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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마15:21-28)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가난안의 한 여인이 예수님게 나아와 흉악한 귀신이 들 린 자기 딸을 고쳐 달라고 하는 간절한 애원으로 부터 시작합니다 성서를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그당신의 이 가나안 사람들은 아스도렛(Ashtoerth)이라는 풍요의 여신을 섬기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이 자기의 불쌍한 딸을 위해 이우상. 저우상.앞에서 얼머나 열심히 발었겠습니까. 그러다가 종내 고침을 받지 못한 채 지내오다가 이제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는 예수님께로 달려와 많은 어러움과 방해가 있 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으로부터 "네믿음이 크도다 " 라는 말을 든게 된니다 오늘 본문에 말씀하는 네 믿음이 크도다 라고 하실 때의 크다는 뜻은 헬라 원어는 (메가스) 라는 말로 이는 대단히 큰 위대한 이라는 뜻을 가 지고 있다,큰 것 중에도 가장 큰 것이라는 것입니다 , 그러니까 부자들 중에서도 큰 부자들을 가리켜서 어느정도 물질이 있는 사람은 그냥 부자(재산이 넉넉한사람)라고 한다 그것보다 많은면 거부 (아주 큰 부자)라고 한다. 그러나 부자들보다 조금더 많은 사름을 갑부(
첫째가는 부자)라고 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인을 보고 '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하실 때에는 그 말씀속에 숨어있는 내용은 ' 네소원대로 되리라'는 말씀의 이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떠나서는 어떻한것도 이루어질수 없다는 말이 성립된다. 롬14:23 믿음을 좇아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는 말처럼 우리는 언 제나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말하며 믿음으로 행함으로 그 믿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그릇이 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은혜의 축복은 믿음을 통하여서만 받는다고 하는것이 그리스도인의 신 앙이며 고백이되어야 할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여인의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는가를 살펴보면 이여인의 믿음은 겸손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을 선택하고 끝가지 그 예수님으로부터의 응답을 받아 내겠다 고하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고 이여인은 대담한 인내를 가지고. 이 여인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인내가 큰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믿음이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질문을 해 놓고  네가 계명을 아니니하시는 예수님앞에서 그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눅18:18-21)라고 하는 것과 같은 그런 상태의 믿음입니다 어려서부터 아무 생각도 없이 습관적으로 지켜오며 형성되어버린 믿음이 문제입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의식도 없습니다 단순히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으니 몸에배인 대로 오늘도 나와 앉아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이와같은 문화적으로 습관화 되어 있는 믿음은 또하나의 고질적인 큰 병입니다.
그런데 여기 이 여인의 믿음은 성경적 지식을 많이 안다는 의미에서의 믿음 도 아니며 절대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법례를 따라서 그의식을 준행하다는 그러한 의미에서의 믿음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리새인적 믿음도 아니요 제사장적인 믿음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여인은 믿음은 그저 이방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단순한 믿음 그것입니다 이러한 단순한 가운데 이여인의 믿음의 특징을 좀더 세분하여 살펴보면 첫재더는 다른 것을 생각지 않는다는 단순함입니다 둘재는 적극성입니다 누가 무라고 하여도 어떠한 시험이 있어도 끄덕이지 않고 끝가지 밀고 나아가는 적극적인 믿음입니다 세째는겸손하여 자기를 낮추는 믿음입니다 그리하여 자기 존재를 아주 형평없이 평가하고 잇는 이러한 특징들 을 볼수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이 여인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무엇이라고 하든 상광없이 예수님 앞에 나와 자기의 소원을 기어이 이루고자 하는 단순한 마음으로 주님앞에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여인이 예수님에게로 나오는데는 몇가지 시험이 있었음을 볼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예수님게서 아무런 대답을 하시지 않았다고 하는 점입니다 이여인이 예수님을 향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맨 먼저 하는 말이 나 를 불상히 여기소서. 내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나이다.라고 하지 만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23절에 기록된 대로 단 한 말씀도 대 답하지 않으시는 것이니다
예화)우리가 어떤 사람한대 이야기를 걸었을 때에 상대편 사람이이 아무 런 대답이 없으면 기분이 좋은 느낌은 아니라고 합니다 즉 교회에서 목사가 조금 인사하지도 았았다고 했을때에 기분이 상 하다고 하는대. 오늘 이 여인이 예수님게 나와서 내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사오니 불쌍히 여겨 달라며 큰 소리로 애원을 하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두번째시험은 .제자들의 방해였습니다 제자들이 와서 청허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라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무엇이라고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며 따라오니까 제발 조용히 해 달라고 붙들기도 하면서 말렸지만 막무가내로 발악을 하면서 말을 듣지 않으니 이제는 예수님께서 좀 말려서 보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신의 어러움을 이야기하면 예수님 에게로 인도해야할 책임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게로 나가겠다는 사람까지 못가게 하는 것은 분명히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대 이러한 시험을 뿌리치고 예수님께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시험은 선택받은 자가 아닌 이방 여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대문에 한참 아무런 말씀도 없다가 모처럼 한마디 하시는 말씀이 '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바지 아니하 였노라'고 하시는 것을 볼수있는데 이여인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낙심 적인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바꾸어서 생각하여 보면 나는 이스라엘 집에 보냄을 받은 것이지 너같은 이방 여자를 위하여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하는 참으로 냉정한 말슴입니다 다른 이야기라면 몰라도 이 말씀 앞에서 아마도 누구나 다쉽게 낙심하고 말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나안 여인은 이처럼 어려움까지도 넘어선 것입니다 그는 분명 선택받은 백성이 아닌 선민귄외에 있는 여자입니다 따라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선택된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다. 네번째 시험은  개와같은 취급을 당하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모욕적인 시간입니다
