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찌된 일이냐? (행2:5-13)
본문
예수님을 3년간이나 따라다녔던 제자들은 "예수님이야말로 로마의 학정에서 시달리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해 낼 정치적인 메시야일 것이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처절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며 부풀었던 기대와 소망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나다나엘, 세베대의 아들들과 다른 두 제자 등 일곱 제자는 고기를 잡으러 갈릴리 바다로, 즉 옛 생활로 돌아갔고 다른 두 제자는 엠마오로 내려갔습니다. 그들이 모여 예배드리던 장소는 문이 닫혀져 버렸고 예루살렘에는 믿는 이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불과 50여일이 지난 어느날 예루살렘 거리는 새로운 활기가 일어났습니다.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모여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36에서 보면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그들은 보통 사람 앞에서만 그렇게 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대제사장 앞에서도 목숨을 걸고 증거하였습니다. 결코 그들은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좋은 환경에서 전도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를 박해하던 시대에 순교를 각오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정말 이럴 수가 있는가 불과 얼마 전만해도 그렇게 비굴했던 그들이 이렇게 달라진 이유가 무엇 입니까 그것은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의 세례 였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부활승천을 바라본 다음 십일간 간절히 기도하여 성령님세례를 받아 하늘의 권능을 덧입었으니 이제는 결코 비굴하고 무능했던 과거의 사람일 수 없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새 사람으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이 어찌된 일이냐(What dose this mean)고 경악과 감탄을 금치 못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 소리 때문이었습니다. '이 소리가 나매.'(6절) 계 14:2에 보면 소리에는 세 종류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전혀 이해할 수도 없고 아름답지 않는 많은 물소리와도 같은 두려운 소리가 있는가 하면 거문고 소리와 같은 아름다운 멜로디도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소리는 아름답지 못한 소리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괴롭게 하며 남을 실망케 하는 잡다한 소리 뿐입니다. 그러나 은혜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서는 아름다운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세 가지 소리가 들려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 어린이의 울음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퍼져야 하는 것이니 이는 인구의 증가를 뜻합니다.
둘째로 베짜는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이는 산업부흥,경제 부흥을 의미합니다. 인심은 뒤주에서 난다는 말과 같이 가정이나 국가나 어떤 단체를 막론하고 주머니가 두둑할 때 인심이 후해지고 사람 살기가 편리해지는 것입니다.
셋째로 글 읽는 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이는 문화의 향상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에도 교회에도 세가지 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첫째 기도하는 소리,
둘째 성경 읽는 소리,
셋째, 전도하는 소리가 울려 퍼져야 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려면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은혜란 단비와 같은데 (시 65:10), 어떤 지역에 비가 많이 내립니까 수증기가 많이 올라가는 지역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수증기가 많이 올라가는 심령 위에 신령한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넘치는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도 많은 환난 가운데서 기쁨으로 도를 받아 주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 극히 가난한 가운데도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넘치는 축복을 받았으며, 또한 하나님을 향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소문이 각 처에 퍼져 나갔던 것입니다(살전 1:6-8). 또 권능을 받으려면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면 권능을 받으리라(행 1:8)고 하였습니다. 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열심히 복음을 전할 때 권능을 받게 됩니다. 은혜받은 초대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서로 통용하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전도하기를 힘썼습니다.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하는 교회였습니다. 하루 이틀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1년 열두달 365일 날마다 힘써 전도했습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거나 비바람이 불어 와도 그러하였으며 추울 때나 더울 때도 모이기를 힘쓰고 전도하기에 전념했습니다. 해방전에 평양 서문밖 교회는 4천명이 모이는 대 교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 교회였음에도 어느해 겨울에 눈이 얼마나 많이 쏟아졌든지 주일 새벽기도회에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목사님은 강단에 서서 성도들이 많이 모였을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그때 설교 제목은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큰 소리로 설교를 하는데 어떤 무명할머니 교인 한 분이 눈길을 헤치고 나와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그 주일 낮 설교에 “날마다 날마다”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서 새벽기도회에 되어진 사실을 간증했으며 그 할머니의 신앙을 칭찬했습니다. 얼마 후 이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치룬 다음에 별안간 무지개가 나타났는데 어느 사람이 무지개를 따라가 보니 그 할머니가 묻힌 무덤에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 할머니는 천국 가셨구나”하고 감탄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1년 열두달, 52주의 주일 낮 예배에 빠지지 맙시다. 또한 주일 밤예배나 삼일기도회도 열심히 참석합시다. 또한 주일 밤예배나 삼일기도회도 열심히 참석합시다. 그리고 새벽기도회 혹은 저녁 기도회도 열심히 참석하십시다. 창1:2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 하시니라의 말씀을 보면 원어인 히브리어로 tp,j,r'm'는 j'r;' 의 동사 피엘 분사 능동체 여성 단수로서 “운행하시니라” 로 번역이 되어 잇는데 이는 닭이 알을 품느것 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엄마 닭의 품에 21일간 고이 안긴 달걀은 병아리로 부화하지만 안기지 않은 달걀은 부화되지 못하고 썩은 달걀이 되고 맙니다. 모이기를 힘쓰는 자만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풍성히 누리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큰 일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11절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예루살렘에 모여 온 경건한 유대인들이 말한 것을 보면 성령님으로 충만한 제자들과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 일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은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고 계시지만 이를 아무에게도 체험케 하시지는 않습니다.
