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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의 항구로 가는 길 (행27,38-44)

본문

1,밀을 버려 배를 가볍게 하라. 풍낭을 만난지 열 나흘째 되던 날 바울은 굶주린 사람들에게 떡을 나우어 준다. 배에 있는 276명이 다 배 부르게 떡을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여기까지 오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모른다. 참으로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제 굶주린 배를 채우고 나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겨우 분간하게 되었다. 바닷물의 깊이를 재어 보기 시작했다. 바다믈을 재어 보니 자꾸 그 깊이가 낮아지고 있었다. 이젠 그 깊이가 너무 낮아져서 배 밑창이 끌릴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38절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하여 싫고 가던 밀을 바다에 버렸다. 밀을 버림은 떡을 버린 것이다. 떡을 버렸다고 함은 대단한 각오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 이었다. 밀을, 떡을 버리면서까지 배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할려는 각오 때문에 그렇게 대단한 결단을 하게된 것이다. 배에 짐작들을 다 버리면서도 여기의 밀을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고 배에 싫고 고생을 했던 것을 보아 이들이 이 밀을 얼마나 아끼고 아꼈던 것인지 알 수 있다. 밀은 곧 저들의 생명이었던 것이다. 그럼 지금은 밀이 필요 없어졌단 말인가 아니면 밀 보다 더 낳은 대용식이 마련되었단 말인가 그런것이 아니다. 단지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한 것 때문이었다. 배를 가볍게 하는 일이 밀보다 더 중요한 문제였다. 밀이 아므리 많아도 먹을 사람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눅12; 에 한 어리석은 부자를 주님께서 소개를 하신다. 어리석은 부자가 자기 밭에 소출이 풍성한 것을 보면서 한다는 소리가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 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구절이었다. 20절에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 어리석은 부자는 밀과 목숨을 구별하지 못했다. 그러나 배에 있는 사람들은 바다에 밀을 버릴 줄 알았다. 그런대로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다. 알렉산드리아 호는 당시의 큰 배였기에 웬만한 해안으로는 상륙할 수가 없었다. 가능한 한 수심을 따라 낮은 곳으로 배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배를 가볍게 하는 일이 가장 우선한 일이었다. 왜 밀보다는 생명이 귀중하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들이 가는 길에도 종종 이런 선택의 문제에 봉착할 때가 있다. 그럴때 사람들은 흔히들 밀과 주님을 함께 가질 수 있는 유혹에 빠지곤 한다. 밀은 없어도 주님은 있어야 한다. 주님이 없는 밀은 아무리 많으면 무었하나 세상이 다 밀이라도 주님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소망의 항구로 가는 배는 가능한 가벼운 것이 좋다. 마음만으로라도 밀에대한 애착이 가벼운 것이 좋은 것이다. 밀로 가득찬 우리들의 마음을 비우자. 밀로 꽉 차있던 그 자리에 주님을 모시자. 우리들의 마음의 소중한 자리에 주님을 모시자.
2,닻을 끊어 바다에 버려라 " 40절에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 밀을 버리고난 다음에 이들은 또 다시 배의 닻을 끊어 버렸다. 닻이란 배를 항궁에 정박시킬 때 사용하는 중요한 기구이다. 정박한 배에 닻이 없으면 배를 한자리에 고정을 시킬 수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귀중한 닻을 끊어 바다에 버렸다. 이들이 이귀중한 닻을 끊어 버리게 된데는 큰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39절에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뛰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 한 후"
1),날이 샌 다음에 닻을 끊었다. 이 말은 밤이 지나가기 까지 닻을 바다에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날이 밝았으니 옛 자리에 그냥 있을 수 없는 것이다.
2),항만이 눈에 뛸때 닻을 끊어 버렸다. 배가 닿을 항구가 눈에 뛰는 순간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린 것이다. 이는 무었을 말해주고 있는가 우리 모두는 소망의 항구를 향하여 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소망의 항구가 눈에 뛰이면 이젠 무었을 해야 할 것인가 지금에 있는 자리에서 일어 설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좋은 줄 알면서도 . 좀처럼 옛날의 습관이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러면 않되는데 하면서도 끊어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소망의 항구로 가는 길에 방해가 된다면 어떤 것이라도 과감하게 끊을 줄 알아야 성공을 할 수 있다. 끊어 버려야 할 것이 때로는 사람일 수도 있다. 또 때로는 그것이 습관일 수도 있다. 또 그것이 매일 매일의 일일 수도 있다. 그것이 때로는 취미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소망의 항구로 가는 길에 방해가 되는 줄 생각 되거든 가차 없이 끊으시길 바란다. 오늘 배에 있는 사람들은 그 소중한 밀도 버려야할 때 과감하게 버렸다. 닻이 배에 더없이 귀중한 것이지만 버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섰을 땐 뒤 돌아 보지 않고 바다에 끊어서 버렸다. 성도들의 길에 소망의 항구 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었이란 말인가 우리들의 삶의 모든 방편이 다 소망의 항구로 잘 가기 위한 것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빨리 버릴 것 버리고 빨리 끊을 것 끊을 수록 더 귀한 축복이 된다. 차일피일 뒤로 미루지 말라. 이 사람들은 날이 밝자마자 바로 끊을 것 끊고 버릴 것 버렸다.
3,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 " 마지막 44 절에 ".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 고 했다. 오늘 우리는 바울의 여정을 통해서 소망의 항구로 가는 길을 보고 있는 중이다. 이 소망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가를 보고 있다. 밀을 버리면서 가야하는 길이 이 소망의 항구로 가는 길임을 보았다. 닻까지 버리면서 가야 하는 길이 소망의 길인 것을 보았다. 그것만이 아니다. 41절에 보니 이들이 타고 가던 배가 물살에 밀려 가다가 깨어지고 있다. 42절에선 군인들이 죄수들을 다 죽일려고 하고 있다. 어느 한 순간이라도 한 눈 팔수 없는 길이 바로 이 소망의 항구로 가는 길임을 보여주고 있다. 44절엔 사람들이 배가 부서진 널 조각과 물건을 의지하여 구조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마침내 배의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다. 다시 말해서 모든 사람들이 소망의 항구에 무사히 정착하게 된다. 다같이 35 절을 읽자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 하매" 여기에 모든 사람들이 소망의 항구에 무사히 당도할 수 있었던 원인이었다. 하나님을 믿는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이다. 바울과 함께 있는 276명이 다 같이 기도 했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믿음의 기도가 이들을 소망의 항구로 인도 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 밀이 우리를 소망의 항구로 인도하지 못한다. 닻이 우리를 소망의 항구로 인도하지 못한다. 밀이 없더라도 닻이 없더라도 하나님을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이 우리를 소망의 항구로 인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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