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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굴로호 태풍 속의 항해 (행27:1-44)

본문

오늘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그렇게도 가기를 원했던(롬15:22) 로 마로 향하는 항해의 길을 보여 주는 말씀이다. 비록 죄수의 몸이기는 하지만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로 향하고 있다. 사도행전의 무대도 성지 예루살렘을 떠나게 되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세계의 수도인 로마에서 사도행전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된다. 세계의 수도라는 로마에서 사도 바울의 옥중 전도로 끝을 맺는다. 아드라뭇데노호 배를 타고 가이사랴에서 그레데섬의 미항까지 백부장 율리오의 호송으로 다른 죄수들과 함께 하는 사도 바울이나, 백부장 율 리오의 친절로 도중에 친구들을 만나 대접을 받기도 하였다. 아드라뭇데노호는 소아시아의 해안을 항해하는 무역선으로, 이 배를 타고 시돈을 지나 구브로 해안을 따라 항해하여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무라에 도착하였다. 그 곳에서 애굽에서 로마로 곡물을 공급하는 알렉산드리아호 배를 만 나 죄수들은 옮겨 타게 된다. 니도 맞은 편에 이르러 바람의 거스림으 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따라 행선하여 간신히 미항에 도착 하였다. 심한 풍랑으로 인해 생각지 않은 시간이 걸려 이미 여러 날이 흘러 버렸다. 사도 바울은 이곳 미항에서 겨울을 지나고 가자는 것이다.
바다 에서 여러 번의 파선의 위험을 경험한 바울이었기에(고후11:25) 바다의 위험을 잘 알고 있었다. 본문 10절에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경험에 미루어 살펴 보면, 이 항해가 계속된다면 가득히 실은 물건이나 배뿐만 아니라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생명에 도 위험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사도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항해에는 선장이 제일 권위자일 수밖에 없다. 그는 바다를 전공한 자이요, 배를 전공한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바다를 다스리는 자도, 바다의 주인도 아니다. 바다의 물 결도, 바다의 바람도 그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바다를 창조하 시고, 바다를 소유하시고, 바다를 다스리시고, 바다의 바람을 그 손에 쥐고 있는 이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것은 유라굴로호라는 엄청난 위력의 태풍 이다. 한 치의 앞 일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생들이기에, 인생의 기준과 판단은 실상은 믿을 수 있는 것이 못된다. 97년의 마지막 주일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형편이 바로 로마로 향하는 사도 바울의 항해와도 같다. 유라굴로호 태풍이 휘몰아치는 바다. 바로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경제 위기"와도 같다. 유라굴로호 태풍 속의 항해. 노도광풍이 휘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구원의 여망이 끊어진 저들이 겪는 실망과 좌절을 지켜보며, 경제위기 시대의 "경제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할 우리 성도들의 마음 가짐을 생각해 보고져 한다.
1.믿었던 선장의 무능 본문 11절에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 라"고 했다. 죄수들의 호송을 책임진 백부장 율리오는 미항에서 겨울을 지나고 항 해하자는 사도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다. 누구나 다 그럴 수밖에 없는 당연한 일이다.
⑴.더 많은 지지자들 본문 12절에 "그 항구가 과동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 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 라 한편은 동북을, 한편은 동남을 향하였더라"고 했다. 겨울을 지나더라도 과동하기 불편한 미항이 아니라 뵈닉스에서 과동 하자는 것이다. 미항이라는 빈약한 어촌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기 보다는 번창하고 화려한 뵈닉스 항에서 따뜻한 겨울을 보내기를 원했다. 인간의 경험과 지식에 의한 선장의 주장, 이해타산에 눈이 먼 선주의 강행군의 주장, 살아 계신 하나님의 종으로 신앙적인 입장에서의 주장, 이들의 항해에서 "인생의 미래사"를 그 손안에 쥐고 계시는(전9:1) 살아 계신 하나님은 무시되고 만다.
⑵.좋은 징조들 본문 13절에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의 지지로 당당하게 출발한 알렉산드리아호, 순한 남풍에 저들은 득의한 줄 알고 의기양양했다. 본래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달려 가는 자들에게 마귀는 일시적인 성공을, 평안을, 형통을 준다. 태풍의 전야는 고요한 것이다. 우리의 삶은 한 순간이 아니라 장구한 것이다. 우리 인생사는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과 같은 달리기 이다. 처음 한 순간의 형통으로, 단정하고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김 영삼 문민정부도 처음에는 90% 이상의 찬성과 지지를 얻 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이 개탄하는 바와 같이 위, 아래가 하나 되지를 못하였다. 대통령 혼자서 하는 정치가 아니다. 국민이 따라 주지 않고, 아랫 사람들이 따라 주지 않으면 앞에서 아 무리 좋은 정책을 말해도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결국 헛 구호로 그치 고 만다. 사정 작업을 해 올라가니. 장로들이 그 위에 있더라는 탄식 이었다. 결코 출발이 나빠서 오늘의 이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니다. 미래사를 내다보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한 것이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1만불 소득에 3만불 소비". 문제다! 문제다! 하면서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노력하였는가. "삼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외국의 언론들이 경고와 위험 신호 를 보내었는데도, 모두다 자기도취에 빠져서 뒤로 흘리고, 외면하고, 오히려 비웃었던 우리들이다.
