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앙의 세계 (마11:1-9)
본문
1.구약을 통한 증명 예수님께서 그 당시를 불신앙의 세대라고 말씀하셨는데,오늘도 불신앙의 세대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이 이야기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질문을 한 것에서부터 시작을 합니다. 세례 요한이 그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냈습니다.“오실 그 이가 당신입니까” 오실 그 이는 메시야를 말합니다.“우리가 기다리고,우리가 전파하고,우리가 소원하는 그이가 바로 당신입니까”라고 예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아니면 또 당신이 아닌 다른 분을 우리가 기다려야 합니까” 이 말은 예수님이 정말로 메시야인지 아닌지를 대답해 달라는 말입니다.이것은 세례 요한의 의심에서 나왔다기보다는 예수님이 정말로 메시야인 것을 그 분의 입술을 통해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바로 그로라” 이렇게 답변하지 않고,이사야서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간접적으로 답변했습니다.다시 말하면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했습니다.이 말은 구약에 예언되어진 말씀을 그대로 가서 얘기하라고 하는 말씀입니다.예수님은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얘기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약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은 구약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증명하셨던 것입니다.
2.실족지 아니한 자,실족한 자 이렇게 말씀을 하신 다음에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1:6).이 말씀도 이사야서 8장 14절과 15절 말씀의 인용입니다.
그렇다면 실족지 아니하는 자는 누구이고,실족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실족지 아니하는 자는 예수님이 동정녀 탄생을 하셨을 때,수많은 기적을 베푸시고,부활을 하시고,재림을 하시고,심판을 하실 때,이러한 모든 사실들을 믿는 사람들이 바로 실족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실족하는 사람들은
첫째로 이성주의자입니다.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너무 쉽고,단순하다고 비난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무식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두번째로 합리주의자들입니다.예수님의 처녀 탄생이나 부활이나 이적,또는 재림을 믿을 수 없어 하는 사람들입니다.그래서 그들은 받아들이지 아니합니다.세번째로 정치적인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도 열심당이 있었습니다.시몬,가룟 유다는 열심당원입니다.그들은 메시야가 와서 그들을 억압하고 있는 세력인 로마를 무찌르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정치적인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싸웠습니다.여러분은 누가 더 높아질 것인가하고 생각하면 안됩니다.하나님 나라에서는 누가 더 높아지느냐보다는 누가 더 낮아지느냐가 더 중요합니다.낮아질수록 그 사람은 축복을 받는 것이고,낮아질수록 그 사람은 더 높은 사람입니다.세례 요한도 어떤면에서는 정치적인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이 그러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지금 성도들 가운데서도 그러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소위 기복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예수님을 믿으면 병이 낫고,출세하고,부자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물론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때,그런 외적인 면도 나타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이렇게 정치적인 면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실족하게 됩니다.네번째로 세속주의자입니다.기복적인 신앙을 가지고,예수님을 따르면 외적인 면에서 유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족한 사람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은 기복적이고,세속적이고,합리적이고,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말씀 그대로를 받아들이는,실족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이것은 세례 요한을 격려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입니다.영적 메시야를 거절하지 않는 자의 받을 축복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3.세례 요한에 대한 주님의 증거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마 11:7)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운데 우선 세례 요한에 대해 칭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갈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이것은 세례 요한이 바람이 불어도 갈대와 같지 않다는 것을 칭찬하신 것입니다.여기서 말하는 바람은 여러 가지를 말하지만 박해와 핍박을 말합니다.그러한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고 확고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세례 요한입니다.예수님은 그러한 그를 칭찬하신 것입니다.이것은 도덕적 의애 있어서 강직한 자를 말합니다.그러면서 “너희가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을 보러 나갔더냐”고 했습니다.궁궐에 있는 대신들은 부드럽고 색깔있는 옷을 입었습니다.세례 요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너희들이 선지자를 보러 나갔더냐” 그 당시의 말라기에서 선지자는 끝나고 그들은 4,5백년 동안 선지자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그 후에 최초로 온 선지자가 세례 요한입니다.세례 요한은 엄밀한 의미에서 구약의 선지자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 11:11) 세례 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중에 가장 크다고 했습니다.가장 중요한 것은 선지자 중의 선지자는 예수님인데,예수님이 오실 것을 얘기한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에스겔을 훌륭하다고 말합니다.그러나 세례 요한은 가장 분명하게 예수님에 대해 증거했습니다.“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하면서 예수님이 메시야인 것을 믿었고,우리의 구세주인 것을 믿고 증거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구약의 선지자중의 선지자입니다.“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이말은 세례 요한을 천하게 얘기한 것은 아닙니다.그가 구약에 속한 선지자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죽은 지 사흘만에 보활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이것은 우리는 알았습니다.우리는 들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세례 요한은 구약의 선지자이기 때문에 신약시대에 일어날 일을 다 알지 못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보다 높지 못합니다.우리는 신약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이나 재림,심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구약에 속한 선지자들은 그 당시의 위대하긴 했지만 그것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이제 세례 요한 이후에는 천국의 문이 열려지고 신약시대가 전개되면서 침노하는 자는 빼앗는다고 했습니다.침노한다는 말은 폭력을 가지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담을 헐고 달려 들어온다는 것입니다.이 말은 예수를 믿을 때 침노하는 자와 같은 자세를 가지고 천국에 가려고 하는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찐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 11:14) 말라기서를 보면 장차 엘리야가 온다고 했습니다.어떤 사람은 이 말을 윤회설이라고 합니다.이미 이 세상에 왔던 엘리야가 또 온다고 했기 때문에 윤회설이라고 합니다.이것은 기독교적 윤회설이 아닙니다.여기서의 엘리야가 온다는 말은 엘리야의 능력과 엘리야의 심령을 가지고 세례 요한이 와서 사역을 할것을 말씀한 것입니다.소위 기독교적 윤회라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것이고,잘못된 견해입니다.
