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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휴식 (마11:25-30)

본문

본문은 어느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나 위로와 평강을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게된 동기는 그 시대에 율법의 무거운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시대에 살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자신들은 이행하지 아니하면서 순박한 민중들에게는 무거운 율법의 짐을지워 그것을 강요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종교는 자유함과 평강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의 짐을 더욱 가증시켜 주는 무거운 멍에가 되었습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께서 바로 그러한 짐을 지고 삶에 지쳐있는 사람들을향해 하신 초대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반드시 율법의 짐을 진 사람들에게만 하신 말씀은아닙니다. 어느 시대건 피곤하고 무거운 생의 짐을 진 모든 사람들을 향해 하시는 주님의 초대의 말씀입니다. 특별히 현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휴식이라고 할때 육체적인 휴식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휴식은 육체적인 것 이전에 정신적인 것이며 좀더 나아가서는 영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육체적으로 휴식을 취한다고 해도 영적으로 쉼이 없을때에는 진정한 의미의 휴식을 갖기 못합니다. 육체적 휴식만으로 온전한 휴식이 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피곤이 육체적 노동으로 인해서 오는 것이 아니고 정신적 원인으로 오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요즈음 우리나라와 같이 변화가 많고 가치관의 혼란과 사회적구조의 모순으로 인해 미치는 영향은 우리에게 많은 피곤과 갈등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우리의 피곤은 단지 그러한 외부적인 영향 때문만은 아닙니다. 좀더 깊은 내면적 원인에서 찾아 보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 때 교인들의 수가 점차 증가하게 됨에 따라 구제해야할 대상이 점차 많아지게 되었고 교회는 말씀을 전하는 일보다는 그러한 부수적인 일에 더욱 관심을 쏟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일로 인해 교인들간에 갈등과 다툼이 생겨났습니다. 그때 사도들은 그들이 본질적인 것을 제외하고 부차적인 것에 얽매이는 것을막기 위해 집사제도를 만들어 그들에게 그러한 일을 위함하고 사도 자신들은 오직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두번째, 피곤은 우리 자신의 내면의 분열,반항심, 해결되지 않은 인생의 문제로 부터 오게됩니다. 그러한 것들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피곤하게 만들고 우리에게불면의 밤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한 것들은 우리에게 정신적 휴식이 없게 됩니다. 가정에서 부부간의 갈등과 감정적 대립, 생의 불확신과 두려움, 정직과 신용의 타락, 근심과 부도덕 때문에 생기는 생의 문제는 날로 그수효를 증가시켜 가고 있습니다.
세번째, 피곤은 소유에 대한 집착과 욕심 때문에 생깁니다. 우리는 생활의 과로를 환경의 탓으로 돌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과로는 야망 미래에 대한 공포, 돈에 대한 애착심, 질투심 지나친 경쟁심으로 오게 됩니다. 그러한 것들은 우리를 쉬게하지 못하게 합니다. 언제나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지나친 소유욕 때문에 자신의 생의 짐을 가볍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선한 일이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두 다 허락했다고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네번째, 피곤은 죄책감 때문에 오게됩니다. 죄는 우리의 인격을 분열시키고 영혼과 기능 교란을 가져오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느날 베데스다 못가에 가셨을 때 거기서 38년 동안 병상에 누워있던 병자를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병이 매우 오래된 것임을 알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병쟈는 못의 물이 동할 때 자기를 거기에 데려다 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의 병은 못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요 그의 죄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너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신 후 "네가 병이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요5:14)
죄는 다른 사람의 눈은 가리울 수 있을지 몰라도 자신의 양심과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죄는 마음의 계류장치인 양심의 가책을 일으키고 그 가책은 인격의 분열 기능 교란을 일으킵니다. 죄로 인한 가책은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소진시킵니다. 마지막으로, 피곤은 하나님께로 부터 소외된 증거입니다. 성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에서 "당신은 당신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안식을 얻기 전까지는 평안이 없다"고 했습니다. 어거스틴은 그 자신이 하나님을 떠나 있는 동안에 진정한 안식을 찾으려고 무척 방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안식을 찾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그는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안식을 찾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정신적으로 휴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향해 주님은 "내게로 오라"는 초대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들에게 "안식"(쉼)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주님께서 안식을주시겠다는 것은 현재하고 있는 일에서 벗어나게 하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 휴식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휴식이 없는 것은 일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정신적 짐들 때문입니다. 정신적으로 휴식이 없게 만드는 이러한 짐들은 우리의 삶을 조각 조각 동강나게 하고 잡다한 수고에 얽매어 있게 합니다. 쉼을 원한다면 먼저 주님께 나아가서 그러한 정신적 짐들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온유한 마음 겸손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조용히 겸손히 주님이 나를 위해 계획하시고준비해 놓으신 멍에가 어떤 것인지를 물어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위기는 예수 그리스도와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의 과제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가까워질 수 있도록 열심히 증가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 없는 삶에는 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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