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인생들 (행27:9-11)
본문
죠지 무어는 '인생의 어려움은 선택'이라고 말했고, 세익스피어는 '사람은 동시에 여기도 있고,저기도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들에서 우리는 두가지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모든 인간은 둘 중의 어느 하나를 택하지 않으면 않되는 생 의 기로에서 자주 볼착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둘째로, 이런 선택의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살아가면서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관계에 있어서 둘 중 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학교와 지장이 그러하며 결혼에 있어서 도 배우자의 선택이 그러합니다. 세상의 수 많은 종교들 가운데 내가 어떤 종교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결정 되어질 때가 너 무도 많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생의 결말이 극한 차이를 갖게 된 원인은 그들의 선 택 과정에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 과 롯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신앙의 열의가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고향 친척집을 떠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가나안 땅 으로 가려는 인생의 목표도 같았을 뿐 아니라,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 고 하나님의 성호와 영광을 찬양하는 믿음의 지속성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 있어서 선택이 달랐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됩니다.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은 했지만, 눈으로 보기에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과 같아 보이는 소돔을 선택한 롯은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되고 두 딸이 파멸하는 결말을 맛보아야 했고, 비록 척박하고 덩그러니 동산 하나만 있는 허허벌판의 헤브론이었을지라도 여기가 전 능하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땅이라고 믿고 선택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행복과 삶에서의 승리, 그리고 인 생의 미래에 대한 꿈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결정지워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죄인의 누명을 쓰고 가이사에게 재 판을 받기 위하여 백부장의 인솔로 로마를 향해 가던 중 지중해를 건 너다가 '유라굴라'로 광풍을 만나게 되는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 보 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유의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나 한사람의 그릇된 선택은 나의 삶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내 가정과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에 게 고통과 괴로움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백부장 한 사람의 그릇된 선 택은 같은 배를 탄 276명에게 보름동안 극심한 좌절과 절망의 괴로움 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천여 년이 흐른 오늘에까지도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행복과 꿈이 깨지고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 또한 얼마나 많습니까인생의 행복과 꿈을 얻기위한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리하여 현대인 들은 학교를 선택하고 결혼의 대상자를 선택하는 데에는 대단히 신중 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이 세상의 많은 종교 가운데 내가 어느 종교를 선택해야 하는가'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만큼 중요한 선택은 없습니다. 오늘날 현대인의 특징은 너무 쉽게 결정해서, 쉽게 선택하고, 쉽게 포기하며, 쉽게 실패하는 것입니다. 길을 선택해야 하는데 현대인들은 너무 자신만만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말씀 속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과제는 그릇 된 풍조와 그릇된 선택 때문에 고통과 신음이 많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만은 학업의 진로, 결혼, 사업, 그리고 신앙에 있어서 올바른 선택의 기준을 갖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전해드릴 말씀의 제목을 가지고 백부장의 그릇된 선택관 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신앙보다는 지식을 선택하려는 풍조가 이 시대에 가득합니다. 11절에 보면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사도의 말보다 더 믿더라"고 하였습니다. 선장은 바다의 항해에 있어서 만은 남보다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선장은 바다에 대해서는 전문인이 었습니다. 백부장이 바울사도의 말보다 선장의 말을 더 믿었다는 것은 신앙보다 지식을 선호하는 현대인의 풍조를 대변하는 말입니다. 지금의 세상은 하나님보다 성경말씀보다 인간의 지식을 앞세우는 시 대가 되지않았습니까 본문 10절에 보면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 라" 고 바울사도가 백부장을 권면하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에 "내가 보니"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에 보면 바다의 항해경험 이 많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니까 이런 때는 이런 일이 반드시 생기더라는 확신에 찬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영감에 의해서도 이번에 가면 안되겠다는 그런 확신이 바울 사도에게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바울사도의 권면은 뒤로하고 확실치도 않은 세상 인간의 경험 과 유한한 바다의 지식을 가진 선장의 말이 선택되었다는 것은 하나님 보다 지식을 앞세우는 세상 풍조를 단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세상의 지식이란 시대와 환경과 대상에 따라 변하는 것입니다. 