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지난 후에 (창4:1-15)
본문
오늘 이 자리에 사람 아닌 분 오셨습니까 사람 다 맞습니까 혹시 나는 사람 아니다 생각하는 분은 없습니까 그러면 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여러분들에게 물어 보겠습니다. 사람이 도대체 뭡니까
스스로를 가리켜 사람이라고 다들 말했는데 사람이 뭐요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에게 한번 물어 보세요. 여러분은 뭡니까 답이 금방 나옵니까 아직 답이 안나온 분은 좀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시간을 좀 드릴 테니까 여러분 나름대로 사람에 대해, 자신에 대해 정의를 내려보시기 바랍니다. 다 내리셨습니까 여러분이 내린 정의는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맞았다면 다행이지만 틀렸다면 큰 문제입니다.
왜냐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정의했느냐에 따라 나의 삶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파스칼은 ‘인생은 생각하는 갈대다’라고 철학자답게 말했습니다. 과학자 뉴톤은 ‘인생은 기계’라고 정의했습니다. 칼 막스는 ‘물질’이라고 답을 했습니다. 니체는 ‘인생은 배우’라고 했습니다. 웃다 울다 끝나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그가 볼 때에 인생은 장난처럼 보았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인생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한 파스칼의 말이 맞는 겁니까 인간이 기계나 물질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까 배우처럼 실실 웃으며나타났다가 소리 없이 무대 뒤로 사라지는 존재입니까 아닙니다. 성경만이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1:26-28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인간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기 위하여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신분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예배하며, 함께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신분의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그 인간에게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며,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인간이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과 교제하며 예배하는 신분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만물을 다스려야 할 인간이 사단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의 그 엄청난 부요를 누리던 인간이 죄를 짓고 저주 가운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떠난 자의 육신적인 삶입니다.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됩니까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꽃 가운데서 고통받게 됩니다. 여기에서 빠져 나올 길이 없습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가슴에 맺힌 한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떠난 인간이 신분과 권세를 회복하고 다시 축복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구원의 유일한 길을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창세기 3:15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왜 여인의 후손이 누구입니까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세상에 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실 것인지 그 방법까지 소상히 말씀해 줍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예수님은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피를 흘려주심으로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셨습니다. 인간의 죄를 대신하는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마귀의 사망권세를 꺾고 사단에게서 인간을 구원하는 왕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양을 잡아 가죽옷을 지어 입히심으로 아담과 하와의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워 주셨습니다. 여인의 후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와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죽으심으로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예표해 주신 것입니다.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은 본인 알든 모르든 관계없이 다 구원을 받아야 할 위치에 서 있습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은 사람과 놓친 사람이 어떤 결과를 만나게 되는지 우리가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1.이 언약을 어떻게 볼 것입니까
사람들은 나름대로 다 자기생각이 있고, 자기주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생각, 자기주장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자기를 믿는 것은 신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믿되 어떻게 믿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믿습니다. 그게 참된 신앙입니다. 믿음을 시간으로 분류하면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과거에 있었던 사실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2현재 있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3미래에 있을 일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이 셋 중에 제일 믿기 쉬운 일은 자기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사실에 대한 믿음입니다.
둘째는 지나간 과거에 있었던 역사에 대한 믿음입니다. 제일 믿기 어려운 것은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믿음입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참으로 어려운 조건 속에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으 믿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당시에는 성경이 없었습니다. 성경이 처음 기록된 것은 모세가 출애굽 한 뒤에 광야에서부터였습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 당시에는 문자로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한 구절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의 선진들에 의하여 구전으로만 전해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잘 믿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성경은 예언입니다. 신약은 성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사실을 보고 믿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 사람들은 그냥 입을 통해 전해지는 언약을 바라만 보고 믿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믿기 어려운 조건에서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상황을 보면 직접 보는 사람들이 가장 잘 믿을 것 같습니다. 또 사실은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를 잡아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너무나 뚜렷한 성취의 증거들이 우리 앞에 있는데도 믿지 않습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더 잘 믿었습니다. 성경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직 오지 않은 메시야를 미래적으로 바라보며 믿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약, 여인의 후손에 관한 피의 언약을 믿었습니다. 피의 언약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아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아가야 할 인간들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짐승을 잡아 피를 내면서 인간들에게 메시야에 대한 언약을 말씀하셨습니다. 핏속에 구원의 비밀을 숨겨 놓으셨습니다.
