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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에게 호소하는바울 (행25:1-12)

본문

1,거리낌이 없는 그의 양심
2,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권위에 겸손하게 굴복하는 바울
3,사명을 위하여 순교를 각오한 바울 4,하나님의 나라를 확대시키려는 지칠 줄 모르는 열망 우리는 지난 시간에 자기가 해야할 일들을 뒤로 미루어 두었던 미결의 인생인 벨릭스 총독의 비참한 최후를 보았다. 벨릭스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인데도 뒤로 미루었던 것이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적절하게 선용하지를 못하고 뒤로 미루었다. 마음에 느낌이 강했것만 세상사 때문에 회개를 뒤로 미루고 말았다. 미결의 인생 벨릭스가 남겨둔 일을 이제는 그의 후임자인 베스도가 대신 처리하게 되었다. 참으로 유대인들은 끈질긴 사람들이다. 2년 전에 일을 다시 끄집어 내어 놓고 새로 부임한 총독 베스도에게 다시 유능한 사람들을 보내어 송사를 했었다. 오늘 우리들은 다시 송사를 당하는 사도 바울의 자태에서 참다운 그리스챤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자 한다.

1,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거리낌이 없는 양심의 바울 바울은 지난 번 행24;16절에서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고 했다. 얼마나 귀한 고백인가 이제 한해를 청산하는 마당에 이 사도 바울의 고백은 우리 모두의 고백이었으면 얼마나 더 좋을가 싶어진다. 우리 모두가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을 대해서나 사람을 대하여 양심에 거리낌이 살았노라고 이 시간에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도 바울이 지금 이렇게 시달림을 받고 있는 것은 그의 어떤 허물 때문이 아니다. 비록 피고의 입장이지만 사도 바울은 언제나 원고 이상으로 그의 마음은 밝고 든든했었다. 왜 바울은 항상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살려고 힘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새로 온 총독 베스도가 예루살렘으로 보낼려고 할 때에 9절이다.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고 베스도가 물었을 때 바울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담대하게 베스도를 향하여 호소를 했었다.
11절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므슨 사죄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의 나를 송사 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 줄 수 없삽나이다 내가 가이사 에게 호소하노라" 사도 바울이 가이사 앞에 당당하게 서기를 자청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매일 매일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살려고 힘쓰는 사람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하나님이 정하신 권위에 겸손하게 굴복하는 바울,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가이사랴의 법정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으로 믿었다. 물론 로마의 법정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질서의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다스리시고 계심을 믿었다는 것이다. 바울이 롬13;1절에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고 했다. 그리고 2절에서는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비록 세상의 권세일지라도 위에 있는 권세에게 순복을 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위에 있는 모든 권세에 만족을 하라고함이 아니다. 그것이 나의 믿음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거든 순복을 하라고함이다. 그래서 바울은 가이사 에게 호소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바울의 호소는 피고 입장에서 자기 보호를 위한 호소였지 상대방을 걸고 들고자하는 세상적인 호소가 아니였다. 사도 바울은 옥사리를 참으로 많이한 사람이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자신이 웡고가 된적은 없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들이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울의 고소는 어디까지나 육적인 문제의 것이지 영적인 문제를 해결할려고 호소함이 아님을 명심해야한다. 가이사는 영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3,사명을 위하여 순교를 각오한 바울 그리고 로마로 가고 싶어 했던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또한 바울의 간절한 한 평생의 소원이었다.
