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다섯 가지 확신1-구원의 확신 (요일5:11-13)
본문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과거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편안해졌습니다. 그러나 생활이 많이 편리해지고 편안해진 것과는 반대로 심리적으로는 많이 불안해졌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심리적 특성은 불안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으로 자신을 치장해도 끝없이 불안합니다.
과연 그 불안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불완전한 것을 의지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 어떤 것을 붙잡아도 불안하게 되어 있습니다. 돈 없는 사람은 돈을 많이 가지면 평안하리라 생각하지만 돈 가진 사람도 역시 불안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도 불안합니다.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도 불안합니다. 건강한 사람도 불안합니다. 남보다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사람도 불안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변하는 것을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시적인 것을 붙잡고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것을 붙잡고 거기에 무슨 행복이 있는 양 매달려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완전한 것,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을 붙잡을 때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만물은 다 변합니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모든 만물은 다 변한다는 이치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만물은 다 변합니다. 그러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하나님만이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일 아침에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오신 여러분, 여러분은 평안하십니까 아니면 불안합니까 평안하다면 그 평안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불안하다면 그 원인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사람들은 흔히 환경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평안과 불안은 환경을 초월합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적으로 온갖 고난을 다 당하는 삶의 악조건 속에서도 평안했고, 솔로몬은 모든 부귀와 영화를 다 쌓아놓고도 불안했습니다. 성도의 평안은 무엇으로부터 옵니까 구원의 확신에서 옵니다. 나는 하나님이 구원하신 그분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질 때 평안합니다. 구원의 확신은 자녀된 나를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영원한 천국까지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합니다.
말씀 속에서 우리가 소유한 바 된 구원을 더욱 확실하게 깨닫는 복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인간은 구원받아야 합니다.
구원은 모든 사람의 최대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하나님의 최대의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가 알든 모르든 관계없이 그의 인생의 최대 과제는 구원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영혼을 건지는 일이 최고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구원이 뭡니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 떠난 인간은 죄 가운데 빠졌고, 사단에게 소속되어 저주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이 세 가지 근본문제를 해결해 줄 선지자, 제사장, 왕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결과로 멸망의 길을 걸어가는 인간에게 사랑의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사단에게서 해방되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시는 선지자입니다.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받게 하시는 제사장입니다. 사단을 이기신 만왕의 왕이십니다. 인간의 근본문제를 십자가에서 완전히 해결하신 그리스도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인간의 구원을 설명해줍니다.
1과거문제 해결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죄와 허물로 죽었습니다. 아담을 통해 유전된 원죄로 인하여 죄인으로 태어나고 죄성을 가진 죄인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를 일평생 쌓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을 만나고 원죄를 용서받습니다. 어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흰눈같이 양털같이 희게 되어 다 용서받게 됩니다.
2현재문제 해결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하나님 떠난 인간은 사단에게 소속되어 어쩔 수 없이 운명에 매여 저주의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살아 계신 하나님이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함께 동행하심으로 늘 승리하게 하십니다.
3미래문제 해결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6)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입니다. 믿는 신자는 육신의 생을 마치는 날에 주님이 계신 천국에 가게 됩니다. 하늘나라 시민이 되어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2.구원은 사실에 근거합니다.
구원에 있어 사람들이 가지는 가장 큰 오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본인에게는 확신이 있으나 구원과는 전혀 관계없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분명히 구원은 받았으나 확신이 없는 경우입니다.
1확신이 있으나 구원받지 못한 경우
인간의 최대 어리석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구원받은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얇은 살얼음판 위를 아무리 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걸어가도 그 얼음은 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 이전에 살얼음 위를 사람이 걸어가면 깨지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내가 얼마만큼 이 사실을 확실히 믿는가 하는 것을 가지고 구원의 당연성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내 믿음이 아닌 사실에 있습니다. 농약을 아무리 보약이라고 확신해도 먹으면 죽습니다. 우유는 농약으로 착각하고 자살하기 위해 먹어도 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믿음보다는 사실이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대하여 확신은 있으나 분명히 구원받지 못하는 경우를 세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바리새인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행위로 잘 지키면 구원받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구원, 율법을 못 지키면 지옥 간다고 믿었기에 그들은 목숨을 걸고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믿음으로만 천국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증거합니다.
