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랑 속에서 (행27:6-44)
본문
지난 주일 서해 위도에서 서해안 훼리호의 침몰사고로 가족들은 물론이거니와 온 나라안이 이일로 인하여 한 주간동안 침울한 분위기이고 연일 메스콤은 이사건을 보도하고 있있는 것입니다. 이사건으로 많은 가슴아픈 많은 사연들을 듣게됩니다.40여명의 섬주민이 목숨을 잃고 부부간에. 또는 부자간에 목숨을 잃고, 일가족 30 여명이 유명을 달리하며 같은 직장동료들이 목숨잃은 실로 엄청난 비극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망자가 확인된 것이 179명으로 밝혀 졌는데 아직 도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나올지는 미지수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하여 한번은 생각해 볼일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한치 앞도 볼수 없는 우리 인생의 한계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중에는 시간이 늦어 뛰어서 겨우 배를 탄 사람도 있을 것이고, 꼭 그배를 타야할 사람도 있었을 것이 고, 타지 않아도 될뻔 한 사람들이 타다가 사고를 당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들려오는 말에 어떤 직장에 근무하는 성도가 주일에 직장동료들과 낚시를 하러가는데 주일예배에 바지게 되었다고 목사님께 사정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은 성도 주일에 예배를 빠지고 어디가느냐하고 가지 말기를 권면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지 않고 갔다가 변을 당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주일은 우리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고, 안식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인생은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항해와 같습니다. 어떤때는 순풍에 돛을 달고 순항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풍랑이는 날도 있을 것이고, 어떤 때는 바람이 부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순풍이 불때는 그래도 괜찮치만 풍랑일때 일수록, 기상이 악 조건 일수록 튼튼한 배와 노련한 선장을 더욱 필요로 할 것입니다. 이번의 사고도 애당초 불발하지 않던다 출발했다면 차라리 뱃머리를 돌리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장의 순간의 상황판단이 잘못 함으로 해서 이와 같은 엄청난 사고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키를 누가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키는 바로 예수님이 주 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맡기고 주님을 의하며 주님과 동행하게 될때 가장 안전한 것입니다. 우리는 마가복음 4장 35절 이하에 '주님께서 제자들과 같이 갈릴리 바다를 항해 하시다가 갑자기 광풍을 만남으로 해서 제자들이 죽게된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바다가 잠잠해 졌습니다. 제자들이 무사히 건너편까지 다달을 수 있었던 것은 천지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님 을 모시고 갔기에 저들은 안전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선장으로 모심으로 인생의 항해에서 성공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살펴 볼것 같으면 사도 바울이 항해 하다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 나서 배가 파선하였지만 겨우 목숨만 건진 사건의 기록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어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기 위하여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는 비록 죄수의 몸이지만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로마에 여비도 필요없이 백부장의 율리오의 신변 보호를 받으며 로 마로 가게 되었는데 함께 동승한 동료들은 누가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 였 습니다. 바울의 일행이 탄배는 처음에는 소아시아 연안을 운행하는 무역선 아드라뭇대노 였습니다. 그러나가 루기아의 무라성에서 애굽의 곡물을 씰고 로마로 가는 큰 무역 선 알렉산드리아 호로 갈아 탔지만 바람이 거세므로 하루에 갈 수 있는 니도 항을 여러날 만에 갔습니다. 그래도 간신히 마다라 반도에 있는 미항 문자 그대로 아름 다운 항구 칼로스 아이메나스에 도착하였던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호가 파선하게 된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예고된 것입니다.
1. 파선의 원인
1) 무리한 운행이었습니다(9-11). 대체로 항해의 안전기간은 9월 중순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면 다음해 3월 중순가지 항해는 중단합니다. 우리 나라도 10월에 해난 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조류가 바뀌고 바람이 일기 때문입니다. 9절에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다고 했습니다. 이때는 언제인가 하면 9월에서 10월 사이를 말하는데 이미 지났다고 했으니 아마 10월 경이라고 봐야 할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항해의 풍부한 경험도 있었고 세번이나 파선당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는 전도 여행하면서 교통 수단을 거의 배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10절 말씀을 같이 읽어 봅시다.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아번 행선 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내가 보니라는 것은 주의 깊게 자세히 보다라는 뜻으로 사도 바울은 경험적일 뿐 아니라 영적인 지식으로 예언적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번 항해가 위 험할 것임을 경고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을 피하기 위하여 여기 미 항에 머물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11절 을 봅시다.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상식적으로 보면 선장은 배에 대하여 전문가 이므로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백부장이 선장의 말을 더 믿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또한 선주는 이해 타산에 얽혀 조금이라도 더 항해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선장의 큰 실수는 상식을 더 중요시하여 하나님의 사람의 말에 그것도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전문적의 식견이나 경제적인 상황을 결코 무시할 수없는 일 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경험이나 지식이나 일반적인 상식을 의지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우선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개개인의 생사와 운명을 주장하실 뿐 아니라 역사의 주 관자요 섭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통상적으로 자연적 섭리를 적용 하도록 하시지만 비상시에는 비상섭리 곧 이적과 기적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인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 주의 종의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종은 사업에 있어서 경험적으로나 여러모로 보나 부조할 것 같지만 그러나 먼저 주의 종과 상의 하시기 바랍니다. 같이 기도하고 노력할때 하나님께서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2) 인간적인 생각(12) 12절에 '그 항구는 과동하기가 불편함으로 거기서 떠나 마주조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고 했습니다. 미항과 이근의 라세아 성은 빈약한 성이이고 겨울에는 춥 기도 하고 문화적인 시설이 없으므로 많은사람들이 이곳 보다 입지적인 조건이 좋 은 번창한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날것을 원했다. 그배는 276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좋은 환경인 뵈닉스에서 겨울을 지낼 것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다수의 의견이 옳은 것만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수에 따라 간다고 할지 라도 우리 성도는 진리의 편에 설줄 알아야 한다.
