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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목숨이란? (마10:34-39)

본문

지금까지 우리는 죄로 인하여 어떻게 우리의 영이 죽었으며 죽은 우리의 속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어떻게 탄생되었는가어떻게 성 장하며 어떻게 하나님과 교통하는가그리고 어떻게 기도의 응답을 받 을 수가 있는가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예수 를 믿는 것도 영적으로 미덩야 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 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심 령을 보십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영과 교통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우리의 영과 교통하시지 육과 교통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인 속사람과 교통하면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단은 육을 통해 우리를 공격하고 우리를 사망의 권세 아래 두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이번에는 영인 속사람의 외부에 있는 혼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 마태복음 10:39에서 예수께서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 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하신 '목숨'이란 무엇입니까 왜 어떤 분들은 방언도 하고,예배도 열심히 드리고, 교회 일에 힘들여 봉사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보다 나은 것이 없고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을 욕보입니까 왜 몇십년을 믿어도 생활에 변화가 없습 니까 우리가 흔적인 일을 이해하면 이들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과정을 살펴보면 이해가 빠릅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 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흑은 우리의 몸이요, 하나님의 호흡은 성령님, 즉 영을 의미합니다.하나님이 영이 사람에게 들어옴으로써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 고 사람이 중심이 육이 아닌 영이었기에 영적 사람과 하나님이 교통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의 많은 과실 중에 선악 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둘째,인간의 범죄로 영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귀요 사단인 뱀이 유혹했습니다. 사단이 하와를 유혹하여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게 하고는 이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 들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신 말씀 "선악을 알게 하는 나 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하신 것에 순 종치 아니하고 뱀의 유혹에 의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먹음으로 사단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창세기 2:17에 "정녕 죽으리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때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서 떠나간 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의 신(神 Spirit)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창 6:3).
셋째,영의 죽음이란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진 것입니다. 사람이 선악과를 먹은 후, 육체의 사람이 됨으로써 하나님이 그 신을 거두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이 신, 곧 성령님이 떠남으로 인간의 영은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하나님 앞에서 죽은 사람이라 합니다. 우리 영이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지는 순간 영적 사람이 죄의 사람, 육의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첫사람 아담이 하나님 께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신이 육체가 된 사람으로부터 떠나게 되어 혼 도 몸도 죽게 되었습니다. "모든 영혼(souls)이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영혼(soul)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soul)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soul)이 죽으리라"(겔 18:4).
넷째, 영이 죽음으로 혼도 육도 죽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영혼',즉 혼(soul)이 죽는다는 말은 영이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짐으로 자연히 혼도 하나님과 교통이 없어진다는 말이며, 따라서 육도 하나님과 교통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사람의 영은 죽었어도 혼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아직 살 아 있습니다. 이 혼이 동물에게도 생명이요 사람에게도 생명입니다. 그래서 동물에게도 사람과 같이 의지, 감정 및 지혜가 있습니다. 익서 은 동물에게도 사람과 같이 의지,감정 및 지혜가 있습니다. 이것은 흔히 동물에게도 생명이요 사람에게도 생명입니다. 그래서 동물에게도 사람과 같이 의지, 감정, 및 지혜가 있습니다. 이것은 혼의 세계입니다. 흔적인 것이 발달되면 지혜롭고, 발달 안되면 우둔합니다.
다섯째, 예수님을 영접함으로써 죽었던 영이 다시 삽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 성령님의 능력으로 죽었던 영이 다 시 살아납니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가 단번에 용서됩니다. 이것은 내 힘으로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 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 순미을 구주로 받아들일 때 성령님의 역사로 죽었던 영이 새로 살아남으 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이 사람을 거듭난 사람, 즉 속사람이라 합니다. 이 속사람은 썩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므로 사람이 죽는 순간 이 속사람은 하늘 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후손으로 태어났으므로, 부모가 예수를 믿는다하여 나의 육신의 사람도 예수를 믿으며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가 천당 간다고 자식이 가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나와 1대 1의 관 계이지 부모님의 구원과 이어지는 관계가 아닙니다. 아담의 후손인 우리는 죄이 사람, 즉 하나님과 교통이 없는 흔적인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따라서 부모의 신앙으로 자식을 잘 가르쳐 자식에게 예수를 영접 하게 하여 구원을 받게 해야 합니다. 부모의 신앙이 자식에게 주는 영향이 큰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14을 보면, 부모가 거룩해지면 자식도 거룩해지며 부모 가 거룩치 않으면 자식도 거룩해지지 않는데 그 이유는 부모의 믿음이 자식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부모 중 한 사람만 예수를 믿을 때 자식이 예수 믿는 쪽으로 가면 거룩해지고, 믿지 않는 쪽으로 가면 거 룩해지지 않습니다. 또한가지 알수 있는 것은, 부모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진 가정에서 태어난 어린 아이는 부모의 영향을 받아 예수를 영접하게 되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 도 깨끗치 못하니라(고전 7:14).
