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을 걷고 안심하라 (마14:22-23)
본문
오늘 시대만큼 힘들고 무섭고 불안한 시대는 더 없을 것 같습니다.그래서 현대를 가리켜 폭풍과 광란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본문에 앞서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신 초자연적 시적권능을 행하셨습니다.그리고는 산으로 오라가셔서 기도하시다가 밤4시경에 예수께서 바다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이 사건을 마태,마가, 요한이 다같이 기록하고 있는데다 마가복음에제자들이 괴로이 노를 젓고 있었다고 말하는 거슬 볼때에 풍랑이 매우심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벽 3-6시쯤 되었기 때문에 온사방이 칠흑같이 캄캄한 밤이라 제자들이 두려움은 더욱 컸으리라 봅니다. 이때 제자들은 풍랑속에서 바다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바라보고서는 유령이라고 착가하고 무서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 주님은 문제앞에서 두려워 어쩔줄 모르는 제자들에게 찾아 오셔서 안심하라 내니두려워말라고 하시면서 제자들의 배에 함께 오르자 풍랑이 그쳤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성령님은 저희들에게 몇가지 교훈과 갚은 깨달음을주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도 주님의 이 음성은 들려져햐 합니다.
첫째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는 말씀입니다. 사건앞에서 두려움과 공포와 절망으로 가득찬 제자들에게 들려진 주님의 첫 음성입니다. 창세기 47장 9절에 애굽왕 바로 앞에 선 야곱은우리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우러을 보내었다라고 고백했듯이 수고와 슬픔뿐인 이세상은 풍랑이 끊없이 일고있는 바다라고 표현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봅니다.끊임없이 밀려드는시련과 고통과 죄악의 폭풍 앞에서 쓰러져가는 인생들에게 오직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 문제와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둘째 오라는 음성입니다. 성급한 베드로가 그때서야 주님을 알아보고는 자신도 물 위로 걷고싶어서 주님께 요청 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놀라운 신앙의 체험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불신앙이요 두려움이요 곧 주님을 의심한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던 베드로의 눈길이 바람을 보고 말았습니다.믿음의 눈이 의심의 눈으로 변하는 순간 그는 바다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베드로의 외침에 주님은 손을 내밀어 다시금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까. 신앙인들도 주님을 바라보다가 넘어질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천편일률적일수만은 없습니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또 넘어지면 일어나면서 점점 성화되어 가고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자이고 그분께 완전히 맡기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담대해야 합니다. 지금 주님께서 우리를 오라하고 부르실때 우리는 힘을 다해 주님께 나아갑시다. 오직주 예수께만 참 생명과 안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실패한 베드로에게 주님은 그원인이 의심에 있었음을 말씀해주십니다. 의심은 분리된 생각 또는 두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원어상 풀이가 됩니다. 베드로는 지금 풍랑이 일고 있는 캄캄한 바다위에 서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렇지만 주님보다는 현실이 그를 더욱 두렵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전능하신 예수님을 의심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모습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도 우리의 말음과 행동은 전혀 다르게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이와 같이 두 마음을품는 것이 의심입니다. 생각이 둘로 나뉘는 것이 의심입니다. 이 의심을 주님께선 기뻐하지 않습니다. 의심의 결과는 물에 빠져 들어가는부끄러움과 고통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연약한 베드로의 모습, 즉 우리 인생의모습을 아셨기에 그를 건지시고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풍랑을 그치게 하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무섭도록 혼란의 풍라속에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성도들은 우리 속에 임재해 계시는 성령님의 감동과 역사하심에 따라 마음문을 열고 주님의 음성에 똑바로 귀를 기울여야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풍랑을 바라보고 두려워만 하시기를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첫째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는 말씀입니다. 사건앞에서 두려움과 공포와 절망으로 가득찬 제자들에게 들려진 주님의 첫 음성입니다. 창세기 47장 9절에 애굽왕 바로 앞에 선 야곱은우리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우러을 보내었다라고 고백했듯이 수고와 슬픔뿐인 이세상은 풍랑이 끊없이 일고있는 바다라고 표현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봅니다.끊임없이 밀려드는시련과 고통과 죄악의 폭풍 앞에서 쓰러져가는 인생들에게 오직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 문제와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둘째 오라는 음성입니다. 성급한 베드로가 그때서야 주님을 알아보고는 자신도 물 위로 걷고싶어서 주님께 요청 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놀라운 신앙의 체험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불신앙이요 두려움이요 곧 주님을 의심한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던 베드로의 눈길이 바람을 보고 말았습니다.믿음의 눈이 의심의 눈으로 변하는 순간 그는 바다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베드로의 외침에 주님은 손을 내밀어 다시금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까. 신앙인들도 주님을 바라보다가 넘어질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천편일률적일수만은 없습니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또 넘어지면 일어나면서 점점 성화되어 가고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자이고 그분께 완전히 맡기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담대해야 합니다. 지금 주님께서 우리를 오라하고 부르실때 우리는 힘을 다해 주님께 나아갑시다. 오직주 예수께만 참 생명과 안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실패한 베드로에게 주님은 그원인이 의심에 있었음을 말씀해주십니다. 의심은 분리된 생각 또는 두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원어상 풀이가 됩니다. 베드로는 지금 풍랑이 일고 있는 캄캄한 바다위에 서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렇지만 주님보다는 현실이 그를 더욱 두렵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전능하신 예수님을 의심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모습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도 우리의 말음과 행동은 전혀 다르게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이와 같이 두 마음을품는 것이 의심입니다. 생각이 둘로 나뉘는 것이 의심입니다. 이 의심을 주님께선 기뻐하지 않습니다. 의심의 결과는 물에 빠져 들어가는부끄러움과 고통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연약한 베드로의 모습, 즉 우리 인생의모습을 아셨기에 그를 건지시고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풍랑을 그치게 하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무섭도록 혼란의 풍라속에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성도들은 우리 속에 임재해 계시는 성령님의 감동과 역사하심에 따라 마음문을 열고 주님의 음성에 똑바로 귀를 기울여야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풍랑을 바라보고 두려워만 하시기를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