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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일에 증인입니다. (행3:12-15)

본문

‘우리들이 사는 나날들은 영혼의 봄 날이라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사흘간의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 그 감옥을 부수셨기 때문이라네/ 마치 찬란하게 떠오르는 저 태양과도 같이! 이 시는 저 유명한 찬송가 작가인 니일(J.M.Neale)이 남긴 예수 부활에 대한 예찬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서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나셨다! 이것은 역사의 한가운데서 새롭게 재현되는 또 하나의 예수 운동이었습니다. 사실상 이것은 초대교회 전 메세지의 중심이었습니다(행2:24-36, 3:15, 4:10, 7:56, 10:40, 13:30-37, 17:31). 그리고 이것은 세계를 향한 복음 선교의 동기요, 동력이 되었습니다. 지금 예수의 사도들은 사람들 앞에서 대단히 중대한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우리는 이 일에 증인들입니다라고 하는 증거입니다. 사도행전 2장 32절에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 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첫 번째 성령님 설교의 중요한 내용이었습니다. 사도행전 3장 15절에도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도 베드로가 제 9시 기도 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다가 40년 동안 앉은뱅이된 자를 예수 이름으로 일으킨 후에 그에게 모여드는 군중을 향하여 소리친 내용입니다. 사도행전 5장 32절에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님도 그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베드로가 자기를 투옥시킨 유대 공회 의원들 앞에서 담대하게 나타낸 예수 부활의 소리였습니다. 예수 부활은 예수 교회를 탄생시킨 동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선교의 활력이었습니다. 저들은 예수 부활의 산 증인들이라고 힘있게 소리쳤습니다.
I. 우리는 예수 부활을 부인(否認)하는 증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1. 결코 예수 기절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정말로 죽은 것이 아니라, 너무 심한 고통에 의해서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고 기절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몸을 서늘한 무덤의 공간에 눕혀 놓았을 동안 다시 깨어나 정신을 차리게 되고 어디론가 도망을 가 버렸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은 로마서 백부 장교가 확인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군병들을 시켜서 참으로 예수의 옆구리를 찔러 보니 물과 피가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죽음을 확인하는 과학적인 절차였습니다(요19:32-3
4). 사실상 예수는 창에 찔리시기 전에 이미 운명하였습니다(요19:30).
2. 결코 예수 시체를 훔쳐 가 버렸다고 하는 도적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예수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 감추고 나서 그가 죽은 자로부터 부활했다고 헛소문을 퍼뜨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다른류는 유대인들 중에서, 예수가 죽은 다음에도 예수의 무덤이 순교자의 성지가 되지못하도록 훔쳐 처리해 버렸다는 설도 있습니다. 참으로 허무맹랑한 헛소리일 뿐입니다.
3. 결코 환상의 산물이라는 주장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제자들의 마음에는 예수에 대한 생생한 기억들이 남아 있었다. 특히 감수성이 빠른 여자들에게는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이들이 십자가에서 억울하게 죽어 가버린 예수의 모습을 거듭거듭 생각하고 기억한 나머지 그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감상적인 환상의 착각에 빠지게 되어 버렸다고 하는 감상적인 환상의 착각에 빠지게 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슨 착각의 환상이 수없이 또 여러 사람들에게 반복이 됩니까 저들의 눈이, 귀가, 손이, 입이, 지성이, 감정이, 의지가 예수의 부활을 감각적으로까지 체험했습니다.
4. 결코 첨부(첨가)설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이 주장은 ‘예수가 죽은 다음 그의 제자들은 두려운 나머지 급히 갈릴리로 되돌아 가버렸다. 저들은 거기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예수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 계실 것이라고 하는 생각이 떠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저들이 다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왔을 때 빈 무덤에 관한 이야기가 돌고 있음을 들었다. 그 이야기는 어떤 여자들이 동산에 가서 무덤을 찾고 있을 때 어떤 젊은 남자를 만나서, 예수의 무덤을 물어 보았을 때, “그가 여기에 없소” 라고 답하면서 다른 빈 무덤을 가리키면서 보시요 그를 두었던 곳이요(막16:6)라고 한 말을 후에 그가 여기에서 살아 나셨다고 첨부한 말에 기인한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예수 부활의 사실을 부인하기 위한 그야말로 가설들은 나열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Ⅱ. 성경은 예수 부활을 확실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2편 6-7절에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내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나의 왕, 내 아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군왕들과 대적자들 앞에서 그 아들을 시온산에 세우고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함을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부활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16편 10절에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 말씀이 초대 성령님 설교의 핵심으로 인용이 되었습니다(행2:30-31, 13:35). 무엇보다도 예수님 자신은 자기의 죽음과 함께 자신의 부활을 거듭 거듭 예언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1절에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쳤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 자신의 거듭된 예언이었습니다(막8:31, 9:31, 10:34, 마17:23, 20:19, 눅9:22). 예수님은 요나가 밤낮 사흘을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났던 표적을 인용하여 자신의 부활을 예고하였습니다(눅11:30, 마12:40).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4절에서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결코 사람들의 논증 따위에 의존할 성경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 역사나, 통치나, 섭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건은 하나님 자신의 전능하신 행동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고 뜻했으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면, 그것은 결과만 있을 따름입니다. 예수 부활은 죄인을 의롭다 하시기 위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초자연적 권능발동입니다.
