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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로 가는 바울 (행2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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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일행은 멜리데 섬에서 과동할 동안 무려 석달이나 있었다. 멜리데 섬 사람들은 삼개월간 함께 있었던 사도 바울을 평생에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베를 타고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276명의 많은 사람들도 다른 것은 다 잊어도 사도 바울만은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다 유용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1,역경의 길 로마행 사도 바울은 처으부터 로마를 택한 것은 아니였다. 사도 바울이 가고자 했던 곳은 로마와 정 반대 방향인 아시아였다.
그런데 마게도냐로 건너와 달라는 환상을 본 후 바울의 일정은 달라 졌던 것이다. 그때부터의 바울의 삶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십자가의 보혈로 불러 주신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본 후로는 전적으로 주님만을 위하여 살기로 작정을 했던 것이다. 이 시간은 로마로 가고 있는 바울을 보면서 함게 은혜를 받고자 한다. 한마디로 로마의 길은 역경과 곤난의 길이었다. 정말 골고다의 길이었고 십자가의 험난한 길이었다. 로마로 가는 길은 시작부터 마침까지 계속하여 가시밭 길이었다. 죽음으로 가는 길이 로마로의 길이다. 주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로마행을 지시하자 마자 또 사도 바울이 로마행을 결단하자 이를 방해하는 많은 세력이 있는 것을 우리는 주ㅡ 윽 보아 왔다. 마귀 사탄은 바울이 이 로마의 길을 가지 못하게 온갓 방법으로 길을 막고 방해를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바울이 가고 있는 길의 결과를 다 알고 사도행전을 보아 왔기 때문에 별로 였는지는 몰라도 만약의 경우 바울의 결과를 알지 못하고 우리들이 바울이 가고 있는 길을 살핀다면 절망적일 것이다. "정말 바울이 로마로 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앞섰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로마로 가는 도중에 그의 가는 길을 막는 방해가 너무도 많았다. 감옥에 같이는 일이며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이나 맞았고 바다의 풍랑으로 산산조각날뻔한 일등은 바울이 로마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사탄의 역사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저런 일들로 바울을 협박하여 사도 바울로 하여금 로마의 길을 포기하겠끔 만들고 있음이었다. 온갓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가시밭 같은 길 폭풍과 채찍질 당함과 어두움의 절망의 길이었으나 사도 바울은 포기하지 않았다. 매맞고 지친 느리고 느린 걸음으로나마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전진을 했다. 직선으로 가는 길이 못되고 둘러 가는 길이었으나 사도 바울의 목표는 로마로의 전진이었다. 14절 "…로마로 가니라" 드디어 사도 바울이 로마에 발을 들려 놓은 것이다. 여러분 모두도 바울처럼 로마로 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로마로 가기 위하여 천산교회에 발을 들여 놓으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를 향한 여러분들의 목표는 지금 든든하신지요 만약에 흔들린다면 무었때문이가 사도 바울은 빙빙 둘러 가면서라도 전진만 했었다. 매우 느린 속도일지라도 앞으로만 전진만 있었다. 로마로 가는 가는 길은 나를 위한 길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위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전에 주님게서 바울에게 "네가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바울은 잊을 수가 없었다. 행19;21절에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로마로 가는 길엔 순한 남풍도 있지만 때로는 사나운 폭풍우도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2,감사하면서 행 27;17절에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 산더미같은 파도가 선체를 철석거리며 때릴때 그때의 파도 소리를 들어 보라! 산더미 같은 파도가 세차게 내려 칠때마나 선체가 깨어지고 있는 것을 보라. 좀금이라도 배의 부서짐을 면하고자 밧줄로 선체를 둘러 감고 운명의 날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라!
