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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요8: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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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부는 지난 13일 김대중 대통령 취임을 맞아 건국 이래 최대 규모 인 5백 5십여만명에 대하여 형사범 특별사면, 형집행정지, 가석방, 징계 사면 등 대사면을 단행했습니다. 저도 무인감시 카메라에 속도위반으로 벌점 30점을 받았었는데 전면 삭제되는 행정처분 특별취소조치 혜택을 받았습니다. 벌점 30점을 전면 삭제되는 사면조치를 받고 보니 기분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그런데 잔형 집행면제나 감형, 또는 복권, 형집행정 지, 가석방, 가출소 등으로 사면받은 사람들은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이번 대사면조치에 궁금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름아닌 사형수들 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가 내려졌는가 입니다.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컷 습니다. 과거 사형수 출신인 이승만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당시 사형수 5 명에 대해 감형 조치를 내린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30일 사형수 23명에 대한 형 집행이 전격 실시됐습니다. 문민정부 들어 세 번째인 지난 집행은 지난 77년 28명을 집행한 이래 최대 규모였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대규모 <사법 살인>에 대한 사회적 반향은 의외로 미미했습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사형폐지분과위원장 문장식목사는 "
경제위기 한파가 인권침해에 대한 관심마저 위축시킨 듯하다. 무려 23명이 한꺼번에 처형됐는데도 언론과 시민들의 반응이 너무도 냉담하다."고 말 합니다. 사형수들을 돌보는 종교인, 변호사 등에 따르면 이번에 집행된 사형수들은 15대 대선 결과를 보고 커다란 기대를 품었다고 합니다. 김 대중 대통령이 사형선고를 받은 바 있는데다, 그간 사형제도에 대해 부 정적인 입장을 표명해 왔고 김대중대통령 자신이 세 번씩이나 죽을 뻔 했던 사형수 출신이며, 야당시절 정치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사형폐지운동 행사에 화환을 보내는 등 관심을 보여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 정부 가 출범하면 사형제도가 폐지되거나 최소한 새 대통령 재임 5년간은 집 행이 없을 것으로 기대했다고 합니다. 특히 성탄절을 전후해 이뤄진 두 전직 대통령 등 518 및 비리 관련자들에 대한 사면조치는 이같은 기 대를 더 부풀렸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난 연말 집행과 관련, 법무 부 관계자는 "장기 미집행 사형수가 너무 많아 교도소의 수용부담이 커 졌다."며 "앞으로도 오래 끌지 않고 집행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현 재 형이 확정된 사형수는 36명인데 국민의 4분의 1이 크리스천이고, 법 무부장관과 김대중대통령이 가톨릭 신자이건만 이들 36명의 목숨은 여전 히 바람 앞의 등불입니다.
