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작은 것부터 (마10:42)
본문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엄청난 사랑을 행하라고 하시지 않고 작은 사랑, 냉수 한그릇 사랑을 강조하셨습니다. 사랑중에 최고의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최선의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최고의 사랑은 약자 사랑입니다. 죄를 이길 힘이 없고, 선을 알되 행할 능력이 없고, 진리를 추구할 내적 추진력을 상실한 인간을 주님은 따라 오시면서 사랑하고 계십니다. 진.선.미에 무능하고 죄책과 오염으로 기준과 감수성이 마비되었을 때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약자 사랑이 오늘날의 나같은 죄인을 사랑하여 구원하신 것입니다. 약자 사랑을 매우 엄청난 것으로 여긴 나머지 아예 실행을 시도해 보 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약자 사랑은 여리고로 내려 가 다가 강조 만난 불행한 사람을 돕는 일일 것입니다. 있는 자는 없는 자에게 나눠주고, 지식 있는 자는 무식한 자를 가르 쳐 주고, 두 팔있는 자는 팔 없는 자에게 나눠주고, 점심먹은 사람은 점심을 굶은 자에게 자장면 값을 나눠주고, 큰 교회는 작은 교회를 돕는 일일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최고의 사랑은 원수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본능은 원수를 갚을 때까지 눈을 감을 수 없으며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해결이 안되는 보복관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과 인간의 수직관계를 그리고 인간과 인간사이의 수평관계를 십자가로 단번에 해결하신 뜨거 운 희생의 사랑입니다. 일본의 사무라이는 10년전 부친의 보복을 가르쳤고, 한국인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까지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유대인은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라고 교훈하며 회교국가 안에서는 손으로 지은 죄는 도끼 로 손을 끊는 일이 지금도 성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할 수 없는 이 사랑의 원리를 주님은 몸소 실천 하셨고, 그 사랑에 강권될 때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 두아들을 죽인 원수를 아들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성령님의 능력으로 그렇게 행하도록 가능성을 주셨으니 작 은 일부터 시행하라고 교훈하셨습니다. '네 이웃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고 나눠주는' 사랑의 실천운동이 나로 부터 있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최고의 사랑은 한몸 사랑입니다. 한 몸 사랑이란 어떤 사랑일까요 어떤 사람이 랍비(선생님)에게 찾아와서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머리가 둘 달린 어린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 아기는 두사람입 니까. 한 사람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랍비는 대답하기를 '한 아기의 귀를 꼬집어 보아라. 다른 아기 가 울면 한 사람이고 울지 않으면 두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일 때는 기쁨과 행복도 함께 나눌 수 있으나 둘일 때는 고통과 슬픔만 가중될 뿐입니다. 사랑과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지만 무거운 짐과 고통은 나눌 수록 줄 어들게 됩니다. 이처럼 사랑은 한 몸을 구성하고 미움과 무관심은 남 남이 되게 하고 개인 이기주의와 집단 이기주의의 무서운 악독에 빠지 게 됩니다. 교회는 사랑의 단체여야 하고 사랑과 생명을 나는 대화의 광장이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를 믿노라 하면서 병든자 배고픈 자 헐벗은 자 일자리 없는 자 고통을 당하는 자를 보고 '기도 밖에 할 것이 없다'고 한다면 그 얼마 나 양심을 속이고 가면적이며 위선의 탈을 쓰고 지껄이는 말일까요. 환자에게는 위로와 간호와 가정의 세탁과 자녀들을 돌보아 주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헐벗은 자에게 밍크 코트는 못주어도 내가 입은 옷 한 벌쯤은 나누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랑은 혀 끝에 있어도 실제적 사랑은 손 끝에 있다'는 말은 우리의 좌우명이 될 것입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어느 성도는 이웃사랑 이웃교회사랑을 위해 연 약한 몸으로 파출부와 일용 품팔이를 하기도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한 몸 사랑 냉수 한그릇 사랑이 아닐까요. 