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려자 사도 바울 (행27:13-26)
본문
1,신앙의 사람 사도 바울
2,사람을 격려하는 사도 바울 금번 걸프 전쟁을 통하여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배웠다. 미국을 위시한 다국적군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 하고 후세인과 아랍 사람들은 알라에게 기도하는 모습도 보았다. 특히 알라 신을 섬기는 사람들의 특이한 기도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엇다. 물론 그 알라신이 저들의 기도를 들어 주지 않아서 중동의 깡패인 후세인이 낭패를 보고 말았다. 그런나 한 가지만은 잊을 수가 없었다. 저들은 자기들의 기도를 들어 주지도 못하는 신인 알라에게 기도하고 있는 정성은 너무도 진지해 보였다. 참된 섬김의 대상도 아닌데 기도도 들어 주지 못하는 신인데도 그들은 시간을 정해 놓고 성실하게 진지하게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일신 참 하나님을 믿는 다는 우리들은 어떤 기도의 생활을 하고 잇는 것인가 저네들 보다 몇 배나 더 열심히 기도의 생활을 해야할 사람들이 우리들인데. 우리는 지난 시간에 풍랑을 만나서 곧 죽게 되었던 알렉산드리아 호에 기도의 사람 사도 바울을 보았다. 바다에서 일고 있는 풍랑만이 풍랑이 아니다. 우리 모두를 향하여 밀어 닥치는 풍랑은 계절도 없다. 예고도 없을 때가 많다. 우리들도 사도 바울처럼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
1,신앙의 사람 사도 바울 " 밤길을 걸을 때 용감한 사람이 일행 중에 한 사람만 있어도 든든하다. 특히 난선 길을 갈때 안내자의 역할은 너무도 중요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웬지 점점 밤 길을 걷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살면 살 수록 점점 더 앞 날이 흐미한게 낫 선길을 가고 있는 것만 같으다. 이 험하고 밤길 같은 세상에 여러분들이 용감한 가이드가 되어서 살고 싶지는 않으신지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길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안내자가 되고 싶지 않은가 사도 바울은 함께 행선하고 있는 276명의 많은 사람들의 위로자가 되었다. 평안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 소망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을 소개하는 사람이 되었다. 22절에 "내가 권하노니 안심하라." 이것을 우리들이 해야한다. 오늘 교회가 이 일을 해야한다. 세상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 필요로하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한다. 사도 바울은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25에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 - 하나님을 믿는 확고한 믿음이 잇었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누구에게든지 나는 내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노라는 말을 힘 있게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엇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하나님을 믿었는고하면 행26;24-25절에서 베스도 총독이 바울을 믿쳤다고 할 정도로 사도 바울은 믿었던 것이다. 우리들도 사도 바울처럼 직장에서 그리고 사랑하는 동료들에게 예수에게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선 이 밤길 같은 세상의 가이드는 결코 될 수가 없다. 우리들이 하나님에게 완전히 미치지 아니하고서는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교회는 만들 수 없다. 여러분이여 생각을 해 보시라. 지금 사도 바울이 누구를 보고 이런 담해한 말을 하고 있는가 안심해야될지 못해야 될지는 잠시만 두고 보면 알일인데 몇일씩이나 풍랑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담대할 수 있었단 말인가 백부장이 있었다. 선장과 선주가 타고 있었다. 많은 유력한 인사들이 거기에 있었다. 바울은 지금 죄인의 신분으로 잡혀서 로마로 끌려가고 있는 처지이다. 그런 중인데도 사도 바울은 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힘 잇게 외쳤다. "여러분이여 안심하라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어떤 교인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가면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체험적인 신앙을 가지지 못햇거나 아직까지 자기가 알고 믿는 믿음에 어디엔가 모자람을 인식하는 부끄러움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에게 영적인 체험이 있다면 또 성실하게 믿음의 길을 가고 있다면 사도 바울처럼 어디에서든지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고 힘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안심과 평안과 소망을 주면서 살 수 있는 것이다.