⑶.속수무책 본문 14-15절에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 작하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 가"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순한 남풍으로 의기양양해 하던 저들에게 생각 지도 못한 "유라굴로"호 라는 태풍이 휘몰아쳐 왔다. 성경은 이때의 상 황을 "광풍이 대작하니."라고 했다. 미친 바람이 크게 일어났다고 한다. "미친 바람", 그 바람 앞에 믿었던 선장은 속수무책이다. 미항을 출발 할 때만 해도 그의 말은 모든 사람에게 권위가 있었는데. 이제 그 선 장은 사람들에게 할 말이 없다. 속수무책이다. 배가 바람에 밀려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라고 한다. 선장은 배를 운전해 자신이 목표한 곳으로 가야 한다. 그 믿었던 선장은 무능 하기 그지없어서 배를 바람에게 내어주고 만 것이다.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간다"고 했다. 선장이 아니더라도, 그 배에 탄 모든 사람이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선장이 하는 일을 다른 모든 사람 이 다 할 수 있다면. 그는 이제 선장이 아니다. 선장은 선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선장인 것이다. 이제 우리 나라의 경제는 우리의 손으로 굴려 갈 수 있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시대"도 아니다. "
경제위기 시대"이다. 경제위기의 요구대 로, 경제위기의 계획대로, 경제위기의 인도대로 "가는 대로 두고 볼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2.온갖 악재가 가득 본문 17-18절에 "끌어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 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우리가 풍랑으로 심 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라 했다. 유라굴로호 태풍이 휘몰아치니 그레데 해변의 바다는 온통 항해의 악 재들로 가득했다. "그냥 쫓겨가더니." 속수무책의 바다 위에서 표류 하고 있는 저들에게 어느 하나 악재가 아닌 것이 없다.
⑴.유라굴로호 태풍 본문 14절에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 하니"라고 했다. 유라굴로호 태풍, 모든 악재의 원인이다. 미친 바람이 몰아치니 오랜 항해의 관록을 자랑하는 선장도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일반적으로 예 측이 가능한 바람이 아니다. 앞 뒤 좌우로 휘몰아치니 바로 미친 바람 이다.
⑵.스르디스 본문 17절에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라고 했다. 스르디스는 사정(沙汀) 곧 모래 수렁을 말한다. 배가 여기에 걸리게 되면 넘어지게 되고 판선할 수밖에 없다. 지중해에는 이런 스르디스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선원들이 자신들의 생명과도 같은 돛대 등의 연장도, 가득 실 은 짐들도, 배의 기구들도 스스로의 손으로 바다에 버려야 했다. 배를 가볍게 하여 모래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하려고 다 버렸다.
⑶.심한 풍랑 본문 18절에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라 했다. 심한 풍랑으로 인하여 배를 가볍게 하려고 짐을 바다에 다 버려도, 밀려오는 큰 풍랑으로 속수무책이다. 그 짐을 지키기 위해 "심히 애쓰 다가"라고 한다. 결국은 버렸다는 것이다. 이 땅 위에서 아무리 인생들이 재물을 쌓으려고 "심히 애쓸지라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아무 소용없는 것이 되고 만다. 사공들이 "짐"을 지키려고 "심히 애쓰다가" 결국은 스스로 바다에 버리게 된다.
⑷.어두움 본문 20절에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 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고 했다. 유라굴로호 태풍, 미친 바람이 휘몰아치는 바다이다. 거센 풍랑이 몰 아치는 바다이다. 거기에다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는 어두움의 바다 이다. 방향 감각도 없이 요행수를 바라며 "가는 대로 그냥 쫓겨가는" 참으로 어둠이요, 절망이다.
