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의 교훈 (행27:9-26)
본문
우리의 삶이 평안할 때는 인생을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평안에 취해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다가 먹고 마시는 현실의 삶에 안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환난과 폭풍이 우리 삶 속에 다가오면 지나온 삶의 여정을 살피면서 '내 가 무엇을 잘못 살았나'라고 생각하며 회개의 기회로 삼기도 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환난이 얼마나 인생을 깊이 생각하게 만들고 인간의 방향을 변화시키는가를 우리에게 절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로마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 사도 바울 선생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증거하다 붙잡혀서 로마로 압송을 당하여 그곳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로 가는 알렉산드리아라는 배에 백부장 율리오와 함께 승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배가 그레데 미항에서 머물렀을 때 사도 바울 선생은 백부장 율리오와 선장과 선주를 불러 놓고 이렇게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사도행전 27:10). 그래도 이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 선생 이 주는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적인 지식보다는 현재의 선주와 선장과 항해 경험이 많은 그런 사람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사도행전 27장 11절로 12절은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그 항구가 과동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편은 동북을 한편은 동남을 향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 속에 언제나 갈등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계시적인 지식이 있는가 하면 인간의 감각과 체험과 이성을 통해서 얻는 지 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로 주시는 지식보다는 인간의 감각이나 체험이나 인간의 이성으로 얻은 지식을 더 믿고 그것을 따라 갑니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감각이나 체험이나 이성으로 얻은 지식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파요 오메가 되시며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시는 하나님은 영원에서 영원까지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계시적인 지식을 내어 던져 버리고 인간의 감각적이고 이성적인 지식에만 의지해서 사는 사람은 언제고 파탄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백부장 율리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듣고 바울의 계시적인 지식을 멸시해 버리고 닻을 끌어올리고 돛을 높이 달고 출항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아니하여 유라굴로라는 거대한 퐁풍우가 다가와서 배를 때리매 순식간에 배는 풍랑에 밀리어서 자기의 가는 방향대로 가지 못하고 배를 조정할 수 없는 그런 상황 속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감각과 지식과 이성을 통해서 모든 것을 안다고 판단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적인 지식에 저항해서 나가면 언제나 유라굴로의 풍랑이 다가오고 인간의 감각적이고 이성적인 지식은 휴지조각같이 구겨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나 지식이나 총명이나 이성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비길 수 있는 도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시적인 지식에 순종하며 사는 삶만이 평안 을 가져옵니다. 인간의 거만한 지식이나 이성적 체험은 파멸을 향해 달려가게 할뿐입니다. 성경은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 4:16,1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가 다가오면 처처에 기근과 질병이 있고 전쟁과 전쟁 소문이 날 것이라고 성경은 계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오늘날 우리는 온 세계에 다가와서 불안하고 초조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언제 어떠한 돌발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불 안과 초조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의 자연환경은 그리스도 의 강림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기근과 지진, 홍수와 한발 등 기상 이변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적인 지식을 받지 않은 육에 속한 사람들은 이와 같은 자연환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역사적인 환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는 사실 또한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2. 고난은 보석과 돌을 가립니다. 사람들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부귀나 영화나 공명이나 지위나 명예나 권세를 추구하고 사는데 유라굴로의 풍랑이 다가와서 세계가 흔들리고 흔들리며 깨어지는 그때는 인간의 모든 육신적인 소망은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인간은 그 꿈이 산산조각 깨어지고 그 계획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되어지는 날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바울 선생과 함께 배를 타고 가던 백부장 율리오도 이 계시적인 지 식을 무시하고 인간의 감각적인 지식에 의지했다가 그와 함께 선장과 선주 와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적인 고통 속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고난은 우리의 삶을 분별하는 도구가 됩니다. 우리의 삶이 금이나 은이나 보석같이 되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이 나무나 풀이나 짚같은 인생을 살았는가 사람이 시험과 환난을 통하면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분명히 나타납니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시험과 환난을 이길 것이요, 나무나 짚이나 풀은 다 시험과 환난을 통해서 불 타버리고 말 것입니다. 바울은 이 어려운 고난 속에서 그는 담대하게 자기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돛은 이미 부러져 버리고 닻은 던져 버리고 배는 난파의 형태로 물에 떠서 이리 출렁 저리 출렁 밀려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살 희망을 다 잃어버리고 죽음의 그 순간을 기다릴 때 사도 바울 선생은 강하고 담대하게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7장 21절로 23절에는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 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 속에 있으면 세상에 풍랑이 일어나고 파도가 일어나 면 두려워 떱니다. 