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과 합일 (고전3:5)
본문
신약에 제시되어 있는 각종 진리의 노선들이 모두 진리이신 복스러 운 한 분 안에서 그들의 공통적인 중심을 찾을 수 있는 특징이 있다는 것은 흥미 있는 일임과 동시에 교훈적이다. 복음서들과 서신들에 서 우리는 이러한 것을 본다. 성령님의 직접적인 인도와 능력 안에서 네 명의 복음서 저자들은 우리에게 각각 그리스도에 대한 다른 관점 을 제시한다. 마태는 그분을 유대인과 조상들에게 한 약속의 상속과 의 관계에서 메시야, 다윗의 아들, 아브라함의 아들로 제시한다. 마 가는 그분을 갈망이 있는 일꾼, 근면한 종, 수고하는 사역자, 쉬지 않는 전파자와 교사로 제시한다. 누가는 우리에게 그분의 인간 관계 안에 있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 를 사람의 아들, 아담의 아들로 제 시한다. 요한은 그분의 하늘에 속한 관계 안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아버지의 아들, 하늘에 속한 사람을 말한다.
그러므로 각자에게 그 나름대로의 특별한 노선이 있다. 둘이 한결 같지는 않으나 일치된다. 아름다운 다양성이 있으나 가장 온전한 조 화가 있다. 즉 다양성과 합일이 있다. 마태는 마가와 상충되지 않고, 마가는 누가와 상충되지 않고, 누가는 요한과 상충되지 않는다. 충돌 이 없다. 각자 합당한 자기의 궤도를 따라 운행하며 웅장한 하나의 중심 부의를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넷 중에 하나라도 없다면 완성될 수가 없다. 하나가 빠졌다면 카다 란 공백이 있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의 도독적인 영광의 각개의 광 선을 비추어 내는 것이 성령님의 의도이며 기쁨이다. 각각의 복음서들 은 각기의 직임을 성령님의 인도하는 손길 아래서 다한다. 지정된 궤도와 공통된 중심 서신서에서도 역시 이러하다. 바울의 노선은 베드로의 노선과 다르 며, 베드로의 노선은 요한의 노선과 다른 것 같다. 둘이 한결같지는 않으나 일치한다. 충돌이 없다. 이는 복음서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각 자가 지정된 궤도를 운행하고 있으며, 공통된 하나의 중심 부위를 맴 돌고 있기 때문이다. 궤도는 다를지라도 중심은 하나이다. 바울은 우리에게 성취된 구속의 근거 위에서, 하나님의 뜻, 다시 말해서 이스 라엘과 교회와 함께하는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위대한 진리 를 제시한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노정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말한다. 야고보는 실행적인 의를 주장한다. 요 한은, 먼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다음에는 아들 안에서 나타나시 고, 우리 안으로 전달되시고, 마지막으로 영광스러운 장래에 드러나 게 될 영원한 생명에 관한 위대한 주제를 보여준다. 특별한 한 진리의 노선과 특별한 한 도구나 그릇 이제 나름대로 이러한 진리의 다양한 노선들을 심히 차별하여 비교 하거나 우리에게 이러한 노선들을 제시한 사랑스럽고 존경스러운 도 구들(사역자들을 지칭함:역자주)을 비교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것이리라. 마태를 마가와, 마가를 누가와, 누가를 요한과 혹은 요한 과 나머지 다른이들을 맞세우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지!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면 얼마나 철없는 것인가! "나는 오직 바울의 노선 안 에서 간다. 야고보는 마가보다 못하다. 나는 베드로와 요한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 바울만이 나를 위한 사람이다. 그의 사역은 나와 꼭 맞는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것을 즉시 죄스러운 어리석음으로 규탄해야 하 며, 한순간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진리의 다양한 노선들은 모두 영광스럽고 복스러운 하나의 중심에 촛점을 맞춘다. 다양한 도구들은 다 그리스도의 다양한 도덕적인 영광을 제시하는 웅대한 한 대상을 위해 한 분과 동일한 영감을 주시는 성령님에 의해 고용된 것이다. 우리는 그들 모두를 원한다. 우리는 누가와 요한 없이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마태와 마가가 없이도 할 수 없다. 베드로나 야고보가 바울이 나 요한과 같이 특출하고 포괄적인 범위의 진리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을 낮게 평하는 것은 우리의 본분이 아니다. 각자는 자신 의 위치에서의 필요가 있다. 각자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며, 각자에게 정해진 주의해야 할 일들의 노선이 있다. 만일에 우리가 자신을 어떤 특별한 진리의 노선에 한정시키거나 자신을 배타적으로 어떤 특별한 한 도구나 그릇에 소속시킨다면 신성한 진리의 고귀함을 융합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신의 흔들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것이다. 육적인 고린도인들 초대 고린도인들은 이러한 엄중한 오류에 빠져서 복스러운 사도 바울로부터 날카로운 책망을 받았다. 어떤 사람은 바울에게, 어떤 사람 은 아볼로에게, 어떤 사람은 게바에게,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께 속했 다고 말했다. 모두가 잘못이었다. 그리스도께 속했다고 말하는 자들 도 다른 이들에게 속한 자들과 마친 가지로 잘못된 것이다. 