그런데 그 기회를 유대인들이 고소함으로 성사되고 잇음이다. 여기에 총독 베스도가 합세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번 에도 말씀을 드린바 있지만 오늘 다시 한 번더 바울의 사역을 생각하고한다. 행20;22-24절에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님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 했던 것이다. 그러니 사도 바울이 로마로 가기를 고집함은 육신적인 어떤 안일함 때문도 아니다. 로마로 가야할 막중한 사명 때문이었다. 땅끝까지 이르러 주의 증인됨을 위하여 목숨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했다. 우리들은 이 한해를 무었을 하면서 달려 왔는가 이 한해에 무었이 나를 그토록 바쁘게 만들었던 것인가 한해를 보내는 이 마당에 우리들도 사도 바울처럼 복음을 위하여 또 주께서 마끼신 사명을 위하여 나는 나의 길을 최선을 다하여 달려 왔노라고 말 할 수 있는가 사도 바울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사도 바울은 성령님으로 충만 했던 사람이다. 주님의 직접적인 부름을 받은 사도이다. 자기가 로마에 가면 죽을 것이라는 것을 몰라서 로마행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로 가고자함은 복음을 위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유대인들의 고소한 내용으로는 죽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8절에 "바울이 변명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샤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고 했다. 이 말은 율법을 어긴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또 성전을 더렵힌자가 아니하는 것이다. 물론 가이사에게도 아무런 혐의가 있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은 바울이 순교를 하기는 하지만 정당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됨을 위한 순교를 원함이었던 것이다. 율법을 범하고 성전을 더럽히고 가이사를 훼방한것이 아니라 예수 때문에 죽는 것이고 복음때문에 북는 것임을 분명히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가이사에게 호소를 했던 것이다.
4,하나님의 나라를 확대시키려는 지칠 줄 모르는 열망 여기 성경에 가이사라고함은 로마의 황제인 네로를 지칭하는 말이다. 로마 역사상 가장 포악한 황제였던 네로를 말한다. 월로원의 권한을 한몸에 다 쥐고 있었다. 호민관의 권리마져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바울은 지금 그 네로에게 호소를 한 것이다. 11절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사죄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의 나를 송사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 줄 수 없삽나이다. 내가 가이사에게 호소하노라" 12절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가로되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니라 하니라" 드디어 로마 황제 앞에 서게되는 영광을 바울이 가지게 되었다. 네로 앞에서 모든 원로원들 앞에서 모든 호민관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돈 한푼 드리지 않고, 로비활동도 없었고, 로마까지의 경비 한잎 드리지 않고 그것도 안전하게 수행원까지 대동하고 로마로 갈 수 있게된 바울이다. 얼마나 감사한가 비록 로마의 법정이 세상의 부패한 법정이기는 하지만 바울은 그 법정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 법정의 판결레 자기를 마길 수 있었다.
왜냐하면 언제나 하나님꺼서는 이 세상만사를 다 주관하고 계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고소가 두렵지 않았다. 폭군 네로의 재판 결과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쉬운게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마껴주신 사명을 위하여 죽을 목숨이 하나 밖에 없는 것이었을 뿐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역사하시고 계시는 것을 보시라. 얼마나 놀라운가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기가 막힌 방법으로 바울을 쓰시고 계신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그렇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마끼고 있다. 손해를 보는 것 같은데도 바울은 하나님께 마낀다. 경험과 지식에 맞지 않는 것 같을 때에도 하나님께 마낀다.
왜냐하면 마낀 결과가 언제나 상상 할 수 없도록 좋왔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서도 좋왔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는 더 없이 좋왔기 때문이다. 오늘 사도 바울이 로마행을 택함으로 말미암아 로마에 그리스도의 복음의 씨았이 뿌리를 내리게된 것이다. 사도 바울이 로마의 땅을 밟은 때로부터 약 250년 후 콘스탄틴 데제가 밀라노 칭령을 반포하게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고 선포하게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하고 있는 일들에는 그 결과가 당장 나타나는 것도 있고 한달 후에 또는 일년 후에 나타나는 일들도 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일의 결과도 그렇다. 때로는 먼 후일에 그 결과가 나타날 때도 있다.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결과는 하나님께 마끼고 언제나 그 결과를 아름답게 하여 주셨던 하나님을 믿고 나의 오늘의 일들을 잘 감당하여 조금도 후회가 없는 하루 하루를 살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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