구약시대에 피는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입니다. 피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피를 통해서만 인간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피를 통해서만 사단의 권세를 꺾을 수 있었습니다.
피 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약을 붙잡을 때, 피의 제사를 드릴 때 창 3:15,21의 언약을 붙잡은 것으로 하나님이 인정해 주셨습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며 믿었고, 피의 제사를 드리며 언약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예언한 구약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언약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신약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예언과 성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약과 성취를 앞에 놓고 있는 여러분은 얼마만큼 믿고 계십니까 어떻게 믿고 계십니까
2.가인과 아벨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에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들이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이 가인과 아벨입니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가 되었고, 아벨은 양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이들이 함께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가인과 가인의 예물은 열납지 않으셨습니다. 아벨과 아벨의 예물만을 받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히브리서 11장에서 예물 때문이라고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 11:4)
가인과 아벨의 출발은 같았습니다. 한 아버지, 한 어머니 밑에서 함께 자랐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언약을 놓쳤고, 아벨은 피의 언약을 놓쳤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창세기 3:15과 21의 언약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 제사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들에게도 하나님 앞에 제사하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이 언약을 경홀히 여겼고, 아벨은 확실하게 붙잡았습니다. 한 아버지 어머니 밑에서 같은 가르침을 받았지만 언약을 붙잡은 자와 붙잡지 못한 자의 결과는 엄청나게 달랐습니다. 우리가 보면 지금 당장은 잘 모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압니다. 그것이 제사를 통해 나타난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언약을 놓치고 붙잡은 증거는 직업을 통해 더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고, 아벨은 양치는 자였습니다. 사람이 어떤 직업을 선택하느냐 이것은 그가 어떤 신앙을 소유했느냐 얼마만한 신앙을 소유한 사람이냐 하는 것을 밝혀주는 증거가 됩니다.
저희 교회에 과거에는 청주전문대학의 간호과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학생들이 졸업 때면 갈등합니다. 교회에서 목사님 말씀을 통해 은혜 받은 것을 생각하면 청주에 있어야 하겠는데 보수를 생각하면 다른 대도시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그들이 솔직히 자기들 입으로 말합니다.
“목사님,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가 제일 아니겠어요 저는 보수 때문에 서울로 가야 할 것 같애요”
간다고 하면 제가 어디 붙잡는 사람입니까 그래서 많이들 갔습니다. 지금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은영이라는 학생만 연말이 되면 카드를 계속 보내옵니다. 나머지는 모릅니다. 신앙, 언약 하나만 확실하게 붙잡으면 모든 상황은 초월할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남녀간에도 사랑만 한다면 모든 상황은 초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벨은 언약을 확실하게 붙잡고 현실을 초월해서 살다간 사람입니다. 그가 선택한 직업을 통해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벨은 양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양치는 직업은 육신의 삶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때였습니다. 창세기 9장에 노아의 가족이 방주에서 나왔을 때는 모든 식물이 홍수로 쓸려간 뒤라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이때에 가서야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육식을 허락하셨습니다.
아벨 당시에 양치는 직업은 육신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못했습니다. 양은 오직 하나님께 제사하는 일에만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벨은 하나님 앞에 제사할 양을 기르는 일을 자기 직업으로 선택했습니다. 영적인 선택을 하면 육신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주일날 일하지 않으면, 말씀대로 살면 손해가 될 것만 같습니다. 물론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벨은 그렇게 될 것을 각오하고 양치는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벨은 성경에 그 이름이 기록되는 영원한 영광을 얻었습니다. 가인의 저주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유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저주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후손에게도 불행을 안겨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3.세월이 지난 후에
백두산 천지에서 물이 갈라집니다. 한 줄기는 압록강으로 흘러 서해로 가고, 한 줄기는 두만강으로 흘러가 동해 바닷물이 됩니다. 출발은 같지만 어떤 방향이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언약을 붙잡은 사람과 놓친 사람의 결과가 다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과 세상을 보고 좇아가는 사람의 삶의 결과가 나중에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옵니다.
