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의 기적 (마14:13-21)
본문
1+1은 얼마일까요 세상적으로 말하면 둘이죠.그렇죠 아마 그렇게 국민학교때 배웠을 것이고 그것이 세상의 진리입니다.1+1=2.그러나 믿음의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1+1이 믿음에 따라서는 11이 됩니다.1+1+1+1 하면은 물론 넷입니다.그러나 믿음의 세계는 그렇지만은 않습니다.1+1+1+1 하면은 1,111도 됩니다.이것이 믿음의 세계입니다.오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예수님이 빈 들에 가신 이유 먼저 13절을 한 번 보겠습니다.“예수께서 들으시고 배을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 간지라” 예수께서 배를 타고 떠나서 따로 빈 들에 가셨다고 했습니다.왜 예수님이 빈 들로 가셨을까요
첫째는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헤롯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보고를 제자들을 통해서 들었습니다.주님의 마음이 너무너무 아프셨습니다.그뿐만 아니라 그 헤롯이 이제는 예수님에게까지 적의를 품고 죽이려고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물론 예수님게서 십지가를 지시기 위해서 이땅에 오셨지만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은 항상 모든 일을 하실 때마다 ‘때가 되매’일을 하셨습니다.이 세상에는 인간의 때와 하나님의 때,두가지 종류의 때가 있습니다.인간의 때를 헬라어로는 크로노스라고 하고 하나님의 때를 카이로스라고 합니다.성경에 보면 이 카이로스라는 말을 기회라고 번역했습니다.하나님의 때가 바로 기회입니다.하나님의 때가 바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런데 아직 때가 안된 것입니다.그래서 주님은 헤롯의 적의를,죽이려고 하는 헤롯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서 빈 들로 가셨던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쉬시기 위해서 빈 들로 가셨습니다(마6:31).그러나 사실은 예수님 자신이 쉰다기보다는 제자들을 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이들은 전도여행을 마치고 이제 돌아왔습니다.얼마나 피곤한지 모릅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들로 하여금 쉬도록 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데리고 빈 들로 가셨던 겁니다.우리는 때때로 쉬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그래서 우리 교회는 매주 목요일 낮에 교구별로 기도원에 갑니다.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쉬기 위해서가는 겁니다.육적으로 쉬고 영적으로 은혜받기 위해서가는 겁니다.
셋째는 예수님께서 조용하게 제자들에게 청지기 세미나를 할려고 가신겁니다.다시 말해서 이제 머지않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게 될 것인데 이들에게 어떤 위험이 다가올 것인가 위험에 대한 경고도 하면서 이들로 하여금 준비를 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빈 들로 가셨던 것입니다.
2,오병이어의 기적 여기 그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에 관한 기록이 나옵니다.이 기적이 일어난 장소는 바로 빈 들입니다.예수님은 그의 공생애를 시작할 때 제일 먼저 빈 들에서 시작했습니다.거기서 40일을 금식하면서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신 겁니다.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은 계속해서 기도를 하셨습니다.새벽에도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했습니다.마지막에도 그랬습니다.바로 빈 들은 기도하는 장소입니다.따라서 기적은 바로 기도하는 장소에서 일어납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해야 됩니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와 가로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15절) 기적은 영적으로 어두울 때 일어납니다.지금 우리 사회가 굉장히 어둡습니다.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너무너무 어둡습니다.그러나 여러분들 알아야 될 것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고 하신 그 말씀 그대로 바로 이런 때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런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었습니까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요6:6). 예수님의 제자들은 기적을 많이 체험한 사람들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믿음이 제대로 없습니다.이제 주님은 그들을 가르치시면서 시험을 합니다.과연 그들이 행하는 믿음이 있는가,살아있는 믿음이 있는가,빌립이 과연 신앙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지 합리적인,이성적인,세상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지 그것을 알기 위해서 시험하신 것입니다.또 기적을 베푸신 목적은 정말 그때 배고픔에 처해있었던 그들을 먹이기 위해서입니다.예수님은 배고픔을 해결해주려고 오신 분이 아닙니다.인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우리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굶주린 백성들을 보면서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이 동하여 그냥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신자들도 배고픔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제할 줄 알아야 됩니다.기적을 베푼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 되신 것을 저들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서 벌써 메시야시대가 임했고 또 그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벌써 이 땅에 임했다는 것을 저들에게 증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본문 16절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갈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분부하셨습니다.