첫째,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큰 일을 체험케 하십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일지라도 기도할 때 하나님의 위대하신 기적을 체험케 되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서 일어난 이야기 입니다. 사업을 하는 한 성도에게 어려움이 부짖혀 왔습니다. 동업자의 모함으로 상표도용이라는 누명을 쓰고 그 남편이 유치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무사찰을 받게 되었으며 이러므로 압박을 받아 그 사업체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자 그 성도는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잠을 자지 못해서 바짝 마르게 되었습니다. 주일 밤 예배시 교회에 나오기는 했으나 앉아 있을 힘이 없어 문을 열고 나가다가 쓰러져 사무실로 옮겨졌습니다. 기도하여 주기전에 그 교회의 담임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사업한다는 핑계로, 바쁘다는 구실로 주일예배에 제대로 참석하지 못한 죄와 하나님께 드릴 것을 드리지 못한 죄를 회개하십시오” 그리고난 다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분은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다음날 가정예배를 드려달라는 연락을 받고 가서 이런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만 바라보고 나갈 때는 바다 위도 걸어갔지만 그 말씀에 불순종했을 때는 물 속에 빠져들어간 것처럼 누구든지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일을 성수하고 십일조를 온전하게 드리며 성실하게 살아가면 결코 실패의 물결속에 빠지는 법이 없지만,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주일도 범하고 십일조도 슬쩍하며 불성실하게 살아가면 실패의 물결 속에 빠질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니 철저하게 회개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라고 하였답니다. 그 말씀을 아멘으로 화답하며 회개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의 기도를 들으셨고 그녀의 남편은 무혐의로 석방되었으며 그 사업도 다시 계속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기적을 체험케 하십니다.
둘째, 순종할때 하나님의 큰 역사를 체험케 됩니다. 지팡이를 던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모세는 바로왕을 물리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하루 한번씩 돌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기적을 목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인정으로는 도저히 바칠 수가 없었던 독자 이삭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칠 때 이삭을 다시 축복으로 받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사르밧 과부도 자기가 먹을 마지막 음식을 바치라는 말에 순종할 때 3년 반의 기근 속에서도 굶주리지 않고 살아가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우리들도 뜨겁게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큰 일을 체험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큰 일을 행하고 계심을 온 세상으로 알게 합시다.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데없다. 보라 온 세상이 저를 좇는도다(요12:19)” 하였습니다.
셋째, 그들이 성령님의 술에 취한 새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충만을 받은 120문도들은 새술에 취한 사람과 같았습니다(13절). 세상에 있는 소주나 막걸리나 양주와 같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새술(new wine)에 취했습니다. 사람이 성령님에 취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게 됩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성령님으로 취한 사람들은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수 있다”며 물질만능주의 사상을 배격합니다. 오래전에 뿌리라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TV 프로가 방영되었습니다. 노예제도의 죄악성을 파혜친 작품인데,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아프리카에서 붙잡혀 온 쿤타킨테라는 건장한 노예를 155파운드에 산 농장주인이 자신은 경건한 신앙인 인체 성경을 읽고 있으면서도 노예를 길들이기 위해 감독을 통해 무섭게 매질하는 장면입니다. 이 사람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신앙은 없는 자이며 이웃에 대한 사랑이 메말라버린 잔인한 인간임에 틀림 없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그 말씀대로 살지 않는 위선자입니다. 성령님의 새 술에 취하면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수 없는데 성령님의 새술에 취하기 전에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고린 전서12장 89절에서는 말하기를 “같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믿음을 주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령님에 취한 사람이 되면 불가능을 가능케 하며 기적을 창조하는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 됩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그대로 되리라”하셨는데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은사의 믿음은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놀라운 기적을 낳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에 취한 사람은 불가항력적인 존재입니다. 세상의 어떤 세력도 그를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도 그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에 취한 베드로는 대제사장 앞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성령님으로 충만합시다. 그리하여 세상이 어찌 할 수 업는 사람이 됩시다.