제가 다락방을 하고 전도를 한다고 해서 비난의 소리도 좀 듣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속으로 말합니다. 다락방 하는 교회, 안하는 교회, 나중에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나중에 두고 봅시다. 신앙과 불신앙, 충성과 게으름, 나중에 명확히 갈라집니다.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차이는 더욱 더 커지게 됩니다.
불신앙은 철저하게 망합니다. 노태우는 아직 덜 망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 롯은 가정이 완전히 망했습니다. 헤롯은 충이 먹어 죽었습니다. 믿는 자의 불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의 불신앙으로 광야에서 여호수아 갈렙 외에는 다 죽었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모압 땅에서 완전히 망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불신앙, 엘리 제상장의 불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서는 또 어떻습니까 장자의 명분을 그는 경홀히 여김으로 팥죽 한 그릇에 샀습니다. 롯은 농담 같은 삶을 살았기에 사위들이 그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자기 한 사람만 망한 것이 아닙니다. 후손이 함께 저주를 받았고, 망했습니다.
여러분 엄밀하게 한번 살펴보십시오.
아브라함과 롯을 비교해 보십시오.
가인과 아벨을 비교해 보십시오.
에서와 야곱을 보십시오.
이스마엘과 이삭을 비교해 보십시오.
그들이 증거입니다. 그들이 열매입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인물들입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수천억원의 뇌물을 기업들로부터 받아 비자금을 조성한 일이 들통나 4평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었을 때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습니다. 임기가 끝나고 세월이 후에야 그가 어떤 사람인가가 밝혀졌습니다. 그가 맺은 인생의 열매는 치욕의 열매였습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 승자와 패자는 역사가 세월이 지난 후에 밝혀줍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이 땅 위에 자라는 나무와 꽃들이 나름대로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여러분은 금년 한해 동안 어떤 열매를 맺으셨습니까 또 여러분의 생애를 통해 과연 어떤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까
씨를 보면 열매를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기울이는 노력의 양을 보면 그가 맺을 열매의 분량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지금까지 내 삶의 열매를 생각해 보고 나아가 내가 맺어야 할 인생의 열매를 생각해 봅시다.
자기의 신앙과 믿음을 성장시키는 두 가지 비결이 있습니다.
첫째는 감사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언약 속에 자기의 삶을 다 드리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대구의 목자감리교회 사모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교회가 너무 가난했습니다. 교회에 차량이 필요해서 어떻게든 마련해보자 성도들이 결의해서 각자 작정 헌금을 했습니다. 그 교회에 그렇게 신앙에 열심을 내지 못하는 여자 집사님이 한분 계셨는데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100만원을 작정했습니다.
그 다음날 남편이 출근하다가 집앞에서 유치원 차와 충돌을 일으켜 차가 크게 망가졌습니다. 마침 그 장면을 목사님이 지나가시다가 보았는데 남편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아내가 교회 차량헌금을 100만원씩이나 작정했는데 왜 사고가 납니까” 목사님이 멋쩍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여집사님이 “하나님 감사합니다” 소리쳤습니다.
사고가 나서 차가 망가졌는데 뭐가 감사하냐고 물었더니 이곳은 8차선이라 사고가 났다하면 대형사고인데 비록 차는 망가졌지만 당신도, 유치원 아이들도 하나도 다치지 않았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상황을 놓고 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차가 크게 망가졌기에 공업사에 보내어 수리를 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때 교회에 차가 없었던 때라 목사님이 버스를 타고 다락방을 하러 다니셨습니다. 마침 그 집에 남편과 아내가 한 대씩 차를 가지고 있어서 가끔은 빌려서 이용하곤 했습니다. 차를 찾아온 날, 목사님과 사모님이 너무 신세를 지기도 미안해서 오늘은 그냥 버스를 타고 가야지 했는데 자꾸 키를 주면서 쓰시라고 했습니다.
마침 그날은 그 가정에서 밤 10:30에 사모님이 다락방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다락방을 하고 있는데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다락방을 하러 가는 중에 앞차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들이받아 차가 크게 망가졌습니다. 앞차가 잘못한 것이기는 했지만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는 목사님이 다 수리비를 물게 되었습니다.