예수님은 거창하고 엄청나게 홍보전을 벌이면서 사랑하는 것보다 보 이지 않는 한 구석에서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작은 사랑을 더욱 기뻐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최고의 사랑을 이식받아 최선의 사랑으로 평화의 이 땅을 건설해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최고의 사랑은 약자 사랑입니다. 죄를 이길 힘이 없고, 선을 알되 행할 능력이 없고, 진리를 추구할 내적 추진력을 상실한 인간을 주님은 따라 오시면서 사랑하고 계십니다. 진.선.미에 무능하고 죄책과 오염으로 기준과 감수성이 마비되었을 때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약자 사랑이 오늘날의 나같은 죄인을 사랑하여 구원하신 것입니다. 약자 사랑을 매우 엄청난 것으로 여긴 나머지 아예 실행을 시도해 보 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약자 사랑은 여리고로 내려 가 다가 강조 만난 불행한 사람을 돕는 일일 것입니다. 있는 자는 없는 자에게 나눠주고, 지식 있는 자는 무식한 자를 가르 쳐 주고, 두 팔있는 자는 팔 없는 자에게 나눠주고, 점심먹은 사람은 점심을 굶은 자에게 자장면 값을 나눠주고, 큰 교회는 작은 교회를 돕는 일일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최고의 사랑은 원수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본능은 원수를 갚을 때까지 눈을 감을 수 없으며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해결이 안되는 보복관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과 인간의 수직관계를 그리고 인간과 인간사이의 수평관계를 십자가로 단번에 해결하신 뜨거 운 희생의 사랑입니다. 일본의 사무라이는 10년전 부친의 보복을 가르쳤고, 한국인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까지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유대인은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라고 교훈하며 회교국가 안에서는 손으로 지은 죄는 도끼 로 손을 끊는 일이 지금도 성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할 수 없는 이 사랑의 원리를 주님은 몸소 실천 하셨고, 그 사랑에 강권될 때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 두아들을 죽인 원수를 아들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성령님의 능력으로 그렇게 행하도록 가능성을 주셨으니 작 은 일부터 시행하라고 교훈하셨습니다. '네 이웃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고 나눠주는' 사랑의 실천운동이 나로 부터 있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최고의 사랑은 한몸 사랑입니다. 한 몸 사랑이란 어떤 사랑일까요 어떤 사람이 랍비(선생님)에게 찾아와서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머리가 둘 달린 어린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 아기는 두사람입 니까. 한 사람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랍비는 대답하기를 '한 아기의 귀를 꼬집어 보아라. 다른 아기 가 울면 한 사람이고 울지 않으면 두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일 때는 기쁨과 행복도 함께 나눌 수 있으나 둘일 때는 고통과 슬픔만 가중될 뿐입니다. 사랑과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지만 무거운 짐과 고통은 나눌 수록 줄 어들게 됩니다. 이처럼 사랑은 한 몸을 구성하고 미움과 무관심은 남 남이 되게 하고 개인 이기주의와 집단 이기주의의 무서운 악독에 빠지 게 됩니다. 교회는 사랑의 단체여야 하고 사랑과 생명을 나는 대화의 광장이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를 믿노라 하면서 병든자 배고픈 자 헐벗은 자 일자리 없는 자 고통을 당하는 자를 보고 '기도 밖에 할 것이 없다'고 한다면 그 얼마 나 양심을 속이고 가면적이며 위선의 탈을 쓰고 지껄이는 말일까요. 환자에게는 위로와 간호와 가정의 세탁과 자녀들을 돌보아 주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헐벗은 자에게 밍크 코트는 못주어도 내가 입은 옷 한 벌쯤은 나누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랑은 혀 끝에 있어도 실제적 사랑은 손 끝에 있다'는 말은 우리의 좌우명이 될 것입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어느 성도는 이웃사랑 이웃교회사랑을 위해 연 약한 몸으로 파출부와 일용 품팔이를 하기도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한 몸 사랑 냉수 한그릇 사랑이 아닐까요. 예수님은 거창하고 엄청나게 홍보전을 벌이면서 사랑하는 것보다 보 이지 않는 한 구석에서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작은 사랑을 더욱 기뻐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최고의 사랑을 이식받아 최선의 사랑으로 평화의 이 땅을 건설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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