그들은 육적이었으며, 사람들처럼 행했다. 그들이 다 그리스도의 종들이며, 모두 다 온 교회에 속했기 때문에 누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뽐내는 것은 심히 어리석은 것이었다. 한 몸, 한 머리, 한 영, 한 성경 하나님의 교회 안에는 기타 다른 것이 없다. 다양한 부류의 일꾼들 과 다양한 진리의 노선이 있다. 우리의 거룩한 본분을 말로 하는 것 이 아니라 그들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깨닫고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행복한 특권이다. 다른 사람을 향해 뽐내는 것은 '육적인 것이며, 사람들처럼 행하는'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의 종들을 가벼이 보는 것은 그가 전하는 진리를 경시하는 것이며, 우리의 긍휼을 저버리는 것이다. "만물이 다 너희의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 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고전3:21-23). 이것은 진리이며, 문제를 대하는 길이며, 또한 하나님의 교회 안에 서 분파와 당파의 파벌과 일파를 피하는 방법이다. 한 몸과 한 머리 와 한 영과 신성하고 온전한 한 계시-성경-가 있다. 많은 지체들과 많은 은사들과 많은 진리의 노선들과 구분된 많은 사역의 특성들이 있다. 우리에게는 그 모든 것이 필요하므로 하나님이 그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이냐 사람이냐 분명히 확신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로 서로를 대항하도록 각종 은사들과 사역들을 주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분은 우리 자 신을 위해 그 모든 것들을 겸손히 감사함으로 사용하고, 그것들을 주 신 그분의 은혜로운 목적에 따라 우리로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주셨다. 만일 모두가 다 바울들이었다면 베드로들은 어디 있겠는가 만일 모두가 다 베드로들이었다면 요한들은 어디 있겠는가 단지 이뿐만이 아니다. 특별한 어떤 한 진리의 노선이나 사역의 특 성만을 선호하는 것의 결과는 어찌해야 하는가 불완전한 그리스도인 의 성품이 산출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는 다 슬프게도 한편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악에 대하여는 동일하게 중요한 가지 즐을 제외한 채 특별한 어떤 진리의 한 가지(branch)만을 무분별하게 집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역자들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가 거룩하게 되는 것은 어떤 진리가 아닌 모든 진리 즉 '그 진리(The Truth)' 에 의한 것이다. 우리는 진리의 각 부분들을 기뻐해야 하며, 하나님이 그분의 진리 를 우리의 혼들에 사역하기 위해 즐겨 사용하시는 각각의 그릇이나 도구를 진심으로 환영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해 뽐내는 것은 그릇 에 담겨 있는 진리보다는 그릇을 더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대단한 실수이다! "그런 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깨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 라" (고전 3:5). 성령님의 하나를 힘써 지킴 여기에 커다란 원칙이 있다 . 하나님께는 그분의 사역을 위해 각종 사역자들이 있으며, 우리는 그들 모두를 그분의 도구들로 가치를 두 어야 한다.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 사탄의 목표는 주님의 백성들 을 이끌어 학파의 머리로, 당파의 인도자로, 분파의 중심으로 세워 하나님의 교회를 당파로 쪼개어 교회의 가시적인 합일을 파괴하는 것 이었다. 우리는 그의 궤계를 알아야 한다. 오히려 가능한 모든 방법 으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 (엡4:3) 한다. 그리스도를 중심삼음 이 위대한 목적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가 중심 가까이에 있음으 로 달성한다.-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달성한다.-지속적으로 그분 에 의해 점령당함으로 달성한다.-그분을 영 안으로 깊이 들이마시고 그분의 발자취 안에서 행함으로 달성한다.-진실로 깨어진 영과 겸 손한 마음 안에서 그분의 발 앞에 있음으로 달성한다.-그분의 사역 에 대한 헌신을 통해 그분의 동기를 촉진하고, 그분의 영광을 드높이 고, 그분의 몸의 사랑스런 각 지체들이 번성하고 축복을 받음으로 달 성한다. 그럴 때 우리는 다툼과 분재으로부터, 무익한 의문과 근거 없는 이 론으로부터, 편견과 선입관과 편애로부터 구출될 것이다. 우리는 신 성한 한 중심에 맞추고 있는 다양한 진리의 노선들과 영원한 한 근원 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각양 빛줄기들을 깨닫고 귀히 여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든 길들과 하나님의 역사에 있어서, 본성과 은혜의 각 부분들에 있어서,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 안에서, 시간 안에서나 영원 안에서 단조로운 획일성이 아니라 아름다운 다양 성이 있다는 위대한 사실로 인해 기뻐할 것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 의 우주적이며 영원한 원칙은 '다양성과 합일' 이다.