사고가 나서 차를 찾아온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목사님은 집사님 내외를 쳐다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모든 상황을 수습하니 11:30이었습니다. 낙심해 있는데 여자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사모님, 다락방 안합니까”
사모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상황에, 그 시간에 다시 다락방을 하자는 말이 어떻게 그 연약한 믿음의 집사님 입에서 나올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모님, 제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면 안되겠다 마음먹은지 며칠 안되었어요. 그랬더니 마귀가 이렇게 방해를 하네요. 사모님, 여기서 지면 안되잖아요. 저는 기뻐요. 마귀가 이렇게 방해를 하는 것을 보면 제 신앙에 대하여 겁을 먹은 거잖아요. 제 신앙을 확인 받은 것이라서 기뻐요.”
사모님이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그 집사님 남편이 현대자동차에 다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최고급 승용차를 끌고 다니는데 그 집사님만 고물차를 끌고 다녔습니다. 거기다가 두번에 걸쳐 사고가 나서 회사 출근이 늦었습니다.
회사에 들어가니 중역이 왜 늦었느냐 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말하자 믿지도 않는 중역이 당장 소나타
Ⅱ.를 빼라고 했습니다. 회사공금으로 남편 집사님에게 새차를 빼주었습니다. 감사했더니 몇 갑절로 돌려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집사님이 체험하자마자 목사님에게 씨에로 자가용을 악세사리까지 다해서 새차로 뽑아 드렸습니다. 감사했더니, 언약 믿고 헌신했더니 하나님이 그렇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여러분은 금년 한해에 어떤 열매를 맺으셨습니까 어떤 감사를 오늘 드리고 계십니까 그리고 여러분 인생을 놓고 진정으로 어떤 열매가 맺히기를 기도하고 계십니까
아벨은 자신의 전생을 드렸습니다.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그 언약의 예배를 받으셨습니다. 그의 삶이 열매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매순간 어떤 믿음과 신앙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세월이 지난 후에 지금은 잘 몰라도 나중에는 큰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그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언약을 더욱 굳게 잡고 든든히 서가는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절기를 맞이하여 감사를 회복하십시오. 여러분 삶으로 감사를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축복의 결과들이 찾아올 것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살아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스로를 가리켜 사람이라고 다들 말했는데 사람이 뭐요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에게 한번 물어 보세요. 여러분은 뭡니까 답이 금방 나옵니까 아직 답이 안나온 분은 좀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시간을 좀 드릴 테니까 여러분 나름대로 사람에 대해, 자신에 대해 정의를 내려보시기 바랍니다. 다 내리셨습니까 여러분이 내린 정의는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맞았다면 다행이지만 틀렸다면 큰 문제입니다.
왜냐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정의했느냐에 따라 나의 삶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파스칼은 ‘인생은 생각하는 갈대다’라고 철학자답게 말했습니다. 과학자 뉴톤은 ‘인생은 기계’라고 정의했습니다. 칼 막스는 ‘물질’이라고 답을 했습니다. 니체는 ‘인생은 배우’라고 했습니다. 웃다 울다 끝나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그가 볼 때에 인생은 장난처럼 보았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인생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한 파스칼의 말이 맞는 겁니까 인간이 기계나 물질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까 배우처럼 실실 웃으며나타났다가 소리 없이 무대 뒤로 사라지는 존재입니까 아닙니다. 성경만이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1:26-28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인간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기 위하여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신분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예배하며, 함께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신분의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그 인간에게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며,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인간이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과 교제하며 예배하는 신분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만물을 다스려야 할 인간이 사단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의 그 엄청난 부요를 누리던 인간이 죄를 짓고 저주 가운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떠난 자의 육신적인 삶입니다.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됩니까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꽃 가운데서 고통받게 됩니다. 여기에서 빠져 나올 길이 없습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가슴에 맺힌 한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떠난 인간이 신분과 권세를 회복하고 다시 축복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구원의 유일한 길을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창세기 3:15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왜 여인의 후손이 누구입니까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세상에 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실 것인지 그 방법까지 소상히 말씀해 줍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예수님은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피를 흘려주심으로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셨습니다. 인간의 죄를 대신하는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마귀의 사망권세를 꺾고 사단에게서 인간을 구원하는 왕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양을 잡아 가죽옷을 지어 입히심으로 아담과 하와의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워 주셨습니다. 여인의 후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와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죽으심으로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예표해 주신 것입니다.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은 본인 알든 모르든 관계없이 다 구원을 받아야 할 위치에 서 있습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은 사람과 놓친 사람이 어떤 결과를 만나게 되는지 우리가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1.이 언약을 어떻게 볼 것입니까
사람들은 나름대로 다 자기생각이 있고, 자기주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생각, 자기주장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자기를 믿는 것은 신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믿되 어떻게 믿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믿습니다. 그게 참된 신앙입니다. 믿음을 시간으로 분류하면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과거에 있었던 사실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2현재 있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3미래에 있을 일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이 셋 중에 제일 믿기 쉬운 일은 자기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사실에 대한 믿음입니다.
