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믿음 (마15:21-28)
본문
성경에는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끝까지 고통으로 그치는 경우는 하나도 없다. 이것이 우리에게 펼쳐지는 신기한세계이다. 어떠한 상황에도 반드시 결론은 대만족이다. 설명이 부족하거나 미진한 부분은 전혀 없다.
그러므로 문제는 가득찬 세상에서 성경의 세계로 움직여 들어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대단한 기쁨이 아닐 수없다. 여기서는 한 여인이 무서운 일을 당한다. 자기의 딸이 무서운 귀신에사로 잡힌 것이다. 그것이 어떠한 상태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아도 말할수 없는 고통에 빠진 것은 틀림이 없다. 전혀 해결을 볼 수 없었던 이이방 여인은 유일하지만 확실한 해결처인 그리스도에게로 접근했다. 여인은 그리스도를 향해서 소리 지르고 있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나 그리스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아니하셨다. 여인은 계속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여진히 응답은 없었다. 제자들은 참다 못해서 그에게 부탁했다. "시끄러우니 어떻게 좀 해 보내소소." 그러나 답변은 차갑기만 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만을 위해서 왔다."과연 이것이 구세주의 대답인가 여인은 만난 그리스도는 이처럼 냉냉한사람이었다. 우리가 만난는 그리스도도 이와 같이 무반응을 수 없다. 그는 분명히그리스도이지만 우리의 기도에 아무런 응답을 주지 않는다.그리하여많은 사람들은 열성을 잃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별반 능력이 없는 이로 생각하게 된다. 보라 자기의 문제를 기도하는 사람치고 끝까지 계속하며 믿음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무반응이라고식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보면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양에게 그렇게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우리의 신앙을 시험하기 위해서 무관심한 것처럼 행동하신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무관심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양들에게 의리를 져버리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강변하신다. "자녀의 떡을 개에게 줄 수 없다. " 즉 자녀에게는 떡을 먹이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고 사는 이들은 절대로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일단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절대로 버림을 받지 않는다. 잠시 어렵게 보인다고 해도 절대로 하나님은 우리가 망하도록 버려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자녀를 사랑하신다. 이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해 심지가 견고한자는 복이 있나니(사 26:3). 자
그렇다면 이제 이 여인의 믿음을 살펴보자.예수는 그를 향해서 믿음이 크다 칭찬하시고 소원을 들어주셨다. 어째서 믿음이 큰가 그여인과 똑같은 상태로되는 것이 믿음이다.그리고 이것이 모든 상황을 바꾸는 원동력이 된다. 믿음이란 단어처럼 사람들에게 오해를 많이 받는것도 없다. 하지만 여기서 믿음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분명한 이해를가져야 한다.
첫째로 그 여인은 믿음이 대상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그러기에 " 주 다윗의 자손이여"하고 부른다. 그는 "높은 분이여" 또는 "능력 많은분이여"하지 않았다. 자기 문제를 해결할 분은 오러지 구세주 밖에 없음을 깨닫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가 예언한 다윗의 후손임을 알고 있다. 이 점에 중요한 것이다.믿을 이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스도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자주 "능력 많은 분"을 찾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어떤 교회를 찾는가 참으로 그리스도의 지식이 잘 전파되는 곳을찾지 않는다. 마음 속으로도 그리스도를 더 알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랑이 많다거나 시설이 좋고 자녀교육 잘 시키는데를 찾는다. 목사도 말 잘하거나 귀신을 잘 쫓고 병 잘 고치고 예언하는 이들을 찾기 일수이다. 자 이제 분명히 하자. 우리가 추구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그가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지, 그래서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 열심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여인처럼 그리스도가 대답이없는 것 같아도 내게 무관심한 것처럼 느껴져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 믿음의 행진을 해 나갈 것이다. 그리스도만이 믿음의 대상이요 알아야 할 지식이다.
둘째로 그 여인은 자기의 공로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자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자기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요 무가치한 존재요 오로지 하나님의 자비하심 외에는 기댈데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자기의 자존심보다는 자기의 문제가 큰 것을 너무나 잘 깨닫고 이것이은혜받을 입장이다. 누구나 하나님 앞에 자기 공로를 들고 나온다. "내가 이렇게 기도하고 이렇게 착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양심은말한다. "너는 죄인이다. 너는 자격이없다. 너는 부족하다. "그러면더욱 열심을 내어 기도하고 금식하고 매달린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하나님 앞에 엎드리면 자신이 없다. 왜 자기의 공로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자비에 매달리지 않는다 이 여인처럼 믿을 대상이 자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게 되는 것이 천국문 앞에 서게 되는 방법이다. 그리고 죄인인 자신을 위해서 그저 작은 부스러기를 원했다. 그것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하나님의 작은 한 부분이라도 우리 속에 머문다면 그것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도 남을 능력이 주어진다. 하나님의 것이 이처럼 강하다면 왜 내것을 내세우겠는가! 자 이제 마지막으로 이 여인이 한대로 하자. 끝까지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날 때까지 그 방법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신앙은 그리스도를 끝까지 바라보는 것이다.그리고 그의 가르침대로 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신앙의 지식을 보여주었다. 그가 우리의 짐을 짊어지고우리 속에 새 생명을 부어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자 이제 그 약속을 따라서 사는 것이다. 그 약속대로 마음 속에서부터 생각하자. 눈에 보이는 현상에 마음을쏟지 말자. 귀에 들리는대로 판단해서 마음이 흔들리고 낙심하지말아야 한다. 육신의 눈과 귀는 잠시 닫고 오히려 신앙을 통해서 보이는그리스도에만 우리의 마음을 고정시킨다. 