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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직원의 요청 (마9: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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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여러 슬픈 일들을 만나게 되어진다. 내힘으로 어쩔 수 없는 벅찬 일들을 만날 때마다 온몸의 힘이 빠지고 괴로움에 휩싸이게 되어진다. 그 때 우리의 태도가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
1, 지극한 슬픔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직원이 와서 절하고 가로되 내 딸이 방장 죽었사오나 " 예수님 앞에 나아 온 자는 막연하게 한 직원이라고 막연하게 기록되어 있다. 한 직원은 한 지배자 또는 통치자의 뜻으로 세속적인 관직을 가리키며 회당장직에 적용된다. 이 인물이 마가와 누가의 기록에 보면 회당장 야이로라고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는 당시 가버나움 회당의 관리자로 있었다. 그가 회당장의 지위에 있으면서 세상적으로는 아무런 관직이 없는 예수님 앞에 나아와 절을 하였다 유대인 중 회당장의 지위로 명성 있는 위치에 있는 자가 예수님 앞으로 나아온 것은 참으로 큰 용기와 결단력 있는 행동이다.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러한 일종의 위험을 무릎쓴 행동은 자신의 딸이 죽음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은 지위나 형식을 뛰어넘는 현실적인 것임을 알게 하여준다. "방장 죽었사오니."에서 방장은 방금이라는 뜻이므로 `방금 죽었으나'로 해석된다.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죽게 되었사오니'로 되어 있고 누가복음에는 `죽어 감이더라'로 표현되어 있다. 결국 마태는 이 사건을 기록함에 있어서 중간 과정 곧 야이로가 예수님께 왔을 때에는 그의 딸이 위독한 상태였으나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그 딸이 죽었다는 사건 경위를 생략하였다. 딸의 죽음은 회당장 야이로로 하여금 용기 있는 결단을 하도록 촉진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자식의 죽음이라는 지극한 슬픔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딸의 죽음은 회당장 야이로의 가정에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가 임하는 계기가 되었다. 딸의 죽음이 비통한 슬픔을 가져다주었지만, 인생의 가장 큰 슬픔과 고통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예), 우리에게 아무런 고통이나 슬픔이 없을 때-세상 것으로 온통 꽉 차게 됨-부귀 ,영화 ,쾌락, .오락,그러나 슬픔과 고통 속에서는 이런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 슬픔이 기쁨으로 한 숨이 찬송으로 변하는 일들은 기독교 복음의 특징이다.
2, 당돌한 요청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 회당장이라는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예수님께 직접 나아 왔던 야이로는 예수님께서 딸에게 안수를 하셔서 살려주실 것을 요청하였다. 이야이로의 요청은 안수를 통해 많은 병자를 고치신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야이로는 예수님의 능력을 들어서 알고 있었으나 믿음으로 영접하는 상태는 아니었다. 예수님을 찾아온 그의 태도에 아무런 신앙고백이 없는 데서 분명히 나타난다.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께 대한 신뢰나 존경의 마음도 없이 단지 딸을 살리고자 하는 다급한 마음에서 예수님께 나아 와 당돌한 요청 을 한 것이다. 야이로의 요청이 당돌하기는 하지만 어쨌던 예수님 앞에 나와서 요청을 했다는 그 자체가 귀한 것이다. 어떤 것을 바라고 구하는 마음으로 요청하는 것은 그것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성도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기를 요청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회당장 야이로는 딸의 죽음으로 다급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지푸라기 하나라도 붙잡으려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야이로가 예수님게 보여준 것은 신성한 경외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는 한 선지자에 대한 존경에 불과하였다. 그의 믿음은 탁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겨우 요청하는 정도의 미약한 믿음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야이로의 믿음은 이방인인 백부장의 믿음이 소나기 믿음이라면 그는 겨우 이슬방울 믿음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 요청 할 수 있는 믿음도 작은 것이지만 귀한 것이다. 우리는 작은 믿음이라도 귀하게 보는 신앙인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회당장의 믿음과 같이 아주 작은 믿음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소유하기를 희망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겸손한 신앙이다.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능히 자기의 죽은 딸을 살려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주님 앞에 나아 왔던 것이다. 실로 믿음을 볼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기에 믿음의 크고 작음을 논한다는 것은 어리석을 뿐이다.
3. 예수님의 동행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회당장의 믿음이 보잘것이 없는 작은 것이었지만 예수님께서 그의 요청을 들어 주셨음을 볼 때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도 그 안에 진실한 마음이 담겨져 있으면 예수님께서는 응답하여 주심을 알 수가 있다. 예수님은 작은 믿음으로나마 구하는 자에게 응답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의 깊이를 보게 된다. 예수님은 바라는 만큼 완전한 믿음에 이르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바늘 구멍 만한 믿음이라도 뚫고 들어갈 여지가 있다면 주저하지 않으시고 동행 하여주신다. 지극히 작은 믿음도 받으시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이 성도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강하고 담대한 신앙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가 아무런 신앙고백도 하지 않았고 지극히 작은 믿음 외에 보여준 것이 없었지만 동행해 주셨다. 예수님의 동행은 믿음이 적고 연약한 성도에게 큰 위로와 활력소가 된다. 성도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깨닫게 해준다. 또 이것은 우리가 완전한 신앙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연약함 때문에 주저하거나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게 해주는 교훈이 된다. 성도의 신앙생활에서 주님의 위로와 동행은 큰 힘이 된다. 하물며 곤경과 슬픔의 처지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므로 비록 작은 믿음을 소유했다 할지라도 간구하는 자세와 신뢰하는 믿음의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께서는 큰 믿음의 소유자에게 동행의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믿음이 적은 자에게도 동일한 은혜로 함께 하여 주신다. 또한 지극한 슬픔 가운데 올리는 요청은 작은 믿음일지라도 응답해 주신다. 이 일을 통해 성도들은 절실하게 부르짖는 자들이 되어야 하며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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