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세상은 우리의 행동하는 신앙을 어떻게 볼수 있는가? (행2:37-42)

본문

유대인의 3대명절 가운데 하나인 오순절을 맞이하여 팔레스타인 본토에 사는 유대인은 물론 전 세계에 산재한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도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한 초대교회 성도들도 마가 어머니의 다락방에서 모여 예수께서 보내주시기로 약속한 보혜사 성령님의 강림하심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을 때 갑자가 하늘로부터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집안에 모인 모든 무리위에 성령님의 강림이 임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님충만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은 비젼과 선교의 사명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성령님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는 성전에 모여든 무리들을 향하여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망하던 메시야였음을 말해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십자가상에서 죽인 예수는 이제 부활 승천하여 인생의 구원자와 심판자가 되시는 그리스도임을 증거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무리들은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와 물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러자 38절 이하에서 베드로는 말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하고 했습니다. 그날 성령님충만한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 가운데, 회개하고 예수를 주님으로 믿고 세례받은 사람들이 3000명이나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확신과 뜨거움과 한 영혼이라도 사랑하는 성령님충만함을 받은 베드로의 설교는 3천명을 예수 믿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한번 설교해서 수천명을 예수믿게 한 베드로를 기독교 2천년간의 역사를 통해 모든 설교자들은 부러워해 왔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놀라운 일을 행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왜 그러면 베드로의 설교는 이처럼 놀라운 일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까 그것은 성령님충만함을 받아 변화된 베드로의 삶과 인격을 통한 메시지 때문입니다.
Philip Brooks라는 목사님은 설교에 관한 유명한 정의를 내린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자의 인격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설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설교자가 설득력이 있고 언변이 좋다고 할지라도 그에게서 예수의 냄새가 나지 않고 세상냄새가 난다고 하면, 그의 설교가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설교자들에게만 아니라,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도 말로만 사랑, 섬김, 봉사를 말하지 말고 행동으로 신앙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믿는 예수의 인격과 성품을 당신들의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달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우리가 아무리 찬송을 잘 부르고, 성경구절을 많이 암송하고 있다고 감동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독교의 교리에 관하여 많이 알고 있고, 성경공부도 많이 했고, 교회의 큰 직분도 맡고 있다고 해서 세상사람들은 우리를 우러러 보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변화된 삶, 그들과는 무엇인가 다른 우리의 삶, 순결하고 성결한 삶을 바라보고 세상 사람들은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하기에 바울은 빌립보서 1:27절에서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희랍이나 러시아 정교회(Greek Orthodox Church)의 예배에는 많은 향을 피워 교회가 향냄새와 연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들의 예배에 참석한 후에 집에 돌아오면 내 옷과 몸에서 행냄새가 납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의 삶에서는 예수의 냄새가 나야만 합니다. 그러할 때 세상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게 될 것입니다. 어느 운동시합을 하는 어린이 가운데 한 아이는 관중석에 오더니 그 중에 어느 아주머니에게 자기의 겉옷과 돈지갑을 맡기며 보관해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는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왜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이며 나한테 옷과 돈지갑을 맡기느냐 그러자 그 아이는 아주머니 목에 십자가가 걸려있기 때문이지요 라고 아이가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크리스챤이랴는 이유로 세상사람들과 우리를 정직한 사람 신뢰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말합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성령님충만함을 받은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사람들로 변화되어 말씀을 증거하는 헌신자, 말씀의 사역자, 말씀을 섬기는 자들이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자기들의 전 삶을 헌신하고 섬기는 사역자들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모두가 자기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우리 크리스챤들이 섬기는 자로 오신 예수를 닮아 섬기는 삶, 헌신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세상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줄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어느 분이 책의 저자들이 자기 책을 누구에게 봉헌하는(dedicate)관습에 대하여 연구를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서양사람들은 책을 출판하면, 저자는 자기의 책을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 바친다고 책에서 말합니다. 대부분의 저자들은 나의 이 책을 사랑하는 아내에게 바칩니다라고 말하거나 아니면 나의 부모님, 사랑하는 자녀들, 또는 존경하는 교수님이나, 친구 또는 동역자들에게 이 책을 봉헌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자기가 쓴 책을 애완동물인 개나, 고양이에게 증정한다고 책에서 말하는 분들이 있는가하면 산이나, Dear Old Apple Tree에게 자기가 쓴 책을 증정한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느 분은 소설책을 빚쟁이에게 증정한다고 고백합니다. 