그런데 오늘 본문인 14절은 무어라고 말하고 있는가 ".로마로 가니라" 다시 같이 읽자. "거기서 형제를 만나 저희의 청함을 받아 함께 유하다가 로마로 가니라" 로마는 사도 바울의 소망의 항구이다. 로마는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기다리고 계시는 항구이다. 그러나 로마는 천국이 아니다. 물론 로마는 안식처도 아니다. 15절에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과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여호와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니라하나님께 사례했다"고 했다. 바울은 그렇게도 가고자했던 로마의 땅을 밟는 순간 거기서 바울을 기다 리고 있던 믿음의 형제들을 만나는 순간 감사의 눈물이 폭발했던 것이다.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사도바울은 로마에 발을 들여 놓을 것을 이미 확신한바 있었겠지만 그러나 막상 이렇게 발을 들여 놓았으니 얼마나 감격했겠는가 그래서 감사가 폭발한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의 마음엔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제야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내게 주신 사명을 완수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감사가 넘쳤던 것이다. 지나온 발자취가 말로 다 형언키 어려울 정도로 험난한 것이였으나 지금까지 지나온 길에 함께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지금 사도 바울이 로바에 무었하기 위하여 온 것인가 죽기 위하여 온 것이다. 그의 일생을 여기서 마치기 위하여 온 것이다. 그것도 남들의 손에 순교의 길로  복음을 전하다가 그리스도를 자랑하다가 주신 주의 사명을 감당하다가 로마에서 순교할 것을 생각하니. 사도 바울의 마음엔 감사로 충만했다. 우리들은 언제 감사를 하는가 우리들의 생활엔 왜 감사가 없는가 우리들의 마음에 감사가 없다면 이는 하나님을 위한 복음을 위한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 만을 위한 삶엔 언제나 감사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나만의 삶에는 만족이 없으니까. 만약입니다만 지금 주님께서 우리에게 로마로 가야 한다고 명령을 하신다면 우리는 아멘으로 순종을 해야 한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는 만사를 제쳐두고 로마로 가야한다.
3,용기를 가지고 " 15절을 다시 보자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바울은 감옥에 같혀 있을 때에도 또 모진 매를 사정 없이 맞을 때에도 또 폭풍으로 인하여 배가 산산조각날 위험에 있을 대에도 언제나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았던 사람이다. 그래도 사도 바울도 우리들과 다를 것이 없는 똑같은 사람이다. 믿음이 우리들 보다 한 단계 위였을 뿐이다. 왜 두려움이 전혀 없었겠는가 왜 불안하지 않았겠는가 두려울 때마다 불안할 때마다 낙심날 때마다 말씀 생각하면서 기도하면서 십자가 바라 보면서 순간 순간 힘을 얻었던 것이다. 그런 삶의 오랜 결과로 지금 로마에 당도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로마에 당도해 보니 여기에도 하나님께서 바울을 위하여 믿음의 형제들을 예비 해 두셨던 것이다. 그 믿음의 형제들을 만나는 순간 바울의 마음에 담대함을 느꼈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형제들을 보는 순간 마음을 담대히 가졌다고 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제가 시키는대로 따라 해 주십시요! 여러분 곁에 계신 형제의 손을 한 번 꼭 쥐어 보시요! 지금은 별로 따스하게 느껴지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그 손이 바울처럼 외로운 로마의 길에서 만난 형제의 손이라고 생각해 보시라! 그리고 예배를 마치면 집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불나게 나가지 말고 한 번쯤 형제의 손이라도 잡아들 보시라!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다음주 다시 이손을 잡아 보는 그 때까지 형제의 축복을 기원하면서 사도 바울은 형제를 보는 순간에 이렇게 죽음의 순교의 현장인 로마에서 담대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형제들을 보는 순간에 바울은 그렇다 나는 주님을 위하여 그리고 저 형제들을 위하여 기꺼이 죽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섰던 것이다. 우리 모두들도 다 로마로 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 모두는 다 같이 형제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주님을 만나는 그 순간까지 여러분들이 쥐고 있는 형제의 손을 더 힘차게 꼭 잡고 감으로 형제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좋은 믿음의 형제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만나는 그 날까지 감사와 용기로 가득찬 날들이 되시길 다시한 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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