3) 일시적인 순풍 (13) 때마침 남풍이 순하게 불었습니다. 뵈직스로 향하는 이들에게 남풍이야 말로 절호의 찬스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결정이 잘한 것인 줄알고 득의에 차 있었던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형통하다고 해서 잘되는 것이 아 닙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가려고 욥바로 내려가니 마침 거기에 다시스로 가는 배 가 있었던 것이 하나님께서 예비한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일이 잘 풀려 나가는 것 같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풍랑을 만나고 만것처럼 이들이 자신들의 판 단이 옳은 것으로 생각하고 득의에 차 있었지만 14절에는 얼마 못 가서 라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하지 않은 인간적인 판단은 결국 오래 가지 못합니다.
2. 풍랑속에서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선장과 선주와 다수의 많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항해한 결 과 유라굴로의 태풍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라(Eurus-남동풍) 굴로(Aquilo-북풍)에서 온 말로 동북풍을 뜻하는 말로 그레데 섬 가운데 해발
2,100M 나 높이 솟아오른 이다 산맥의 영향으로 갑자기 강한 북풍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고합니다. 그러면 배가 바람에 밀려 아프리카 방면의 모래사정에 걸려 파선하고 마는 것 입니다. 바울이 탄 배도 마찬가지로 바람에 밀려서 바람이 부는대로 가는데로 갈 수 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의 말을 듣지 않고 경험과 지식과 이해타산을 앞세우다가 결국은 바람부는 대로 밀려갈 수 밖에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뿐만아니라 점점 갈수록 어려워 졌던 것입니다. 이틔날은 짐을 다 버려야 했고, 사흘때는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버렸고 그후에는 여러날 동안 별도 보이지 않고 구원의 여망이 없이 14일 동안이나 죽음의 바다 가운데 헤메고 다녔던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입니다. 1912년 4월 14일 주일저녁에 2,223명의 선객과 선원을 태운 46,328톤의 타이타닉호 가 빙산이 있다는 경고가 계속 있었지만 견고한 것만 믿고 속력을 늦추지 않고 결 국 빙산과 충돌하여 822명의 승객과 685명의 선원이 사망했는데 신호를 무시한 결 과입니다. 그때당시 총공사비 7백50만불을 들여 제작한 어마어마한 배지만 침몰되 고 말았던 것입니다.