나의 빚쟁이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그들의 참을성 없음이 이 책을 쓰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자기가 쓴 책을 자기 자신에게 바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왜 자기가 쓴 책을 자기자신에게 dedicate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사람들이 점점 자기중심적으로, 자기 만족만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어느 사회평론가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자기 자신 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자기자신을 바치고 나 자신을 헌신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모두가 자기 자신의 욕구만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마가복음 10:43-45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27절에서도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식탁에서 앉아서 먹는 사람과 심부름하는 사람중에 누가 더 지위가 높으냐 식탁에 앉아 먹는 사람이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가운데 있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께서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으신 후, 허리에 수건을 두루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일은 비천한 종들이 하는 일이었으나, 예수께서는 섬기는 삶의 본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몸소 그 일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종교개혁가였던 마틴루터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왕이나 군주와 같은 높은 신분과 위치가 주어졌다고 말 한적이 있습니다. 예수믿고 우리는 왕중왕이 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우리의 신분은 왕이나 군주와 같이 높은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는 또한 예수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지극히 낮아져서 주님을 섬기는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왕같은 신분을 가진 자가 되었지만, 예수처럼 낮아져서 섬기는 자, 헌신하는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타락한 이 세상에서 주님의 사역을 행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크리스챤이 된다는 것은 섬기는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교회가 놀랍게도 변화될 것입니다.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들이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섬기는 자로 사역하기에 탈진상태에 빠지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자신을 하나님을 섬기는 비천한 종으로 생각한다면, 왜 내가 이 만큼 수고하고 봉사하는데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주지 않느냐고 섭섭한 마음을 자기는 사람도 없게 될 것입니다. James Emery White이라는 유명한 목사님은 오늘날 많은 교회의 문제는 사역을 행하여야 할 이사회, 위원회, 당회가 사역을 실제로 행하기 보다는 감독, 통제, 결제하는 일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역현장에서 일해야할 가장 유능한 일군들이 사역현장에 있지 않고, 위원회에 들어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래지향적인 교회는 교회의 모든 조직이 어떠한 일을 감독, 통제, 결제하기 위하여 존재해서는 안되고, 교회안의 모든 조직은 실제로 사역을 행하기 위하여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인도에서 선교사역을 행했던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E. Stanley Jones라는 미국의 감리교회소속의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인도에 Ashram이라고 불리우는 기독교 신앙공동체를 세웠습니다.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Ashram 신앙공동체에서 함께 살면서 기독교 신앙을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인도의 부라만 계층에 속한 초신자가 Ashram에 오게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인도는 계층사회입니다. 브라만은 인도에서 최상류 계층입니다. Ashram공동체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잡일을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거나, 걸레로 마루를 닦든지, 부엌에서 접시를 닦거나, 화장실을 청소하든지, 마당을 청소하는 일이든지 잡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브라만 계층 출신의 초신자는 마당을 청소하는 일이든지 잡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브라만 계층 출신의 초신자는 어느날 E. Stanely Jones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청소하는 일 같은 비천한 노동은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는 이러한 일들을 할 신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E. Stanley Jones목사는 그리스도안에는 거룩한 일, 비천한 일의 구분이 없으며 크리스챤들은 노동을 통하여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브라만 출신의 초신자는 말하기를 Stanley Jones목사님, 나는 예수를 믿으려고 했는데, 청소하며 걸레질하면서 까지는 예수를 믿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Ashram공동체를 떠났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긴 믿는데 섬기는 자는 되기를 원치않는 사람은 우리 가운데는 없습니까 작년 여름에 세상을 떠난 테레사 수녀는 그녀가 만나는 모든 사람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섬겼습니다. 그녀는 마태복음 25:40절에서 예수께서 주신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려고 했던 것입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섬기는 자, 헌신하는 자세로 일한다면, 우리들의 가정과 교회, 직장과 사회는 놀랍게도 변화 될 것입니다.
둘째로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님충만함을 받아 사랑의 사도들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대부분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성격이 거칠고, 급하고, 노하기를 빨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요한같은 제자는 얼마나 성격이 불같았던지, 별명이 우레였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성령님충만함을 받게 되었을 때 사랑의 사도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날 세계각국에서 모여든 한영혼 한영혼들을 다 사랑하고 그들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38절에 보면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세례로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어느 인종이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어느 특정한 종파, 계층, 민족 또는 인종만을 구원하시기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다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최후만찬을 나누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몇 년전 Lois Wyse라는 분이 Good Housekeeping이라는 잡지에 젊은 여성이 좋은 남편감을 고를 때 몇 가지 지침을 제시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1)교통체증이 심한 곳에서 그가 어떻게 운전을 하는 지 잘 관찰하라.