2. 다음은 며칠 전에 TV에 방영된 사형수 관련 내용입니다. 대부분의 사형수들이 초기에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처음 1년간은 다른 재소자를 폭행하거나 자살하는 것을 막 기 위해 24시간 수갑을 채웁니다. 잠도 수갑을 채운 채로 재우고, 식사도 수갑 찬 상태로 하게 합니다. 옷을 갈아입을 때와 세면할 때만 수갑을 풀어줍니다. 시간이 좀 흐르면 구치소를 드나드는 종교인들을 통해 종교 에 귀의, 잘못을 뉘우치지만 여전히 현실에 잘 적응하지 못해 때때로 자 살충동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말기에 이르면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 이고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하며 재소자들을 전도하기도 합니다. 지난번 에 집행된 사형수 김용제(91년 여의도광장 승용차 질주사건 범인)는 감방 에 재소자가 새로 들어올 때마다 통사정을 해서 발을 씻어줬고, 북한 어 린이들을 생각하며 금요일 점심을 굶었습니다. 사형수들은 형이 확정된 순간부터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죽음을 생각합니다. 사형수는 <미결수>신 분(형의 집행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노역을 시키지 않으므로 죽음 의 공포를 떨쳐낼 기회도 그만큼 적습니다. 또한 이들은 바깥세상 돌아 가는 사정에 유난히 민감합니다. 대개 정치, 사회적 불안기나 흉악 범죄 가 기승을 부릴 때 사형집행이 있어 왔기 때문에 신문, 잡지를 한자도 빼놓지 않고 정독합니다. 특정 범죄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 비슷한 범죄 를 저지른 사형수를 집행한 예도 많아, 예컨대 유괴살인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이들은 <제발 유괴사건만은 없었으면…>하고 속을 태웁니다. 특히 사형 <시즌>인 부활절과 성탄절 전후에는 사형수들의 공포감이 극에 달 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종교인들도 가급적 면회를 가지 않습니다. 집행이 있는 날엔 <면회>나 <상담>이 있다며 사형수들을 불러내 형장으 로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꿈이나 영감으로 형 집행을 예감하는 사형수 들도 많습니다. 이들은 집행 전날 신발을 바로 신고 나가도록 바깥쪽으 로 돌려놓거나 주변을 정리하고 소지품을 재소자들에게 나눠주기도 합니다. 특별한 느낌이 없어도 집행이 있는 날이면 구치소가 유난히 조용하 고 사형수에게 청소나 운동을 시키지 않아 곧 낌새를 챕니다. 교도관들 의 말만 믿고 <면회>를 나선 사형수는 교도관들에게 양팔이 붙잡혀 면 회실과 다른 방향으로 끌려가면서 비로소 상황을 알아차립니다. 대부분 은 체념한 채 순순히 끌려가지만 더러는 죽기 싫다고 발버둥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형수를 형장으로 이끄는 교도관들은 주로 무술 유단 자들입니다. 서울구치소 관계자는 "두려움과 초조함에 엉덩이를 뒤로 뺀 채 10cm가 될 듯 말 듯한 보폭으로 형장을 향해 걸음을 떼 놓는 모습은 눈뜨고 못 볼 정도다."고 합니다. 끌려가면서 따뜻한 물 한잔과 담배를 거푸 청하기도 합니다. 그 순간만이라도 목숨을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 에서입니다. 형장에 들어선 사형수는 신체검사와 신원확인 절차를 마치 면 유언을 남길 기회를 얻습니다. 12월30일 집행된 사형수 김용제는 교 도관과 종교위원에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을 깨우쳐 줘 고맙다."고 했습니다. 입회인들이 흐느끼자 "울지 말라."고 달래기까지 했습니다. 같 은 날 처형된 임풍식은 "죄를 회개한다."며 "내 장기들은 필요한 이에게 주고, 남은 영치금은 소년소녀가장에게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85년에 집행된 한 사형수는 끝까지 범죄사실을 부인하다가 형장에서 "오 판한 판-검사와 위증자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유언을 마 치면 종교의식을 가진 뒤 곧 커튼 뒤로 옮겨져 흰 두건을 씌우고 목에 밧줄을 드리웁니다. 당당하게 죽음을 준비한 사형수라도 불과 몇 초 후 바닥 문이 열리고 허공에 매달릴 것을 생각하면 이 순간만큼은 떨리게 마련입니다. 두건을 덮어쓴 채 커튼 밖의 종교인들에게 "찬송가를 더 크 게 불러달라."고 소리치기도 합니다. 한 사형수는 다리를 다친 교도관을 염려하면서 밧줄을 거는 순간에도 "빨리 나아서 목발을 던져버려라."고 하며 죽어갔습니다.
3. 사형을 둘러싼 찬부 양론을 점점 비등해지고 있습니다. 먼저 사형제 도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명분은 이렇습니다.