인간 이 내세우는 진리는 한 시대가 지나가면 이미 진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세상이 변할지라도, 역사가 흥하 고 망할지라도 변치않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신앙과 말씀과 하나님을 선택하고 나갈 것이냐, 아니 면 세상의 유한한 지식, 전문지식과 같은 것들을 택하여 세상지식이 요구하는 대로 인생을 살아갈 것이냐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둘째, 신앙보다 물질을 선택하는 풍조가 현대에 너무도 팽배합니다. 백부장이 바울사도의 말보다 선주의 말을 더 믿었다고 했습니다. 선 주가 누구입니까돈이 많은 사람입니다. 많은 돈을 들여 배를 만들고 선장과 사공들을 고용하여 바다를 건너는 화물선과 여객선의 주인이 선주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보다 신앙보다 불변하는 말씀보다 물질을 앞세우는 현대의 풍조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리고성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도 욕심 때문에 금과 털옷을 숨겼던 아간에게는 물질이 그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아나 니아와 삽비라가 그랬고 가롯 유다가 그랬습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유명한 허스트성이 있습니다. 34개 이상의 신문 을 발행하는 언론재벌인 허스트가의 신문사 사장이 바다가 내려다 보 이는 150만평의 대지 위에 무려 28년이나 걸려서 호화롭고 웅장한 별 장을 지었습니다. 그속에는 극장, 수영장, 사우나탕, 카지노 등과 미 술품, 조각품, 별별 예술품들이 수를 헤아일 수 없을 정도로 꽉 차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집을 지어놓은 허스트씨는 그 별장에서 제대 로 살아 보지도 못하고 죽었고, 죽을 때에 너무나 엄청난 세금 때문에 나라에 바쳤습니다. 지금은 미국의 유명한 관광코스의 하나로 공개되 고 있는데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쉬지않고 돌아다녀야 대충 훑어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성도여러분 인간의 행복은 물질로 그 척도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물 질은 여러분의 생을 윤택하게는 할 수 있어도 행복에 대한 문제를 근 본적으로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셋째, 소수보다 다수의 힘을 선택하고 신뢰하는 것이 현대의 풍조입니다. 백부장에게 이번 항해의 어려움과 불가함을 말하는 사람은 바울사도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백부장이 한 사람의 말을 듣겠습니까 아 니면 다수의 말을 듣겠습니까결국 소수를 버리고 다수를 택했다가 ' 유라굴라'광풍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진리란 언제나 다수의 편에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빌라도의 오판이 어디에서 생겼습니까예수님 께 죄가 없다는 것을 자신도 인정을 하면서도 소수의 말을 듣지 않고 다수의 말을 들었다는데 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소수냐 다수냐를 따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 급적이면 소수보다 다수가 낫지만, 그 다수가 비진리일 경우에는 다수 를 버리고 소수인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오늘 성도 여러분이 다수 의 힘을 의지하고 다수의 의견만이 옳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인본주의자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성경이 무엇이라고 하느냐입니다. 하나님께서 무 엇을 원하시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오늘은 현대인은 다수의 편에 서 기를 즐겨합니다.
넷째, 이상보다 현실에 치중하여 현실을 선택하는 것이 오늘 현대인 의 문제점입니다.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이 불편하다 하여 편리한 것만을 추구하는 사람 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이상이 없이 현실세계에서 어 떻게 하면 좀 더 편하게, 좀 더 쾌락적으로, 좀더 세상적으로 남보다 뛰어나게, 그리고 좀 더 잘 살아볼까 하는 현실에 치중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천국에의 소망에는 관심이 없고 대부분이 예수님을 믿기는 믿되 세상에서 복받아 잘사는 현세 기복주의 신앙에 뿌리 를 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지난 날 여러분이 어떤 선택을 했었는가를 되돌아 보시기바랍니다. 과연 내가 어떤 선택을 했었는가를 되돌아 보시기바랍니다. 과연 내가 올바로 하나님을 믿얼아는가.내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 왔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 섬길자를 오늘날 택하 라 나만의 가정은 하나님을 믿겠다 너희는 우성이냐 하나님이냐 둘 중 의 하나를 선택하라" 고 했습니다. 백부장과 많은 사람들이 세상적인 것을 선택하다가 파선하는 그 시간에도 바울사도만은 하나님의 편이었 습니다. 23절에 보면 바울은 말하기를 '나의 속한 바 나의 하나님의 사자가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 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 다 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위기에서도 역경에서도, 그리고 순탄한 길에서도 그의 선택은 항상 하나님이었고, 하나님이 삶의 근본 기준이 었습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보면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 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선택한 사람은 인생의 파고가 밀려와도 요동하지 않고 삽니다. 바로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능력으로 천지를 창조 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의 장중에 우리를 품어서 지켜주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십시오. 