4.불신앙의 세계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마 11:16119) 세례 요한은 금욕적인 생활을 했습니다.사람들이 이를 칭찬을 해야 하는데 미치고 귀신들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한과는 달리 먹고 마셨습니다.이처럼 반대로 살았으니 칭찬을 해야 하는데 예수님에게 먹는 것과 포도주를 즐기는 자라고 비난하고,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했습니다.예수님은 세리나 죄인들과 어울렸습니다.이것은 건강한 자들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고,병든 자들에게 의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그들은 예수님에게 감사해야 하는데 오히려 비난을 했습니다.이럴 때 예수님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이 말은 쉬운 것 같아도 굉장히 어려운 말입니다.여기서 예수님은 이 시대의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완악해 졌는지 이래도 저래도 뭐라고 한다고 했습니다.지금 세상이 이렇습니다.
5.말씀이 주는 교훈 이 말씀이 주는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불신앙의 특징은 변덕이 죽끓듯 합니다.두번째로 배역과 배역자의 역할은 감독자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우리는 배우입니다.이 세상이라는 무대 속에서 하나님께서 맡겨주는 배역을 해야 합니다.순종해야 합니다.마지막으로 현 세대가 아이처럼 하신 것을 책망하십니다.영어에 촤일드라이크(childlike)라는 단어와 촤일디쉬(childish)라는 단어가 있는데 전자는 아이들처럼 순진하다는 좋은 뜻이지만 후자는 어린애처럼 어리석다는 나쁜 뜻입니다.이것을 개개인의 삶에 적용시키시기 바랍니다.그래서 변덕이 죽 끓듯하면 안됩니다.우리는 바람에 날리는 갈대가 아닙니다.
둘째로 배역에 불만이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이것을 가지고 불평하고 교회에서 문제 일으키지 마십시오.때때로 배역이 마음에 안들어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좋습니다.세번째로 현 세대가 어린애들 같다고 했습니다.어린 아이들의 나쁜 점을 말합니다.자기만 생각하는 나쁜 점을 예수님은 책망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약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은 구약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증명하셨던 것입니다.
2.실족지 아니한 자,실족한 자 이렇게 말씀을 하신 다음에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1:6).이 말씀도 이사야서 8장 14절과 15절 말씀의 인용입니다.
그렇다면 실족지 아니하는 자는 누구이고,실족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실족지 아니하는 자는 예수님이 동정녀 탄생을 하셨을 때,수많은 기적을 베푸시고,부활을 하시고,재림을 하시고,심판을 하실 때,이러한 모든 사실들을 믿는 사람들이 바로 실족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실족하는 사람들은
첫째로 이성주의자입니다.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너무 쉽고,단순하다고 비난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무식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두번째로 합리주의자들입니다.예수님의 처녀 탄생이나 부활이나 이적,또는 재림을 믿을 수 없어 하는 사람들입니다.그래서 그들은 받아들이지 아니합니다.세번째로 정치적인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도 열심당이 있었습니다.시몬,가룟 유다는 열심당원입니다.그들은 메시야가 와서 그들을 억압하고 있는 세력인 로마를 무찌르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정치적인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싸웠습니다.여러분은 누가 더 높아질 것인가하고 생각하면 안됩니다.하나님 나라에서는 누가 더 높아지느냐보다는 누가 더 낮아지느냐가 더 중요합니다.낮아질수록 그 사람은 축복을 받는 것이고,낮아질수록 그 사람은 더 높은 사람입니다.세례 요한도 어떤면에서는 정치적인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이 그러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지금 성도들 가운데서도 그러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소위 기복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예수님을 믿으면 병이 낫고,출세하고,부자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물론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때,그런 외적인 면도 나타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이렇게 정치적인 면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실족하게 됩니다.네번째로 세속주의자입니다.기복적인 신앙을 가지고,예수님을 따르면 외적인 면에서 유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족한 사람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은 기복적이고,세속적이고,합리적이고,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말씀 그대로를 받아들이는,실족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이것은 세례 요한을 격려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입니다.영적 메시야를 거절하지 않는 자의 받을 축복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3.세례 요한에 대한 주님의 증거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마 11:7)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운데 우선 세례 요한에 대해 칭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갈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이것은 세례 요한이 바람이 불어도 갈대와 같지 않다는 것을 칭찬하신 것입니다.