아마 제자들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이 말은 세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로 교회가 책임을 지라는 말입니다.교회를 향해 전도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가르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생명에 위협받는 사람들에게 굶주려 배고픈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먹을 것을 주라고 했습니다.의무를 회피하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책망입니다.또 이 말씀의 뜻은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너희들이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간구하라”하는 뜻입니다.한번 주님께 매어달려보라는 말입니다.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너희들이 채워주라는 말입니다.바람직한 삶이 어떤 것인지 보람있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불신자들에게 보여주면서 그것도 채워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기적을 일어나게 한 힘은 어디에 있습니까
첫째는 어린아이의 작은 희생입니다.큰 희생이 아니라 작은 희생이 기적을 일으키는 도구가 되었습니다.어린아이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기가 먹지 않고 예수님에게 바쳤습니다.이것이 위대한 것입니다.작은 희생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오병이어의 기적이라는 놀라운 기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둘째는 안드레의 작은 신앙입니다.여기에 보면 제자들이 가지고 왔다고 그러는데 요한복음 6장 8절에 보면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가져왔다고 분명히 기록되이 있습니다.안드레는 그 어린아이가 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에게 갖다드렸습니다.오늘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이 어린아이의 작은 희생과 예수님에게로 인도해서 거기에서 놀라운 기적을 만들도록 하는 신앙입니다.이것이 합쳐져서 예수님의 손안에 들어갔습니다.예수님의 손은 능력의 손입니다.예수님의 손은 세상을 만드셨던 창조의 손입니다.예수님의 손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손입니다.바로 그 손에 들어갔을 때에 예수님이 축복기도 하시고 저들에게 나누어 주시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내 작은 희생,그것을 주님께 바치고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꺼냐 하는 회의가 우리 마음에 들어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손에만 맡기두라 그것입니다.그 다음은 우리가 상관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그 다음은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그러면 주님께서 큰 역사를 이루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우리에게 주는 교훈
첫째로 주님은 우리에게서 작은 것은 취하셔서 많게 만드는 분이십니다.주님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우리들에게 기적의 체험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은 작은 것이지만 우리에게서 취하셔서 큰 것으로 만듭니다.물 한 방울은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그러나 이것이 많이 모여지면 강이 됩니다.그것이 더 많이 모여지면 바다가 됩니다.거기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축복하신 후에 그것을 쪼개고 또 쪼갭니다.쪼갤 때는 희생의 각오가 있어야 됩니다.주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앙이 있어야 가능합니다.내 생활에서 일부를 쪼개고 내가 써야 할 용돈에서 일부를 쪼개고 그것이 쪼개는 겁니다.
셋째로 지금 영적으로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빈 들에 살고 있습니다.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영적인 양식이 되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그것을 우리가.주어야 됩니다.
넷째로 주님은 목자없는 양 같은 무리들을 먹이십니다.가르치시고 병도 고쳐주고 또 먹이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이고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려면 이백데나리온이 필요합니다.돈이 없습니다.경제적인 것이 없습니다.우리 교회는 예산 부족입니다.’고 핑계합니다.두 번째로 제자들의 핑계는 ‘아 여기가 빈 들인데 어디에서 이런 것을 구하느냐 돈이 있다 하더라도 여기서는 마을까지 너무 거리가 멉니다.소말리아가 어디있는지 모르지만 거리가 먼 것은 틀림없습니다 라고 핑계했습니다.’그 다음에 ‘때가 이미 저물었습니다.거리가 가까워도 때가 이미 저물었습니다.이 캄캄한 데 어디로 갑니까’라고 핑계했습니다.바로 이렇게 의무를 회피하는 제자들을 예수님은 점잖케 책망을 하십니다.“갈 것 없다 너희가 주어라” 이 말은 굉장한 책망입니다.작은 희생이면 되는 것입니다.그들을 주님께로 인도만 하면 됩니다.우리가 작은 희생을 못하는 것입니다.중요한 것은 작은 희생입니다.큰 희생이 아닙니다.믿음도 굉장한 믿음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작은 믿음을 요구하는 겁니다.작은 믿음,작은 희생,작은 사랑,바로 이 작은 것을 무시하지 마십시오.작은 것이 모여서 큰 것이 됩니다. 다섯째로 남은 조각이 처음 가지고 있었던 것 보다 더 많았다고 하는 점입니다.처음에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였는데 오천명이 먹고도 남은 것이 12광주리입니다.주면 절대 손해가 안갑니다.부스러기가 더 많이 남습니다.우리가 남에게 작은 희생을,작은 사랑을 베풀면 하나님께서 내게 부스러기를 주시는데 그 부스러기가 처음 희생보다 몇 배가 더 크게 돌아옵니다. 이제 바라기는 우리의 작은 희생 우리의 작은 신앙,이것이 모아져서 예수님의 손에 드림으로 현대판 오병이어의 기적이 우리들의 삶 속에 날마다 나타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예수님이 빈 들에 가신 이유 먼저 13절을 한 번 보겠습니다.“예수께서 들으시고 배을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 간지라” 예수께서 배를 타고 떠나서 따로 빈 들에 가셨다고 했습니다.왜 예수님이 빈 들로 가셨을까요