여섯째, 우리의 목숨이란 혼을 말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목숨이란 우리의 영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마태 복음 10:39에 있는 "목숨"은 사람의 생명으로, 우리의 혼을 두고 말합니다. 혼은 타고난 천성입니다. 영이 거듭나서 속사람이 생길 때 혼과 몸이 거듭나는 것은 아닙니다. 영이 거듭나더라도 흔적인 사람은 그대 로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어도 성품과 기질은 그대로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도 흔적인 생명이 있습니다. 이 혼에는 인간이 타고난 에너지, 즉 힘이 있습니다. 실생활에서 혼을 통해 힘이 공급되 며 혼도 몸안에서 활동합니다. 혼은 언제나 자기 중심입니다. 자기 중심의 혼은 모든 일을 자기 중 심적으로 생각하므로 변덕이 있습니다. 그래서 흔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변덕이 많습니다. 이와 같이 흔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 기 중심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교만합니다. 많은 살마들이 예수를 믿고 자신이 죽었다 해도 행동이 교만할 때가 있습니다. 흔히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개가 밥을 먹을 때는 자기 욕심 때문에 건드리면 사납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사랑해 줄 때는 꼬리를 흔들며 온순해집니다. 흔적인 상태는 늘 자기 중심적 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변득서러워 거칠 수도 있고, 조용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고 선할 수도 있습니다.
일곱째, 흔적인 목숨을 죽이고자 하는 자는 삽니다. 본문 마태복음 10:39에서 말하는 목숨은 혼입니다. 자기의 흔적인 목 숨을 가지려 하면 죽을 것이며, 죽고자 하면 산다고 합니다. 본문 37 절에서, 아비나 어미나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자는 주님께 합당 치 않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모두 혼이 있으므로 가족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동 물도 혼이 있기에, 사람이 자기 자식을 사랑하듯 동물도 자기 새끼를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없는 혼에서 나오는 사랑이므로, 죽은(하나님과의 교통이 없는) 사람 이 죽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 자식간의 사랑은 흔적 인 사랑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혼으로 사랑하는 것은 일시적이며 순간 적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서 사역하실 때 제자들이 예수께 예수님의 모친과 형제들이 찾아왔다고 하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 셨습니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가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 을 둘러 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막 3:33-35).
여덟째, 흔적인 사랑은 일시적입니다. 예수께서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실 때 이 말씀은 흔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무시하고 영적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 하는 것은 그 속에 영 이 살아나서 영적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영적으로 부모 형제를 사랑하는 자라야 내 부모 형제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인간적인 것인 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인가에 따라 그 성격이 다릅니다.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 사랑은 흔적인 사랑입니다. 흔적인 사랑은 일시적이 요 순간적입니다. 성경은 흔적인 사랑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 은 바 됨이니"(롬 5:5).