둘째는 지나간 과거에 있었던 역사에 대한 믿음입니다. 제일 믿기 어려운 것은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믿음입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참으로 어려운 조건 속에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으 믿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당시에는 성경이 없었습니다. 성경이 처음 기록된 것은 모세가 출애굽 한 뒤에 광야에서부터였습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 당시에는 문자로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한 구절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의 선진들에 의하여 구전으로만 전해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잘 믿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성경은 예언입니다. 신약은 성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사실을 보고 믿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 사람들은 그냥 입을 통해 전해지는 언약을 바라만 보고 믿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믿기 어려운 조건에서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상황을 보면 직접 보는 사람들이 가장 잘 믿을 것 같습니다. 또 사실은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를 잡아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너무나 뚜렷한 성취의 증거들이 우리 앞에 있는데도 믿지 않습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더 잘 믿었습니다. 성경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직 오지 않은 메시야를 미래적으로 바라보며 믿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약, 여인의 후손에 관한 피의 언약을 믿었습니다. 피의 언약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아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아가야 할 인간들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짐승을 잡아 피를 내면서 인간들에게 메시야에 대한 언약을 말씀하셨습니다. 핏속에 구원의 비밀을 숨겨 놓으셨습니다.
구약시대에 피는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입니다. 피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피를 통해서만 인간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피를 통해서만 사단의 권세를 꺾을 수 있었습니다.
피 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약을 붙잡을 때, 피의 제사를 드릴 때 창 3:15,21의 언약을 붙잡은 것으로 하나님이 인정해 주셨습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며 믿었고, 피의 제사를 드리며 언약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예언한 구약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언약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신약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예언과 성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약과 성취를 앞에 놓고 있는 여러분은 얼마만큼 믿고 계십니까 어떻게 믿고 계십니까
2.가인과 아벨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에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들이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이 가인과 아벨입니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가 되었고, 아벨은 양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이들이 함께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가인과 가인의 예물은 열납지 않으셨습니다. 아벨과 아벨의 예물만을 받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히브리서 11장에서 예물 때문이라고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 11:4)
가인과 아벨의 출발은 같았습니다. 한 아버지, 한 어머니 밑에서 함께 자랐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언약을 놓쳤고, 아벨은 피의 언약을 놓쳤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창세기 3:15과 21의 언약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 제사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들에게도 하나님 앞에 제사하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이 언약을 경홀히 여겼고, 아벨은 확실하게 붙잡았습니다. 한 아버지 어머니 밑에서 같은 가르침을 받았지만 언약을 붙잡은 자와 붙잡지 못한 자의 결과는 엄청나게 달랐습니다. 우리가 보면 지금 당장은 잘 모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압니다. 그것이 제사를 통해 나타난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언약을 놓치고 붙잡은 증거는 직업을 통해 더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고, 아벨은 양치는 자였습니다. 사람이 어떤 직업을 선택하느냐 이것은 그가 어떤 신앙을 소유했느냐 얼마만한 신앙을 소유한 사람이냐 하는 것을 밝혀주는 증거가 됩니다.
저희 교회에 과거에는 청주전문대학의 간호과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학생들이 졸업 때면 갈등합니다. 교회에서 목사님 말씀을 통해 은혜 받은 것을 생각하면 청주에 있어야 하겠는데 보수를 생각하면 다른 대도시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그들이 솔직히 자기들 입으로 말합니다.
