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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으로 가라, 세계로 가라1 (창12:1-3,행1:8)

본문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역사는 일정한 방향과 목표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신앙의 승리자들은 바로 하나님의 방향과 목표를 바로 알고 여기에 자신의 삶을 다 드렸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어떤 반대가 있어도 반드시 이루시고야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반대했던 개인이 망했습니다(헤롯, 히틀러, 나폴레옹, 볼테르). 국가가 망했습니다(소돔과 고모라, 로마, 일본). 시대가 망했습니다(노아시대). 성경은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삼상 2:10).
반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바로 알았던 전도자, 사명자는 본인이 살았고, 가정과 사회와 시대와 국가를 살렸습니다. 우리는 나라는 작은 개인의 울타리 안에서만 자신을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전체 인류 역사 안에서 나를 보아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하나님이 어떤 역사를 이루시는 순간인가를 알아야 하고,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 생애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 이것이 우리들 생애의 가장 큰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목표달성, 목적성취가 나를 행복으로 이끌지 못하고, 보장하지 못합니다. 앞으로 3주간 가나안으로 가라, 세계로 가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이 이루가시는 역사의 방향을 살펴보고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깨닫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가나안으로 가라!
1아브라함과 사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이 있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도착한 땅은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갈대아 우르는 물이 풍부하여 농경문화가 정착된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성경은 20번에 걸쳐 가나안 땅을 가리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보기에 그 땅은 갈대아 우르에 비하면 결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집요하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으로 갈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도착하자 마자 그 땅에 기근이 닥쳤습니다. 아브라함은 서둘러 애굽에 내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아내를 빼앗길 뻔한 큰 봉변을 당하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다시 가나안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 사라가 죽자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장사했습니다. 아브라함도 죽어 그곳에 장사되었습니다.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창 23:19)
“그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창 25:9-10)
2이삭과 리브가
이삭과 리브가도 아브라함과 사라를 따라 가나안 헤브론의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습니다(창 35:27-29)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창 49:31)
3야곱과 레아
야곱은 라헬을 너무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라헬은 베냐민을 낳고는 죽어 베들레헴에 장사되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야곱이 사랑했던 여인 라헬 곁에 묻히기를 소원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야곱의 마지막 유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이스라엘의 죽을 기한이 가까우매 그가 그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환도뼈 아래 넣어서 나를 인애와 성심으로 대접하여 애굽에 장사하지 않기를 맹세하고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 요셉이 가로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창 47:29-30)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창 49:29)
야곱은 애굽에서 숨을 거두면서 헤브론의 막벨라 굴에 아브라함, 이삭과 더불어 장사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레아 곁에 장사되었습니다. 사랑하던 여인 라헬 곁에 묻히기를 포기하고 사랑하지 않던 여인이라 할지라도 그 곁에 야곱이 묻히기를 원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4요셉
요셉은 애굽에서 죽어 그 땅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는 후손들에게 너희가 언젠가는 이 땅을 나갈 터인데 그때에는 나의 해골을 취하여 가나안으로 메고 올라가 막벨라 굴에 장사하라 명령했습니다(창 50:24-25).
드디어 430년만에 이스라엘 감격적인 출애굽을 할 때 모세는 요셉의 해골을 취하여 가지고 올라갑니다.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출 13:19)
요셉도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라는 창세기에 나오는 중요인물들이 다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어하시는 강력한 메세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2.가나안으로 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1유월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곱의 후예들입니다. 기근을 인하여 애굽에 들어갈 때는 70인이 들어갔습니다. 430년이 지나 애굽을 나올 때는 남자 장정만 60만이 나왔습니다. 여자와 어린이, 노인까지 합하면 200만 이상의 대군이 나왔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은 처음에는 귀빈으로 대우받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수가 많아지면서 종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남자들은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는 바로의 학정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여자들은 아기를 낳으면 사내 아이는 모두 나일강에 던져 물고기 밥이 되게 해야 했습니다.
창세기 3:16-20은 범죄 후에 저주받은 인간의 삶을 말씀합니다. 남자는 이마에 비지땀이 흘러야 비로소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자는 잉태하는 고통을 더하리라 했습니다. 결국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창세기 3장에 나타난 저주받은 인간 그대로의 모습이었습니다.
바로의 학정에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날마다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은 80 노인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열 가지 재앙을 내려 바로를 꺾으셨습니다. 유월절 날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 이스라엘은 애굽을 빠져 나왔습니다.