첫째, 동해(同害) 보복이라 불리는 응보의 법칙을 들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1:24, 25 "눈에는 눈으 로, 이에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는 구약에 근거합니다. 사람을 다치게 하여 피를 흘리게 한 자는 자신도 피를 흘려야 하며 사람을 죽이면 자기도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국민의 자연스러운 법 감정'으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형을 완고하게 변호한 임마누엘 칸트는 그의 <도덕의 형이상학>에서 "응보의 권리만이 형의 질과 양을 명시할 수 있다그(행위자)가 사람을 죽이면 자기도 죽음을 당해야 한다. 정의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길은 이 방법밖에는 없다. 고통은 많아도 종신형에 복역하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둘째는 사형에는 위협의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범인에 대하여 엄격한 형을 선고를 내림으로 재범방지의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형제도를 폐지하면 사회는 혼란에 빠져 개인적인 복수가 횡행하는 사회로 역행할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사회가 폭력범들로부터 일시적인 안전이 아닌 계속적인 안전이 보장되기 위해서 사형제도를 두 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폭력범들로부터 계속적인 안전은 범인들을 처형 말살함으로써 달성된다는 것입니다. 폭력범의 하수인이 무기형에 처해진 다면 살아 있는 한은 다시 사회에 나와 또 폭력범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납세자에게 과대한 부담을 주게 되는 장기의 구금 보다는 헐값으로 끝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납세자의 부담으로 평온 무 사한 생애를 감옥에서 보내게 한다면 실로 행복한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형반대론자들의 주장은 어떤 것인가
첫째, 사형제도를 주장 하는 자들의 첫 번째 논거인 응보의 법칙은 고대에서나 통할 법도로 원 시적인 복수욕에 몸을 맡기는 것이며 현대의 법률관과는 합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응보의 법칙대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게 되면 정 상적인 한도를 훨씬 지나쳐 흥분과 심한 증오심으로 끔찍한 린치가 가 해질 것입니다. 다음으로 폭력 행위에 대한 형벌로 사형이 위협작용의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격정에 긴 상태에서 사람을 살해할 때 그 후에 어찌되리란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장래가 없는 것과 같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위협도 아랑곳없 다는 것입니다. 사형의 위협력을 정말 믿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공 개처형도 지지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형을 공개하면 그 선전 효 과도 최고일 것이며 위협 효과 역시 최고가 될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처형 실황을 TV에서 방영하면 어떨까 그런 프로 같으면 시청률이 기록 에 남을 것입니다. 스웨덴, 노르웨이, 네델란드, 핀란드, 오스트리아 그 밖의 여러 나라의 통계 자료는 의문의 여지없이 사형제도 폐지 후에 살 인죄가 증가하지 않았고 오히려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폭력 사범을 처형하면 사회가 안전하다는 주장도 근거가 빈약합니다. 출옥이 든 특별사면에 따른 출소이든 간에 압도적인 많은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재범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보통의 준법적인 시민이 되어 가고 있다는 통계입니다. 사형폐지운동협의회장 이상혁 변호사는 사형제도가 범죄를 예방한다는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사형제도를 폐지하자는게 당장 사형수들을 풀어주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헌법이 보장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 생명권을 박탈하지 말고 교화를 통 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자는 겁니다. 흉악범에겐 종신형을 선고, 평생 노역의 짐을 지우는 게 훨씬 더 고통스러운 형벌일 수 있습니다." 사형을 존치한 나라에서 흉악범죄가 줄거나, 폐지한 나라에서 늘 어난 사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형제도를 종신형제도로 대체, 흉 악범들이 평생 노동과 회개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게 <예비 범죄자> 들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 역할을 한다는 주장입니다. 교도소 안에서도 모범적인 <최고수>들이 일반 재소자들을 교화하는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 사법 살인이라고 불리고 있는 오판으로 처 형하게 되면 그 뒷수습을 할 수 있겠는가 뉴욕 싱싱 형무소 소장이었던 라우에스는 재직중에 남자 409명과 여자 6명의 사형수를 취급했는데 이 가운데 여자 한 명을 포함한 261명이 처형되었습니다. 남자 53명과 여자 2명의 판결은 폐기되고 30명은 무죄로 석방되었고 나머지는 형이 경감되 었습니다. 그래서 라우에스 소장은 원판결의 11%는 배심원과 재판관이 잘못하지 않았는가 싶다고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런 오판이 한 건이라도 있으면 사형집행은 모두 불가능하다고 상정하는데 충분하지 않습니까 장기 구금보다는 사형쪽이 비용이 덜 든다는 주장도 성실한 이론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가령 노인이나 불치의 병자를 납세자에게 과대한 부담 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살해해도 좋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헐값론은 하나의 구실에 불과 합니다. 사형을 반대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가 사람에게 목숨을 부여한 것 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국가는 이미 신이 정한 제도가 아니며 신의 은총에 의해 계획된 것도 아닙니다. 