그러나 바울 선생이 그 거센 바람과 폭풍우와 풍랑 속에 일어나서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는 그 바람과 그 풍랑과 그 바다와 그 어두운 하늘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의 속한 바'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 자신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곳에 속해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아담 때부터 하나님께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 없이 인본주의로 자기 스스로 살겠다고 에덴을 뛰쳐나온 이후로 인간은 소속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인간은 이 땅에서 고 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는 방랑자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2천년 전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아담으로부터 지은 모든 인류의 죄악을 예수님께서 모두 감당하시도록 십자가에 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다 속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며 하나님께로부터 독립을 선 포하고 나가 버린 소속 잃어버린 사람들이라도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게 되면 하나님에게 소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얻게 되고 성령님과 함께 살게 되며 그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 책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성경 요한1서 5장 19절에 보면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 세상은 아담과 하와 이후로 악한 자에게 속해 버렸습니다. 원수 마귀가 세상의 신이 되고 세상 임금이 되어서 사람들을 죄의 수렁에 빠뜨리고 그들이 삶 속에서 육신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겨졌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쁘게 용납해 주시고 그 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화목 되고 하나님이 성령님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으며 하나님의 은혜로서 우리를 붙잡아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바울은 "나의 섬기는 하나님"(사도행전 27:23)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섬기고 지위와 명예를 섬깁니다. 부귀와 영화를 섬기고 자기의 쾌락을 섬기며 인간을 섬기고 인본주의를 섬깁니다. 그러나 바울 선생은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고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 하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살려고 애를 쓰고 기도하는 중에 성령님께서 그 마음에 감화감동하시고 인도하시면 만사를 제껴놓고라도 성령님의 감화와 감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려고 그는 노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것도 이것입니다. 내가 이 땅에 속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속하고 나의 삶이 하나님을 섬기고 산다는 이와 같은 확실한 신앙 고백을 가진다는 것은 얼마나 귀중한지 모릅니다.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 을 섬기고 살면 하나님은 이 사람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람을 환 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가난이나 어떠한 위험 속에도 하나님의 자기에게 속하고 자기를 섬기는 백성을 위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일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고난과 환난이 다가올수록 더 신앙이 굳어지고 더 기도가 뜨거워지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늘에 소망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본주의와 세상에 속한 사람은 죄와 마 귀를 섬기고 육체의 욕심과 세상의 쾌락을 좇아 살며 이 세상 일과 자랑에 취해서 살므로 이 세상 것이 지나가는 때에는 아무것도 소유한 것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속하고 주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사람은 어떠한 고난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3.하나님의 계획과 우리의 삶 사도행전 27장 24절로 25절은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 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풍랑이 일어나도 하나님이 사도 바울 자신을 향해 세운 계획은 변함없이 그대로 이루어지고야 만 다는 고백입니다. 세상은 변해도 하나님의 정하신 뜻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 선생을 택하셨을 때 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분명히 가지고 있으셨습니다. 사도행전 26장 14절로 18절에 보면 사도 바울 선생이 다메섹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받는 장 면이 나옵니다.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 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사도행전 26:14-18)
여기에 바울 선생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 선생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나고 지금까지 살아왔으며 장차 어떻게 살 것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을 부를 때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가 막연하게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우리들을 이미 아시고 예정하사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셨기 때문에 우연히 오다가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중에서 구원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들에 대한 분명한 계획과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처럼 여러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습니다.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혹은 회사원으로서 사업가로서 여러분이 산다고 생각하지만 여러분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여러분 을 하나님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혹은 가정주부로 혹은 사업가로 혹은 직장인으로 하나님이 세워 놓은 그 속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계신 것입니다. 한 달란트나 두 달란트나 다섯 달란트나, 이것은 상관할 것 없습니다. 이 달란트에 대해 얼마나 충성하고 착하게 일했는가가 문제인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시험과 환난을 당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풍파를 통해서 오히려 같이 배를 탄 2백76인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큰 풍랑과 환난이 다가오면 세상 줄이 끊어집니다. 