아홉째,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참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내 속에 들어와서 그 사랑으로 부모와 자식이 사랑할 때 자기의 목숨을 버린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식의 노예가 된 부모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들은 흔적인 사랑으로 자식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에는 하나님의 사랑 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흔적인 사랑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서 자식을 돌볼 때에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부모 자식 형제자매 및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임하여 부모와 자식과 이웃을 사랑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런즉 너희가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우리의 모든 생활이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행해질 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그렇지 않고 흔적으로 사랑하려는 자는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면 희생적인 사랑이 나타나는 데 거기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백 세에 낳은 독 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의 심 정이 어떠했을까요사람의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75세에 주겠다고 한 아들을 25년이 지난 백 세 때 주시 고, 그 독자 이삭을 산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브라함의 이삭에 대한 사랑은 흔적인 사랑이었습니다. 고 슴도치같은 짐승도 흔적인 사랑으로 자기 새끼를 사랑하여 보호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영적인 사랑이 흔적인 사랑보다 앞서기를 원 했기 때문에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열째,혼이 영에 순종할 때 기적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흔적인 것을 죽여야 영적인 것이 소생 할 수 있습니다. 영은 혼안에 있으므로 혼이 순종되어 영이 나타날 때 이적과 기사와 표적이 따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흔적인 것이 완전히 영적인 것에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미국으로 불러주시고 신학 공부를 7년간 하게 하 신 후 하나님의 일을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후 목회를 하면서 성령님 의 인도로 산에 가서 금식 기도 생활을 통해 은혜받고 사역할 때 세상 이나 그 안에 있는 것들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졌으며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고 전하고 나타내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올라 종이에다 '처자를 버리고 나를 따르다!' "하나님"이 라고 써놓고 집을 나왔더니 아내가 주워서 성경에 붙여두고 몇 년 동 안 서로가 서로를 버린 채 살았습니다. 그때 저는 왜 하나님께서 우리 를 그렇게 인도하셨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는 계속 부흥성회를 인 도하러 다니면서 집에는 한 달에 이삼일씩만 들른 적도 있었습니다. 처자식을 버린채 시간만 나면 산에 올라가서 기도생활만 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더러 미쳤다고 했습니다. 흔적으로 볼 때에는 미친 사람이었 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가 영적인 사람이 되도록 연단을 주셔서 흔적인 것을 버리게 하신 것입니다.
열한째, 혼이 영에 순종해야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의 흔적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교회에 흔적인 것이 앞서면 어려움이 옵니다. 영적인 것이 나타날 때에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성령님의 역사가 운행됩니다. 흔적인 것이 영적인 것에 순종하면 마음 천국, 가정 천국 교회 천국이 됩니다. 이런 흔적인 것을 부인한다는 것은 말과 같이 쉽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눈물과 애통과 탄식이 있습니다. 저는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고 안타까운지 이 세상을 떠나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습니다. 한때는 먹는 것조차 싫었고, 오직 저의 심령속에는 복음을 전파하다가 강단에서 죽어 하나님 나라에 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 이 싫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브라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하나님의 뜻이니 기쁜 마음으로 응했을 것이라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집에서 모리 아 산까지 하룻길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발걸음이 떨자저 지지 않았기에 사흘씩이나 걸렸겠습니까 흔적인 것이 깨어질 때 고통이 따르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흔적인 것이 깨어져야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거기에는 십자가의 고 통이 있습니다. 눈물이 있고, 안타까움이 있고, 괴로움이 있습니다. 살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이런 과정을 겪고 나야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 무엇인가 깨닫게 되며 영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열두째, 혼이 구원(변화)받아야 예수님의 형상을 닮을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5:31에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 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을 깊음에서 지냈으 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 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 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앰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 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4-27).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긴 그에게 무엇이 더 죽을 것이 있어서 날마 다 죽노라고 했겠습니까 그는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투쟁을 이 겨내기 힘들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육체는 연약하고 피곤해서 쓰러져 죽을 지경이더라도 흔적인 것이 자꾸 살아나기 때문에 괴로워한 것입니다. 마음의 법과 지체의 법, 즉 즉 영적인 것과 흔적인 것이 서로 싸울 때에 흔적인 것이 늘 이김으로 바울은 탄식했습니다. "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속에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 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2-2
4). 그러나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왜 감사했습니까 성령님께서 그의 영을 도와 흔적이고 육적인 것을 이길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 방하였음이라"(롬 8:2). 이 흔적인 것, 조개 껍질과 같이 단단한 흔적인 관념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단번에 십자가에 죽은 것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았으나 우리 들의 실생활에 있어서 또 살아납니다. 우리의 육이 세상을 떠날 때까 지는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주어도 또 살아나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흔적인 것을 날마다 죽 여야 합니다. 이것을 죽이지 않으면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 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 속사람은 거듭나서 죄가 없는 자 이지만 혹은 그대로 있으므로 흔적인 것도 구원받아야 합니다. 야고보 서 1:21에 보면 흔적인 것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위의 구절 속에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하신 말씀은 혼의 구원(to save your souls)을 뜻하고 있습니다. 혼이 구원을 받아야만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고 신의 성품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벧 후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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