그러므로 각자에게 그 나름대로의 특별한 노선이 있다. 둘이 한결 같지는 않으나 일치된다. 아름다운 다양성이 있으나 가장 온전한 조 화가 있다. 즉 다양성과 합일이 있다. 마태는 마가와 상충되지 않고, 마가는 누가와 상충되지 않고, 누가는 요한과 상충되지 않는다. 충돌 이 없다. 각자 합당한 자기의 궤도를 따라 운행하며 웅장한 하나의 중심 부의를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넷 중에 하나라도 없다면 완성될 수가 없다. 하나가 빠졌다면 카다 란 공백이 있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의 도독적인 영광의 각개의 광 선을 비추어 내는 것이 성령님의 의도이며 기쁨이다. 각각의 복음서들 은 각기의 직임을 성령님의 인도하는 손길 아래서 다한다. 지정된 궤도와 공통된 중심 서신서에서도 역시 이러하다. 바울의 노선은 베드로의 노선과 다르 며, 베드로의 노선은 요한의 노선과 다른 것 같다. 둘이 한결같지는 않으나 일치한다. 충돌이 없다. 이는 복음서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각 자가 지정된 궤도를 운행하고 있으며, 공통된 하나의 중심 부위를 맴 돌고 있기 때문이다. 궤도는 다를지라도 중심은 하나이다. 바울은 우리에게 성취된 구속의 근거 위에서, 하나님의 뜻, 다시 말해서 이스 라엘과 교회와 함께하는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위대한 진리 를 제시한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노정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말한다. 야고보는 실행적인 의를 주장한다. 요 한은, 먼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다음에는 아들 안에서 나타나시 고, 우리 안으로 전달되시고, 마지막으로 영광스러운 장래에 드러나 게 될 영원한 생명에 관한 위대한 주제를 보여준다. 특별한 한 진리의 노선과 특별한 한 도구나 그릇 이제 나름대로 이러한 진리의 다양한 노선들을 심히 차별하여 비교 하거나 우리에게 이러한 노선들을 제시한 사랑스럽고 존경스러운 도 구들(사역자들을 지칭함:역자주)을 비교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것이리라. 마태를 마가와, 마가를 누가와, 누가를 요한과 혹은 요한 과 나머지 다른이들을 맞세우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지!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면 얼마나 철없는 것인가! "나는 오직 바울의 노선 안 에서 간다. 야고보는 마가보다 못하다. 나는 베드로와 요한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 바울만이 나를 위한 사람이다. 그의 사역은 나와 꼭 맞는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것을 즉시 죄스러운 어리석음으로 규탄해야 하 며, 한순간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진리의 다양한 노선들은 모두 영광스럽고 복스러운 하나의 중심에 촛점을 맞춘다. 다양한 도구들은 다 그리스도의 다양한 도덕적인 영광을 제시하는 웅대한 한 대상을 위해 한 분과 동일한 영감을 주시는 성령님에 의해 고용된 것이다. 우리는 그들 모두를 원한다. 우리는 누가와 요한 없이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마태와 마가가 없이도 할 수 없다. 베드로나 야고보가 바울이 나 요한과 같이 특출하고 포괄적인 범위의 진리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을 낮게 평하는 것은 우리의 본분이 아니다. 각자는 자신 의 위치에서의 필요가 있다. 각자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며, 각자에게 정해진 주의해야 할 일들의 노선이 있다. 만일에 우리가 자신을 어떤 특별한 진리의 노선에 한정시키거나 자신을 배타적으로 어떤 특별한 한 도구나 그릇에 소속시킨다면 신성한 진리의 고귀함을 융합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신의 흔들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것이다. 육적인 고린도인들 초대 고린도인들은 이러한 엄중한 오류에 빠져서 복스러운 사도 바울로부터 날카로운 책망을 받았다. 어떤 사람은 바울에게, 어떤 사람 은 아볼로에게, 어떤 사람은 게바에게,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께 속했 다고 말했다. 모두가 잘못이었다. 그리스도께 속했다고 말하는 자들 도 다른 이들에게 속한 자들과 마친 가지로 잘못된 것이다. 그들은 육적이었으며, 사람들처럼 행했다. 그들이 다 그리스도의 종들이며, 모두 다 온 교회에 속했기 때문에 누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뽐내는 것은 심히 어리석은 것이었다. 한 몸, 한 머리, 한 영, 한 성경 하나님의 교회 안에는 기타 다른 것이 없다. 다양한 부류의 일꾼들 과 다양한 진리의 노선이 있다. 우리의 거룩한 본분을 말로 하는 것 이 아니라 그들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깨닫고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행복한 특권이다. 