2)그가 평소에 자기 어머니에게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잘 들어보라
3)그가 식당종업원, 주유소에서 석유를 넣어주는 사람들, 상점의 점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잘 살펴보라.
4)그가 어떻게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돈을 사용하는지 검토해보라. 5)그의 친구들을 살펴보라 6)그와 테니스 시합을 한번 해보라는 등등의 6가지 남편감을 선택하는데 가이드라인이 제시된 적이 있습니다. 이 6가지 지침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요소는 그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대적하느냐는 점입니다. 우리가 배우자나 친구를 선택할 때 그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는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내가 어떠한 종류의 사람인가를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존귀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안 믿는 세상사람들도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과연 우리는 이웃을 사랑함으로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조그마한 소도시에 사는 어느 30대의 John라는 남자가 몇 가지 물건을 사기 위하여 수퍼마켓에 들어갔습니다. 몇 가지 종류의 식료품을 산후에 그는 마켓 한코너에 있는 꽃집에서 아름다운 장미꽃을 보고, 장미꽃 한다발을 사서 아내에게 주고자 했습니다. 장미꽃을 들고 계산대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John앞에 한 나이많은 할머니 한사람이 서 있다가 그가 들고 있는 장미꽃을 보았습니다. 할머니는 그에게 "당신 아내의 생일이요."라고 물었습니다. "아니요, 저는 아내를 좀 놀라게 해 줄려고 꽃을 샀습니다. "라고 그는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할머니는 슬픈 한숨을 쉬면서, "나의 세상 떠난 남편도 나를 놀라게 하기 위하여 종종 꽃을 주곤 했지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남편은 꽃을 사다줌으로 자기가 나를 사랑한다는 표시를 하곤 했는데, 그것은 벌써 옛날 일, 지나간 일이지요."라고 할머니는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벌써 지나간 옛일이지요라고 말하며 할머니는 우수에 젖어있는 것이었습니다. 얼마후 할머니가 계산대에서 돈을 지불할때가 되자 그녀는 자기가 산 식료품대금을 다 지불한 후 뒤에 서있는 John에게 good-bye 라고 인사를 하고 갔습니다. 할머니가 떠나간후에 John의 머리속에는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자기가 산 물건과 꽃값을 얼른 치른 다음에 수퍼마켓밖으로 뛰어나가 그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할머니를 찾은 그는 뛰어가 할머니에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할머니의 남편께서 이 세상에 안 계시기에, 제가 내 아내에게 선물로 산 이 꽃부케를 할머니에게 주고 싶습니다. 할머니는 젊은 John의 친절에 감동을 받아 수퍼마켓 부근에 있는 자기의 아파트로 초청하여 차 한잔을 대접하고 싶다고 초청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Johnny 와 그의 아내는 홀로 사시는 할머니와 친교를 자지게 되었습니다.
몇 년후 그들이 다른 큰 도시로 이사를 갔는데도 할머니는 그들을 잊지 못하고, 크리스마스때 마다 Johnny의 아이들에게 많은 장난감을 선물로 보낸다고 합니다. 그 할머니는 John이 베푼 조그마한 사랑과 친절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고 그토록 감사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그 사람의 사회적인 경제적인 위치, 교육수준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를 합니다. 그러하기에 어떤 사람은 실패자, 어떤 사람은 죄인, 어떤 사람은 경멸을 받아야 할 사람, 가망없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보시지 않으십니다. 그의 독생자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무한히 사랑하는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보실 때 목자없이 유리하는 양떼처럼 보시고 항상 민망히 여기며, 불쌍히 여기는 눈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웃을 바라볼 때 인간적인 눈으로 평가하지 말고, 예수께서 그를 바라보시는 눈으로 볼 수 있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닮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의 눈으로 이웃을 바라보는 훈련을 항상 연습하고 학습해야 할 것입니다. 세계적인 정신분석학자였던 Karl Menninger박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단어는 unloved, 사랑받지 못함이란 말이라고 합니다. 사랑받지 못함을 느끼는 것보다 더 파괴적이고, 더 해를 가져다주고, 더 나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계속하여 "사랑은 사랑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를 다 치유하는 능력과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 크리스챤들이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 가정과 사회의 많은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향하여 예수의 사랑을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말합니다.
