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팔고서 기뻐하는 사람들 (마13:44-46)

본문

고기를 물고 개울을 건너던 개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물속에 비친 자기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개울물 속을 보니 또한 마리의 개가 고기를 물고 있었습니다. 그 물고기마져 뺏아 먹으려고 짓다가 자기 고기마져 잃어버렸습니다. 과도한 욕심을 비꼬는 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두개를 다 완벽하게 잡으려다 모두 놓치는 경우를 말합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기가 어렵다는 말도 같은 뜻이지요. 일에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하면 되는 일, 해서는 않될 일이 그것입니다. 사람이 일평 생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일은 무척 많이 있습니다.그러나,자신이 꼭 해야만 하는 일은 그 보다 훨씬 적을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더 적을 것이고요.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바쁜 사람들은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고싶은 일도 많습니다. 해야할 일도 많고요. 할 수 있는 일도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먼저하느냐 하는 우선순위는 혼란해져 있습니다. 우선순위가 흩어져서 정돈이 되지 않는 사람의 일생은 분주하지만, 결산을 해 보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이와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보물과 같습니다 하늘 나라는 진주와도 같습니다. 이것은 신앙인들의 고백입니다. 보물은 누구나 얻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나 참여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막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얻는데도 일정한 법칙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그를 따라 진리의 삶을 살기로 작정했으니, 하나님의 원칙에 충실 하도록 하십시다. 이제 부터는 이 원칙을 잊어 버리지 말고 잘 실천하여 흡족한 결산을 하도록 하십시다. 그러면, 이런 보물과 진주를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 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이 잘 가르쳐 주고 잇습니다.
첫째:하나님의 나라는 전면적인 투자를 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투자가치가 큰 곳에다 투자를 합니다. 그 투자가치가 확실 하면 확실 할 수록 전면적인 투자를 합니다.오늘 본문 말씀에도 보니까 보물과 진주를 발견한 사람이 "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팔아 그것을 산다."(마13:44) 라고 했습니다. 일부분의 투자가 아닙니다. 있는 모든 것을 팡아야 살 수 있는 것이지요. (All that he had)가지고 있는 것, 소유하고 있는 것 그것을 모두 다 처분해서 얻는 것입니다. 그것이 재산이든 ,건강이든,시간이든,재능이든 가지고 있는 것이면 전부 지불하고서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확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사랑 없이는 더욱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남녀가 데이트를 하는 데 시간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시간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최소한의 기본적인 시간을 빼고는 몽땅 투자를 합니다. 사랑이 정열을 불러 일으키지 정열적인 사람만이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모두가 정열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전면적인 투자를 불러 일으킵니다. 자신의 일생을 전면 투자할 곳을 발견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일부분의 투자로는 하나님 나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전적인 투자를 한 투자자들만 하나님 나라의 지분이 있습니다.
둘째:하나님 나라는 집중력을 가지게 합니다. 오늘 누가복음의 말씀에 보니까,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예수의 제자가 되겠다고 자원하고 나선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서 예수의 가르침을 받고 제자가 될 태니 거두어 달라고 간청하는 사람이엇습니다. 또한 부류의 사람은 예수께서 나의 제자가 되라고 선택한 사람이었습니다. 첫번째 사람에게는 예수께서 가는 길의 어려움을 말씀하셨습니다. 두번째 사람들에게는 집중력을 요구하셨습니다. 아버님 장례를 치르는 일,식구들과 고별인사를 나누는 일은 지극히 당연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꼭 해야할 일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예수께서는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의도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처음부터 삶의 우선적 중요성이 무엇인지 못을 밖아 놓지 않으면 아무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집중력을 가지지 않고서는 고된 실천의 길을 다 갈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해 놓았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는 데 머리둘 곳조차 없는 고된 실천의 길은 집중력으로 가는 길인 것입니다. 제자가 되려는 사람,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려는 사람은 삶의 우선성과 집중성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자격 요건입니다. 쟁기를 잡고 자꾸 뒤를 돌아다 보는 사람은 집중력이 흩으러진 사람입니다. 밭고랑을 제대로 맬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신앙인들을 경주자에 비유했습니다. 달음질하는 자가 많이 있지만 상얻는 자는 한 사람이니 집중력을 발휘하라고 했습니다.달음질 하는 사람이 구경할 것 다 하고 기웃거리고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구약에도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야훼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대단한 집중력을 보인 사람들입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신이 임해 감동을 받으면, 하나님의 일과 진리의 선포에 온 삶을 집중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우리의 전 삶을 끌어당깁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감동된 사람은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우선성과 집중력은 함께 갑니다. 우선성을 부여하는 일에는 집중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바울은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기로 작정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최고의 가치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쓰레기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최우선적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의 순서에서도 그렇고, 집중성에서ㅗ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최고의 순위를 요구합니다. 취미나 참고사항이 아니라 전 삶을 움직이는 근본적이길 원합니다.
