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일으키는 교회가 됩시다 (행3:1-10)
본문
이 도성에 예수 혁명을 일으킵시다. 예수 혁명을 일으킵시다. 이 땅 위에 수많은 인생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보면 일생 동안 받기만 하는 거지 인생으로 사는 자가 있는가 하면 일생 동안 베푸는 삶으로 사는 부유한 인생이 있습니다. 가진 것이 많다고 부자가 아닙니다. 부자는 소유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비록 가난하지만 베풀 수 있는 인생이 부유한 자입니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많이 소유해서도 그 마음이 거지로 사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비록 가진 소유가 적어도 베풀면서 사는 넉넉한 자가 있습니다. 거지가 제도와 관형을 따라 이루어진 것이 비리요, 지능적 수법을 이용한 것이 사기요, 무력적 폭력을 사용한 것이 강도입니다. 얻으려는 거지를 주려는 신사로 변화시키는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사도행전 20:35)고 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주는 자가 복되고, 예수 이름으로 받는 자가 복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주고 받을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 도성에 예수 혁명을 일으켜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시다.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가 언약에 대한 믿음입니다. 에녹은 삼백년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히브리서 11:6)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불가능한 환경 속에서도 언약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리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민수기 14:9)고 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비결이 믿음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한일서 5:4)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어떠한 어려운 역경 가운데서도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았습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죽은 세상을 이기고 역사를 일으킵니다. 성령님의 불을 받읍시다. 저가 시골에서 자랄 때입니다. 엄동설한의 추위가 지나고 춘삼월 봄이 돌아오면 한해 동안 묶은 농기구와 부엌용 칼이나 쇠붙이를 가지고 나와서 대장간에서 새롭게 다듬습니다. 마찬가지로 마가 다락방은 성령님의 용광로입니다. 마가 다락방을 통과한 자들은 다 변했습니다. 오순절 사건은 이 천년 전에 마가 다락방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구원 역사적으로 불 때 그것은 시공간에서 단회적인 사건일 수 있으나 사도행전에서 그 사건은 점진적으로 확산되어 갔던 것입니다.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베드로는 가이사랴에서 바울은 다메섹에서 오순절 사건을 일으키고 체험했던 것입니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에 오늘날도 수많은 목회 현장에서 오순절 사건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밀알제단은 21세기를 위한 마가 다락방 인줄로 믿습니다.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8)고 했습니다.
첫째:기도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읽을말씀 “제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1절) 정시 기도를 합시다. 그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이라면 삼시 육시 구시에 누구나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바벨론 포로기에서부터 일어난 운동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다니엘 6:10)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때에도 정한 시간에 어김없이 기도했습니다. 작정한 정시 기도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평범한 시간보다도 주님이 정하신 주의 날을 귀하게 여기시는 것처럼 우리의 24시간 중에 하나님 앞에 드리기로 작정하고 정한 시간에 주님을 찾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합심 기도를 합시다. 베드로와 요한은 합심해서 기도했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태복음 18:19)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극적인 연합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 중에 가장 연장자요, 요한은 가장 연소자입니다. 세상은 연합이 가능한 자 끼리 협력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연합할 수 없는 자와 연합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안에서 하나된 공동체의 지체 의식입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천을 좇으면 두 사람이 만을 좇습니다. 이것이 합심 기도의 위력입니다. 성전 기도에 힘씁시다. 구시 기도 시간은 하루 중에 가장 어중간은 시간입니다. 우리의 시간으로 하면 오후 세시입니다. 이 시간은 하루 일과를 마치기도 다시 시작하기도 어중간은 시간입니다. 어려운 시간에 성전을 찾았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래서 외식하는 자들은 오히려 거리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자랑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책망을 받기도 했습니다(마태복음 23장). 이러한 때에 성전을 찾아 기도한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둘째:더불어 주목할 때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읽을말씀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4절) 베드로와 요한이 더불어 했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교회를 지체 원리로 설명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린도전서 12:12)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잘 하는 자가 좋은 일군입니다. 이 땅 위에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성(double)으로 남녀가 서로 돕는 배필로 살게 하셨던 것입니다(창세기 2:18). 그러므로 더불어 살면서 서로 도와야 합니다. 팀웍을 잘 이룹시다. 축구에서 콜인을 시키기 위해서는 후방에서 패스를 통해 어시스트를 잘 해주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복음의 환상적인 콤비였습니다. 대상을 주목해 봅시다. 성령님의 사람이 되면 영혼에 대한 관심이 달라집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평소에도 예루살렘 성전을 많이 출입했습니다. 그러나 이전에는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가 그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마가 다락방을 통과한 이후에는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특별히 영혼에 대한 가슴에 뜨거운 불이 붙고 있었습니다. 신령한 안목이 열였습니다. 복음의 대상을 바로 파악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사람이 되면 복음에 대한 관심사가 달라집니다. 전도가 안돼는 이유 중에 하나가 대상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면 관심사에 변화가 오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목하여 보셨던 것입니다. 사명을 바로 압시다. “우리를 보라”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돈을 주는 사회 사업가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은과 금이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논하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이 아닙니다. 우리는 율법의 멍에 아래 있는 자가 아니라 복음으로 자유한 자입니다. 우리는 철학을 논하는 헬라 철인도 아닙니다. 지혜자를 부끄럽게 하는 십자가의 도를 의지한 하나님의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우리는 무력을 자랑하는 로마인도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의 제자들로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복음의 증인입니다. 당신도 바로 이러한 복음의 사명을 확실히 깨닫아야 합니다. 이 땅위에서 가장 위대한 자는 사명을 깨닫은 자요, 가장 불행한 자는 사명을 발견하지 못한 자입니다. 성령님의 사람은 복음에 대한 확실한 사명을 깨닫은 자입니다.