우리가 "큰 풍파 일어나는 것, 세상 줄 끊음일세"라고 찬양하는 것처럼 하나 둘 끊어지고 하늘나라의 광명이 마음 속에 비쳐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다가오는 시험과 환난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면 시험과 환난은 우리에게 위대한 축복이 되고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풍랑을 만날 때 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며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됨을 더욱 뚜렷이 확증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로마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 사도 바울 선생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증거하다 붙잡혀서 로마로 압송을 당하여 그곳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로 가는 알렉산드리아라는 배에 백부장 율리오와 함께 승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배가 그레데 미항에서 머물렀을 때 사도 바울 선생은 백부장 율리오와 선장과 선주를 불러 놓고 이렇게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사도행전 27:10). 그래도 이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 선생 이 주는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적인 지식보다는 현재의 선주와 선장과 항해 경험이 많은 그런 사람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사도행전 27장 11절로 12절은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그 항구가 과동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편은 동북을 한편은 동남을 향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 속에 언제나 갈등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계시적인 지식이 있는가 하면 인간의 감각과 체험과 이성을 통해서 얻는 지 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로 주시는 지식보다는 인간의 감각이나 체험이나 인간의 이성으로 얻은 지식을 더 믿고 그것을 따라 갑니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감각이나 체험이나 이성으로 얻은 지식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파요 오메가 되시며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시는 하나님은 영원에서 영원까지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계시적인 지식을 내어 던져 버리고 인간의 감각적이고 이성적인 지식에만 의지해서 사는 사람은 언제고 파탄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백부장 율리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듣고 바울의 계시적인 지식을 멸시해 버리고 닻을 끌어올리고 돛을 높이 달고 출항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아니하여 유라굴로라는 거대한 퐁풍우가 다가와서 배를 때리매 순식간에 배는 풍랑에 밀리어서 자기의 가는 방향대로 가지 못하고 배를 조정할 수 없는 그런 상황 속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감각과 지식과 이성을 통해서 모든 것을 안다고 판단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적인 지식에 저항해서 나가면 언제나 유라굴로의 풍랑이 다가오고 인간의 감각적이고 이성적인 지식은 휴지조각같이 구겨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나 지식이나 총명이나 이성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비길 수 있는 도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시적인 지식에 순종하며 사는 삶만이 평안 을 가져옵니다. 인간의 거만한 지식이나 이성적 체험은 파멸을 향해 달려가게 할뿐입니다. 성경은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 4:16,1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가 다가오면 처처에 기근과 질병이 있고 전쟁과 전쟁 소문이 날 것이라고 성경은 계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오늘날 우리는 온 세계에 다가와서 불안하고 초조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언제 어떠한 돌발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불 안과 초조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의 자연환경은 그리스도 의 강림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기근과 지진, 홍수와 한발 등 기상 이변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적인 지식을 받지 않은 육에 속한 사람들은 이와 같은 자연환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역사적인 환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는 사실 또한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2. 고난은 보석과 돌을 가립니다. 사람들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부귀나 영화나 공명이나 지위나 명예나 권세를 추구하고 사는데 유라굴로의 풍랑이 다가와서 세계가 흔들리고 흔들리며 깨어지는 그때는 인간의 모든 육신적인 소망은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인간은 그 꿈이 산산조각 깨어지고 그 계획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되어지는 날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바울 선생과 함께 배를 타고 가던 백부장 율리오도 이 계시적인 지 식을 무시하고 인간의 감각적인 지식에 의지했다가 그와 함께 선장과 선주 와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적인 고통 속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고난은 우리의 삶을 분별하는 도구가 됩니다. 우리의 삶이 금이나 은이나 보석같이 되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이 나무나 풀이나 짚같은 인생을 살았는가 사람이 시험과 환난을 통하면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분명히 나타납니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시험과 환난을 이길 것이요, 나무나 짚이나 풀은 다 시험과 환난을 통해서 불 타버리고 말 것입니다. 바울은 이 어려운 고난 속에서 그는 담대하게 자기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돛은 이미 부러져 버리고 닻은 던져 버리고 배는 난파의 형태로 물에 떠서 이리 출렁 저리 출렁 밀려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살 희망을 다 잃어버리고 죽음의 그 순간을 기다릴 때 사도 바울 선생은 강하고 담대하게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7장 21절로 23절에는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 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 속에 있으면 세상에 풍랑이 일어나고 파도가 일어나 면 두려워 떱니다. 