다른 사람을 향해 뽐내는 것은 '육적인 것이며, 사람들처럼 행하는'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의 종들을 가벼이 보는 것은 그가 전하는 진리를 경시하는 것이며, 우리의 긍휼을 저버리는 것이다. "만물이 다 너희의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 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고전3:21-23). 이것은 진리이며, 문제를 대하는 길이며, 또한 하나님의 교회 안에 서 분파와 당파의 파벌과 일파를 피하는 방법이다. 한 몸과 한 머리 와 한 영과 신성하고 온전한 한 계시-성경-가 있다. 많은 지체들과 많은 은사들과 많은 진리의 노선들과 구분된 많은 사역의 특성들이 있다. 우리에게는 그 모든 것이 필요하므로 하나님이 그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이냐 사람이냐 분명히 확신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로 서로를 대항하도록 각종 은사들과 사역들을 주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분은 우리 자 신을 위해 그 모든 것들을 겸손히 감사함으로 사용하고, 그것들을 주 신 그분의 은혜로운 목적에 따라 우리로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주셨다. 만일 모두가 다 바울들이었다면 베드로들은 어디 있겠는가 만일 모두가 다 베드로들이었다면 요한들은 어디 있겠는가 단지 이뿐만이 아니다. 특별한 어떤 한 진리의 노선이나 사역의 특 성만을 선호하는 것의 결과는 어찌해야 하는가 불완전한 그리스도인 의 성품이 산출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는 다 슬프게도 한편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악에 대하여는 동일하게 중요한 가지 즐을 제외한 채 특별한 어떤 진리의 한 가지(branch)만을 무분별하게 집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역자들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가 거룩하게 되는 것은 어떤 진리가 아닌 모든 진리 즉 '그 진리(The Truth)' 에 의한 것이다. 우리는 진리의 각 부분들을 기뻐해야 하며, 하나님이 그분의 진리 를 우리의 혼들에 사역하기 위해 즐겨 사용하시는 각각의 그릇이나 도구를 진심으로 환영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해 뽐내는 것은 그릇 에 담겨 있는 진리보다는 그릇을 더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대단한 실수이다! "그런 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깨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 라" (고전 3:5). 성령님의 하나를 힘써 지킴 여기에 커다란 원칙이 있다 . 하나님께는 그분의 사역을 위해 각종 사역자들이 있으며, 우리는 그들 모두를 그분의 도구들로 가치를 두 어야 한다.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 사탄의 목표는 주님의 백성들 을 이끌어 학파의 머리로, 당파의 인도자로, 분파의 중심으로 세워 하나님의 교회를 당파로 쪼개어 교회의 가시적인 합일을 파괴하는 것 이었다. 우리는 그의 궤계를 알아야 한다. 오히려 가능한 모든 방법 으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 (엡4:3) 한다. 그리스도를 중심삼음 이 위대한 목적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가 중심 가까이에 있음으 로 달성한다.-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달성한다.-지속적으로 그분 에 의해 점령당함으로 달성한다.-그분을 영 안으로 깊이 들이마시고 그분의 발자취 안에서 행함으로 달성한다.-진실로 깨어진 영과 겸 손한 마음 안에서 그분의 발 앞에 있음으로 달성한다.-그분의 사역 에 대한 헌신을 통해 그분의 동기를 촉진하고, 그분의 영광을 드높이 고, 그분의 몸의 사랑스런 각 지체들이 번성하고 축복을 받음으로 달 성한다. 그럴 때 우리는 다툼과 분재으로부터, 무익한 의문과 근거 없는 이 론으로부터, 편견과 선입관과 편애로부터 구출될 것이다. 우리는 신 성한 한 중심에 맞추고 있는 다양한 진리의 노선들과 영원한 한 근원 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각양 빛줄기들을 깨닫고 귀히 여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든 길들과 하나님의 역사에 있어서, 본성과 은혜의 각 부분들에 있어서,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 안에서, 시간 안에서나 영원 안에서 단조로운 획일성이 아니라 아름다운 다양 성이 있다는 위대한 사실로 인해 기뻐할 것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 의 우주적이며 영원한 원칙은 '다양성과 합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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