성도여러분 Albert Schweitzer박사의 위대한 점은 그가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위하여 의술을 베푼 사랑의 행동에 있기보다는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받아 그분처럼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랑과 친절한 행동을 행하게 된다는데 있는 것입니다. 즉 쉬바이쳐박사가 사랑과 희생의 정신으로 아프리카 밀림지역에 병원을 세우고 흑인들의 병을 치유해준 일로 인하여 사람들이 영감을 얻고 자극을 받아 많은 사람들이 선하고 아름다운 일, 사랑과 수고가 있는 일을 행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나의 따뜻한 말 한마디 조그마한 친절을 통하여 주변사람들이 영향을 받고 있습니까 세상사람들은 나의 작은 사랑의 행동을 통하여 내가 예수믿는 사람임을 알게 됩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6)." 오늘 본문말씀에 보면 베드로와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베드로가 오순절날 무리들을 향하여 설교를 하자 3천명의 사람이 회개를 하여 세례를 받고 예수를 믿게되었습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교회를 세워 성도들을 말씀으로 가르치며 양육하며, 서로 사랑을 나누는 신앙공동체를 이루어 나갈 때, 그들은 47절에 보면 ".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교회를 사랑한 것처럼 오늘 우리 성도들은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한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교회를 사랑함으로 세상사람들도 교회를 사랑할 수 있도록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43절에 보면 초대교회를 세상사람들은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47절에는 교회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왜 초대교회를 세상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칭송했습니까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이 세상사람들과는 다른 순결하고 성결한 삶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때 우리는 마음아파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지체인 내가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이비 이단종파로 인하여, 세상사람들은 교회를 올바로 판단하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우리는 사회로부터 정당한 비판은 수용하여, 자기자신을 돌이켜 점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나 부당한 비판을 받을 때에는 우리는 교회를 변호하고 보호하는 책임도 져야만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부당한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분이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세상이 점점 악해지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부정과 부패, 범죄와 살인, 마약과 도박, 학원폭력, 성적인 타락, 양심의 마비와 도덕성의 상실, 탐심과 이기심 등으로 내일에 대한 아무 소망이 없는 사회의 모습을 꿈에서 보게된 것입니다.
그런데 꿈에 보니 대통령이 학자들로 하여금 인류역사를 통하여 지금까지 축적된 모든 지식과 지혜를 data로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신속하고 용량이 많은 컴퓨터에 입력을 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컴퓨터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이 악한 사회가 구원받기 이하여는 어떠한 법이 필요합니까 그러자 대형컴퓨터가 한참 바삐 작동을 하며 해답을 찾고 있었습니다. 얼마후에 프린터에 컴퓨터의 대답이 인쇄되기 시작을 했습니다. 대통령은 컴퓨터가 준 해답이 인쇄된 유인물을 들고 T.V방송에서 전국민을 향하여 일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가 준 해답에 의하며 사회가 구원받기 위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법을 순종하고 준수해야만 합니다.
1.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2.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리라.
3.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4.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내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5.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6.살인하지 말지니라
7.간음하지 말지니라
8.도적질하지 말지니라
9.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10. 네 이웃을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
꿈에서 깨어난 분이 알고 보니 컴퓨터가 준 해답은 십계명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대로 산다면 사회가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성도여러분 지상의 교회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하지 못한 우리들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우리처럼 질그릇과 같아서 깨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질그릇에 보화가 담겨져 있으면 그 질그릇이 귀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안에 성령님께서 내재하시기에 교회는 거룩합니다. 이세상에 교회가 없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교회가 없다면 그리스도도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의 책인 성경도 없게 될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서 우리가 어디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들을 수 있으며, 배울 수가 있습니까 교회를 떠나서 나 자신과 나의 자녀들이 어디에서 영적으로 양육을 방게 될 것입니까 복음이 어떻게 땅끝까지 전파될 것입니까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며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존중하며, 서로 섬기고 봉사하는 일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교회는 우리 신앙의 어머니라고 말한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를 떠나서 자녀들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교회를 떠나서 존재 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나의 신앙의 어머니인 이 교회를 사랑해야만 합니다. 한국의 모든 크리스챤들이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세상사람들도 교회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교회의 한 지체가 된 바로 나 자신입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574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