그러나 바울 선생이 그 거센 바람과 폭풍우와 풍랑 속에 일어나서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는 그 바람과 그 풍랑과 그 바다와 그 어두운 하늘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의 속한 바'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 자신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곳에 속해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아담 때부터 하나님께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 없이 인본주의로 자기 스스로 살겠다고 에덴을 뛰쳐나온 이후로 인간은 소속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인간은 이 땅에서 고 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는 방랑자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2천년 전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아담으로부터 지은 모든 인류의 죄악을 예수님께서 모두 감당하시도록 십자가에 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다 속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며 하나님께로부터 독립을 선 포하고 나가 버린 소속 잃어버린 사람들이라도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게 되면 하나님에게 소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얻게 되고 성령님과 함께 살게 되며 그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 책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성경 요한1서 5장 19절에 보면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 세상은 아담과 하와 이후로 악한 자에게 속해 버렸습니다. 원수 마귀가 세상의 신이 되고 세상 임금이 되어서 사람들을 죄의 수렁에 빠뜨리고 그들이 삶 속에서 육신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겨졌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쁘게 용납해 주시고 그 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화목 되고 하나님이 성령님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으며 하나님의 은혜로서 우리를 붙잡아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바울은 "나의 섬기는 하나님"(사도행전 27:23)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섬기고 지위와 명예를 섬깁니다. 부귀와 영화를 섬기고 자기의 쾌락을 섬기며 인간을 섬기고 인본주의를 섬깁니다. 그러나 바울 선생은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고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 하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살려고 애를 쓰고 기도하는 중에 성령님께서 그 마음에 감화감동하시고 인도하시면 만사를 제껴놓고라도 성령님의 감화와 감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려고 그는 노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것도 이것입니다. 내가 이 땅에 속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속하고 나의 삶이 하나님을 섬기고 산다는 이와 같은 확실한 신앙 고백을 가진다는 것은 얼마나 귀중한지 모릅니다.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 을 섬기고 살면 하나님은 이 사람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람을 환 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가난이나 어떠한 위험 속에도 하나님의 자기에게 속하고 자기를 섬기는 백성을 위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일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고난과 환난이 다가올수록 더 신앙이 굳어지고 더 기도가 뜨거워지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늘에 소망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본주의와 세상에 속한 사람은 죄와 마 귀를 섬기고 육체의 욕심과 세상의 쾌락을 좇아 살며 이 세상 일과 자랑에 취해서 살므로 이 세상 것이 지나가는 때에는 아무것도 소유한 것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속하고 주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사람은 어떠한 고난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3.하나님의 계획과 우리의 삶 사도행전 27장 24절로 25절은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 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풍랑이 일어나도 하나님이 사도 바울 자신을 향해 세운 계획은 변함없이 그대로 이루어지고야 만 다는 고백입니다. 세상은 변해도 하나님의 정하신 뜻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 선생을 택하셨을 때 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분명히 가지고 있으셨습니다. 사도행전 26장 14절로 18절에 보면 사도 바울 선생이 다메섹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받는 장 면이 나옵니다.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 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사도행전 26:14-18)
여기에 바울 선생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 선생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나고 지금까지 살아왔으며 장차 어떻게 살 것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을 부를 때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가 막연하게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우리들을 이미 아시고 예정하사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셨기 때문에 우연히 오다가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중에서 구원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들에 대한 분명한 계획과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처럼 여러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습니다.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혹은 회사원으로서 사업가로서 여러분이 산다고 생각하지만 여러분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여러분 을 하나님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혹은 가정주부로 혹은 사업가로 혹은 직장인으로 하나님이 세워 놓은 그 속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계신 것입니다. 한 달란트나 두 달란트나 다섯 달란트나, 이것은 상관할 것 없습니다. 이 달란트에 대해 얼마나 충성하고 착하게 일했는가가 문제인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시험과 환난을 당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풍파를 통해서 오히려 같이 배를 탄 2백76인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큰 풍랑과 환난이 다가오면 세상 줄이 끊어집니다. 우리가 "큰 풍파 일어나는 것, 세상 줄 끊음일세"라고 찬양하는 것처럼 하나 둘 끊어지고 하늘나라의 광명이 마음 속에 비쳐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다가오는 시험과 환난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면 시험과 환난은 우리에게 위대한 축복이 되고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풍랑을 만날 때 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며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됨을 더욱 뚜렷이 확증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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