국가는 그야말로 인간적인 제도여서 인간적인 결함이 내포된 제도로 과 오를 범한 경우나 약점을 드러낼 때도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 명은 예나 지금이나 신성한 것입니다. 이 신성한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생명을 좌우할 권리를 결함 투성이며 약점이 많은 국가 제 도에 맡긴다는 것은 극히 위험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국가는 독재자의 권력욕에 따라 권력이 남용될 때 저지할 길이 없습니다. 철학 자 피히테는 범인을 처형하면 그 개전(改悛)의 가능성은 완전히 없어지므 로 어떤 경우에도 사형은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소외 계층이나 문맹, 심 지어는 인종상의 소수집단과 같이 출신 계층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사형수의 교육 수준은 수감자의 평균 수준보다 도 낮고 보통 사회인의 평균보다 훨씬 낮다고 어느 교도소 소장은 밝히 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보다도 현명하고 유복한 사람들에게 폭 력범이 적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자기를 변호하는데 능숙하고 훌륭한 변호사에게 돈을 많이 줄 수 있습니다. 흑인이 백인 여자를 강간 하면 사형이 되는데백인이 흑인을 살해해도 무죄 방면이 되는 수가 있 다고 미국 어느 교도소 소장은 말합니다. 사형수의 죽기 직전의 불안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장치는 없습니다. 병사라든가 돌연한 사고사와 같이 통상의 죽음은 사형의 경우와 같이 예정의 시각에 맞추어 하는 의 식적인 죽음과는 절대로 같을 수 없습니다. 국가만큼 냉혹하게 사람을 죽이는 것도 없습니다. 이 냉혈적인 잔학성으로 현대 국가는 용서될 수 없는 비인간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사형제도가 존속 되게 되면 한 독재자나 독재 정권은 이를 남용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의 과거 군사 독재 정권 당시에 경험되었던 사례들이 있습니다. 사형수들의 교화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문장식 목사는 수 없는 사형 집행을 직접 목격하고 허탈하다고 말합니다. 흉악한 사형수를 교화하여 뒤늦게나마 개과천선(改過遷善)하여 새 생활의 기회가 주어져야 교화의 목적이 성취되는 것인데 사형을 집행하므로 교화 활동의 열매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허탈하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 해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죄인들을 정죄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고 용서하고 사랑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오 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은 돌 에 맞아 죽어야만 하는, 즉결 처분 당해야 하는 사형수였습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예수님의 판결문 앞에 집 행리들인 군중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습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셔서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며 그 여자 사 형수에게 물으셨습니다. 여자 사형수는, "주여 없나이다."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 라."고 말씀하시므로 형집행정지 및 복권조치를 내리시고 변화된 새 삶 의 기회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4. 썸머타임 킬러(Summer Time Killer)! 이것은 오토바이 맨으로 분장 한 크리스 밋참 주연의 영화제명입니다. 백주에 시장 한 복판에 나타난 창백한 청년 뫼르소는 갑자기 품속에서 45구경 리벌버 권총을 빼들고 태 양을 향해 연속 3발을 발사합니다. 태양이 관통상을 입고 즉시 어두워집니다. 청년은 곧 현장범으로 군주에 의해 체포되어서는 공판정으로 갑니다. 변호인 없는 피고에 대해 간단한 사실심리와 검사의 논고가 있은 뒤 에 "무모한 행동으로 태양에 전치 1주의 상처를 낸 썸머타임 킬러에게 극형을 언도할 것"을 주장합니다. 피고가 최후진술을 합니다. "하늘과 바 다와 태양은 당신들의 허영의 시장에서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모두가 공범자다! 진정한 썸머타임 킬러는 내가 아니라 바로 당신들이다!" 이 소 리에 격분한 방청석에서 야유와 함께 소주병들이 날아와 청년을 피투성 이로 만듭니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청년은 또한번 외칩니다. "이 중에 죄 없는 자가 소주병을 날려라!" 한 낮에 외간 남자와 통정을 나누던 여인이 현장에서 붙들려 예수의 공판정으로 끌려 왔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 기 위해 군중들은 저마다 돌을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율법없는 예수가 되든지, 사랑없는 예수가 되든지 하는 진퇴양난의 자리에 주님은 말없이 몸을 굽혀 땅바닥에 글을 쓰셨습니다. 의기양양하게 윽박지르는 군중들 을 향해 일어서신 예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또 다시 몸을 굽혀 땅바닥에 글을 쓰셨습니다. 양 심의 가책을 받은 남녀노소 모든 군중들이 돌을 버리고는 하나 둘 사라 졌습니다. 간음한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을 던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녀를 정죄 치 않으셨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같은 예수님의 행위는 자신을 죄인으로 동일시(Identification) 한 것입니다. 나는 의롭다고 의를 내세운 것이 아 니라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죄인을 사랑하셨으므로 스스로 죄인의 위 치에 앉으신 것입니다. 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같 이 낮아져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감상적이거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사랑하려면 나도 죄인과 동일시되어야 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세상의 타락을 정죄합니다. 한 순간의 죄의 올무에 갇혀버린 형제와 자매들을 향해 차거운 시선 을 던지곤 합니다. 배신자들을 마음껏 비웃습니다. 심지어는 여호와 하나님에게 이미 용서받은 신실한 회개자를 향하여서도 따뜻한 마음을 건네지 않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깨끗한가 우리도 공범자가 아닌가 그들은 드러난 죄인들이고, 우리는 숨은 죄인들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두 여인이 노인 앞에 가르침을 받으러 왔습니다. 