그런데 이때부터 불과 50여일이 지난 어느날 예루살렘 거리는 새로운 활기가 일어났습니다.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모여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36에서 보면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그들은 보통 사람 앞에서만 그렇게 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대제사장 앞에서도 목숨을 걸고 증거하였습니다. 결코 그들은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좋은 환경에서 전도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를 박해하던 시대에 순교를 각오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정말 이럴 수가 있는가 불과 얼마 전만해도 그렇게 비굴했던 그들이 이렇게 달라진 이유가 무엇 입니까 그것은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의 세례 였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부활승천을 바라본 다음 십일간 간절히 기도하여 성령님세례를 받아 하늘의 권능을 덧입었으니 이제는 결코 비굴하고 무능했던 과거의 사람일 수 없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새 사람으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이 어찌된 일이냐(What dose this mean)고 경악과 감탄을 금치 못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 소리 때문이었습니다. '이 소리가 나매.'(6절) 계 14:2에 보면 소리에는 세 종류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전혀 이해할 수도 없고 아름답지 않는 많은 물소리와도 같은 두려운 소리가 있는가 하면 거문고 소리와 같은 아름다운 멜로디도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소리는 아름답지 못한 소리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괴롭게 하며 남을 실망케 하는 잡다한 소리 뿐입니다. 그러나 은혜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서는 아름다운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세 가지 소리가 들려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 어린이의 울음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퍼져야 하는 것이니 이는 인구의 증가를 뜻합니다.
둘째로 베짜는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이는 산업부흥,경제 부흥을 의미합니다. 인심은 뒤주에서 난다는 말과 같이 가정이나 국가나 어떤 단체를 막론하고 주머니가 두둑할 때 인심이 후해지고 사람 살기가 편리해지는 것입니다.
셋째로 글 읽는 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이는 문화의 향상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에도 교회에도 세가지 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첫째 기도하는 소리,
둘째 성경 읽는 소리,
셋째, 전도하는 소리가 울려 퍼져야 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려면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은혜란 단비와 같은데 (시 65:10), 어떤 지역에 비가 많이 내립니까 수증기가 많이 올라가는 지역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수증기가 많이 올라가는 심령 위에 신령한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넘치는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도 많은 환난 가운데서 기쁨으로 도를 받아 주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 극히 가난한 가운데도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넘치는 축복을 받았으며, 또한 하나님을 향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소문이 각 처에 퍼져 나갔던 것입니다(살전 1:6-8). 또 권능을 받으려면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면 권능을 받으리라(행 1:8)고 하였습니다. 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열심히 복음을 전할 때 권능을 받게 됩니다. 은혜받은 초대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서로 통용하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전도하기를 힘썼습니다.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하는 교회였습니다. 하루 이틀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1년 열두달 365일 날마다 힘써 전도했습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거나 비바람이 불어 와도 그러하였으며 추울 때나 더울 때도 모이기를 힘쓰고 전도하기에 전념했습니다. 해방전에 평양 서문밖 교회는 4천명이 모이는 대 교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 교회였음에도 어느해 겨울에 눈이 얼마나 많이 쏟아졌든지 주일 새벽기도회에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목사님은 강단에 서서 성도들이 많이 모였을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그때 설교 제목은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큰 소리로 설교를 하는데 어떤 무명할머니 교인 한 분이 눈길을 헤치고 나와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그 주일 낮 설교에 “날마다 날마다”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서 새벽기도회에 되어진 사실을 간증했으며 그 할머니의 신앙을 칭찬했습니다. 얼마 후 이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치룬 다음에 별안간 무지개가 나타났는데 어느 사람이 무지개를 따라가 보니 그 할머니가 묻힌 무덤에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 할머니는 천국 가셨구나”하고 감탄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1년 열두달, 52주의 주일 낮 예배에 빠지지 맙시다. 또한 주일 밤예배나 삼일기도회도 열심히 참석합시다. 또한 주일 밤예배나 삼일기도회도 열심히 참석합시다. 그리고 새벽기도회 혹은 저녁 기도회도 열심히 참석하십시다. 창1:2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 하시니라의 말씀을 보면 원어인 히브리어로 tp,j,r'm'는 j'r;' 의 동사 피엘 분사 능동체 여성 단수로서 “운행하시니라” 로 번역이 되어 잇는데 이는 닭이 알을 품느것 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엄마 닭의 품에 21일간 고이 안긴 달걀은 병아리로 부화하지만 안기지 않은 달걀은 부화되지 못하고 썩은 달걀이 되고 맙니다. 모이기를 힘쓰는 자만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풍성히 누리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큰 일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11절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예루살렘에 모여 온 경건한 유대인들이 말한 것을 보면 성령님으로 충만한 제자들과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 일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은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고 계시지만 이를 아무에게도 체험케 하시지는 않습니다.