25-26절 말씀에 보면  여자가 와서 예수게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가라사 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기에서 말씀하신 자녀는 이스라엘 사람이요 개는 이방인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개 취급을 당했는단 말입니다 도대체 이러한 모욕을 당하고도 어떻게 극복할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견디기 어러운 시간이 아닐수 없습니다, 사실은 유대 사람들이 이방 사람등을 가리켜 개 같다고 하는 것은 일반적인 개념으로 지금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당시 유대 사람들이 이방 사람들 보고도 개라고 부르는것이 보통이였는데 이제 다른 사람도 아닌 예수님게서도 그렇게 부르셨다는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그 어떤누가 개라고 하든 상관치 않고 다 극복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에서 그말이 나왔으니 그것은 끝난 일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그당시 왜 유대인들이 이방 사람들을 가리켜서 개라고 부르는데에는 이유 가 잇는데) 이방사람들은 만나거나 모임을 가질때마다 싸운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말에도 개처럼 싸움다는 말이 잇는데 어쨌든 화목함이 없이 서로 헐뜯으며 싸우는 이방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유대이가들에게는 개처 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두번재 이유는 음란하기 때문입니다 이 음란하다는 것은 비단 개만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마는 그 행위가 눈 에 보이기 때문에 유대 사람들은 이방 사람들을 가창추하게 보는 이유가 두가지가 잇는데 하나는 우상을 섬기는 행위이고 다른자하나는 이성관계 입니다. 특별히 이방사람들의 종교 의식 자체로소 공공연히 간음이 행해졌으므로 서 그대문에 그 추함은 말이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의식때문에 근친상간이 예사로이 일어났고 심지어는 아버지 와 딸 사이에도 이러한 일들이 흔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저것이 개이지 어디 사람이냐는 것이이며 철저하게 율법속에 살아가고 있는 유대사람의 눈으로 볼때에는 그야말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던것입니다 세번재 이유는 토했던 것을 다시 먹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회개하고 다시 죄짓고 또 회개하고 또 짓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계속 후회하고 뉘우치면서 똑같은 죄를 계속 짓는 것이지요 그럴 때에 개와 같다는 말을 하게 되는데 어쨌든 이런한 점에서 유대 사람들이 이방 사람들을 개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예수님마저도 "이스라엘 사람에게 가야 하는 축복을 빼앗아서 개같은 너에게 주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하시니 참으로 냉정하고 절망적인 말씀이 아닐수 없 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이 시험을 아주 쉽게 넘어섭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여인은 자신이 개가 아니라고 하지를 않고 옳습니다.당연히 개지요. 개 처럼 더럽습니다. 그렇지만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개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였답니다
첫째는.주인이 없어 마구돌아다니는 들깨로서 사납고 그 숫자가 많아 길 을 나설때에는 반드시 이 들개들을 쫓을 수 있는 몽둥이를 지니고 다녀 야만 했다는 것입니가 두째는 .잘 길들여 양 떼를 지키는 개입니다 우리가 세퍼드(Shepherd)라고 하는 개는 세퍼드라는 말은 영어로 목자 라는 말입니다. 세번재.애완용이라는 개입니다 애완용이란 사람들과 같이 지내며 한방에서 먹고 자고 하는 것이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절대로 이 애완용 개를 키우지 않습니다 애완용개는 이방사람들의 개였습니다 이렇게 애완용으로 방안에서 키우는 개는 주인의 상 옆에 앉자서 있으면서 무엇이고 하나 먹을 것을 던져 주기를 바라며 기다리게 됩니다 예화(종교개혁자 마틴루터가 식사를 하면서 자기 옆에 있는 애완용 개가 침을 심키면서 자기의 손끝을 따라 열심히 눈을 움직이며 손이 상으로 가면 개의 눈길도 상으로 가고 ,상에서 손이 입으로가며 개의 눈길도 입 으로 가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개에게 고기조각 하나를 던져주면서 하는 말이 이 개처럼 고기 조각을 쳐다보는 것처럼 내가 하나님을 쳐다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다따' 그런대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 하는 이 여인은 말은 개는 개이지만 주인의 사랑을 받는 애완용 개라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애완용개는 주인이 먹여 주어야 먹는 개입니다 나는 개와같은 사람이지마는 그래도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그 상에서 떨어 지는 부스러기라도 먹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여인은 자신을 개로 낮추었을 뿐만 아니라 부스러기 은혜라도 좀 달 라는 것입니다 이몸은 큰 것을 받을 자격도 없거니와 결코 큰것을 원하지 않고 그적 작은 부스러기라도 좋겟다는 고백입니다 바로 이러한 겸손한 그 믿음을 예수님게서는 보고시 ;;네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말슴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이 비유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우리 하나 사람 한 사람이 겸손하게 낮추어서서 스스로 개와 같은 존재로 생각해 버리고 나면 그 이후에는 시험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제자들이 무엇이라고 하든 이스라엘이 어떻든 간에 이렇게 까지 자기를 닢출 수 있는 사람은 어떤한 시험이 닥치더라도 다 이길수가 있습니다 분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할 때에도 그렇게 허영된 소원보다는 아주 작은 소원 나는 본래 부족하여 큰일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저는 참으로 개와 같은 인간입니다 그러나 개도 주인의 던져 주는 부스러기를 먹고 살지 않습니까 라는 겸손하 고도 겸손해지는 믿음일 소유할때 네 믿음이 위대하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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