여기서 말하는 바람은 여러 가지를 말하지만 박해와 핍박을 말합니다.그러한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고 확고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세례 요한입니다.예수님은 그러한 그를 칭찬하신 것입니다.이것은 도덕적 의애 있어서 강직한 자를 말합니다.그러면서 “너희가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을 보러 나갔더냐”고 했습니다.궁궐에 있는 대신들은 부드럽고 색깔있는 옷을 입었습니다.세례 요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너희들이 선지자를 보러 나갔더냐” 그 당시의 말라기에서 선지자는 끝나고 그들은 4,5백년 동안 선지자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그 후에 최초로 온 선지자가 세례 요한입니다.세례 요한은 엄밀한 의미에서 구약의 선지자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 11:11) 세례 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중에 가장 크다고 했습니다.가장 중요한 것은 선지자 중의 선지자는 예수님인데,예수님이 오실 것을 얘기한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에스겔을 훌륭하다고 말합니다.그러나 세례 요한은 가장 분명하게 예수님에 대해 증거했습니다.“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하면서 예수님이 메시야인 것을 믿었고,우리의 구세주인 것을 믿고 증거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구약의 선지자중의 선지자입니다.“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이말은 세례 요한을 천하게 얘기한 것은 아닙니다.그가 구약에 속한 선지자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죽은 지 사흘만에 보활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이것은 우리는 알았습니다.우리는 들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세례 요한은 구약의 선지자이기 때문에 신약시대에 일어날 일을 다 알지 못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보다 높지 못합니다.우리는 신약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이나 재림,심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구약에 속한 선지자들은 그 당시의 위대하긴 했지만 그것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이제 세례 요한 이후에는 천국의 문이 열려지고 신약시대가 전개되면서 침노하는 자는 빼앗는다고 했습니다.침노한다는 말은 폭력을 가지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담을 헐고 달려 들어온다는 것입니다.이 말은 예수를 믿을 때 침노하는 자와 같은 자세를 가지고 천국에 가려고 하는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찐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 11:14) 말라기서를 보면 장차 엘리야가 온다고 했습니다.어떤 사람은 이 말을 윤회설이라고 합니다.이미 이 세상에 왔던 엘리야가 또 온다고 했기 때문에 윤회설이라고 합니다.이것은 기독교적 윤회설이 아닙니다.여기서의 엘리야가 온다는 말은 엘리야의 능력과 엘리야의 심령을 가지고 세례 요한이 와서 사역을 할것을 말씀한 것입니다.소위 기독교적 윤회라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것이고,잘못된 견해입니다.
4.불신앙의 세계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마 11:16119) 세례 요한은 금욕적인 생활을 했습니다.사람들이 이를 칭찬을 해야 하는데 미치고 귀신들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한과는 달리 먹고 마셨습니다.이처럼 반대로 살았으니 칭찬을 해야 하는데 예수님에게 먹는 것과 포도주를 즐기는 자라고 비난하고,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했습니다.예수님은 세리나 죄인들과 어울렸습니다.이것은 건강한 자들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고,병든 자들에게 의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그들은 예수님에게 감사해야 하는데 오히려 비난을 했습니다.이럴 때 예수님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이 말은 쉬운 것 같아도 굉장히 어려운 말입니다.여기서 예수님은 이 시대의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완악해 졌는지 이래도 저래도 뭐라고 한다고 했습니다.지금 세상이 이렇습니다.
5.말씀이 주는 교훈 이 말씀이 주는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불신앙의 특징은 변덕이 죽끓듯 합니다.두번째로 배역과 배역자의 역할은 감독자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우리는 배우입니다.이 세상이라는 무대 속에서 하나님께서 맡겨주는 배역을 해야 합니다.순종해야 합니다.마지막으로 현 세대가 아이처럼 하신 것을 책망하십니다.영어에 촤일드라이크(childlike)라는 단어와 촤일디쉬(childish)라는 단어가 있는데 전자는 아이들처럼 순진하다는 좋은 뜻이지만 후자는 어린애처럼 어리석다는 나쁜 뜻입니다.이것을 개개인의 삶에 적용시키시기 바랍니다.그래서 변덕이 죽 끓듯하면 안됩니다.우리는 바람에 날리는 갈대가 아닙니다.
둘째로 배역에 불만이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이것을 가지고 불평하고 교회에서 문제 일으키지 마십시오.때때로 배역이 마음에 안들어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좋습니다.세번째로 현 세대가 어린애들 같다고 했습니다.어린 아이들의 나쁜 점을 말합니다.자기만 생각하는 나쁜 점을 예수님은 책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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