하나님을 선택하여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모든 인간은 둘 중의 어느 하나를 택하지 않으면 않되는 생 의 기로에서 자주 볼착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둘째로, 이런 선택의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살아가면서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관계에 있어서 둘 중 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학교와 지장이 그러하며 결혼에 있어서 도 배우자의 선택이 그러합니다. 세상의 수 많은 종교들 가운데 내가 어떤 종교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결정 되어질 때가 너 무도 많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생의 결말이 극한 차이를 갖게 된 원인은 그들의 선 택 과정에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 과 롯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신앙의 열의가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고향 친척집을 떠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가나안 땅 으로 가려는 인생의 목표도 같았을 뿐 아니라,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 고 하나님의 성호와 영광을 찬양하는 믿음의 지속성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 있어서 선택이 달랐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됩니다.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은 했지만, 눈으로 보기에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과 같아 보이는 소돔을 선택한 롯은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되고 두 딸이 파멸하는 결말을 맛보아야 했고, 비록 척박하고 덩그러니 동산 하나만 있는 허허벌판의 헤브론이었을지라도 여기가 전 능하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땅이라고 믿고 선택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행복과 삶에서의 승리, 그리고 인 생의 미래에 대한 꿈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결정지워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죄인의 누명을 쓰고 가이사에게 재 판을 받기 위하여 백부장의 인솔로 로마를 향해 가던 중 지중해를 건 너다가 '유라굴라'로 광풍을 만나게 되는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 보 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유의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나 한사람의 그릇된 선택은 나의 삶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내 가정과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에 게 고통과 괴로움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백부장 한 사람의 그릇된 선 택은 같은 배를 탄 276명에게 보름동안 극심한 좌절과 절망의 괴로움 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천여 년이 흐른 오늘에까지도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행복과 꿈이 깨지고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 또한 얼마나 많습니까인생의 행복과 꿈을 얻기위한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리하여 현대인 들은 학교를 선택하고 결혼의 대상자를 선택하는 데에는 대단히 신중 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이 세상의 많은 종교 가운데 내가 어느 종교를 선택해야 하는가'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만큼 중요한 선택은 없습니다. 오늘날 현대인의 특징은 너무 쉽게 결정해서, 쉽게 선택하고, 쉽게 포기하며, 쉽게 실패하는 것입니다. 길을 선택해야 하는데 현대인들은 너무 자신만만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말씀 속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과제는 그릇 된 풍조와 그릇된 선택 때문에 고통과 신음이 많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만은 학업의 진로, 결혼, 사업, 그리고 신앙에 있어서 올바른 선택의 기준을 갖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전해드릴 말씀의 제목을 가지고 백부장의 그릇된 선택관 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신앙보다는 지식을 선택하려는 풍조가 이 시대에 가득합니다. 11절에 보면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사도의 말보다 더 믿더라"고 하였습니다. 선장은 바다의 항해에 있어서 만은 남보다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선장은 바다에 대해서는 전문인이 었습니다. 백부장이 바울사도의 말보다 선장의 말을 더 믿었다는 것은 신앙보다 지식을 선호하는 현대인의 풍조를 대변하는 말입니다. 지금의 세상은 하나님보다 성경말씀보다 인간의 지식을 앞세우는 시 대가 되지않았습니까 본문 10절에 보면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 라" 고 바울사도가 백부장을 권면하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에 "내가 보니"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에 보면 바다의 항해경험 이 많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니까 이런 때는 이런 일이 반드시 생기더라는 확신에 찬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영감에 의해서도 이번에 가면 안되겠다는 그런 확신이 바울 사도에게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바울사도의 권면은 뒤로하고 확실치도 않은 세상 인간의 경험 과 유한한 바다의 지식을 가진 선장의 말이 선택되었다는 것은 하나님 보다 지식을 앞세우는 세상 풍조를 단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세상의 지식이란 시대와 환경과 대상에 따라 변하는 것입니다. 