“목사님,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가 제일 아니겠어요 저는 보수 때문에 서울로 가야 할 것 같애요”
간다고 하면 제가 어디 붙잡는 사람입니까 그래서 많이들 갔습니다. 지금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은영이라는 학생만 연말이 되면 카드를 계속 보내옵니다. 나머지는 모릅니다. 신앙, 언약 하나만 확실하게 붙잡으면 모든 상황은 초월할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남녀간에도 사랑만 한다면 모든 상황은 초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벨은 언약을 확실하게 붙잡고 현실을 초월해서 살다간 사람입니다. 그가 선택한 직업을 통해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벨은 양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양치는 직업은 육신의 삶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때였습니다. 창세기 9장에 노아의 가족이 방주에서 나왔을 때는 모든 식물이 홍수로 쓸려간 뒤라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이때에 가서야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육식을 허락하셨습니다.
아벨 당시에 양치는 직업은 육신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못했습니다. 양은 오직 하나님께 제사하는 일에만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벨은 하나님 앞에 제사할 양을 기르는 일을 자기 직업으로 선택했습니다. 영적인 선택을 하면 육신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주일날 일하지 않으면, 말씀대로 살면 손해가 될 것만 같습니다. 물론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벨은 그렇게 될 것을 각오하고 양치는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벨은 성경에 그 이름이 기록되는 영원한 영광을 얻었습니다. 가인의 저주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유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저주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후손에게도 불행을 안겨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3.세월이 지난 후에
백두산 천지에서 물이 갈라집니다. 한 줄기는 압록강으로 흘러 서해로 가고, 한 줄기는 두만강으로 흘러가 동해 바닷물이 됩니다. 출발은 같지만 어떤 방향이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언약을 붙잡은 사람과 놓친 사람의 결과가 다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과 세상을 보고 좇아가는 사람의 삶의 결과가 나중에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옵니다.
제가 다락방을 하고 전도를 한다고 해서 비난의 소리도 좀 듣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속으로 말합니다. 다락방 하는 교회, 안하는 교회, 나중에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나중에 두고 봅시다. 신앙과 불신앙, 충성과 게으름, 나중에 명확히 갈라집니다.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차이는 더욱 더 커지게 됩니다.
불신앙은 철저하게 망합니다. 노태우는 아직 덜 망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 롯은 가정이 완전히 망했습니다. 헤롯은 충이 먹어 죽었습니다. 믿는 자의 불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의 불신앙으로 광야에서 여호수아 갈렙 외에는 다 죽었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모압 땅에서 완전히 망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불신앙, 엘리 제상장의 불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서는 또 어떻습니까 장자의 명분을 그는 경홀히 여김으로 팥죽 한 그릇에 샀습니다. 롯은 농담 같은 삶을 살았기에 사위들이 그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자기 한 사람만 망한 것이 아닙니다. 후손이 함께 저주를 받았고, 망했습니다.
여러분 엄밀하게 한번 살펴보십시오.
아브라함과 롯을 비교해 보십시오.
가인과 아벨을 비교해 보십시오.
에서와 야곱을 보십시오.
이스마엘과 이삭을 비교해 보십시오.
그들이 증거입니다. 그들이 열매입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인물들입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수천억원의 뇌물을 기업들로부터 받아 비자금을 조성한 일이 들통나 4평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었을 때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습니다. 임기가 끝나고 세월이 후에야 그가 어떤 사람인가가 밝혀졌습니다. 그가 맺은 인생의 열매는 치욕의 열매였습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 승자와 패자는 역사가 세월이 지난 후에 밝혀줍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이 땅 위에 자라는 나무와 꽃들이 나름대로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여러분은 금년 한해 동안 어떤 열매를 맺으셨습니까 또 여러분의 생애를 통해 과연 어떤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까
씨를 보면 열매를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기울이는 노력의 양을 보면 그가 맺을 열매의 분량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지금까지 내 삶의 열매를 생각해 보고 나아가 내가 맺어야 할 인생의 열매를 생각해 봅시다.
자기의 신앙과 믿음을 성장시키는 두 가지 비결이 있습니다.
