단 개만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음란의 뜻은 두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우상을 섬기는 행위를 음란하다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이방인들이 섬기는 여신전은 매춘 장소로 유명했었으며 또한 이방인들에게는 근친상간이 예사롭게 일어났었습니다. 그리고 개는 토했던 것을 다시 먹습니다. 그러니까 죄를 회개하고 다시 죄을 짓는 것을 말합니다.즉 이방인들은 자기가 짖은 죄를 토하고 개처럼 다시 토한 그 죄를 먹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주님에게 자신은 개가 아니라고 하지 아니하고 옳습니다. 당연히 제가 개지요 저는 개처럼 더럽습니다. 라는 의미로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개라고 하면서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스스로 개같은 인간이라고 시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개가 먹듯이 유대인들이 먹다 남은 부스러기 은혜라도 좀 달라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인의 요청을 거절하기 위해서 진정으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단지 이 이방인 여자의 믿음이 어떠한지를 시험하기 위한 의도로 말씀하셨는데 오히려 이 여인은 주님의 치욕적인 말씀에 동감을 하고 시인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먹다 남은 부스러기 은혜라도 좀 달라고 간청한 이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주님은 크게 감동하시면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말씀하시고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제 말씀을 줄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 본문에 기록된 여인은 귀신 들려 고통을 당하는 딸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라고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성경은 증거하기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굳게 믿고 간구하는 자에게는 절망으로 인해 닫혀 있던 문은 분명히 열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불신과 불의로 엉클어진 세상에다 근심의 짐, 절망과 실패의 짐들을 내려 놓지 않고 큰 믿음을 가지고 기도로 예수님께 가지고 오면 절망은 소망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실패는 성공으로 바뀌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 간구하는 불굴의 믿음 앞에 절망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여인처럼 끝까지 자기 소원을 낙심하지 말고 간구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전 건축을 위해서 30일간 특별 새벽기도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응답은 커녕 오히려 더 절망적이고 전혀 소망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간구할 때마다 귀를 막고 계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구하는 자들에게 분명히 약속하시기를 마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간구하는 불굴의 믿음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게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나안 여자처럼 더 겸손하고,더 참고 인내하며, 또한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가서 자기의 억울함을 낭망치 않고 끝까지 호소하여 문제의 해결을 받았던 과부처럼 응답을 받을 때까지 인내하며 부르짖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편이 되셨어 우리를 위해 싸워주시고 능력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분이시지 결코 악한자를 도우시는 분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주님께 인정과 칭찬을 받고 문제를 해결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그 믿음은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가 있어기에 어떠한 난관이나 장애물 앞에서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끈질기게 간구한 용기를 가진 백절 불굴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 여인에게는 포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간구하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얼마나 큰 믿음을 소유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얼마나 끈질긴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가나안 여인은 흉악한 귀신이 들린 자기 딸이 고침을 받아야 한다는 한 가지 소원을 가지고 주님께 나와서 간절함과 백절 불굴의 믿음으로 간구했습니다. 그 결과 주님으로부터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라고 하는 칭찬을 듣고 소원을 성취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어떤 절박한 문제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내게 능력주시는 하나님께 나와서 불굴의 믿음으로 간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분명히 응답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문제가 있더라도 먼저 주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말고 모든 문제를 주 안에서 포기하지 말고 해결받고 응답 받고 축복을 받을 때까지 부스러기 은혜라도 내게 축복해 달라고 부르짖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전능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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