셋째로:하나님의 나라는 포기하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다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여러 길이 있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길이 있을 뿐입니다. 진리의 길도 한 가지의 길입니다.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도 되고 저렇게 살아도 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한 가지 원칙을 신봉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길, 진리의 길을 간다는 것은 수 많은 다른 길의 가능성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청춘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하고 결혼의 결단을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뭇 남성과 여성을 포기하고 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다른 가능성은 차단합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부를 때에 집과 배와 세무소를 떠나라고 하시면서 불렀습니다. 직업을 버리는 것 만이 능사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포기를 할 수 있는 냐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가치를 최우선의 가치로 둘 수 있느냐는 이야기지요. 네 부모와 형제와 심지어 네 자신 까지 부인하라는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한 말씀도 이와 같은 의미입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선포도 이와 같은 의미입니다. 진리의 신 야훼와 불의의 신 바알을 함께 신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세겜 지파 대회에서 가나안 진입을 앞두고, 정의의 신 야훼를 섬기든지 불의한 신들을 섬기든지 선택하라고 촉구했습니다.하나님의 길 , 진리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항상 선택과 결단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선택은 다른 한 쪽의 포기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포기 없이는 선택도 없습니다. 결단도 포기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선택을 위한 결단은, 포기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나를 따라 오려거든 부모와 처자와 심지어 자기 자신 까지 포기 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잃는 것을 두려워하고 집착해서는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보물과 진주를 발견한 사람이 자신의 있는 것을 전부 청산하고 팔아서 투자하는 포기를 전제하지 않는 다면 보물과 진주를 얻을 수는 없겠지요.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잃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넷쨰:하나님의 나라는 기쁨입니다. 기뻐하며 돌아가는 사람들 입니다. 자기의 재산을 처분하러 가는 데 기뻐하며 빨리가는 사람들입니다. 뺏기는 것이라면 죽을 상을 하고 가겠지요. 그러나 재산을 처분하되 얻는 것입니다. 옛 것을 포기 하고 귀중한 새것을 얻는 것이지요. 신앙은 얻는 것입니다. 신앙은 잃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의무감이나 당위성은 더구나 아닙니다. 신앙은 기쁨입니다. 예수님의 요구는 포기하라는 것이 상당히 많습니다. 부모나 처자나 형제나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포기하고 나를 좇으라고 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손해와 의무감으로 느끼면 따를 수 없습니다. 신앙은 얻는 기쁨에 관한 이야기지요. 얻는 과정으로서의 포기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근심스러운 얼굴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손해로 생각하니 과도한 요구 같고, 부담으로만 다가온 것입니다. 기쁨입니다. 삭개오도 그렇고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옥합을 깨트린 여인도 그러했고,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가 그러했습니다. 생각하면 추운 겨울이라도 가슴이 따뜻해 지는 사람들이지요.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라고 했습니다. 이 사건의 근본 주제는 기쁨입니다. 이 장면을 영상화 한다면, 전 장면에 걸쳐 기쁨의 표정이 주를을 이룰 것입니다. 이 장면을 화폭에 담는다면 밝고 환한 색깔이 주색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빼앗기는 측면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얻는 것에 관한 이야기지요. 슬픔과 의무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쁨과 자발적 결단에 관한 이야기지요. 전면적인 투자도 그렇고, 포기도 그렇습니다. 기쁨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기쁨이 포기와 희생을 불러일으키고, 기쁨이 전면적인 투자를 낳습니다. 의무감은 도덕입니다. 신앙은 감격이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의무감이 아닙니다. 감동과 자발적인 결단입니다. 이런 기쁨은 하나님의 질서와 원칙을 가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영어로 기쁨이란 단어는 JOY 입니다. 이것을 어떤 사람이 재미있게 바꿔서 JESUS FIRST, OTHERS SECOND, YOU THE THIRD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될 떄에 기쁨이 온다는 것이지요. 재미있고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그리스도와 이웃 그리고 나라는 우선성의 질서가 잡힐 때는 기쁨이 가득해 진다는 것이지요. 삶의 우선성을 빨리 확보하면 할 수 록 여러분의 신앙적 삶은 기쁨으로 가득찰 것입니다. 하나님과 진리에 대한 우선성을 가집시다. 우리의 전 삶을 걸고 하나님의 진리를 실천하십시다. 그냥 그저 그렇게가 아니라, 사랑으로 불붙은 정열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십시다. 의무감이 아니라 기쁨으로 가득차서 콧노래 부르며 하십시다. 이런 축복과 삶의 질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567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