셋째:예수 이름을 증거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읽을말씀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어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6-8절) 자기 포기를 합시다. 베드로가 외쳤던 “은과 금은 없거니와”한 말은 자기 포기 선언입니다. 여기 은과 금은 단순한 은금이 아닙니다. 은과 금은 곧 돈이요 재물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의 수단으로서 모든 것을 나타내는 총체적인 수단입니다. 은금을 가지고 우리가 학교에 가서 지식을 얻습니다. 우리가 은금을 가지고 공장이나 회사에서 기술을 배웁니다. 우리가 은금을 가지고 정치하여 권력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은과 금은 나의 학문과 기술과 권세와 명예의 대표적인 상징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네게 줄 은금이 없다는 말은 내게는 네게 줄 지식이나 기술이나 권력이나 명예가 없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자기 포기입니다. 오늘날은 교회 안에서 왜 역사가 안 일어나는가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아 포기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이름보다는 내 은금을 주니 역사가 일어날리가 없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걸읍시다. 예수 이름이 지상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것은 걷는 것 이상입니다. 예수 없이 걷는 것은 불행입니다. 차라리 앉은뱅이 상태로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더 적은 죄를 지기 때문입니다. 예수 없는 그 어떠한 소유도 불행입니다.
그러므로 걸어도 예수 이름으로 걸어야 합니다. 예수 없는 인생의 그 어떠한 것도 무익한 것이며, 해로운 것입니다. 13세기 교황청이 누렸던 권세는 대단했습니다. 교황청이 발코니에 있을 때 교황 이노센트
Ⅳ세는 이제 우리에게 은금이 없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때 토마스는 “이제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기적도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 예수 이름보다 은금이 더 존귀를 받을 때 하나님의 역사는 사라지게 됩니다. 오른손을 잡고 일으킵시다. 예수를 만나면 인생이 변합니다. 예수 이름이 들어간 순간 앉은뱅이에게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먼저 발과 발목이 힘을 얻었습니다. 피동적 인간에서 능동적인 인간이 되었습니다. 받는데서 주는 인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뛰어 서서 걸었습니다. 뛰는 것은 기쁨과 즐거움이요, 걷는 것은 전진이요, 발전입니다. 이 인생은 이제 감젹적인 삶으로 전진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전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전에는 성전 밖에서 일생을 보내었으나 이제 성전 안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가 첫 발걸음을 딛는 순간에 성전 안으로 들어간 것은 가장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 입술에 하나님을 찬미하는 찬미가 있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목적을 바로 발견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혁명을 일으킵시다. 거지 인생을 복음의 신사로 바꾸는 것은 예수 이름뿐입니다.
1 기도 운동을 일으킵시다. 정시 기도를 합시다. 합심 기도를 합시다. 성전 기도를 합시다.
2 더불어 주목합시다. 연합 운동을 일으킵시다. 대상을 주목합시다. 사명을 바로 압시다.
3예수 이름을 증거 합시다. 자기 포기를 합시다. 예수 이름을 증거 합시다. 오른손을 잡고 일으킵시다. 예수 혁명을 일으킵시다.
