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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집사 (행6:1-6)

본문

스데반 같은 집사가 됩시다. 구제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는 가난한 자들을 돕는 두 가지 나눔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쿰바(Kuppah-바구니)입니다. 이는 매주 금요일에 공식적으로 바구니를 가지고 거두어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탐후이(Tamhui-쟁반)입니다. 이는 매일 쟁반을 가지고 나가서 집집마다 조금씩 거두어서 갑자기 어려움을 당한 자들을 돕는 구제사업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적잖은 말썽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소외 계층의 원망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는 모태에서 출생하여 한 번도 유대를 떠나 보지 않았던 정통 보수주의 토박이를 히브리파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방에 있다가 들어온 무리들은 자유롭고 개방적이어서 헬라파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두 무리들이 서로 파벌을 형성하여 보이지 않은 갈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쿰바와 탐후이를 행하는 구제사역에서 항상 헬라파 과부들이 소외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로 인하여 생긴 불만이 복음 전하는 일을 가로막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이러한 것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할 수 있는 신실한 집사를 세워서 그 일을 맡게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기도하고 복음 전하는 일에 전무하게 했습니다. 스데반 같은 집사가 됩시다. 그래서 초대 교회는 지혜와 성령님에 충만한 믿음의 사람 일곱을 세웠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스데반입니다. 사도행전 6-7장은 스데반 집사의 신앙인격이 어떠한지를 누가가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초대교회와 같이 밀알교회를 설립하고 처음으로 일곱집사를 세웁니다. 스데반 같은 집사를 세워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의 신앙인격은 이러합니다.
첫째: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했습니다. 읽을말씀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사도행전 6:3-4) 성령님 충만했습니다. 사명자의 필수 조건이 성령님충만입니다. 성령님의 사람이 되지 않고는 교회에서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주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잉태하여(마태복음 16:16-17) 오순절에 성령님으로 출산하게 된 것입니다(사도행전 2:1-4).
그러므로 교회에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혜와 믿음이 충만했습니다. 3절에서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한 자를 뽑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5절에 보니 “믿음과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을 뽑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사람은 지혜와 믿음을 갖춘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필요한 두 가지가 바로 지혜와 믿음입니다. 이 둘 중에 하나가 부족해도 주의 일을 하기에 부족합니다. 지도자는 지혜와 믿음을 겸비하여 덕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전도자들을 파송할 때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태복음 10:16)고 했습니다. 칭찬을 받았습니다. 지도자는 앞서 모범을 보이는 자라야 합니다(요한복음 10:4).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험이 있는 자는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당을 지어 파벌을 조장하여 한곳으로 치우치게 하는 자는 주님의 교회를 허는 자입니다. 지역의 연고나 학연이나 혈연을 중심으로 모이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 듣는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둘째:은혜와 권능이 충만했습니다. 읽을말씀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사도행전 6:8)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성도는 하늘로서 내리는 신령한 은혜의 이슬을 먹고 살아야 합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2:1, 8)고 했습니다. 노아가 죄악이 관영한 세대에 방주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창세기 6:8). 권능이 충만했습니다. 성령님의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권능입니다.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사도행전 1:8)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두나미스(δναμι-권능)을 받게 됩니다. 두나미스란 힘, 세력, 군대, 권능이란 말입니다. 성령님의 다이나마이트(Dynamite)와 같은 힘으로 사단권세를 정복하게 됩니다.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성령님이 권능의 임하면 자연히 이적은 나타나게 됩니다. 베드로가 성령님이 충만하여 제구시 기도 시간에 성전에 올라갈 때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오른손을 잡고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힘을 얻고”(사도행전 3:7) 뛰어 서서 걸었습니다. 은혜와 권능과 표적은 초대 교회 복음전파의 삼형제였습니다.
셋째: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읽을말씀 “공회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사도행전 6:15) 성령님의 사람은 강합니다. 베드로가 성령님을 충만히 받기 이전에는 비급한 사람이었습니다. 빌라도 법정 바깥뜰에서 한 비자(婢子)에게 주님을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마태복음 26:69-7
5). 그러나 그가 오순절을 통과하면서 성령님의 사람이 되고 나니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들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사도행전 4:19)고 했습니다. 성령님의 사람은 부드럽습니다. 스데반이 공회중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할 때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천사의 얼굴이 어떠한가 성경에 천사의 얼굴이 어떠한지 기록도 없습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천사의 사역을 통해서 천사의 얼굴이 어떠한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가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성전에서 보았던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천사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이사야 6:1-5). 천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수종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5:16).
그러므로 천사의 얼굴에는 웃음이 만발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스데반의 얼굴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넷째:계시인 말씀이 충만했습니다. 읽을말씀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사도행전 7:2) 계시인 율법에 정통했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모세의 율법을 정통했습니다.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다윗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메시야 신앙이 분명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태복음 1:1)는 복음에 대한 확고한 신앙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에 계시된 하나님의 숨은 뜻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발견했던 것입니다. 교리가 분명해야 합니다. 신앙과 믿음은 계시에 근거해야 합니다. 계시의 말씀이 없는 신앙 행위는 우상 숭배 행위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계시된 언약이 없이 믿는 믿음은 무속적인 샤마니즘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의 주변에 불건전한 세속 종교와 사이비 이단자들의 미혹이 많습니다. 정통 신앙의 교리에 분명히 자신을 세우지 못하면 사단의 미혹에 넘어가게 됩니다. 스데반은 확실한 복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다섯째:소망이 충만했습니다. 읽을말씀 “스데반이 성령님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사도행전 7:55)
1. 스데반은 하늘을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그는 돌 세례를 받으면서 그 고통 중에서 천사의 얼굴을 하면서 순교의 제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을 우러러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놀라운 몇 가지 사건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도자의 범인이 보지 못하는 다른 세계를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보좌 우편에 서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그가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을 때 하늘 문이 열 렸습니다. 자세히 보니 높이 들린 보좌가 있었습니다. 그 보좌 우편에 주님이 계셨는데 스데반이 오는 것을 보고 주님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스데반을 환영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순간 그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늘나라에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이 일어서니 앞서간 믿음의 증인들이 다 일어서서 그를 영접했습니다. 여섯째:사랑이 충만했습니다. 읽을말씀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사도행전 7:59-60) 스데반은 기도했습니다. 스데반의 기도는 바로 주님의 기도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4)고 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아가폐 그 자체입니다. 스데반의 가슴에는 주님의 아가폐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복음의 불씨였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예루살렘 교회에는 이방을 향한 복음의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니 온 성에 기쁨이 충만했습니다(사도행전 8:8). 사울이 다메섹에 가서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사도행전 9:15). 베드로는 욥바와 가이사랴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사도행전 10:5). 스데반의 일로 인하여 복음이 수리아까지 가서 안디옥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사도행전 11:1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데반 감은 집사가 됩시다.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합시다. 은혜와 권능이 충만합시다. 기쁨이 충만합시다. 말씀이 충만합시다. 소망이 충만합시다. 사랑이 충만합시다. 스데반이 밀알됨으로 복음의 세계화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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