3. 절망중에 소망(21-26) 하나님의 종인 사도 바울의 말을 듸지 않음으로 해서 선주가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 했던 애굽의 곡식도 내다 버렸고, 구원의 여망이 끊겨진채 2주동안이나 칠흑같이 어둡고 세찬 풍랑을 겪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도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이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책망합니다. 그리고 이제라도 권합니다. 22절-안심하라-구원의 여망이 없는 이들에게 안심을 시킵니다. 그리고 소망을 줍니다. 바울의 소망의 근거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23). 하나님의 사자가 전해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겠고.' 처음에 주의 종의 말이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묵살했지만 이제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강한 하나님의 메세지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주의 종의 말에 책임을 져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모시는 배가 안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이 하나님의 종들이 가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해서 풍랑가운데서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23.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바울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증거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히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소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소망 을 주었습니다. 아프리카 선교를 하다가 어려움을 닥친 리빙스턴은 해야할 사명이 있는한 하나님 께서 죽지않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이에 반하여 서원들의 태도는 어떠했습니까(30-32) 전에는 자신의들의 판단이 옳은 것으로 믿어왔지만 사실대로 되지않을 뿐아니라. 선원들이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을 의지했지만 이제는 도망갈려고 했다. 인간이 가진 경험과 지식의 한계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확신과 소망을 가질뿐 아니라 다른 사람 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5. 바울의 마지막 권고 34절-음식을 먹으라고 권고 합니다. 저들은 14일 동안 공포속에 제대로 식사도 못했을 것이다. 주린 체력으로는 육지가지 헤엄칠 수 없기 때문에 체력을 회복하여 마지막 구원에 대비하도록 권했씁니다. 그러면서 머리털 하나라도 잃지 않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 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그들은 안 심하고 받아 먹었습니다. 성도는 어려운 상황에도 세상에 소망을 주어야 합니다. 바울의 말을 듣지 않던 사람들이 어려운 풍랑을 만났지만 바울의 말을 들고 새힘을 얻어 바울의 말에 귀를 귀울였습니다. 바울은 비록 죄수의 몸이지만 풍랑을 통해서 주도권을 잡았고 그로 통하여 하나님 의 영광이 나타나게된 것입니다. 인생의 항로도 마찬가지 입니다.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의 말에 귀를 귀울입시다. 혹시 풍랑을 만났 다고 하여도 그 속에세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위로와 소망을 나누어 주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맡기고 주님을 의하며 주님과 동행하게 될때 가장 안전한 것입니다. 우리는 마가복음 4장 35절 이하에 '주님께서 제자들과 같이 갈릴리 바다를 항해 하시다가 갑자기 광풍을 만남으로 해서 제자들이 죽게된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바다가 잠잠해 졌습니다. 제자들이 무사히 건너편까지 다달을 수 있었던 것은 천지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님 을 모시고 갔기에 저들은 안전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선장으로 모심으로 인생의 항해에서 성공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살펴 볼것 같으면 사도 바울이 항해 하다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 나서 배가 파선하였지만 겨우 목숨만 건진 사건의 기록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어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기 위하여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는 비록 죄수의 몸이지만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로마에 여비도 필요없이 백부장의 율리오의 신변 보호를 받으며 로 마로 가게 되었는데 함께 동승한 동료들은 누가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 였 습니다. 바울의 일행이 탄배는 처음에는 소아시아 연안을 운행하는 무역선 아드라뭇대노 였습니다. 그러나가 루기아의 무라성에서 애굽의 곡물을 씰고 로마로 가는 큰 무역 선 알렉산드리아 호로 갈아 탔지만 바람이 거세므로 하루에 갈 수 있는 니도 항을 여러날 만에 갔습니다. 그래도 간신히 마다라 반도에 있는 미항 문자 그대로 아름 다운 항구 칼로스 아이메나스에 도착하였던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호가 파선하게 된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예고된 것입니다.
1. 파선의 원인
1) 무리한 운행이었습니다(9-11). 대체로 항해의 안전기간은 9월 중순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면 다음해 3월 중순가지 항해는 중단합니다. 우리 나라도 10월에 해난 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조류가 바뀌고 바람이 일기 때문입니다. 9절에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다고 했습니다. 이때는 언제인가 하면 9월에서 10월 사이를 말하는데 이미 지났다고 했으니 아마 10월 경이라고 봐야 할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항해의 풍부한 경험도 있었고 세번이나 파선당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는 전도 여행하면서 교통 수단을 거의 배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10절 말씀을 같이 읽어 봅시다.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아번 행선 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내가 보니라는 것은 주의 깊게 자세히 보다라는 뜻으로 사도 바울은 경험적일 뿐 아니라 영적인 지식으로 예언적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번 항해가 위 험할 것임을 경고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을 피하기 위하여 여기 미 항에 머물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11절 을 봅시다.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상식적으로 보면 선장은 배에 대하여 전문가 이므로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백부장이 선장의 말을 더 믿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또한 선주는 이해 타산에 얽혀 조금이라도 더 항해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선장의 큰 실수는 상식을 더 중요시하여 하나님의 사람의 말에 그것도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전문적의 식견이나 경제적인 상황을 결코 무시할 수없는 일 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경험이나 지식이나 일반적인 상식을 의지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우선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개개인의 생사와 운명을 주장하실 뿐 아니라 역사의 주 관자요 섭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통상적으로 자연적 섭리를 적용 하도록 하시지만 비상시에는 비상섭리 곧 이적과 기적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인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 주의 종의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종은 사업에 있어서 경험적으로나 여러모로 보나 부조할 것 같지만 그러나 먼저 주의 종과 상의 하시기 바랍니다. 같이 기도하고 노력할때 하나님께서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2) 인간적인 생각(12) 12절에 '그 항구는 과동하기가 불편함으로 거기서 떠나 마주조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고 했습니다. 미항과 이근의 라세아 성은 빈약한 성이이고 겨울에는 춥 기도 하고 문화적인 시설이 없으므로 많은사람들이 이곳 보다 입지적인 조건이 좋 은 번창한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날것을 원했다. 그배는 276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좋은 환경인 뵈닉스에서 겨울을 지낼 것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다수의 의견이 옳은 것만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수에 따라 간다고 할지 라도 우리 성도는 진리의 편에 설줄 알아야 한다.