첫째는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헤롯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보고를 제자들을 통해서 들었습니다.주님의 마음이 너무너무 아프셨습니다.그뿐만 아니라 그 헤롯이 이제는 예수님에게까지 적의를 품고 죽이려고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물론 예수님게서 십지가를 지시기 위해서 이땅에 오셨지만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은 항상 모든 일을 하실 때마다 ‘때가 되매’일을 하셨습니다.이 세상에는 인간의 때와 하나님의 때,두가지 종류의 때가 있습니다.인간의 때를 헬라어로는 크로노스라고 하고 하나님의 때를 카이로스라고 합니다.성경에 보면 이 카이로스라는 말을 기회라고 번역했습니다.하나님의 때가 바로 기회입니다.하나님의 때가 바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런데 아직 때가 안된 것입니다.그래서 주님은 헤롯의 적의를,죽이려고 하는 헤롯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서 빈 들로 가셨던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쉬시기 위해서 빈 들로 가셨습니다(마6:31).그러나 사실은 예수님 자신이 쉰다기보다는 제자들을 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이들은 전도여행을 마치고 이제 돌아왔습니다.얼마나 피곤한지 모릅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들로 하여금 쉬도록 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데리고 빈 들로 가셨던 겁니다.우리는 때때로 쉬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그래서 우리 교회는 매주 목요일 낮에 교구별로 기도원에 갑니다.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쉬기 위해서가는 겁니다.육적으로 쉬고 영적으로 은혜받기 위해서가는 겁니다.
셋째는 예수님께서 조용하게 제자들에게 청지기 세미나를 할려고 가신겁니다.다시 말해서 이제 머지않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게 될 것인데 이들에게 어떤 위험이 다가올 것인가 위험에 대한 경고도 하면서 이들로 하여금 준비를 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빈 들로 가셨던 것입니다.
2,오병이어의 기적 여기 그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에 관한 기록이 나옵니다.이 기적이 일어난 장소는 바로 빈 들입니다.예수님은 그의 공생애를 시작할 때 제일 먼저 빈 들에서 시작했습니다.거기서 40일을 금식하면서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신 겁니다.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은 계속해서 기도를 하셨습니다.새벽에도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했습니다.마지막에도 그랬습니다.바로 빈 들은 기도하는 장소입니다.따라서 기적은 바로 기도하는 장소에서 일어납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해야 됩니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와 가로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15절) 기적은 영적으로 어두울 때 일어납니다.지금 우리 사회가 굉장히 어둡습니다.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너무너무 어둡습니다.그러나 여러분들 알아야 될 것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고 하신 그 말씀 그대로 바로 이런 때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런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었습니까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요6:6). 예수님의 제자들은 기적을 많이 체험한 사람들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믿음이 제대로 없습니다.이제 주님은 그들을 가르치시면서 시험을 합니다.과연 그들이 행하는 믿음이 있는가,살아있는 믿음이 있는가,빌립이 과연 신앙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지 합리적인,이성적인,세상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지 그것을 알기 위해서 시험하신 것입니다.또 기적을 베푸신 목적은 정말 그때 배고픔에 처해있었던 그들을 먹이기 위해서입니다.예수님은 배고픔을 해결해주려고 오신 분이 아닙니다.인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우리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굶주린 백성들을 보면서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이 동하여 그냥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신자들도 배고픔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제할 줄 알아야 됩니다.기적을 베푼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 되신 것을 저들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서 벌써 메시야시대가 임했고 또 그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벌써 이 땅에 임했다는 것을 저들에게 증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본문 16절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갈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분부하셨습니다.