첫째:기도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읽을말씀 “제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1절) 정시 기도를 합시다. 그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이라면 삼시 육시 구시에 누구나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바벨론 포로기에서부터 일어난 운동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다니엘 6:10)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때에도 정한 시간에 어김없이 기도했습니다. 작정한 정시 기도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평범한 시간보다도 주님이 정하신 주의 날을 귀하게 여기시는 것처럼 우리의 24시간 중에 하나님 앞에 드리기로 작정하고 정한 시간에 주님을 찾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합심 기도를 합시다. 베드로와 요한은 합심해서 기도했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태복음 18:19)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극적인 연합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 중에 가장 연장자요, 요한은 가장 연소자입니다. 세상은 연합이 가능한 자 끼리 협력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연합할 수 없는 자와 연합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안에서 하나된 공동체의 지체 의식입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천을 좇으면 두 사람이 만을 좇습니다. 이것이 합심 기도의 위력입니다. 성전 기도에 힘씁시다. 구시 기도 시간은 하루 중에 가장 어중간은 시간입니다. 우리의 시간으로 하면 오후 세시입니다. 이 시간은 하루 일과를 마치기도 다시 시작하기도 어중간은 시간입니다. 어려운 시간에 성전을 찾았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래서 외식하는 자들은 오히려 거리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자랑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책망을 받기도 했습니다(마태복음 23장). 이러한 때에 성전을 찾아 기도한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둘째:더불어 주목할 때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읽을말씀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4절) 베드로와 요한이 더불어 했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교회를 지체 원리로 설명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린도전서 12:12)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잘 하는 자가 좋은 일군입니다. 이 땅 위에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성(double)으로 남녀가 서로 돕는 배필로 살게 하셨던 것입니다(창세기 2:18). 그러므로 더불어 살면서 서로 도와야 합니다. 팀웍을 잘 이룹시다. 축구에서 콜인을 시키기 위해서는 후방에서 패스를 통해 어시스트를 잘 해주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복음의 환상적인 콤비였습니다. 대상을 주목해 봅시다. 성령님의 사람이 되면 영혼에 대한 관심이 달라집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평소에도 예루살렘 성전을 많이 출입했습니다. 그러나 이전에는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가 그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마가 다락방을 통과한 이후에는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특별히 영혼에 대한 가슴에 뜨거운 불이 붙고 있었습니다. 신령한 안목이 열였습니다. 복음의 대상을 바로 파악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사람이 되면 복음에 대한 관심사가 달라집니다. 전도가 안돼는 이유 중에 하나가 대상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면 관심사에 변화가 오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목하여 보셨던 것입니다. 사명을 바로 압시다. “우리를 보라”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돈을 주는 사회 사업가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은과 금이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논하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이 아닙니다. 우리는 율법의 멍에 아래 있는 자가 아니라 복음으로 자유한 자입니다. 우리는 철학을 논하는 헬라 철인도 아닙니다. 지혜자를 부끄럽게 하는 십자가의 도를 의지한 하나님의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우리는 무력을 자랑하는 로마인도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의 제자들로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복음의 증인입니다. 당신도 바로 이러한 복음의 사명을 확실히 깨닫아야 합니다. 이 땅위에서 가장 위대한 자는 사명을 깨닫은 자요, 가장 불행한 자는 사명을 발견하지 못한 자입니다. 성령님의 사람은 복음에 대한 확실한 사명을 깨닫은 자입니다.
셋째:예수 이름을 증거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읽을말씀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어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6-8절) 자기 포기를 합시다. 베드로가 외쳤던 “은과 금은 없거니와”한 말은 자기 포기 선언입니다. 여기 은과 금은 단순한 은금이 아닙니다. 은과 금은 곧 돈이요 재물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의 수단으로서 모든 것을 나타내는 총체적인 수단입니다. 은금을 가지고 우리가 학교에 가서 지식을 얻습니다. 우리가 은금을 가지고 공장이나 회사에서 기술을 배웁니다. 우리가 은금을 가지고 정치하여 권력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은과 금은 나의 학문과 기술과 권세와 명예의 대표적인 상징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네게 줄 은금이 없다는 말은 내게는 네게 줄 지식이나 기술이나 권력이나 명예가 없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자기 포기입니다. 오늘날은 교회 안에서 왜 역사가 안 일어나는가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아 포기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이름보다는 내 은금을 주니 역사가 일어날리가 없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걸읍시다. 예수 이름이 지상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것은 걷는 것 이상입니다. 예수 없이 걷는 것은 불행입니다. 차라리 앉은뱅이 상태로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더 적은 죄를 지기 때문입니다. 예수 없는 그 어떠한 소유도 불행입니다.
그러므로 걸어도 예수 이름으로 걸어야 합니다. 예수 없는 인생의 그 어떠한 것도 무익한 것이며, 해로운 것입니다. 13세기 교황청이 누렸던 권세는 대단했습니다. 교황청이 발코니에 있을 때 교황 이노센트
Ⅳ세는 이제 우리에게 은금이 없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때 토마스는 “이제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기적도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 예수 이름보다 은금이 더 존귀를 받을 때 하나님의 역사는 사라지게 됩니다. 오른손을 잡고 일으킵시다. 예수를 만나면 인생이 변합니다. 예수 이름이 들어간 순간 앉은뱅이에게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먼저 발과 발목이 힘을 얻었습니다. 피동적 인간에서 능동적인 인간이 되었습니다. 받는데서 주는 인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뛰어 서서 걸었습니다. 뛰는 것은 기쁨과 즐거움이요, 걷는 것은 전진이요, 발전입니다. 이 인생은 이제 감젹적인 삶으로 전진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전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전에는 성전 밖에서 일생을 보내었으나 이제 성전 안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가 첫 발걸음을 딛는 순간에 성전 안으로 들어간 것은 가장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 입술에 하나님을 찬미하는 찬미가 있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목적을 바로 발견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혁명을 일으킵시다. 거지 인생을 복음의 신사로 바꾸는 것은 예수 이름뿐입니다.
1 기도 운동을 일으킵시다. 정시 기도를 합시다. 합심 기도를 합시다. 성전 기도를 합시다.
2 더불어 주목합시다. 연합 운동을 일으킵시다. 대상을 주목합시다. 사명을 바로 압시다.
3예수 이름을 증거 합시다. 자기 포기를 합시다. 예수 이름을 증거 합시다. 오른손을 잡고 일으킵시다. 예수 혁명을 일으킵시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