인간 이 내세우는 진리는 한 시대가 지나가면 이미 진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세상이 변할지라도, 역사가 흥하 고 망할지라도 변치않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신앙과 말씀과 하나님을 선택하고 나갈 것이냐, 아니 면 세상의 유한한 지식, 전문지식과 같은 것들을 택하여 세상지식이 요구하는 대로 인생을 살아갈 것이냐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둘째, 신앙보다 물질을 선택하는 풍조가 현대에 너무도 팽배합니다. 백부장이 바울사도의 말보다 선주의 말을 더 믿었다고 했습니다. 선 주가 누구입니까돈이 많은 사람입니다. 많은 돈을 들여 배를 만들고 선장과 사공들을 고용하여 바다를 건너는 화물선과 여객선의 주인이 선주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보다 신앙보다 불변하는 말씀보다 물질을 앞세우는 현대의 풍조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리고성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도 욕심 때문에 금과 털옷을 숨겼던 아간에게는 물질이 그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아나 니아와 삽비라가 그랬고 가롯 유다가 그랬습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유명한 허스트성이 있습니다. 34개 이상의 신문 을 발행하는 언론재벌인 허스트가의 신문사 사장이 바다가 내려다 보 이는 150만평의 대지 위에 무려 28년이나 걸려서 호화롭고 웅장한 별 장을 지었습니다. 그속에는 극장, 수영장, 사우나탕, 카지노 등과 미 술품, 조각품, 별별 예술품들이 수를 헤아일 수 없을 정도로 꽉 차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집을 지어놓은 허스트씨는 그 별장에서 제대 로 살아 보지도 못하고 죽었고, 죽을 때에 너무나 엄청난 세금 때문에 나라에 바쳤습니다. 지금은 미국의 유명한 관광코스의 하나로 공개되 고 있는데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쉬지않고 돌아다녀야 대충 훑어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성도여러분 인간의 행복은 물질로 그 척도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물 질은 여러분의 생을 윤택하게는 할 수 있어도 행복에 대한 문제를 근 본적으로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셋째, 소수보다 다수의 힘을 선택하고 신뢰하는 것이 현대의 풍조입니다. 백부장에게 이번 항해의 어려움과 불가함을 말하는 사람은 바울사도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백부장이 한 사람의 말을 듣겠습니까 아 니면 다수의 말을 듣겠습니까결국 소수를 버리고 다수를 택했다가 ' 유라굴라'광풍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진리란 언제나 다수의 편에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빌라도의 오판이 어디에서 생겼습니까예수님 께 죄가 없다는 것을 자신도 인정을 하면서도 소수의 말을 듣지 않고 다수의 말을 들었다는데 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소수냐 다수냐를 따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 급적이면 소수보다 다수가 낫지만, 그 다수가 비진리일 경우에는 다수 를 버리고 소수인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오늘 성도 여러분이 다수 의 힘을 의지하고 다수의 의견만이 옳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인본주의자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성경이 무엇이라고 하느냐입니다. 하나님께서 무 엇을 원하시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오늘은 현대인은 다수의 편에 서 기를 즐겨합니다.
넷째, 이상보다 현실에 치중하여 현실을 선택하는 것이 오늘 현대인 의 문제점입니다.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이 불편하다 하여 편리한 것만을 추구하는 사람 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이상이 없이 현실세계에서 어 떻게 하면 좀 더 편하게, 좀 더 쾌락적으로, 좀더 세상적으로 남보다 뛰어나게, 그리고 좀 더 잘 살아볼까 하는 현실에 치중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천국에의 소망에는 관심이 없고 대부분이 예수님을 믿기는 믿되 세상에서 복받아 잘사는 현세 기복주의 신앙에 뿌리 를 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지난 날 여러분이 어떤 선택을 했었는가를 되돌아 보시기바랍니다. 과연 내가 어떤 선택을 했었는가를 되돌아 보시기바랍니다. 과연 내가 올바로 하나님을 믿얼아는가.내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 왔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 섬길자를 오늘날 택하 라 나만의 가정은 하나님을 믿겠다 너희는 우성이냐 하나님이냐 둘 중 의 하나를 선택하라" 고 했습니다. 백부장과 많은 사람들이 세상적인 것을 선택하다가 파선하는 그 시간에도 바울사도만은 하나님의 편이었 습니다. 23절에 보면 바울은 말하기를 '나의 속한 바 나의 하나님의 사자가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 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 다 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위기에서도 역경에서도, 그리고 순탄한 길에서도 그의 선택은 항상 하나님이었고, 하나님이 삶의 근본 기준이 었습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보면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 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선택한 사람은 인생의 파고가 밀려와도 요동하지 않고 삽니다. 바로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능력으로 천지를 창조 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의 장중에 우리를 품어서 지켜주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십시오. 하나님을 선택하여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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