2, 사람들에게 격려하는 사도 바울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의 믿음의 신분을 발힌 다음의 순서는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인 것을 생활로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도 바울처럼 당신들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0
1, 우리 믿음의 형제들 간에도 아직까지 믿음의 확신이 없는 분들도 있을 수 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마끼면서 믿음으로 살려고 애를 쓰는데도 생활속에서 순간 순간 확신이 흐려지고 약해져가는 신앙의 형제들도 있다. 그들을 향하여 형제여 나를 보라. 그리고 안심하라. 바다도 잠잠케 하신 하나님께서 분명히 형제를 건지실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처럼 믿으라고 말할 수 있어야한다. 0
2,우리 형제들 중에는 아직까지도 기도는 하는데 기도의 응답같은 것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들에겐 기도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잇어야 한다. 사도 바울이 광풍을 만난 알렉산드리아 선상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 했던 것처럼 기도하는 모습과함께 기도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구하라, 찾아라, 두드리라. 0
3,세상은 구원 받은 사람들 때문에 유지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유라굴로라는 광풍에서 금방 파선할 뻔 하였던 알렉산드리아호의 276명은 순전히 사도 바울 한 사람 때문에 다 구원을 받게된 것이였다. 만약에 그 배에 사도 바울이 타고 있지 아니했더라면 이 배가 격은 엄청난 사건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성에 믿음의 사람 열 사람만 있어도 성을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다. 오늘 날 세상이 이마만큼이라도 유지되고 있음은 세상에 교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구석 구석에 믿음의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기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겨우 겨우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을 찾고 계신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찾으신다. 기도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을 찾으신다. 오늘도 세상이라는 바다는 온 갓 풍랑으로 가득차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해가 서산을 향해 기울고 있다. 사도 바울이 많은 사람들에게 평안과 소망과 안심을 줄 수 있었던 것처럼 부끄러움이 없는 믿음의 사람 그리고 기도의 사람이 되시어 바울처럼 사람을 격려하시면서 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
2,사람을 격려하는 사도 바울 금번 걸프 전쟁을 통하여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배웠다. 미국을 위시한 다국적군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 하고 후세인과 아랍 사람들은 알라에게 기도하는 모습도 보았다. 특히 알라 신을 섬기는 사람들의 특이한 기도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엇다. 물론 그 알라신이 저들의 기도를 들어 주지 않아서 중동의 깡패인 후세인이 낭패를 보고 말았다. 그런나 한 가지만은 잊을 수가 없었다. 저들은 자기들의 기도를 들어 주지도 못하는 신인 알라에게 기도하고 있는 정성은 너무도 진지해 보였다. 참된 섬김의 대상도 아닌데 기도도 들어 주지 못하는 신인데도 그들은 시간을 정해 놓고 성실하게 진지하게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일신 참 하나님을 믿는 다는 우리들은 어떤 기도의 생활을 하고 잇는 것인가 저네들 보다 몇 배나 더 열심히 기도의 생활을 해야할 사람들이 우리들인데. 우리는 지난 시간에 풍랑을 만나서 곧 죽게 되었던 알렉산드리아 호에 기도의 사람 사도 바울을 보았다. 바다에서 일고 있는 풍랑만이 풍랑이 아니다. 우리 모두를 향하여 밀어 닥치는 풍랑은 계절도 없다. 예고도 없을 때가 많다. 우리들도 사도 바울처럼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
1,신앙의 사람 사도 바울 " 밤길을 걸을 때 용감한 사람이 일행 중에 한 사람만 있어도 든든하다. 특히 난선 길을 갈때 안내자의 역할은 너무도 중요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웬지 점점 밤 길을 걷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살면 살 수록 점점 더 앞 날이 흐미한게 낫 선길을 가고 있는 것만 같으다. 이 험하고 밤길 같은 세상에 여러분들이 용감한 가이드가 되어서 살고 싶지는 않으신지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길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안내자가 되고 싶지 않은가 사도 바울은 함께 행선하고 있는 276명의 많은 사람들의 위로자가 되었다. 평안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 소망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을 소개하는 사람이 되었다. 22절에 "내가 권하노니 안심하라." 이것을 우리들이 해야한다. 오늘 교회가 이 일을 해야한다. 세상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 필요로하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한다. 