애굽은 가나안보다는 훨씬 비옥하고 사람 살기에 좋은 땅입니다. 계속 귀빈대우를 받았다면 그들은 가나안으로 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2나오미의 귀향
베들레헴에 살고 있던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흉년이 들자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내려갔습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덜컥 엘리멜렉이 죽고 말았습니다. 나오미는 말론과 기룐이라는 두 아들을 모압 처녀를 택하여 그 땅에서 결혼시켰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도 허무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은 ‘기쁨’입니다. 나오미는 자신을 가리켜 마라라 했습니다. 마라는 ‘쓰다’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흉년이 그치면 금방 돌아가리라 했는데 십년 세월이 지났습니다. 모압에서의 십년 세월에 나오미는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나오미는 룻이라는 이방 며느리와 함께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오미 역시 모압에서의 생활이 기쁘고 즐겁기만 했다면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살았을 것입니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는 아픔 뒤에 그녀는 가나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인생의 쓰디 쓴 실패를 통해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3앗수르, 바벨론 포로 귀환
우상숭배를 일삼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하여 각각 멸망을 당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예루살렘은 황무한 성읍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성전을 그리워하며 믿음을 회복하자 하나님은 70년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4이스라엘의 회복
예수님에게 십자가 사형언도를 내린 빌라도는 손을 씻으며 이 판결과 나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은 소리쳤습니다. “예수 죽인 죄를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돌리시오!” 이 말 때문에 이스라엘은 역사를 통해 처절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주후 70년에는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110만에 달하는 양민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전역이 완전히 피로 물들었습니다. 그후 2000년을 나라 없는 백성으로 전 세계를 떠돌던 이스라엘은 독일의 히틀러에게 600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희생당했습니다.
그 처절한 고통은 더욱 그들이 떠나온 가나안 땅을 그리워하게 했고, 드디어 1948년 독립을 되찾아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작게는 개인적으로, 크게는 국가와 민족적으로 큰 아픔과 시련을 통해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아픔과 고통을 통해서라도 가나안 땅에 담긴 비밀, 그 땅에 담긴 언약의 비밀을 누리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3.그러면 과연 가나안은 어떤 땅입니까
가나안을 가리켜 성경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그렇게 사람 살기에 좋은 땅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 강원도 땅만한 작은 땅입니다. 산지가 70%이고, 물도 거의 나지 않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끝까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갈대아 우르를 떠나 그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고, 이삭, 야곱, 요셉이 그 땅에 묻혔습니다. 과연 가나안은 어떤 땅입니까
창세기 3:15의 언약, 여자의 후손이 오실 땅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이사야 7:14에 처녀가 잉태하여 낳는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가나안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나실 땅입니다. 하나님은 그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장애를 넘어서라도 그 땅에 들어가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라는 명령에 담긴 구체적인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만나는 길 되시는 선지자가 오실 땅으로 들어가라는 말입니다.
㈏죄와 저주에서 해방하는 제사장이 오실 땅으로 들어가라는 말입니다.
㈐사단을 꺾고 승리하실 왕이 오실 땅으로 들어가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언약을 깨달았기에 거저 얻을 수 있는 땅이었음에도 막벨라 굴을 은을 사백 세겔이나 주고 샀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를 그곳에 묻었고, 자신도 그곳에 장사되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가 그곳에 묻혔습니다.
야곱은 언약을 붙잡았기에 사랑했던 여인 라헬 곁보다는 언약의 처소인 막벨라 굴에 레아와 함께 묻히기를 소원했습니다. 요셉은 다 썩어 없어진 해골이라도 그곳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그 땅에 오실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환경을 쳐서라도 그 땅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언약대로 예수는 그리스도가 되셔서 가나안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무슨 난관이 앞을 가로막는다 해도 반드시 그 땅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가나안이라는 지역적인 장소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언약은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집요하게 그 땅에 들어가게 하심으로 구원의 백성들에게 언약을 붙잡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모든 언약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인간의 근본문제도 동일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1하나님을 만나는 길 되시는 선지자, 그 언약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단과 마귀는 동일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상대할 때 그 이름이 사단입니다. 그 뜻은 ‘대적자’입니다. 인간을 상대할 때는 ‘이간자’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간하여 멀어지게 하는 자입니다.