첫째,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큰 일을 체험케 하십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일지라도 기도할 때 하나님의 위대하신 기적을 체험케 되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서 일어난 이야기 입니다. 사업을 하는 한 성도에게 어려움이 부짖혀 왔습니다. 동업자의 모함으로 상표도용이라는 누명을 쓰고 그 남편이 유치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무사찰을 받게 되었으며 이러므로 압박을 받아 그 사업체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자 그 성도는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잠을 자지 못해서 바짝 마르게 되었습니다. 주일 밤 예배시 교회에 나오기는 했으나 앉아 있을 힘이 없어 문을 열고 나가다가 쓰러져 사무실로 옮겨졌습니다. 기도하여 주기전에 그 교회의 담임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사업한다는 핑계로, 바쁘다는 구실로 주일예배에 제대로 참석하지 못한 죄와 하나님께 드릴 것을 드리지 못한 죄를 회개하십시오” 그리고난 다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분은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다음날 가정예배를 드려달라는 연락을 받고 가서 이런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만 바라보고 나갈 때는 바다 위도 걸어갔지만 그 말씀에 불순종했을 때는 물 속에 빠져들어간 것처럼 누구든지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일을 성수하고 십일조를 온전하게 드리며 성실하게 살아가면 결코 실패의 물결속에 빠지는 법이 없지만,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주일도 범하고 십일조도 슬쩍하며 불성실하게 살아가면 실패의 물결 속에 빠질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니 철저하게 회개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라고 하였답니다. 그 말씀을 아멘으로 화답하며 회개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의 기도를 들으셨고 그녀의 남편은 무혐의로 석방되었으며 그 사업도 다시 계속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기적을 체험케 하십니다.
둘째, 순종할때 하나님의 큰 역사를 체험케 됩니다. 지팡이를 던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모세는 바로왕을 물리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하루 한번씩 돌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기적을 목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인정으로는 도저히 바칠 수가 없었던 독자 이삭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칠 때 이삭을 다시 축복으로 받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사르밧 과부도 자기가 먹을 마지막 음식을 바치라는 말에 순종할 때 3년 반의 기근 속에서도 굶주리지 않고 살아가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우리들도 뜨겁게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큰 일을 체험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큰 일을 행하고 계심을 온 세상으로 알게 합시다.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데없다. 보라 온 세상이 저를 좇는도다(요12:19)” 하였습니다.
셋째, 그들이 성령님의 술에 취한 새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충만을 받은 120문도들은 새술에 취한 사람과 같았습니다(13절). 세상에 있는 소주나 막걸리나 양주와 같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새술(new wine)에 취했습니다. 사람이 성령님에 취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게 됩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성령님으로 취한 사람들은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수 있다”며 물질만능주의 사상을 배격합니다. 오래전에 뿌리라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TV 프로가 방영되었습니다. 노예제도의 죄악성을 파혜친 작품인데,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아프리카에서 붙잡혀 온 쿤타킨테라는 건장한 노예를 155파운드에 산 농장주인이 자신은 경건한 신앙인 인체 성경을 읽고 있으면서도 노예를 길들이기 위해 감독을 통해 무섭게 매질하는 장면입니다. 이 사람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신앙은 없는 자이며 이웃에 대한 사랑이 메말라버린 잔인한 인간임에 틀림 없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그 말씀대로 살지 않는 위선자입니다. 성령님의 새 술에 취하면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수 없는데 성령님의 새술에 취하기 전에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고린 전서12장 89절에서는 말하기를 “같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믿음을 주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령님에 취한 사람이 되면 불가능을 가능케 하며 기적을 창조하는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 됩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그대로 되리라”하셨는데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은사의 믿음은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놀라운 기적을 낳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에 취한 사람은 불가항력적인 존재입니다. 세상의 어떤 세력도 그를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도 그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에 취한 베드로는 대제사장 앞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성령님으로 충만합시다. 그리하여 세상이 어찌 할 수 업는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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