사도 바울은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25에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 - 하나님을 믿는 확고한 믿음이 잇었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누구에게든지 나는 내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노라는 말을 힘 있게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엇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하나님을 믿었는고하면 행26;24-25절에서 베스도 총독이 바울을 믿쳤다고 할 정도로 사도 바울은 믿었던 것이다. 우리들도 사도 바울처럼 직장에서 그리고 사랑하는 동료들에게 예수에게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선 이 밤길 같은 세상의 가이드는 결코 될 수가 없다. 우리들이 하나님에게 완전히 미치지 아니하고서는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교회는 만들 수 없다. 여러분이여 생각을 해 보시라. 지금 사도 바울이 누구를 보고 이런 담해한 말을 하고 있는가 안심해야될지 못해야 될지는 잠시만 두고 보면 알일인데 몇일씩이나 풍랑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담대할 수 있었단 말인가 백부장이 있었다. 선장과 선주가 타고 있었다. 많은 유력한 인사들이 거기에 있었다. 바울은 지금 죄인의 신분으로 잡혀서 로마로 끌려가고 있는 처지이다. 그런 중인데도 사도 바울은 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힘 잇게 외쳤다. "여러분이여 안심하라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어떤 교인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가면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체험적인 신앙을 가지지 못햇거나 아직까지 자기가 알고 믿는 믿음에 어디엔가 모자람을 인식하는 부끄러움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에게 영적인 체험이 있다면 또 성실하게 믿음의 길을 가고 있다면 사도 바울처럼 어디에서든지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고 힘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안심과 평안과 소망을 주면서 살 수 있는 것이다.
2, 사람들에게 격려하는 사도 바울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의 믿음의 신분을 발힌 다음의 순서는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인 것을 생활로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도 바울처럼 당신들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0
1, 우리 믿음의 형제들 간에도 아직까지 믿음의 확신이 없는 분들도 있을 수 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마끼면서 믿음으로 살려고 애를 쓰는데도 생활속에서 순간 순간 확신이 흐려지고 약해져가는 신앙의 형제들도 있다. 그들을 향하여 형제여 나를 보라. 그리고 안심하라. 바다도 잠잠케 하신 하나님께서 분명히 형제를 건지실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처럼 믿으라고 말할 수 있어야한다. 0
2,우리 형제들 중에는 아직까지도 기도는 하는데 기도의 응답같은 것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들에겐 기도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잇어야 한다. 사도 바울이 광풍을 만난 알렉산드리아 선상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 했던 것처럼 기도하는 모습과함께 기도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구하라, 찾아라, 두드리라. 0
3,세상은 구원 받은 사람들 때문에 유지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유라굴로라는 광풍에서 금방 파선할 뻔 하였던 알렉산드리아호의 276명은 순전히 사도 바울 한 사람 때문에 다 구원을 받게된 것이였다. 만약에 그 배에 사도 바울이 타고 있지 아니했더라면 이 배가 격은 엄청난 사건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성에 믿음의 사람 열 사람만 있어도 성을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다. 오늘 날 세상이 이마만큼이라도 유지되고 있음은 세상에 교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구석 구석에 믿음의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기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겨우 겨우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을 찾고 계신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찾으신다. 기도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을 찾으신다. 오늘도 세상이라는 바다는 온 갓 풍랑으로 가득차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해가 서산을 향해 기울고 있다. 사도 바울이 많은 사람들에게 평안과 소망과 안심을 줄 수 있었던 것처럼 부끄러움이 없는 믿음의 사람 그리고 기도의 사람이 되시어 바울처럼 사람을 격려하시면서 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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