창세기 3:1-6,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불신자들이 왜 그토록 지독스럽게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까 이간자, 마귀가 하나님 만나는 길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마귀는 인생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이간질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소유한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분주한 일을 만들고, 우선순위를 바꾸게 만들어 하나님으로부터 자꾸 멀어지게 합니다.
말세는 모이기를 폐하는 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과 같이하지 말고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힘써 모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히 10:25).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행 2:46).
신자는 환경이 어려울수록 더욱 결사적으로 매일 매순간, 매 사건 속에서 하나님 만나는 길 되시는 그리스도 안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 만나고, 언약 속에서 만나고 그 안에서 끝없는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2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제사장, 그 언약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 자체가 인간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죄입니다. 하나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과 같이되라는 마귀의 유혹을 받아 떠났습니다. 생명 되신 하나님을 떠나 죄와 저주 속에 살아가는 것, 이것보다 더 큰 죄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죄를 짓고, 죄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전국이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로 인하여 떠들썩합니다. 그분 이름이 클 태(泰)자, 어리석을 우(愚)자입니다. 이름 그대로 풀이하면 크게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는 정말 크게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분은 재임 중에 대구에다 동양에서 제일 큰 동화사 절을 지었습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일입니다. 그렇게 큰 돈을 들여 그토록 엄청난 절을 지었지만 그 절에서도 이제는 그를 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가장 크게 국가를 위해 일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국민 앞에 선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재임기간 중 자신만을 위해 권력을 통해 재물만 모았습니다. 돈을 강제로 빼앗는 사람이 강도입니다. 사실 그는 권력이라는 칼을 들고 기업들의 돈을 빼앗은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도적질을 했고, 강도 짓을 했습니다. 자손들로부터 대대로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는 역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전국민 앞에 사죄성명을 냈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사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절친한 친구였던 전두환 전대통령의 비참한 몰락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그와 똑같은 길을 걷고 말았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리스도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면 그가 가진 권력, 명예, 지식, 이런 것들 때문에 망합니다. 스스로 망하는 길을 찾아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재직시 단군 신전을 군 단위마다 하나씩 세우려고 하다가 기독교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포기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만 골라하다가 비참하게 망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서 그의 마음도 불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이길 능력은 그에게 없었습니다. 죄를 용서하는 능력, 죄를 이기는 능력은 오직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에게만 있습니다.
오늘날은 죄악이 관영한 시대입니다. 죄가 죄로 인정이 안될 만큼 죄악된 세상입니다. 세상에 사단이 가득하고 죄가 난무할 때 노아는 방주를 지으면서 죄를 이겼습니다. 우리도 방주 되신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죄에서 보호받고,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3사단을 꺾는 왕 되신 그리스도 안으로 날마다 달려가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비리 사건을 보고 욕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가 없으므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분명한 그의 영적인 소속은 마귀의 자녀입니다. 마귀의 자녀는 하는 모든 일이 마귀를 기쁘게 하는 일뿐입니다.
노태우씨 말고 다른 사람이 대통령을 했다고 해도 그 안에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지 못하는 한 다 똑같았을 것입니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장로는 독재자라는 오명을 안고 하와이 망명길에 오르기는 했지만 그에게는 사심은 없었습니다. 십수 년을 대통령을 지냈지만 망명길에 그가 가지고 간 것은 타자기 한대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는
4.19 혁명으로 인하여 학생들의 돌팔매가 날아오는 가운데도 죽을 것을 각오하고 주일이면 빠짐없이 교회에 나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자신이 전직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한없이 부끄럽다고 했습니다. 제가 볼 때에 그는 아직도 자신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신자는 사단의 지배를 받습니다. 인도를 받습니다. 여기에서 헤어나올 길이 없습니다.
마귀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 재림하시는 날까지 여전히 살아서 공중의 권세를 잡고 불순종의 아들들 역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지는 그 배후에는 사단이 반드시 역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만왕의 왕이 되셔서 마귀의 사망의 법을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사단을 꺾는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왕되신 예수님이 모든 사단의 역사 가운데서 우리로 승리하는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힘써 이 능력 안으로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일평생 걸어갔습니다. 이삭과 야곱이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요셉은 죽은 유골이라도 가기를 원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발걸음이 가나안을 향해 가는 발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향해 달려가는 발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가나안에 그리스도 안에, 젖과 꿀이 흐르는 영적 풍요의 축복된 삶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날마다 한 걸음 더 바싹 다가가는 신앙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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