㈏이단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구원의 길로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이러한 이단사상이 들어왔습니다. 바울에 의하여 복음을 접한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합해져서 이루어진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런 이단 사설이 갈라디아 지역에 전해지고 급속히 확산되는 것을 보고 바울이 얼마나 분개하는지 모릅니다. 그는 분명히 말합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7-9)
율법을 통해서 구원받는다고 말한다든지 예수도 믿고 율법도 지켜야 구원받고 말하는 사람이나 교회는 다 이단입니다. 율법은 구원받으라고 준 법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라고 준 법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아름답고 덕스러운 행동은 구원받았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지 구원은 조건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노력과 행함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면 구원에 대하여 인간은 얼마나 절망적인지 모릅니다. 바리새인의 행함으로도 구원은 불가능했습니다. 구원은 믿을 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아무 육체라도 그리스도 앞에서 구원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타종교인들
다른 이름을 통해 구원받겠다는 자들입니다. 타종교인들이 열심히 그들이 믿는 신들을 열심히 진실 되게 섬기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다른 이름 다른 방법으로 구원받는 길을 말씀한 예가 없습니다.
선행을 하고 심오한 철학을 가지고 학문과 진실을 추구하면 구원받을 것처럼 착각하지만 구원은 철저하게 사실에 근거해야 합니다. 구원에 있어 우리가 언제나 명심해야 하는 것은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십니다. 다른 신에게 아무리 지극정성으로 구원을 호소해도 그 신들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인간을 건지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 역시 하나님이 말씀한 방법에 의해서만 구원받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구원의 길이 무엇입니까 예수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2구원의 확신이 없는 성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구원의 조건은 믿음과 영접입니다. 믿고 영접했으면 나의 상황은 다 초월해서 구원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도 구원은 받았으나 확신 없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확신이 없으니까 불안해하고 엉뚱한 일에 몰두합니다.
구원은 감정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구원은 행위가 아닙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확신이 없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구원의 조건을 자신에게 두기 때문입니다. 이만큼 믿어지니까 나는 구원받았다든지, 이만큼 주를 위해서 일했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식의 신앙 때문입니다.
주님은 욕심 많은 세리장이도 구원하셨습니다. 수가성 여인도 구원하셨습니다. 세리 마태도 막달라 마리아도 구원하셨습니다. 간음 중에 잡힌 여인도 구원하셨습니다. 왜 그들이 구원받았습니까 믿고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보면 전혀 구원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인간들입니다. 구원은 죄지었다고 못 받는 게 아닙니다. 강도도 구원받았습니다. 사울과 같은 핍박자도 구원받았습니다.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그러므로 믿었다면 당신은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누가 뭐래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과연 그 불안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불완전한 것을 의지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 어떤 것을 붙잡아도 불안하게 되어 있습니다. 돈 없는 사람은 돈을 많이 가지면 평안하리라 생각하지만 돈 가진 사람도 역시 불안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도 불안합니다.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도 불안합니다. 건강한 사람도 불안합니다. 남보다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사람도 불안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변하는 것을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시적인 것을 붙잡고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것을 붙잡고 거기에 무슨 행복이 있는 양 매달려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완전한 것,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을 붙잡을 때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만물은 다 변합니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모든 만물은 다 변한다는 이치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만물은 다 변합니다. 그러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하나님만이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일 아침에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오신 여러분, 여러분은 평안하십니까 아니면 불안합니까 평안하다면 그 평안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불안하다면 그 원인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사람들은 흔히 환경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평안과 불안은 환경을 초월합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적으로 온갖 고난을 다 당하는 삶의 악조건 속에서도 평안했고, 솔로몬은 모든 부귀와 영화를 다 쌓아놓고도 불안했습니다. 성도의 평안은 무엇으로부터 옵니까 구원의 확신에서 옵니다. 나는 하나님이 구원하신 그분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질 때 평안합니다. 구원의 확신은 자녀된 나를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영원한 천국까지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합니다.
말씀 속에서 우리가 소유한 바 된 구원을 더욱 확실하게 깨닫는 복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인간은 구원받아야 합니다.
구원은 모든 사람의 최대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하나님의 최대의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가 알든 모르든 관계없이 그의 인생의 최대 과제는 구원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영혼을 건지는 일이 최고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구원이 뭡니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 떠난 인간은 죄 가운데 빠졌고, 사단에게 소속되어 저주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이 세 가지 근본문제를 해결해 줄 선지자, 제사장, 왕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결과로 멸망의 길을 걸어가는 인간에게 사랑의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사단에게서 해방되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시는 선지자입니다.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받게 하시는 제사장입니다. 사단을 이기신 만왕의 왕이십니다. 인간의 근본문제를 십자가에서 완전히 해결하신 그리스도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인간의 구원을 설명해줍니다.
