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광야의 교회 (행7:37-53)

본문

오늘은 ‘광야 교회’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본문 38절을 보십시오. 히브리 민족이 광야에 있을 때 비로소 교회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그들이 애굽에 있었을 때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광야에 나와서 비로소 교회가 성립된 것입니다. 교회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는 예배를 드리는 예배당입니다. 구약에서는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히브리 민족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할 때에는 예수를 구주로 고백할 수 없었습니다. 본래 그들이 애굽에 정착한 것은 요셉 때입니다. 그러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정권을 잡게 된 후부터 히브리 민족은 종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 민족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출애굽 시켜 광야에서 교회를 만들어 살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광야에서 기도하여 응답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하갈의 기도도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갈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여종입니다. 사라는 나이가 많아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줄 알고 그의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첩으로 주어 이스마엘을 낳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이 많은 사라의 태를 열어 아이를 주셨습니다. 그 아이가 바로 이삭입니다. 이삭이 돌이 되어 큰 잔치를 베푸는 자리에서 당시 13살된 이스마엘이 어린 이삭을 희롱하였습니다. 그래서 하갈과 이스마엘은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쫓겨난 곳이 광야입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 수가 없는 곳입니다. 먹을 것도 없는 곳입니다. 그 때 하갈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잘못을 저질러서 쫓겨난 것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도 들으시고 그들의 영안을 열어주사 살 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크고 비밀한 일을 주십니다. 생각지도 못한 축복을 주십니다. 여러분! 얼마나 부르짖고 계십니까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젼은 지하 기도실에 그를 위해 기도하는 300명의 기도 후원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을 주십니다. 다음 광야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입니다. 모래로 덮여 있고 선인장이 자라나고 있는 곳입니다. 무서운 짐승들이 들끓는 곳이 광야입니다. 전갈이나 뱀들이 살고 있는 땅이 광야입니다. 도무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광야입니다. 광야는 무서운 곳입니다. 광야를 영적 의미로 보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지 않는 불신자들의 마음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 상태는 광야같이 험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기 전에 완악한 애굽 왕 바로에게 내린 10가지 재앙의 모습은 모두 애굽의 귀신들, 즉 우상 숭배를 깨트린 모습입니다. 예를 들면 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을 신성시 합니다. 그 강물을 먹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강물을 피로 변하게 하였습니다. 나일 강물이 하나님이 아니란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 다음 개구리 신, 파리 신, 송아지 신, 메뚜기 신, 장자를 귀하게 여기는 것 등 모두 우상 숭배였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쳐서 깨트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출애굽 시켜 주신 것입니다. 본래 바로 왕이 이스라엘을 내보낼 때는 광야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의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무리들이 모인 곳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 장소가 광야이기 때문에 광야 교회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광야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도 우상 숭배에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섬긴
첫째 우상은 금송아지였습니다. 광야에서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 산에 올라갔을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은 육신의 눈으로 불 수 없지만 살아 계십니다. 히브리 민족은 육신의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은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신을 모방한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송아지(황소)를 신으로 섬기면서 춤추고 먹고 마셨습니다. 히브리인들도 오랫동안 애굽에 살면서 이 못된 우상 숭배를 배웠던 것입니다. 우상은 생명이 없습니다. 재료가 나무나 돌이나 쇠입니다. 또한 그것은 사람이 만듭니다. 사람이 만들어 놓고 거기에 절을 합니다. 경배를 합니다. 참으로 한심합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좋은 것을 보고 자라야 합니다. 우상 숭배나 하고, 점이나 치고, 관상이나 보고, 토정비결이나 보고, 손금이나 보는 가정에 태어나면 성장해서 본인 또한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가정에서 태어나면 예배를 배웁니다. 기도를 배웁니다. 찬송을 배웁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또 나쁜 친구를 사귀면 안됩니다. 잘못에 빠지게 되는 것은 거의가 나쁜 친구 때문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복 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라고 한 것입니다. 다음 그들이 만들어 심긴 신은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이었습니다.
43절을 보십시오.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만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몰록이란 암몬 사람들이 섬기는 신으로 ‘너희 섬기는 임금’이란 뜻입니다. 하늘에 있는 별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레판의 별도 별을 섬기는 것으로 앗수르 사람들이 섬기는 신의 이름입니다. 해와 달을 섬기는 습관을 출애굽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대로 따라 섬긴 것입니다. 다음 광야에서 히브리인들이 잘못한 것은 원망의 죄입니다. 원망이란 불신앙에서 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기 때문에 원망이 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큰 이적을 체험했습니다. 출애굽하기 전에 천사가 그들 앞길을 인도했었고, 바로의 군인들이 추격할 때는 큰 흑암을 만들어 그들을 보호했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갈라 육지같이 건너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와 같은 기적을 목격하고 체험했지만 광야에 나왔을 때 그들은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원망은 목이 마를 때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구하여 반석을 쳐서 생수를 먹였습니다. 다음 하나님은 만나를 주셔서 먹게 하셨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원망을 할 때는 메추라기를 보내셔서 먹게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조금 불편하면 원망을 하였습니다. ‘애굽이 더 좋았다’라고 했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여러분 종살이가 좋은 것입니까 노예 생활이 좋은 것입니까 나중에 원망의 대상은 모세가 되었습니다. ‘왜 우리를 여기로 데리고 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까지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세를 하나님이 세워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를 원망함은 하나님을 원망함입니다. 결국 원망하던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시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 생활은 내 지식과 경험과 생각과 이성을 죽이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람 나라 군대 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이 들어 유대 나라 선지 엘리사에게 병을 고치러 왔을 때 엘리사는 그를 만나지도 않고 요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하라고 그의 종 게하시를 시켜 말만 전해 주었습니다. 나아만은 자기를 선대하지 않는다고 길길이 뛰었습니다. “그가 나의 상처에 손을 대고 기도해 줄 것을 바랐는데 우리 나라 다메섹 강과 아마나와 바르빌은 이스라엘 모든 강보다도 낫지 아니하냐 거기 가서 씻으리라” 하면서 그 장소를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를 수행하던 종들이 말했습니다. “선지자가 더 큰 일을 명하여도 했을 것 아닙니까 요단 강에 들어가 목욕하는 것이 무엇이 힘듭니까” 그러자 나아만은 자기 생각을 죽이고 일곱 번 목욕을 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과 같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요단 강물이 문둥병을 치료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순종이 병을 치료한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축복이 있습니다. 불평과 원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불순종입니다. 원망과 불평의 말은 저주의 말입니다. 그 말이 내 입에서 자주 나오면 축복을 거절하는 것이 됩니다. 시 109:17에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지 않는 마음은 광야입니다. 그냥 두면 그런 사람은 지옥에 갑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우리는 전도해야 합니다. 이름을 적어 놓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또 교회에 들어와서도 마음 문을 열지 않아 은혜를 못받는 사람들도 더러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항상 광야같은 마음 밭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 밭의 모양이 본문 51절에 있습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님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히브리 민족은 목이 곧은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모세와 같은 지도자의 말을 순종치 않은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결국 광야에서 시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듣던 바리새인들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지 아니하여 구원의 축복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더구나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자”, “성령님을 거스리는 너희 조상과 같다”는 스데반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를 돌로 쳐 순교의 제물이 되도록 했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 마음이 옥토가 됩니다. 가나안 복지가 됩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지 못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영이 죽습니다. 내 영이 죽으면 입에서 불평이 나옵니다. 원망이 나옵니다. 감사가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새벽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광야같은 내 마음을 옥토로 만드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가나안 복지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57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