첫째는 감사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언약 속에 자기의 삶을 다 드리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대구의 목자감리교회 사모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교회가 너무 가난했습니다. 교회에 차량이 필요해서 어떻게든 마련해보자 성도들이 결의해서 각자 작정 헌금을 했습니다. 그 교회에 그렇게 신앙에 열심을 내지 못하는 여자 집사님이 한분 계셨는데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100만원을 작정했습니다.
그 다음날 남편이 출근하다가 집앞에서 유치원 차와 충돌을 일으켜 차가 크게 망가졌습니다. 마침 그 장면을 목사님이 지나가시다가 보았는데 남편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아내가 교회 차량헌금을 100만원씩이나 작정했는데 왜 사고가 납니까” 목사님이 멋쩍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여집사님이 “하나님 감사합니다” 소리쳤습니다.
사고가 나서 차가 망가졌는데 뭐가 감사하냐고 물었더니 이곳은 8차선이라 사고가 났다하면 대형사고인데 비록 차는 망가졌지만 당신도, 유치원 아이들도 하나도 다치지 않았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상황을 놓고 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차가 크게 망가졌기에 공업사에 보내어 수리를 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때 교회에 차가 없었던 때라 목사님이 버스를 타고 다락방을 하러 다니셨습니다. 마침 그 집에 남편과 아내가 한 대씩 차를 가지고 있어서 가끔은 빌려서 이용하곤 했습니다. 차를 찾아온 날, 목사님과 사모님이 너무 신세를 지기도 미안해서 오늘은 그냥 버스를 타고 가야지 했는데 자꾸 키를 주면서 쓰시라고 했습니다.
마침 그날은 그 가정에서 밤 10:30에 사모님이 다락방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다락방을 하고 있는데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다락방을 하러 가는 중에 앞차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들이받아 차가 크게 망가졌습니다. 앞차가 잘못한 것이기는 했지만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는 목사님이 다 수리비를 물게 되었습니다.
사고가 나서 차를 찾아온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목사님은 집사님 내외를 쳐다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모든 상황을 수습하니 11:30이었습니다. 낙심해 있는데 여자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사모님, 다락방 안합니까”
사모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상황에, 그 시간에 다시 다락방을 하자는 말이 어떻게 그 연약한 믿음의 집사님 입에서 나올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모님, 제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면 안되겠다 마음먹은지 며칠 안되었어요. 그랬더니 마귀가 이렇게 방해를 하네요. 사모님, 여기서 지면 안되잖아요. 저는 기뻐요. 마귀가 이렇게 방해를 하는 것을 보면 제 신앙에 대하여 겁을 먹은 거잖아요. 제 신앙을 확인 받은 것이라서 기뻐요.”
사모님이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그 집사님 남편이 현대자동차에 다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최고급 승용차를 끌고 다니는데 그 집사님만 고물차를 끌고 다녔습니다. 거기다가 두번에 걸쳐 사고가 나서 회사 출근이 늦었습니다.
회사에 들어가니 중역이 왜 늦었느냐 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말하자 믿지도 않는 중역이 당장 소나타
Ⅱ.를 빼라고 했습니다. 회사공금으로 남편 집사님에게 새차를 빼주었습니다. 감사했더니 몇 갑절로 돌려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집사님이 체험하자마자 목사님에게 씨에로 자가용을 악세사리까지 다해서 새차로 뽑아 드렸습니다. 감사했더니, 언약 믿고 헌신했더니 하나님이 그렇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여러분은 금년 한해에 어떤 열매를 맺으셨습니까 어떤 감사를 오늘 드리고 계십니까 그리고 여러분 인생을 놓고 진정으로 어떤 열매가 맺히기를 기도하고 계십니까
아벨은 자신의 전생을 드렸습니다.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그 언약의 예배를 받으셨습니다. 그의 삶이 열매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매순간 어떤 믿음과 신앙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세월이 지난 후에 지금은 잘 몰라도 나중에는 큰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그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언약을 더욱 굳게 잡고 든든히 서가는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절기를 맞이하여 감사를 회복하십시오. 여러분 삶으로 감사를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축복의 결과들이 찾아올 것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살아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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