1과거문제 해결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죄와 허물로 죽었습니다. 아담을 통해 유전된 원죄로 인하여 죄인으로 태어나고 죄성을 가진 죄인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를 일평생 쌓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을 만나고 원죄를 용서받습니다. 어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흰눈같이 양털같이 희게 되어 다 용서받게 됩니다.
2현재문제 해결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하나님 떠난 인간은 사단에게 소속되어 어쩔 수 없이 운명에 매여 저주의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살아 계신 하나님이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함께 동행하심으로 늘 승리하게 하십니다.
3미래문제 해결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6)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입니다. 믿는 신자는 육신의 생을 마치는 날에 주님이 계신 천국에 가게 됩니다. 하늘나라 시민이 되어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2.구원은 사실에 근거합니다.
구원에 있어 사람들이 가지는 가장 큰 오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본인에게는 확신이 있으나 구원과는 전혀 관계없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분명히 구원은 받았으나 확신이 없는 경우입니다.
1확신이 있으나 구원받지 못한 경우
인간의 최대 어리석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구원받은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얇은 살얼음판 위를 아무리 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걸어가도 그 얼음은 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 이전에 살얼음 위를 사람이 걸어가면 깨지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내가 얼마만큼 이 사실을 확실히 믿는가 하는 것을 가지고 구원의 당연성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내 믿음이 아닌 사실에 있습니다. 농약을 아무리 보약이라고 확신해도 먹으면 죽습니다. 우유는 농약으로 착각하고 자살하기 위해 먹어도 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믿음보다는 사실이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대하여 확신은 있으나 분명히 구원받지 못하는 경우를 세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바리새인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행위로 잘 지키면 구원받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구원, 율법을 못 지키면 지옥 간다고 믿었기에 그들은 목숨을 걸고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믿음으로만 천국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증거합니다.
㈏이단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구원의 길로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이러한 이단사상이 들어왔습니다. 바울에 의하여 복음을 접한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합해져서 이루어진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런 이단 사설이 갈라디아 지역에 전해지고 급속히 확산되는 것을 보고 바울이 얼마나 분개하는지 모릅니다. 그는 분명히 말합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7-9)
율법을 통해서 구원받는다고 말한다든지 예수도 믿고 율법도 지켜야 구원받고 말하는 사람이나 교회는 다 이단입니다. 율법은 구원받으라고 준 법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라고 준 법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아름답고 덕스러운 행동은 구원받았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지 구원은 조건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노력과 행함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면 구원에 대하여 인간은 얼마나 절망적인지 모릅니다. 바리새인의 행함으로도 구원은 불가능했습니다. 구원은 믿을 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아무 육체라도 그리스도 앞에서 구원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타종교인들
다른 이름을 통해 구원받겠다는 자들입니다. 타종교인들이 열심히 그들이 믿는 신들을 열심히 진실 되게 섬기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다른 이름 다른 방법으로 구원받는 길을 말씀한 예가 없습니다.
선행을 하고 심오한 철학을 가지고 학문과 진실을 추구하면 구원받을 것처럼 착각하지만 구원은 철저하게 사실에 근거해야 합니다. 구원에 있어 우리가 언제나 명심해야 하는 것은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십니다. 다른 신에게 아무리 지극정성으로 구원을 호소해도 그 신들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인간을 건지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 역시 하나님이 말씀한 방법에 의해서만 구원받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구원의 길이 무엇입니까 예수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2구원의 확신이 없는 성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구원의 조건은 믿음과 영접입니다. 믿고 영접했으면 나의 상황은 다 초월해서 구원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도 구원은 받았으나 확신 없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확신이 없으니까 불안해하고 엉뚱한 일에 몰두합니다.
구원은 감정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구원은 행위가 아닙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확신이 없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구원의 조건을 자신에게 두기 때문입니다. 이만큼 믿어지니까 나는 구원받았다든지, 이만큼 주를 위해서 일했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식의 신앙 때문입니다.
주님은 욕심 많은 세리장이도 구원하셨습니다. 수가성 여인도 구원하셨습니다. 세리 마태도 막달라 마리아도 구원하셨습니다. 간음 중에 잡힌 여인도 구원하셨습니다. 왜 그들이 구원받았습니까 믿고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보면 전혀 구원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인간들입니다. 구원은 죄지었다고 못 받는 게 아닙니다. 강도도 구원받았습니다. 사울과 같은 핍박자도 구원받았습니다.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그러므로 믿었다면 당신은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누가 뭐래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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