3.구원의 여망이 없다. 본문 20절에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 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고 했다.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고 성경은 밝 히고 있다. 더 이상 바라볼 것이 없는 절망의 상태이다. 낭패와 실망을 넘어 소망이 끊어진 상태이다. 믿었던 선장의 무능을 탓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남풍이 순하게 불 어오던 그 좋은 여건들은 다 어디로 가고,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 라"가 되었을까. 유라굴로호 태풍, 그 미친 바람이 휘몰아쳐 오니 평상시의 모든 여건 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 돛대도 버려야 했고, 삿대도 버려야 했다. 애지 중지 모아 온 재물도 다 버려야 했다. 유라굴로호 태풍, 그 미친 바람이 휘몰아쳐 오니 인간의 모든 경험과 지식, 그리고 관록도 다 소용이 없다. 배의 전문가이요, 바다의 전문가 이요, 항해의 전문가인 선장이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나, 다 같이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가는 대로 그냥 쫓겨가더니."이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믿었던 선장이 속수무책이니 절망일 수밖에 없다. 유라굴로호 태풍, 그 미친 바람이 휘몰아치니 절망일 수밖에 없다. 스르디스에 걸릴까봐 돛대도, 삿대도, 다 버려야 하니 절망일 수밖에 없다. 배의 모든 기구도, 가득 실은 짐들도 다 버려야 하니 절망일 수밖 에 없다. 심한 풍랑 일고, 해와 별도 보이지 않는 어두움뿐이니 절망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가 되고 만다.
4.그 속에 살아 계신 하나님 본문 24절에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라고 했다. 유라굴로호 태풍 속의 항해. 바로 낭패와 실망뿐이다. 좌절과 절망뿐이다. 죽음과 공포에 떠는 두려 움뿐이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는 소망이 끊어진 상태이다. 모두가 지치고 쓰러졌으며,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 "득의한 줄 알고" 의기양양해 하던 모습은 전혀 찾 아볼 수 없다. 선장도, 선주도, 백부장도, 사공들도, 죄수들도, 함께 탄 사람들도, 모두가 다 "구원의 여망"이 끊어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거기에도 하나님은 살아 계셨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그 유라 굴로호 태풍 속에도 찾아 오셨다. 당신의 사람을 부르셨다. "바울아 두 려워 말라"고 하신다. 본문 24-25절에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 을 믿노라"고 했다. 그 살아 계신 하나님이 당신의 사람, 사도 바울에게 "네가 가이사 앞 에 서야 한다"고 하신다.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들도 다 네게 주리라" 고 하신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진 그들이지만, 사도 바울이 살지 않 고야 어떻게 가이사 앞에 서겠는가.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확신 가운데 서 소리쳐 외친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 노라"고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진 절망 속의 사람들에게 외치고 있다. 유라굴로호 태풍 속의 항해. 유라굴로호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를 헤치며, 항해해야 하는 98년의 우리 나라이다. 믿었던 선장의 속수무책을 지켜보며, 인간의 무능을 다시 금 뼈저리게 음미해 보아야 할 경황이나 주어질까. 유라굴로호 태풍 속을 헤쳐 나가는 일행들에게는, 항해의 악조건이란 악조건들은 다 휘몰아쳐 오고 있다. 성경은 말하고 있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고. 그래서 모두가 실망과 좌절 속에서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떨고 있다. 그러나, "인생의 미래사"는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다. 유라굴로호 태풍이 휘몰아치는 절망의 바다에도 하나님은 살아 계셨으니. "바울 아 두려워 말라"는 기쁘고 복된 소식을 주신다. 유라굴로호 태풍이 휘몰아치는 바다 속에서도. 구원의 여망이 없는 실망과 좌절 속에 빠졌어도. 죽음의 공포 속에서 모두들 소망이 끊어졌어도.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외친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한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구원의 여망이 끊어진 저들에게 소망을 심어 주는 한 사람이 있었다. 음식 먹으라 권하며, 너희중 머리 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하고 용기를 심어 주는 한 사람이 있었다. 사도행전 27:35-36절에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 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저희도 다 안심하고 받아먹으니"라고 했다. "안심하고 받아먹으니." 실망과 좌절에 빠진 저들에게 소망을 심어 주고, 죽음의 공포 속에 떨 고 있는 저들에게 "믿음성"을 줄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저들이 믿고 목숨을 맡긴 선장이 아니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이었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사도 바울이다. 배를 탄 276인 에게 소망과 용기를 주고 안심시킬 수 있었던 한 사람이었다. 유라굴로호 태풍이 휘몰아치는 바다와 같은 우리 대한민국. 너와 나, 우리 모두가 헤치고 살아 나가야 할 조국 강산이다. 믿었던 선장 도 속수무책이다. 믿을 이는 아무도 없다. "내 인생의 미래사"를 그 손에 쥐고 계신 하나님, 그 살아 계신 하나님 을 믿는 자들이. 이 절망과 죽음의 공포, "구원의 여망"이 없는 저들 에게 "소망의 기쁨"을 주어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다. 우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구원의 여망"이 없는 저들에게 소망 을 심어 주어야 한다. 저들이 안심하고 받아먹을 수 있는 "믿음성"을 심어 주어야 한다. 유라굴로호 태풍이 휘몰아치는 풍랑 이는 바다와 같은 98년의 우리 조 국 강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을진대. 불평도, 불만도, 다 버리고 저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 라"로 절망과 좌절 속에서 헤매이는 저들에게 "소망의 생기"를 심어 주는 자가 되자. 이것은 우리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요,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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