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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적 생애 (행28: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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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앙인들의 삶을 사도 바울은 육상 경기를 하는 선수들에 비유할 때가 많다. 갈2;2절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살후3;1절에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슴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빌2;16절엔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고전9;24절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을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육상선수들 중 특히 3천M 선수나 5천M 선수들이 다리기 하는 장면을 보게 되면 처음 출발했을 때는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어 달려 가다가 점점 몇몇 구릅식 나뉘는 것을 보게된다. 그러다가 마지막 골인지점이 가까이 닥아 갈지움에는 전력을 다하여 질 주 하는 것을 본다. 이는 처움 출발도 중요하고 또 계속해서 달려야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마지막 얼마남지 않은 지점을 통과할 땐 더 없이 중요한 것을 보여 주는 교훈들이다. 정말 사도 바울은 달리기 선주의 진면목을그의 새애를 통하여 다 보여 주 고 있다. 우리는 오늘 사도 바울의 마지막 스파트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1,하나님의 나라를 선포 31절에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지금 바울이 잡혀 온 곳이 어디인가 네로가가 황제로 있는 대 로마이다.
그런데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담대하게 전파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전 생애였던 것이다. 처음 다메섹에서(행13;50), 예루살렘에서(행9;29), 안디옥에서(행13;50), 이고니온에서(행14;5), 루스드라에서(행14;19) 죽임을 당할뻔 하였고 빌립보에서 투옥되었고(행16;23,24), 베뢰아에서 축출되었고(행17;13,14) 에베소에서는 군중들에 의하여 생명을 잃을 뻔 하였고(행19;29), 고린도에 서는 두번이나 살해 음모가 있었고(행18;12,20:3), 예랴에서 2년간(행24;27)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마에서 2년을 담대히 하나님의 나라 를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이 본문에서 발견해야할 단어가 하나 있다. 전파라는 말이다. 여기에 전파라는 말은 복음전도란 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선포임을 알아야 한다. 단시 세계의 지배자인 로마의 대 황제는 악명 높은 네로였다. 나라에 헌장 또는 선언에 관한 일은 황제가 하는 것이다. 얼마나 대담한 사도 바울인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는 로마의 사람들에게 로마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고 다음으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첫 던 것이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나라에 그의 생명을 내 걸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삶에대한 확실한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결단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내가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이지 내가 그 많은 교회들 중에 하필이면 이 천산교회에서 봉사를 해야 하는지 에 관하여 그 결단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바른 충성을 할 수 있다. 사람이 그 어떤 분명한 목표가 있을 때 그 사는 일에 보람을 느낄 수 있 듯이 우리 믿음의 세계도 예외는 아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분명한 결단이 섰을 때 그는 결단을 위하여 목숨을 내 걸었던 것이다. 그래서 로마에서도 담대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선포 할 수 있었던 것이다.
2,방해받지 않음 " 31절에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고 했는데 사도 바울이 마지막 로마에 있으면서 남긴 일들이 참으로 많았다.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던 일이며 또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친 일이며 본문에는 기록이 없지만 성경에 옥 중 서신이란 것들이 있다. 네권의 책으로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그리고 빌립보서를 로마 에 있으면서 기록했던 서신들이었다. 이런 일을 함에 있어서 아무도 금하는 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금하지 않고라는 단어도 방해를 받지 않았다는 뜻이 훨씬 가까운 해석이다. 바울이 감옥에 있었으나 방해를 받지 않았다. 로마 황제 네로가 방해 없이 나라를 통치했던것처럼 바울이 방해 없이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는 말이다. 이 것이 복음의 능력인 것이다. 이 것이 복음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힘인 것이다.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복음의 세력을 방해할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줌이다. 이렇게 방해가 없었던 것은 사도 바울이 잘나서가 아니다. 사도 바울이 말을 잘해서도 아니다. 이는 다시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나라 복음이 가지고 있는 능력 때문이다. 복음에는 이런 능력이 있다. 복음에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힘이 있다. 이 복의 세력이 복음의 능력이 로마를 정복했던 것이다. 온 유럽을 정복했던 것이다. 온 아시아를 정복하고 있다. 우리가 충성스럽게 증거의 사명을 감당한다면 아무도 교회를 방해할 수 없다.
3,마지막 2년간 사도 바울의 순교적 생애의 마지막 질주를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30절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여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을 다 영접하고" 여기에 "셋집"이란 말이 있다. 사도 바울이 보낸 마지막 2년간의 세월은 로마에 있는 한 셋집에서 그의 남은 생애를 정리하고 있었음을 보여줌이다. 온 이태란 말은 만 2년이란 말이다. 저는 이 말씀을 볼때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것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고 하신 말씀이었다. 그럼 사도 바울은 우리 예수님 보다 얼마나 호화스런 생활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었다. 그러면서 목사인 저는 사도 바울보다 얼마나 더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 들어 하나님께 송구스런 마음으로 이렇게 마음에 다짐을 해 보았다. "주님 최송합니다. 사도 바울이 간 길을 저도 갈려고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사도 바울을 닮고 싶습니다. 사도 바울을 닮는 그때가 오면 또 주님을 닮을려고 힘을 다하겠습니다." 라고 . 30절을 다시 본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을 다 영접하고" 만약의 일인데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만 만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호의호식하면서 고대광실에 살았었을 사람이었다. 오늘처럼 셋방살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도 바울은 세상적으로는 참으로 재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 열심. 그 정열, 그 투지, 마음을 바치고 몸을 투자하고 목숨을 거는 일념으로 어떤 기업에 봉사를 했더라면 지금쯤 바울은 상당한 중역의 자리에 앉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바울에겐 셋방이다. 그러나 지금 바울의 심정이 얼마나 홀가분한가 이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야할 때가 가까운 것이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께로 가야할 시간이 다 된 것이다. 바울에겐 남길 것도 없다 바울은 이제 뒤 돌아 볼 것도 없다. 이제 훨훨 날아 주께로 가기만하면 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 바울의 마지막 셋방이 바울의 인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 부담없이 아멩 하실 수 있는 삶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다. 담대히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자.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시면서 힘차게 전진하자. 그리고 주께서 날 오라 하시는 날 금면류관 받아 쓰고 웃으시면서 찬송부르면서 칭찬받으시는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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