그러면 신앙의 귀는 들을 것이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그 다음에야 육신의귀도 같은 말을 들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가득찬 세상에서 성경의 세계로 움직여 들어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대단한 기쁨이 아닐 수없다. 여기서는 한 여인이 무서운 일을 당한다. 자기의 딸이 무서운 귀신에사로 잡힌 것이다. 그것이 어떠한 상태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아도 말할수 없는 고통에 빠진 것은 틀림이 없다. 전혀 해결을 볼 수 없었던 이이방 여인은 유일하지만 확실한 해결처인 그리스도에게로 접근했다. 여인은 그리스도를 향해서 소리 지르고 있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나 그리스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아니하셨다. 여인은 계속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여진히 응답은 없었다. 제자들은 참다 못해서 그에게 부탁했다. "시끄러우니 어떻게 좀 해 보내소소." 그러나 답변은 차갑기만 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만을 위해서 왔다."과연 이것이 구세주의 대답인가 여인은 만난 그리스도는 이처럼 냉냉한사람이었다. 우리가 만난는 그리스도도 이와 같이 무반응을 수 없다. 그는 분명히그리스도이지만 우리의 기도에 아무런 응답을 주지 않는다.그리하여많은 사람들은 열성을 잃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별반 능력이 없는 이로 생각하게 된다. 보라 자기의 문제를 기도하는 사람치고 끝까지 계속하며 믿음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무반응이라고식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보면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양에게 그렇게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우리의 신앙을 시험하기 위해서 무관심한 것처럼 행동하신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무관심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양들에게 의리를 져버리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강변하신다. "자녀의 떡을 개에게 줄 수 없다. " 즉 자녀에게는 떡을 먹이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고 사는 이들은 절대로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일단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절대로 버림을 받지 않는다. 잠시 어렵게 보인다고 해도 절대로 하나님은 우리가 망하도록 버려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자녀를 사랑하신다. 이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해 심지가 견고한자는 복이 있나니(사 26:3). 자
그렇다면 이제 이 여인의 믿음을 살펴보자.예수는 그를 향해서 믿음이 크다 칭찬하시고 소원을 들어주셨다. 어째서 믿음이 큰가 그여인과 똑같은 상태로되는 것이 믿음이다.그리고 이것이 모든 상황을 바꾸는 원동력이 된다. 믿음이란 단어처럼 사람들에게 오해를 많이 받는것도 없다. 하지만 여기서 믿음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분명한 이해를가져야 한다.
첫째로 그 여인은 믿음이 대상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그러기에 " 주 다윗의 자손이여"하고 부른다. 그는 "높은 분이여" 또는 "능력 많은분이여"하지 않았다. 자기 문제를 해결할 분은 오러지 구세주 밖에 없음을 깨닫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가 예언한 다윗의 후손임을 알고 있다. 이 점에 중요한 것이다.믿을 이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스도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자주 "능력 많은 분"을 찾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어떤 교회를 찾는가 참으로 그리스도의 지식이 잘 전파되는 곳을찾지 않는다. 마음 속으로도 그리스도를 더 알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랑이 많다거나 시설이 좋고 자녀교육 잘 시키는데를 찾는다. 목사도 말 잘하거나 귀신을 잘 쫓고 병 잘 고치고 예언하는 이들을 찾기 일수이다. 자 이제 분명히 하자. 우리가 추구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그가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지, 그래서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 열심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여인처럼 그리스도가 대답이없는 것 같아도 내게 무관심한 것처럼 느껴져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 믿음의 행진을 해 나갈 것이다. 그리스도만이 믿음의 대상이요 알아야 할 지식이다.
둘째로 그 여인은 자기의 공로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자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자기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요 무가치한 존재요 오로지 하나님의 자비하심 외에는 기댈데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자기의 자존심보다는 자기의 문제가 큰 것을 너무나 잘 깨닫고 이것이은혜받을 입장이다. 누구나 하나님 앞에 자기 공로를 들고 나온다. "내가 이렇게 기도하고 이렇게 착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양심은말한다. "너는 죄인이다. 너는 자격이없다. 너는 부족하다. "그러면더욱 열심을 내어 기도하고 금식하고 매달린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하나님 앞에 엎드리면 자신이 없다. 왜 자기의 공로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자비에 매달리지 않는다 이 여인처럼 믿을 대상이 자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게 되는 것이 천국문 앞에 서게 되는 방법이다. 그리고 죄인인 자신을 위해서 그저 작은 부스러기를 원했다. 그것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하나님의 작은 한 부분이라도 우리 속에 머문다면 그것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도 남을 능력이 주어진다. 하나님의 것이 이처럼 강하다면 왜 내것을 내세우겠는가! 자 이제 마지막으로 이 여인이 한대로 하자. 끝까지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날 때까지 그 방법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신앙은 그리스도를 끝까지 바라보는 것이다.그리고 그의 가르침대로 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신앙의 지식을 보여주었다. 그가 우리의 짐을 짊어지고우리 속에 새 생명을 부어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자 이제 그 약속을 따라서 사는 것이다. 그 약속대로 마음 속에서부터 생각하자. 눈에 보이는 현상에 마음을쏟지 말자. 귀에 들리는대로 판단해서 마음이 흔들리고 낙심하지말아야 한다. 육신의 눈과 귀는 잠시 닫고 오히려 신앙을 통해서 보이는그리스도에만 우리의 마음을 고정시킨다. 그러면 신앙의 귀는 들을 것이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그 다음에야 육신의귀도 같은 말을 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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