아마 제자들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이 말은 세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로 교회가 책임을 지라는 말입니다.교회를 향해 전도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가르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생명에 위협받는 사람들에게 굶주려 배고픈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먹을 것을 주라고 했습니다.의무를 회피하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책망입니다.또 이 말씀의 뜻은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너희들이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간구하라”하는 뜻입니다.한번 주님께 매어달려보라는 말입니다.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너희들이 채워주라는 말입니다.바람직한 삶이 어떤 것인지 보람있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불신자들에게 보여주면서 그것도 채워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기적을 일어나게 한 힘은 어디에 있습니까
첫째는 어린아이의 작은 희생입니다.큰 희생이 아니라 작은 희생이 기적을 일으키는 도구가 되었습니다.어린아이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기가 먹지 않고 예수님에게 바쳤습니다.이것이 위대한 것입니다.작은 희생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오병이어의 기적이라는 놀라운 기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둘째는 안드레의 작은 신앙입니다.여기에 보면 제자들이 가지고 왔다고 그러는데 요한복음 6장 8절에 보면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가져왔다고 분명히 기록되이 있습니다.안드레는 그 어린아이가 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에게 갖다드렸습니다.오늘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이 어린아이의 작은 희생과 예수님에게로 인도해서 거기에서 놀라운 기적을 만들도록 하는 신앙입니다.이것이 합쳐져서 예수님의 손안에 들어갔습니다.예수님의 손은 능력의 손입니다.예수님의 손은 세상을 만드셨던 창조의 손입니다.예수님의 손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손입니다.바로 그 손에 들어갔을 때에 예수님이 축복기도 하시고 저들에게 나누어 주시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내 작은 희생,그것을 주님께 바치고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꺼냐 하는 회의가 우리 마음에 들어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손에만 맡기두라 그것입니다.그 다음은 우리가 상관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그 다음은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그러면 주님께서 큰 역사를 이루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우리에게 주는 교훈
첫째로 주님은 우리에게서 작은 것은 취하셔서 많게 만드는 분이십니다.주님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우리들에게 기적의 체험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은 작은 것이지만 우리에게서 취하셔서 큰 것으로 만듭니다.물 한 방울은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그러나 이것이 많이 모여지면 강이 됩니다.그것이 더 많이 모여지면 바다가 됩니다.거기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축복하신 후에 그것을 쪼개고 또 쪼갭니다.쪼갤 때는 희생의 각오가 있어야 됩니다.주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앙이 있어야 가능합니다.내 생활에서 일부를 쪼개고 내가 써야 할 용돈에서 일부를 쪼개고 그것이 쪼개는 겁니다.
셋째로 지금 영적으로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빈 들에 살고 있습니다.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영적인 양식이 되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그것을 우리가.주어야 됩니다.
넷째로 주님은 목자없는 양 같은 무리들을 먹이십니다.가르치시고 병도 고쳐주고 또 먹이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이고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려면 이백데나리온이 필요합니다.돈이 없습니다.경제적인 것이 없습니다.우리 교회는 예산 부족입니다.’고 핑계합니다.두 번째로 제자들의 핑계는 ‘아 여기가 빈 들인데 어디에서 이런 것을 구하느냐 돈이 있다 하더라도 여기서는 마을까지 너무 거리가 멉니다.소말리아가 어디있는지 모르지만 거리가 먼 것은 틀림없습니다 라고 핑계했습니다.’그 다음에 ‘때가 이미 저물었습니다.거리가 가까워도 때가 이미 저물었습니다.이 캄캄한 데 어디로 갑니까’라고 핑계했습니다.바로 이렇게 의무를 회피하는 제자들을 예수님은 점잖케 책망을 하십니다.“갈 것 없다 너희가 주어라” 이 말은 굉장한 책망입니다.작은 희생이면 되는 것입니다.그들을 주님께로 인도만 하면 됩니다.우리가 작은 희생을 못하는 것입니다.중요한 것은 작은 희생입니다.큰 희생이 아닙니다.믿음도 굉장한 믿음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작은 믿음을 요구하는 겁니다.작은 믿음,작은 희생,작은 사랑,바로 이 작은 것을 무시하지 마십시오.작은 것이 모여서 큰 것이 됩니다. 다섯째로 남은 조각이 처음 가지고 있었던 것 보다 더 많았다고 하는 점입니다.처음에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였는데 오천명이 먹고도 남은 것이 12광주리입니다.주면 절대 손해가 안갑니다.부스러기가 더 많이 남습니다.우리가 남에게 작은 희생을,작은 사랑을 베풀면 하나님께서 내게 부스러기를 주시는데 그 부스러기가 처음 희생보다 몇 배가 더 크게 돌아옵니다. 이제 바라기는 우리의 작은 희생 우리의 작은 신앙,이것이 모아져서 예수님의 손에 드림으로 현대판 오병이어의 기적이 우리들의 삶 속에 날마다 나타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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