3) 일시적인 순풍 (13) 때마침 남풍이 순하게 불었습니다. 뵈직스로 향하는 이들에게 남풍이야 말로 절호의 찬스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결정이 잘한 것인 줄알고 득의에 차 있었던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형통하다고 해서 잘되는 것이 아 닙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가려고 욥바로 내려가니 마침 거기에 다시스로 가는 배 가 있었던 것이 하나님께서 예비한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일이 잘 풀려 나가는 것 같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풍랑을 만나고 만것처럼 이들이 자신들의 판 단이 옳은 것으로 생각하고 득의에 차 있었지만 14절에는 얼마 못 가서 라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하지 않은 인간적인 판단은 결국 오래 가지 못합니다.
2. 풍랑속에서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선장과 선주와 다수의 많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항해한 결 과 유라굴로의 태풍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라(Eurus-남동풍) 굴로(Aquilo-북풍)에서 온 말로 동북풍을 뜻하는 말로 그레데 섬 가운데 해발
2,100M 나 높이 솟아오른 이다 산맥의 영향으로 갑자기 강한 북풍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고합니다. 그러면 배가 바람에 밀려 아프리카 방면의 모래사정에 걸려 파선하고 마는 것 입니다. 바울이 탄 배도 마찬가지로 바람에 밀려서 바람이 부는대로 가는데로 갈 수 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의 말을 듣지 않고 경험과 지식과 이해타산을 앞세우다가 결국은 바람부는 대로 밀려갈 수 밖에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뿐만아니라 점점 갈수록 어려워 졌던 것입니다. 이틔날은 짐을 다 버려야 했고, 사흘때는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버렸고 그후에는 여러날 동안 별도 보이지 않고 구원의 여망이 없이 14일 동안이나 죽음의 바다 가운데 헤메고 다녔던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입니다. 1912년 4월 14일 주일저녁에 2,223명의 선객과 선원을 태운 46,328톤의 타이타닉호 가 빙산이 있다는 경고가 계속 있었지만 견고한 것만 믿고 속력을 늦추지 않고 결 국 빙산과 충돌하여 822명의 승객과 685명의 선원이 사망했는데 신호를 무시한 결 과입니다. 그때당시 총공사비 7백50만불을 들여 제작한 어마어마한 배지만 침몰되 고 말았던 것입니다.
3. 절망중에 소망(21-26) 하나님의 종인 사도 바울의 말을 듸지 않음으로 해서 선주가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 했던 애굽의 곡식도 내다 버렸고, 구원의 여망이 끊겨진채 2주동안이나 칠흑같이 어둡고 세찬 풍랑을 겪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도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이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책망합니다. 그리고 이제라도 권합니다. 22절-안심하라-구원의 여망이 없는 이들에게 안심을 시킵니다. 그리고 소망을 줍니다. 바울의 소망의 근거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23). 하나님의 사자가 전해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겠고.' 처음에 주의 종의 말이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묵살했지만 이제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강한 하나님의 메세지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주의 종의 말에 책임을 져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모시는 배가 안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이 하나님의 종들이 가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해서 풍랑가운데서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23.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바울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증거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히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소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소망 을 주었습니다. 아프리카 선교를 하다가 어려움을 닥친 리빙스턴은 해야할 사명이 있는한 하나님 께서 죽지않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이에 반하여 서원들의 태도는 어떠했습니까(30-32) 전에는 자신의들의 판단이 옳은 것으로 믿어왔지만 사실대로 되지않을 뿐아니라. 선원들이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을 의지했지만 이제는 도망갈려고 했다. 인간이 가진 경험과 지식의 한계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확신과 소망을 가질뿐 아니라 다른 사람 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5. 바울의 마지막 권고 34절-음식을 먹으라고 권고 합니다. 저들은 14일 동안 공포속에 제대로 식사도 못했을 것이다. 주린 체력으로는 육지가지 헤엄칠 수 없기 때문에 체력을 회복하여 마지막 구원에 대비하도록 권했씁니다. 그러면서 머리털 하나라도 잃지 않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 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그들은 안 심하고 받아 먹었습니다. 성도는 어려운 상황에도 세상에 소망을 주어야 합니다. 바울의 말을 듣지 않던 사람들이 어려운 풍랑을 만났지만 바울의 말을 들고 새힘을 얻어 바울의 말에 귀를 귀울였습니다. 바울은 비록 죄수의 몸이지만 풍랑을 통해서 주도권을 잡았고 그로 통하여 하나님 의 영광이 나타나게된 것입니다. 인생의 항로도 마찬가지 입니다.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의 말에 귀를 귀울입시다. 혹시 풍랑을 만났 다고 하여도 그 속에세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위로와 소망을 나누어 주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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