Ⅲ. 사도들은 이 일에 증인이었습니다. 예수 승천이후 그의 약속대로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했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다시 세상에 오신 또 다른 형태의 임마누엘이었습니다. 그 후 그의 영을 받은 무리들이 이룩한 단체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예루살렘 교회 탄생이었습니다. 저들은 3년 동안 예수를 육적으로 직접 대면하다가, 다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영으로 모신 자들이었습니다. 저들은 다시 사도들을 통하여 서로 교제하며 예수를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행2:42). 새로운 기도 운동이 일어났습니다(행2:42). 새로운 기도 운동이 일어났습니다(행2:42). 경외심이 일어났습니다(행2:43). 기사와 표적들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행2:43). 서로 유무상통(有無相通)하는 사랑의 불길이 일기 시작하였습니다(행2:44-4
5). 날마다 성전에 모이며, 예배하고 넘치는 기쁨을 함께하는 일이 일어 났습니다. 폭발하는 감사와 찬송이 저들의 삶을 온통 주장해 버리고 말았습니다(행2:46-47).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에게는 불가항력적인 용기들이 일어났습니다. 예수 부활을 증거하는 용기였습니다. 예수 이름을 전하면 잡히고, 끌려가고, 투옥되고, 죽는 줄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위협을 당히지 아니하는 용기, 굴복당히지 아니하는 용기, 확신에서 오는 용기를 가졌습니다. 저들의 감정과 언어와 표정과 행동은 가히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새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들은 세상에 살면서 마치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처럼 충만한 사람들로 살았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등이 모두 그러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임원들인 집사들은 한결같이 믿음이 독실하였습니다. 성령님이 충만했습니다.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불신자들 앞에서 칭송을 들었습니다(행6:1-7). 스데반은 예수를 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를 하는가 하면, 빌립 집사는 성령님의 인도로 사마리아에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헤롯왕의 칼에 순교를 당하는가 하면, 그 결과 교회는 사방으로 선교 구역을 넓히게 되고, 교회는 더더욱 왕성해 가고 말았습니다. 반(反)기독자요, 반교회주의자였던 사울이 박해 도상에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그 결과 예수 이름을 전하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마침내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유다로, 유다에서 사마리아로, 사마리아에서 땅끝까지 확산되는 대구속사의 드라마가 펼쳐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 어디에 기인되었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 나셨다고 하는 부활, 그것이었습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그것이었습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고 말았습니다. 새 소망의 신기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그리고 지상에 존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부활의 증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동정녀 탄생이나,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 그리고 빈 무덤에 예수는 흘러간 옛날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결코 예수는 전설이나, 신화나, 우화의 가공적인 주인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역사적 사실입니다. 살아 계시 하나님께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전능하신 구속사입니다.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셨다는 이 진리는 어떠한 이론이나, 공론이나, 타협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비교할래야 비교할 것이 없는 초자연적, 역사의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진실이던가 아니면, 사기이던가 그 둘 중에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에 대한 교회의 신앙은 확고 부동해야 합니다. 결코 교회가 예수 부활 신앙에 대하여 애매모호하게 미결된 상태로 지나가서는 안됩니다. 지상에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부활의 열매입니다.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신 결과 새롭게 태어난 단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니라고 하였습니다(마16:18).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 그의 영으로 현존하시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혼자서 살아가는 고독의 왕자가 아닙니다. 그 분은 그가 세우신 교회를 통하여 우리 가운데 임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의 교회에서 그 분의 뜻을 찾고 그 분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의 위로와 격려와 축복의 약속들을 체험하고 살아갑니다. 지금도 부활하신 그 분은 우리에게 자신의 전능을 행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의 무덤이 아니라, 예수께서 살아 임재하시는 부활의 집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의 집이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예수 믿는 우리는 이 일, 곧 예수 부활의 산 증인들입니다. 이 집을 중심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 전체가 예수 살아 계심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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