한 여인은 자신이 젊 었을 때 남편을 바꾼 일에 대해 괴로워하면서 스스로를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인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여인은 인생을 살아오 면서도덕적으로 큰 죄를 짓지 않았기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앞의 여인에게는 커다란 돌을, 뒤의 여인에게는 작은 돌들을 가 져오라고 했습니다. 두 여인이 돌을 가져오자, 노인은 들고 왔던 돌을 다 시 제자리에 두고 오라고 했습니다. 큰 돌을 들고 왔던 여인은 쉽게 제자리에 갖다 놓았지만, 여러 개의 작은 돌을 주워온 여인은 원래의 자리 를 일일이 기억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노인은 말합니다. "죄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니라. 크고 무거운 돌은 어디에서 가져 왔는 지 기억할 수 있어 제자리에 갔다 놓을 수 있으나, 많은 작은 돌들은 원 래의 자리를 잊었으므로 도로 갖다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큰 돌을 가 져온 너는, 한때 네가 지은 죄를 기억하고 양심의 가책에 겸허하게 견디 어 왔다. 그러나 작은 돌을 가져온 너는, 비록 하잘 것 없는 것 같아도 네가 지은 작은 죄들을 모두 잊고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는 뉘우침도 없 이 죄의 나날을 보내기에 버릇이 들었다. 너는 다른 사람의 죄는 이것저 것 말하면서 자기가 더욱 죄에 깊이 빠진 것을 모르고 있다. 인생은 바 로 이런 것이다." 죄는 미워하더라도 죄인을 미워하지 말라는 구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죄인을 용서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감싸고 덮어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 두가 "사함받는 죄인"들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에게 이어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11절)는 전제하에 사죄를 선언하시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임을 잘 말해주는 것입니다. "(마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 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마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 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그러나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은 심 판하시고 의인을 구원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오시는 것임을 분 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앞에 나와 죄의 용서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변화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5일 투데이 쇼에서 가진 NBC 와의 인터뷰에서 클린턴이 전 백악관 여직원과 관계를 가진 것과 이에 대해 거짓말 한 것이 유죄로 판명되더라도 그를 용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51세의 클린턴을 두고, "그런 멋진 성격을 가졌다면 여성들이 그를 좋아하기 마련"이라며, "나는 인간의 약함을 알기 때문에 그를 용 서한다. 특히 그와 같이 강하고 정력적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고 입장 을 나타냈습니다. 9명의 대통령과 개인적인 친분을 가져온 그레이엄은 "대통령은 직면하는 중압감으로 유혹에 빠질 수 있다."며 "대통령들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억된다."고 대통령의 중압감을 설명했습니다. 또한 그는 대통령들이 보통 사람들보다 하나님의 도우심 과 높은 도덕적 기준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는 한편, 오늘날의 중압감 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문제지만 대통령의 중압감은 믿기 어려울 정도라 고 재삼 강조하면서 스캔들 가운데서도 남편을 도운 힐러리를 훌륭한 퍼 스트 레이디라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구약의 법대로라면 클린턴과 그와 관계를 가졌던 여인들은 목격한 증 인들부터 돌을 던져 벌써 돌무덤을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정죄와 심판의 구약시대가 아니라 용서와 사랑의 신약시대에 살 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정죄하여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죄인을 끝 없이 용서하며 사랑하여 변화된 새 삶의 기회를 베풀고 죽은 자까지도 살려내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과거를 묻지 아니하시 고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며 변화된 새 삶을 요구하십니다. 내가 받아 야 할 정죄와 심판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모두 받으셨습니다. 감 옥에 있든 감옥밖에 있는 모든 인류는 하나님 앞에 사형수들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에 대한 특별 대사면 령이 내려졌습니다. 물론 그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한해서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형집행정지 및 복권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예수께서는 갇힌 자를 해방하시고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형이 확정되어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36명의 형제들이여, 예수 믿고 영원한 형집행정지를 받으시고 복권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믿고 대사면받으신 여러분, "다시 죄를 범치 말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변화된 새 삶으로 영원한 자유와 생명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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